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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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이라는 한 여성의 일생을 유년시절부터 짚어가며 그녀를 통해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고찰해볼 수 있는 단편 연작소설집이다. 대가로 자리매김한 작가의 경험이 많은 부분 투영된 소설로써 그가 왜 여성서사에 집중했고,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시대성에 물음표를 찍었던 저항 정신, 그리고 작가의 현재의 모습과 작품이 어떠한 기반에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동안 읽어왔던 그의 작품과 비교해봤을 때 이 작품은 읽기에 수월하고 다정(?)하다.







노산을 앞둔 어머니의 안정을 위해 한적한 시골집에 단둘이 남겨진 열한 살 소녀 넬은 아버지가 부재 중인 사이 어머니의 보호자가 된다. 몸이 무겁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어머니의 시중을 들고 태어날 아기의 옷을 뜨개질하며 어지간한 살림을 도맡아 한다. 태어난 동생을 보살피는 것 또한 넬의 몫이다. 어머니의 지인들은 소녀가 뜨개질한 것을 보며 '훌륭한 작은 일꾼'이라는 칭찬을 하지만, 넬은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침착하고 생각이 많으며 분별력이 있는 언니 넬, 예민하고 감성이 여린 동생 지나. 신경질적인 늦둥이를 감당하기에 부모님은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끼고 독립한 큰딸에게 종종 도움을 요청한다. 부모가 낳았지만 양육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넬은 지나와 애증의 관계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으면 결혼을 해야 하는 당시에 넬은 문학에 재능을 보이고, 학교 선생 벳시의 가르침을 받아 대학에 입학한다. 이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입이 생겨 드디어 자기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자신의 '내면의 아이'에 집중한다. 심리적 파편으로 남아있는 오래된 유아적 자아의 한 조각. 그 파편을 세상에 내보내기에는 아직 두렵고 외롭지만 그 시간이 그녀의 생에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넬이 프리랜서로 편집 일을 했을 당시 그녀는 오나의 편집자였다. 오나는 슈퍼우먼이 될 수 있는 안내서를 집필하는 중이었는데, 넬의 눈에 그녀는 모든 것ㅡ자상하게 외조하는 남편, 사랑스런 두 아들, 깔끔한 집, 다정한 부부관계ㅡ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쇼윈도 부부였다. 오나에 의해 넬은 티그와 가까워지고 두 사람은 동거를 하며 사실혼 관계에 이른다.


넬과 티그는 어렵사리 돈을 모아 시골에 농장을 샀다. 넬은 채소 정원을 가꾸고 소소하게 가축들을 키우며,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삶의 다른 면을 체득해 가고, 계절에 따른 자연의 경이로움과 충만함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티그가 오나와의 법적 관계를 정리하지 않아서 그의 아내는 여전히 오나다. 넬은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없었고, 부모님과는 거의 소통하지 않았으며 도시에 자주 나가지도 않았다. 한편으로 그녀는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몇 년이 지나 넬과 티그는 농장을 떠나 차이나타운 언저리에 있는 연립 주택을 구해 이사했다. 현재 오나는 직장을 그만두면서 넓은 집을 포기해야 했고 그토록 많은 남자들과 연애를 했지만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구나 건강도 좋지 않아 예전의 미모와 당당함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넬에게 질투를 느끼며 집을 사내라고 억지를 부리는 중이다. 티그는 아들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여전히 오나에게 끌려다니면서도 넬에게 상의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넬에 대한 배려인지 미안함인지 뻔뻔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넬은 유산으로 받은 돈으로 오나의 집을 사준다. 티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납득하지 못한다. 그런데 설상가상, 오나는 넬이 월세까지 내주기를 바라고 아들들은 오나의 의사를 넬에게 넌지시 전달한다. 심지아 아들들은 오나가 아파트로 이사하기를 바라고 이를 승낙한 오나가 매매를 위해 집을 공개하기로 한 날, 그녀는 뇌졸증으로 사망한다.


세월은 계속 흐른다. 이제 넬의 부모님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버지에게 그가 좋아하는 '래브라도의 탐험'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 다시 몇 년이 흘러 임종이 가까운 어머니를 대신해 이층에 보관되어 있는 그녀의 사진을 정리하는 넬. 그 사진에는 유년시절부터 50여년 간의 어머니의 삶이 담겨있다. 그 사진을 통해 넬은 어머니 역시 시대에 저항하고 견뎌온 여성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노년을 맞이하는 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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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늦둥이로 태어난 동생의 주양육자가 되고, 사춘기에는 신체의 변화가 수치로 느껴져 성희롱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결혼과 출산을 당연한 수순으로 알았던 시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피해자는 다수가 여성이고, 성폭행 피해자를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부지기수이며, 법적으로는 차츰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살림과 양육의 강박은 여성에게 지워진다. 부모에게 착한 딸, 착한 아들, 성적이 우수한 자녀, 순종적인 며느리는 여전히 자랑거리이고, 출산율이 낮아진 현대 사회에서 다산은 애국자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온다.


넬은 교과서에 실린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그린 그림ㅡ자가용을 몰고 직장에 가는 아버지, 앞치마를 두르고 베이킹을 하는 어머니, 남녀로 구성된 두 자녀, 고양이와 개 각각 한 마리가 주름 장식 창문 커튼이 달린 집에서 사는 모습ㅡ을 보고 충격을 받고, 친구가 없다는 것,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되어진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정해놓은 잣대에 벗어나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치부되는 것에 대해 반항심이 든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관습적으로 당연시 여기는 가족 구성원의 형태와 중산층이라는 잣대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인식과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는 삶의 고단함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티그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오나와 이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나가 부리는 횡포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무게를 정작 본인인 티그보다 넬이 더 많이 감당한다. 아이들이 농장에 올 때마다 행해지는 교육, 양육, 심지어 오나와 엮인 경제 문제까지 티그는 방관자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기를 바란다. 적어도 이기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다. 거꾸로 본인은 윤리적이고 호의적이라고 판단해 행동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소설에서 오나와 티그는 말할 것도 없고, 넬이 감수해야하는 부분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부모와 지나, 본인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 선행을 상대방의 입장과 처한 상황을 감안하지 않으며 오히려 호의로 포장하는 빌리,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배려라는 명분으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거부하지 못하는 넬 자신까지 말이다.


부모가 살아있고 미성년임에도 동생의 준양육자가 되어야 하고, 말 잘 듣는 살림꾼이자 정숙한 딸이어야 하며, 자기의 입장이나 감정보다는 연인의 자녀들을 더 배려하며 기다려주고, 법적으로 유부남인 남자와 동거하고 임신한 넬이 감수해야할 '도덕'은 어디까지인가?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읽어준 '래브라도의 탐험'은 처음 캐나다에 온 개척자들의 이야기로써 읽다보면 인생이라는 긴 길과도 무척 닮아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광대한 꿈을 갖고 있는 시절을 지나 현실을 깨닫고 때로는 주춤하고 때로는 전진하면서 길을 잃기도 하고 선택의 순간에 갈등을 겪는다. 성공의 희열도 잠시, 실패에 좌절하지만 누군가가 내민 호의에 위로받고 다시 힘을 내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로, 희망과 좌절로 단정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실재했던 우리의 삶, 그것은 이야기이며 탐험기이고 소설이다.


삶은 끝까지 녹록치 않다. 평온한 인생에 언제라도 들이닥칠 수 있는 '나쁜 소식'들은, 아직까지는 안전하지만 불길한 예감과 위험을 안고 우리를 덮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죽음만이 영원한 안식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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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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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이제 그녀를 제대로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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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 개정판 ㅣ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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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청년 카알 로스만은 하녀의 유혹에 빠져 아이를 갖게 했고, 이 때문에 양친은 그를 미국에 있는 외삼촌에게로 보냈다. 카알이 탄 배가 뉴욕 항에 들어오고 있을 때 갑판에 있던 그는 선실에 우산을 놓고 왔음을 떠올리고 다시 돌아가지만 길을 잃고 만다. 하선을 위해 아무도 없는 선실 사이를 헤매고 있다가 화부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듣게 된다. 카알은 화부에게 선장을 만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라고 충고하고 그와 함께 동행한다. 그런데 선장과 그의 일행 앞에 선 화부의 말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힘도 없다. 보다못한 카알은이 나서서 화부가 당한 부당함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데, 그를 지켜보던 한 신사가 카알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카알을 향해 자신이 외삼촌이라고 호탕하게 말하는 신사는 미국 상원의원 에트바르트 야콥 씨다. 카알은 미리 연락을 받은 외삼촌을 따라 그의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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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과 운송업을 운영하며 이민자로서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아콥은 무엇보다 조카 카알의 교육에 엄격하다. 어느날 카알은 외삼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외삼촌의 친구인 플룬더 씨와 뉴욕 교외에 있는 별장을 방문한다. 그곳에는 플룬더 씨의 딸 클라라와 예정에 없던 그린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린 씨의 방문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플룬더 씨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린 씨는 식사를 하면서 클라라와 카알에게 무례하게 굴고, 클라라는 자기의 요구대로 따라주지 않는 카알을 거칠게 대하며 협박하는 듯한 어투로 말한다. 이 일을 견딜 수 없었던 카알은 플룬더 씨에게 외삼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플룬더 씨와 그린 씨는 떠나기 전에 클라라를 만나보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는데, 클라라를 만나고 온 사이 그린 씨로부터 외삼촌의 편지를 전해 받는 카알은 명령에 순응하지 않은 댓가로 외삼촌의 집에서 쫓겨났음을 알게 되고, 편지의 내용상 그린 씨의 악의적인 간교가 있었음을 파악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카알은 외삼촌에게도, 플룬더 씨의 별장에서도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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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어 별장에서 나온 카알은 작은 여관에 투숙하고, 그곳에서 로빈슨과 들라마르쉬라는 두 젊은 기계공과 한 방을 쓰게 된다. 두 사람은 버터포드에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길인데, 카알은 두 사람과 동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카알의 옷을 허락도 없이 여관 주인에게 팔고, 식당에서 식사비를 카알에게 전부 부담시키며, 카알이 음식을 사러 간 사이 그의 트렁크를 뒤지는 등의 일로 두 기계공과 헤어져 음식을 샀던 옥시덴탈 호텔로 향한다. 처음부터 카알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호텔의 여주방장은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하고 이를 받아들인 카알은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 업무를 배정받는다. 비록 단조롭고 하루에 열두시간 일해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카알은 두 기계공처럼 허송세월하는 낙오자가 될 것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에 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충실히 업무에 임한다. 그곳에서 여주장방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테레제와 가까운 사이가 되고, 그녀는 카알에게 감추어둔 개인사까지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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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이 옥시덴탈 호텔에서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한지 두 달이 지난 어느날 만취한 상태로 로빈슨이 찾아온다. 지난 잘못을 사과하고 들라마르쉬의 심부름으로 자기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초대한다는 말을 하지만 카알은 로빈슨이 근무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얼른 돌아가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바람과는 다르게 결국 구토를 시작하고 마음이 다급해진 카알은 동료에게 잠시 대신 근무를 서달라는 부탁과 함께 로빈슨을 공동침실에 눕혀 놓고 나온다. 그러나 마침 카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수위장이 지나가고 호출을 당한 카알은 수위장과 웨이터장으로부터 밤마다 유흥업소를 드나든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공동침실에 있는 로빈슨의 술주정이 빌미가 되어 도둑으로 몰려 수위장으로부터 폭력과 멸시를 당하면서 해고된다. 술취한 로빈슨을 공동침실에 재운 탓에 여주방장의 신뢰까지 잃어버린 카알. 때마침 엘리베이터 보이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내동댕이쳐진 로빈슨을 데리고 카알은 도망치 듯 택시를 탄다.


택시를 타고 정신없이 도착한 곳은 들라마르쉬와 브루넬다라는 여성이 머물고 있는 외진 교외였다. 몸이 약하지만 비대한 브루넬다에게 들라마르쉬는 꼼짝 못하면서 시중을 들고, 로빈슨은 거의 천덕꾸러기 신세다. 로빈슨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로는, 브루넬다는 재산이 많고 독립한 이혼녀였는데 들라마르쉬와 로빈슨이 그녀의 집앞에서 구걸을 하던 중 들라마르쉬가 브루넬다의 눈에 들었고 이후 그녀는 들라마르쉬와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교외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드디어 두 기계공이 카알을 찾아온 이유가 밝혀진다. 브루넬다에게 맞춰 하인 노릇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로빈슨은 카알을 자기 대신 하인 자리에 들이려는 수작이었던 것. 카알은 도망치기 위해 두 기계공과 몸싸움까지 벌이지만 소득없이 다치기만 했다. 그날 밤 우연찮게 주경야독하는 옆집의 대학생으로부터 얻은 조언을 참고로 카알은 당분간 들라마르쉬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돈을 무기로 세 남자 위에서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브루넬다. 브루넬다에 기생하면서 저열한 권력을 휘두르는 들라마르쉬. 그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로빈슨과 카알. 그 대가는 고작 한 줌의 비스킷이다.







카프카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주인공의 불안이 나에게까지 스며든다. 작품마다 그렇듯 주인공은 늘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에 던져진다. <변신>의 그레고리가 아루 아침에 갑충이 되고, <소송>의 요제프 K가 어느날 아침 아무 이유도 없이 잠옷바람으로 체포된 것처럼, 카알 역시 아버지로부터 자기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물론 카알의 경우 열일곱 살 소년이 하녀를 임신시켰다는 이유는 있지만 외부에 의해 상황에 내몰린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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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전통은 형식만 지킬 뿐 유럽에서 자수성가해 주류 사회에 진입하는데 성공한 카프카의 아버지는 하나 뿐인 아들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고 한다. 그런데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사람. 카프카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했으나 문학에 심취한 그에게는 쉽지 않았고, 그로인해 갈등도 계속됐다. 아버지를 두려워한 카프카를 보듬어준 사람이 어머니와 누이동생이었는데, 이러한 가정환경은 소설 <실종자>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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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적이고 무소불휘의 힘을 휘두르는 인물은 카알이 머무는 장소마다 등장한다. 살던 고향에서 추방시킨 카알의 아버지, 엄격한 규율과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한 마디의 변명도 들어주지 않은 채 추방시키는 외삼촌, 카알의 설명을 거짓으로 확대시켜 호텔에서 내쫓은 수위장, 그리고 고작 네 명뿐인 외진 주택에서조차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들라마르쉬까지 그들은 카알의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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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은 가는 곳바다 주변 사람들에게 흡수되지 못하고 소외당해 고립된다. 그 기반에는 틀에서 벗어난 '다름'이 존재한다.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학생이 하녀를 임신시키고, 권력자로 대변하는 아버지와 외삼촌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 하층민에 속하는 엘리베이터 보이에 불과한 주제에 동료들과는 다르게 도박도 음주도 하지 않는 것, 유약해 보이지만 폭력과 강요에 저항하는 것 등 '일반적'이지 않은 카알의 행보가 다수자들은 불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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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프카를 보듬고 이해해주었다는 어머니와 여동생은 호텔의 여주방장과 테레제에게 투영된다. 꽤 힘있는 위치에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호텔에서 여주방장의 입지는 그다지 크지 않다. 비교적 힘이 있는 웨이터장이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다. 호텔을 처음 방문할 때부터 특별한 이유없이 카알에게 호의를 베푼 여주방장은 주변의 거짓으로 인해 그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을 때에도 카알을 끝까지 돌봐준다. 또한 테레제 역시 카알이 호텔에서 쫓겨나는 순간까지 그에 대한 걱정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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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알의 인생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안착하기를 희망하는 세계에서 계속 배척당하는 카알이 향하는 곳은 그를 아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는 외진 곳이다. 미래가 보장된 미국의 상류 사회에서 외곽에 있는 호텔로, 정작 벗어나고 싶은 외진 길 어딘가에 있는 집으로 밀려나기까지 카알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작 벗어나고 싶은 외딴 집에서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져버렸고, 카알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버둥거릴수록 늪에 빠지듯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카알은 '그들'의 세계에서 실종된다. 그토록 노력한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비스킷 한 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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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특유의 음습함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부르넬다의 집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살짝 길에서 비켜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부르넬다가 등장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애니메이션 <몬스터 하우스>에서 집과 일체가 된 비대한 여인 콘스탄스가 떠올랐다. 영화 속 콘스탄스가 세상의 조롱거리였고 그녀의 죽음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미완성작으로 보이는 단편 두 작품에서 브루넬라 또한 외모로 인해 숨어야 했던, 세상으로부터 실종된 사람이고 카알과 다른 점이라면 자발적 고립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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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의 성장 배경과 정체성을 염두에 두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작가가 죽을 때까지천착했던 정체성과 인간의 단절, 그리고 소외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이유가 그에 대한 이해라는 변명을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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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이트 오브 유
홀리 밀러 지음, 이성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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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평생은 커녕 일 년도 함께 하지 못했다.
 

일곱 살 때 처음 예지몽을 꾸기 시작하면서부터 조엘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련한 좋은 꿈도 있었지만 나쁜 꿈을 꾸게 되면 알려 주기도 난감하고, 예지몽대로 나쁜 일이 벌어지면 죄책감 때문에 괴롭기 일쑤였다. 수면 패턴을 바꿔보려고 방법을 찾아보고, 숙면을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다가 알콜의존증에 걸리기도 했으며, 심한 무기력증과 수면부족,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이로인해 수의사였던 조엘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어 다니던 동물병원까지 그만두고 동네 반려견들을 산책 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날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비몽사몽 간에 계산을 하지 않고 나온 것이 계기가 되어 캘리와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고 이후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매일 카페를 방문하는 조엘. 두 번의 연애 실패와 자신의 문제점을 잘 알기에 다시는 사랑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에게 끌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웃사촌이자 친구인 스티브가 어린 딸을 태우고 교통사고를 내는 꿈을 꾼 후 외출을 막기 위해 타이어에 구멍을 내는 짓을 하고 이를 알게 된 스티브는 복합적인 이유로 이사를 결정하고 세입자를 구한다. 


캘리는 생태학을 전공해 자연보호구역 워터펜에서 일하는 게 꿈이지만, 현실은 친했던 친구의 죽음으로 그의 카페를 대신 운영하고 있는데, 자신의 꿈은 접은 채 죽은 친구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있는 셈이다. 카페의 손님으로 찾아온 조엘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상대방의 마음도 모른 채 데이트 신청할 수 없어 주저한다.  어느날 캘리는 집을 매도하기 위해 세를 빼달라는 집주인의 통보를 받고 어렵게 구한 집이 바로 스티브의 집이었다.  

한 건물의 위아래층에 살게 된 캘리와 조엘. 두 사람의 사이는 가까워지고, 조엘은 그녀를 좋아하는 감정과 그 마음을 눌러야한다는 양가적 감정으로 갈등하고,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찾아오라는 스티브에게 찾아가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스티브의 조언으로 마침내 캘리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조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교제를 시작하고 캘리는 조엘의 응원에 힘입어 워터펜 계약직으로 입사한다.  이보다 더이상 완벽할 수 없을 것 같은 날들의 연속.  

그러나 조엘이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만다. 캘리에 대한 예지몽!
그 꿈을 꾼 이후로 조엘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유를 알고 있는 캘리 역시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 조엘은 이제 친아버지 워런을 찾아간다. 당신도 이러냐고, 나처럼 예지몽을 꾸냐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고 싶다. 어떻게 해야 캘리를 구할 수 있냐고. 워런은 말한다. 캘리가 자기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보내주라고. 





 

국가의 위기나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자연 재해도 아니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 관련한 예지몽을 꾼다면 어떤 마음일까? 몇 년 후 암 병동에 누워있는 엄마, 엄마의 장례식이, 가장 친한 친구의 교통 사고, 형제들의 크고 작은 사고,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의 결혼과 죽음을 미리 알게 된다면 그 아픔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캘리의 8년 후 죽음을 알고 전전긍긍하며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걱정과 고통, 그리고 슬픔으로 매일을 보냈을지도 모를 조엘. 아버지의 조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캘리를 보내주었기에 그들은 각자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언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공포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 수 없을 것이기에 조엘에게 예지몽의 내용을을 듣지 않겠다는 캘리의 현명한 선택. 그토록 소원했던 세상 밖으로 떠나 세계 곳곳을 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하는 캘리는 조엘이 자신을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지 알기에 더 아낌없이 매순간을 살았을 것이다. 

사랑했기에 보내준다는 신파적이고 위선적으로 들리는 이 말이 어쩐지 와닿는 소설이다.  


당신 인생에서 최고의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 (조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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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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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병으로 죽고 1년 뒤 엄마는 애인과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아홉 살 사라사는 약속이나 한 듯 순차적으로 사라진 부모님 대신에 이모네 집으로 옮겨 살게 된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한 사라사는 관습적이고 배려심이 부족한 이모와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는 사촌, 그리고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하느라 하루하루가 괴롭다.   
 
하교 후 아이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지못해 매일 들르는 공원에는 로리콘(로리타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젊은 남자가 늘 벤치에 앉아 있다. 친구 요쿄는 사라사에게 주의를 주지만 사라사는 어쩐지 그가 나쁜 사람같지 않다. 사라사가 친구들과 헤어져 벤치에서 쉴 때에도 그 남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는,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을 만큼 집에 돌아가기 싫은 어느날, 그 젊은 남자가 자기 집에 가겠냐고 묻자 사라사는 덥석 그를 따라가고, 그곳에서 이모네 집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편안한 잠을 잔다. 친구들이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사라사에게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았고, 이모네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사라사는 그 남자, 후미의 집에 머문다. 
 
사라사는 후미의 집에서 편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후미의 집 바깥 세상에서는 사라사의 실종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그렇게 2개월을 보내고 동물원에 간 두 사람은 결국 발각되고 만다. 다시 돌아온 이모네집. 그날 밤도 여지없이 사라사의 방에 들어온 사촌 다카하시는 사촌 여동생의 반격에 당황하고, 그 일로 사라사는 아동 보육시설로 보내진다. 
 
15년 후, 사라사는 직장 파트 타임 직원들 송별회를 하기 위해 방문한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후미를 발견한다. 이후 며칠동안 계속 그의 카페를 드나들었지만 사라사가 15년 동안 잊지 못했던 후미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외면하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의 옆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함께하고 있다. 그의 소아성애증은 없어진 것일까? 그는 이제 사라사의 후미도, 소아성애자도 아니다. 한편 사라사의 행동에 변화를 느낀 그녀의 연인 료는 미행과 뒷조사를 통해 후미의 정체를 알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한다. 데이트 폭력 이력이 있었던 료는 사라사를 잃는 것이 두려워 폭력으로 그녀를 제압하고, 마침 료와의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사라사는 결별을 결심한다. 사라사가 연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후미와 사라사.
  
사라사는 직장 동료인 싱글맘 안자이로부터 일주일 동안만 딸 리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덟 살인 리카가 여름방학이라 학교를 가지 않기 때문에 사라사는 난감해 하지만 후미가 도와주겠다는 말에 승낙한다. 그런데 15년 전의 사건은 두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료의 악의적인 제보와 인터뷰, 그리고 신고로 두 사람은 그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후미의 비밀을 알게 되는 사라사.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시기에 만나 서로의 구원이 되어주었던 두 남녀의 사랑, 그 이상의 이야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복잡하고 씁쓸한 마음에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했다. 순간 순간 마음이 내려앉는 문장들과 주인공들의 처한 상황때문에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날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때가 마지막이 될 거라는 사실도 모른 채 해맑은 얼굴로 다녀오겠다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고, 엄마에게 버림받은 후 사촌 형제에게 성추행을 당하면서 도망칠 길 없는 무게를 두 어깨에 이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홉 살에 깨달은 아이. 
 
중학생 이후로 성적 성장이 멈춰버린 질병 사실을 부모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채 수치심과 자괴감을 안고 극도로 긴장된 매일을 보냈던, 그래서 차라리 소아성애자라는 오해가 더 마음이 편했던 열아홉 살 남자 아이.  
 
결핍과 상처가 있는 사라사와 후미는 서로 이해와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단단하게 결속되어진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어리다는 이유로. 후미는 깊은 곳에 감춰둔 비밀을 드러낼 수 없어 소아성애자라는 누명을 자진해서 뒤집어쓰고, 사람들은 사라사를 성범죄의 피해자로 낙인찍고, 심지어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그녀에게 스톡흘름증후군까지 들이밀며 원하지 않는 동정심을 적선하듯 던진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두 사람은  매장당해야 할 가해자와 불쌍하고 불편한 피해자다. 서로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두 사람 뿐이다. 
 
84.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혐오의 눈빛은 피해자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알고 아연했다. 위로나 배려라는 선의의 형태로 '상처 입은 불쌍한 여자아이'라는 도장을,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쾅쾅 찍어댄다. 다들 자기가 상냥하다고 생각한다.

  
 
육체를 욕망하지도 않고,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구속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함께 있고 싶을 뿐이다.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 주었던 대상을 15년 동안 잊지 못했던 두 남녀의 관계를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한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유랑민처럼 어딘가로 흘러들어 다시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릴지라도, 좋을 것이다. 더이상 혼자 외로이 무섭지 않아도 될테니까. 
 
 
283.
우리는 부모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친구라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 사이에는 말로 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만, 무엇으로도 우리를 단정 지을 수 없다. 그저 따로따로 혼자 지내며, 그러나 그것이 서로를 무척 가깝게 느끼게 한다. 나는 이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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