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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평점 :
'넬'이라는 한 여성의 일생을 유년시절부터 짚어가며 그녀를 통해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고찰해볼 수 있는 단편 연작소설집이다. 대가로 자리매김한 작가의 경험이 많은 부분 투영된 소설로써 그가 왜 여성서사에 집중했고,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시대성에 물음표를 찍었던 저항 정신, 그리고 작가의 현재의 모습과 작품이 어떠한 기반에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동안 읽어왔던 그의 작품과 비교해봤을 때 이 작품은 읽기에 수월하고 다정(?)하다.

노산을 앞둔 어머니의 안정을 위해 한적한 시골집에 단둘이 남겨진 열한 살 소녀 넬은 아버지가 부재 중인 사이 어머니의 보호자가 된다. 몸이 무겁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어머니의 시중을 들고 태어날 아기의 옷을 뜨개질하며 어지간한 살림을 도맡아 한다. 태어난 동생을 보살피는 것 또한 넬의 몫이다. 어머니의 지인들은 소녀가 뜨개질한 것을 보며 '훌륭한 작은 일꾼'이라는 칭찬을 하지만, 넬은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침착하고 생각이 많으며 분별력이 있는 언니 넬, 예민하고 감성이 여린 동생 지나. 신경질적인 늦둥이를 감당하기에 부모님은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끼고 독립한 큰딸에게 종종 도움을 요청한다. 부모가 낳았지만 양육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넬은 지나와 애증의 관계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으면 결혼을 해야 하는 당시에 넬은 문학에 재능을 보이고, 학교 선생 벳시의 가르침을 받아 대학에 입학한다. 이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입이 생겨 드디어 자기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자신의 '내면의 아이'에 집중한다. 심리적 파편으로 남아있는 오래된 유아적 자아의 한 조각. 그 파편을 세상에 내보내기에는 아직 두렵고 외롭지만 그 시간이 그녀의 생에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넬이 프리랜서로 편집 일을 했을 당시 그녀는 오나의 편집자였다. 오나는 슈퍼우먼이 될 수 있는 안내서를 집필하는 중이었는데, 넬의 눈에 그녀는 모든 것ㅡ자상하게 외조하는 남편, 사랑스런 두 아들, 깔끔한 집, 다정한 부부관계ㅡ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쇼윈도 부부였다. 오나에 의해 넬은 티그와 가까워지고 두 사람은 동거를 하며 사실혼 관계에 이른다.
넬과 티그는 어렵사리 돈을 모아 시골에 농장을 샀다. 넬은 채소 정원을 가꾸고 소소하게 가축들을 키우며,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삶의 다른 면을 체득해 가고, 계절에 따른 자연의 경이로움과 충만함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티그가 오나와의 법적 관계를 정리하지 않아서 그의 아내는 여전히 오나다. 넬은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없었고, 부모님과는 거의 소통하지 않았으며 도시에 자주 나가지도 않았다. 한편으로 그녀는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몇 년이 지나 넬과 티그는 농장을 떠나 차이나타운 언저리에 있는 연립 주택을 구해 이사했다. 현재 오나는 직장을 그만두면서 넓은 집을 포기해야 했고 그토록 많은 남자들과 연애를 했지만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구나 건강도 좋지 않아 예전의 미모와 당당함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넬에게 질투를 느끼며 집을 사내라고 억지를 부리는 중이다. 티그는 아들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여전히 오나에게 끌려다니면서도 넬에게 상의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넬에 대한 배려인지 미안함인지 뻔뻔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넬은 유산으로 받은 돈으로 오나의 집을 사준다. 티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납득하지 못한다. 그런데 설상가상, 오나는 넬이 월세까지 내주기를 바라고 아들들은 오나의 의사를 넬에게 넌지시 전달한다. 심지아 아들들은 오나가 아파트로 이사하기를 바라고 이를 승낙한 오나가 매매를 위해 집을 공개하기로 한 날, 그녀는 뇌졸증으로 사망한다.
세월은 계속 흐른다. 이제 넬의 부모님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버지에게 그가 좋아하는 '래브라도의 탐험'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 다시 몇 년이 흘러 임종이 가까운 어머니를 대신해 이층에 보관되어 있는 그녀의 사진을 정리하는 넬. 그 사진에는 유년시절부터 50여년 간의 어머니의 삶이 담겨있다. 그 사진을 통해 넬은 어머니 역시 시대에 저항하고 견뎌온 여성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노년을 맞이하는 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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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늦둥이로 태어난 동생의 주양육자가 되고, 사춘기에는 신체의 변화가 수치로 느껴져 성희롱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결혼과 출산을 당연한 수순으로 알았던 시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피해자는 다수가 여성이고, 성폭행 피해자를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부지기수이며, 법적으로는 차츰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살림과 양육의 강박은 여성에게 지워진다. 부모에게 착한 딸, 착한 아들, 성적이 우수한 자녀, 순종적인 며느리는 여전히 자랑거리이고, 출산율이 낮아진 현대 사회에서 다산은 애국자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온다.
넬은 교과서에 실린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그린 그림ㅡ자가용을 몰고 직장에 가는 아버지, 앞치마를 두르고 베이킹을 하는 어머니, 남녀로 구성된 두 자녀, 고양이와 개 각각 한 마리가 주름 장식 창문 커튼이 달린 집에서 사는 모습ㅡ을 보고 충격을 받고, 친구가 없다는 것,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되어진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정해놓은 잣대에 벗어나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치부되는 것에 대해 반항심이 든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관습적으로 당연시 여기는 가족 구성원의 형태와 중산층이라는 잣대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인식과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는 삶의 고단함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티그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오나와 이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나가 부리는 횡포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무게를 정작 본인인 티그보다 넬이 더 많이 감당한다. 아이들이 농장에 올 때마다 행해지는 교육, 양육, 심지어 오나와 엮인 경제 문제까지 티그는 방관자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기를 바란다. 적어도 이기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다. 거꾸로 본인은 윤리적이고 호의적이라고 판단해 행동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소설에서 오나와 티그는 말할 것도 없고, 넬이 감수해야하는 부분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부모와 지나, 본인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 선행을 상대방의 입장과 처한 상황을 감안하지 않으며 오히려 호의로 포장하는 빌리,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배려라는 명분으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거부하지 못하는 넬 자신까지 말이다.
부모가 살아있고 미성년임에도 동생의 준양육자가 되어야 하고, 말 잘 듣는 살림꾼이자 정숙한 딸이어야 하며, 자기의 입장이나 감정보다는 연인의 자녀들을 더 배려하며 기다려주고, 법적으로 유부남인 남자와 동거하고 임신한 넬이 감수해야할 '도덕'은 어디까지인가?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읽어준 '래브라도의 탐험'은 처음 캐나다에 온 개척자들의 이야기로써 읽다보면 인생이라는 긴 길과도 무척 닮아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광대한 꿈을 갖고 있는 시절을 지나 현실을 깨닫고 때로는 주춤하고 때로는 전진하면서 길을 잃기도 하고 선택의 순간에 갈등을 겪는다. 성공의 희열도 잠시, 실패에 좌절하지만 누군가가 내민 호의에 위로받고 다시 힘을 내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로, 희망과 좌절로 단정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실재했던 우리의 삶, 그것은 이야기이며 탐험기이고 소설이다.
삶은 끝까지 녹록치 않다. 평온한 인생에 언제라도 들이닥칠 수 있는 '나쁜 소식'들은, 아직까지는 안전하지만 불길한 예감과 위험을 안고 우리를 덮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죽음만이 영원한 안식이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