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장성주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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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인칭 화자 '나', '나'의 아버지 장, 어머니 크리스타, 러시아 이민자 바딤. 디아스포라 혹은 정체성의 이야기일까,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사랑을 이야기하는 걸까. 턱을 괴고 곰곰 생각하던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랑. 부부 간의,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그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외면하고 회피하면서도 끝내 서로의 곁을 지켰던 것은 사랑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외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든 부부든 오래도록 사랑을 유지하고 싶다면 열정보다는 측은지심이 더 필요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중국인과 파나마인 혼혈으로 태어난 직후 아버지의 나라에서 10년 동안 성장한 뒤 태어난 파나마로 다시 돌아왔으나 삼촌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장. 본인은 평생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았지만 중국, 중남미, 미국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독일인 아내와 딸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중국이라고 여겼지만, 밖에서 바라본 시각에서 그의 고향은 단정하기 어렵다(태어난 곳이지만 곧장 떠난 파나마, 불과 십여 년 밖에 살지 못한 중국, 가장 오래도록 살았지만 평생 소통하지 못했던 미국).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자 노동자로 사는 동안 정작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언어적·정서적 고립, 그리고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아 가족으로부터 타인으로 존재했던 소외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은 아버지는 딸이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이다. 그들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토록 악다구니로 싸우면서도 아내를 원망하는 만큼이나 사랑했다는 것, 수줍음이 많지만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는 것, 언어를 몰라 노래로써 말을 하려고 했다는 것,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으로 가장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는 것, 그가 많이 외롭고 쓸쓸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아버지의 뒷모습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병적이다시피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어머니 크리스타. 그래서 일평생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사무쳐, 떠안은 가족과 현재보다 결혼 전 과거를 끊임없이 소환하며 남편을 비난하는 것으로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고 회피한다. 나치 정권 하에서 교육 받으며 성장기를 보냈고 패전 후 핍박함과 굶주림, 공포를 경험한 크리스타는 걍팍했던 그녀의 어머니와 많이 닮아 있다. 대상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는 할 생각조차 못하는, 누군가를 동정해본 적이 없는,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을 불신하고 혐오했음에도 타인의 인생 이야기에는 기꺼이 청자가 되어 주고 동물을 사랑하며 배려한, 한편으로는 소녀같은 구석이 있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어느 면으로나, 이토록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미국인'이 되길 원치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었지만 미국에 남았으며, 딸들에게 자신의 모어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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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와 2부가 이민 1세대에 대한 이야기라면, 3부와 4부의 시선은 2세대를 향한다. '나'는 혼혈이기에 지겹게 경험했던 '미국적 사고방식'에 진저리를 치며 늘 머리 위에 칼이 매달려 있는 기분으로 살았다. 불화와 싸움이 반복되는 유년 시절의 가정환경은 실패와 비관을 당연시 여기게끔 만들었고, 사랑받기를 열망했다.  


'나'는 왜 밑바닥 인생과 다름없는 바딤에게 끌렸을까? 그에게서 아버지 장이 겹쳐진 것은 아니었을까? 바딤은 여러 면에서 장과 달랐지만(장이 왜소하고 내성적이었다면, 바딤은 단단한 체격에 거칠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으로 아내와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물론 가족을 위해 그토록 그리워하는 고향으로 돌어가지 않는 것과, 더디게 느는 영어 실력이 장과 닮아 있다(장은 거의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지만). 바딤의 영어 실력이 느는 것이 '나'에게 중요했던 이유와, 그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까닭은, 어쩌면 언어적 소통이 거의 불가능했기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바딤의 딸 스베타는 오래 전의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좋은 성적을 거둬 장학금을 받고 공식적인 명분으로 집을 떠나는 것. 작가는 그들을 통해 이민자 가정의 세대 갈등, 특히 2세대들이라면 경험하는 지병같은 혼란을 3,4부에서 내밀하게 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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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작가의 전작을 다 읽어본 경험상,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출간한 작품들에 밀리지 않는다. 특히 혼혈, 이민 2세대의 입장에서 부모 세대를 관찰하는 시선은 자전적 요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섬세하게, 하지만 과하지 않게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이민자 서사를 다룬 소설 중 손가락으로 꼽는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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