해풍주점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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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백 여쪽의 분량을 읽으면서 내 눈에 들어온 단어는 '즐거움'이었다. '즐거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장면은 단 두 군데 뿐이다. 그럼에도 흔하디 흔한 그 단어가 마음에 딱 붙어버렸다. 아마도 해풍촌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체로 돌아오는 답은 '행복 추구'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취하는 대부분의 행위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인데, 그렇다면 삶의 행위는 목적에 해당하는 행복에 이르고자 함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즐겁고 기쁜가? 






 



지상에 단 하나 남은 거인이 사는, 대양의 남쪽 구로시오 해류를 낀 해변의 작은 마을 해풍촌을 배경으로 19세기 말 일본이 대만을 식민통치하던 무렵부터 국공내전과, 백색공포 및 계엄 체제를 지나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이어 역사의 물결에 실려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주요 인물의 관점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독자가 잘 따라가야 한다. 


소설은 역사적 사건과 사회 현상 안에서 인물들 각각의 서사를 통해 전쟁의 폐해, 가난과 폭력, 산업화에 따른 환경 오염, 부정부패와 투기, 원주민 강제 이주, 자연과의 공존의 부재, 인간의 오만함과 무력함이 드러난 작금의 현실을 전한다.  


설화와 마술적 리얼리즘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특히 모두 소멸하고 단 하나 남은 거인의 몸이 숲 그 자체라는 설정은 우리나라의 설문대할망 설화가 떠오른다. 또한 소설의 마지막에서 드러나는 거인의 장엄한 희생은 인간이 자연을 보호한다는 생각이 착각이며 자연이 인간을 보호하고 있음을 말한다. 독특한 점은 트루쿠 부족의 용어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자신이 기억되길 바라는 우민의 바람과 닿아 있는 부분이기도하다. 



등장인물 중 의미있게 다가온 인물은 투누흐의 아버지 우민 나낭이다. 그는 크니부 부락의 트루쿠족의, 사실상 마지막 사냥꾼이고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 주도적으로 교회를 짓는데 앞장 섰지만 정작 하느님은 믿지 않고, 그 교회를 합심해 함께 짓고 살아가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신념에 더 가치를 둔다.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나 인간 역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순환에 한 일부임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변화하는 시대에 우민 나낭이라는 사냥꾼이 있었음을 기억되길 바란다. 쇠락해가는 우민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의 쇠락은 해풍촌의 자연(거인)과 순리에 따른 삶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느껴졌다.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타이완 부족민의 문화와 설화롤 꼽겠다. 그리고 해풍주점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해풍주점은 해풍촌에서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인데, 그 공간의 변화(노아미의 해풍 라이브바가 옥자의 해풍주점으로 넘어가고, 이후 타이 선생에게 넘어가는 과정)가 격동의 시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십 년 후 해풍주점에 모인 그들 모두가 마지막에 알게 된 진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상 이상은 거인 드나마이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몸부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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