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 개정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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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청년 카알 로스만은 하녀의 유혹에 빠져 아이를 갖게 했고, 이 때문에 양친은 그를 미국에 있는 외삼촌에게로 보냈다. 카알이 탄 배가 뉴욕 항에 들어오고 있을 때 갑판에 있던 그는 선실에 우산을 놓고 왔음을 떠올리고 다시 돌아가지만 길을 잃고 만다. 하선을 위해 아무도 없는 선실 사이를 헤매고 있다가 화부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듣게 된다. 카알은 화부에게 선장을 만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라고 충고하고 그와 함께 동행한다. 그런데 선장과 그의 일행 앞에 선 화부의 말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힘도 없다. 보다못한 카알은이 나서서 화부가 당한 부당함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데, 그를 지켜보던 한 신사가 카알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카알을 향해 자신이 외삼촌이라고 호탕하게 말하는 신사는 미국 상원의원 에트바르트 야콥 씨다. 카알은 미리 연락을 받은 외삼촌을 따라 그의 집으로 향한다.

중개업과 운송업을 운영하며 이민자로서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아콥은 무엇보다 조카 카알의 교육에 엄격하다. 어느날 카알은 외삼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외삼촌의 친구인 플룬더 씨와 뉴욕 교외에 있는 별장을 방문한다. 그곳에는 플룬더 씨의 딸 클라라와 예정에 없던 그린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린 씨의 방문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플룬더 씨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린 씨는 식사를 하면서 클라라와 카알에게 무례하게 굴고, 클라라는 자기의 요구대로 따라주지 않는 카알을 거칠게 대하며 협박하는 듯한 어투로 말한다. 이 일을 견딜 수 없었던 카알은 플룬더 씨에게 외삼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플룬더 씨와 그린 씨는 떠나기 전에 클라라를 만나보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는데, 클라라를 만나고 온 사이 그린 씨로부터 외삼촌의 편지를 전해 받는 카알은 명령에 순응하지 않은 댓가로 외삼촌의 집에서 쫓겨났음을 알게 되고, 편지의 내용상 그린 씨의 악의적인 간교가 있었음을 파악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카알은 외삼촌에게도, 플룬더 씨의 별장에서도 쫓겨났다.

자정이 넘어 별장에서 나온 카알은 작은 여관에 투숙하고, 그곳에서 로빈슨과 들라마르쉬라는 두 젊은 기계공과 한 방을 쓰게 된다. 두 사람은 버터포드에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길인데, 카알은 두 사람과 동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카알의 옷을 허락도 없이 여관 주인에게 팔고, 식당에서 식사비를 카알에게 전부 부담시키며, 카알이 음식을 사러 간 사이 그의 트렁크를 뒤지는 등의 일로 두 기계공과 헤어져 음식을 샀던 옥시덴탈 호텔로 향한다. 처음부터 카알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호텔의 여주방장은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하고 이를 받아들인 카알은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 업무를 배정받는다. 비록 단조롭고 하루에 열두시간 일해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카알은 두 기계공처럼 허송세월하는 낙오자가 될 것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에 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충실히 업무에 임한다. 그곳에서 여주장방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테레제와 가까운 사이가 되고, 그녀는 카알에게 감추어둔 개인사까지 털어놓는다.

카알이 옥시덴탈 호텔에서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한지 두 달이 지난 어느날 만취한 상태로 로빈슨이 찾아온다. 지난 잘못을 사과하고 들라마르쉬의 심부름으로 자기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초대한다는 말을 하지만 카알은 로빈슨이 근무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얼른 돌아가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바람과는 다르게 결국 구토를 시작하고 마음이 다급해진 카알은 동료에게 잠시 대신 근무를 서달라는 부탁과 함께 로빈슨을 공동침실에 눕혀 놓고 나온다. 그러나 마침 카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수위장이 지나가고 호출을 당한 카알은 수위장과 웨이터장으로부터 밤마다 유흥업소를 드나든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공동침실에 있는 로빈슨의 술주정이 빌미가 되어 도둑으로 몰려 수위장으로부터 폭력과 멸시를 당하면서 해고된다. 술취한 로빈슨을 공동침실에 재운 탓에 여주방장의 신뢰까지 잃어버린 카알. 때마침 엘리베이터 보이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내동댕이쳐진 로빈슨을 데리고 카알은 도망치 듯 택시를 탄다.


택시를 타고 정신없이 도착한 곳은 들라마르쉬와 브루넬다라는 여성이 머물고 있는 외진 교외였다. 몸이 약하지만 비대한 브루넬다에게 들라마르쉬는 꼼짝 못하면서 시중을 들고, 로빈슨은 거의 천덕꾸러기 신세다. 로빈슨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로는, 브루넬다는 재산이 많고 독립한 이혼녀였는데 들라마르쉬와 로빈슨이 그녀의 집앞에서 구걸을 하던 중 들라마르쉬가 브루넬다의 눈에 들었고 이후 그녀는 들라마르쉬와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교외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드디어 두 기계공이 카알을 찾아온 이유가 밝혀진다. 브루넬다에게 맞춰 하인 노릇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로빈슨은 카알을 자기 대신 하인 자리에 들이려는 수작이었던 것. 카알은 도망치기 위해 두 기계공과 몸싸움까지 벌이지만 소득없이 다치기만 했다. 그날 밤 우연찮게 주경야독하는 옆집의 대학생으로부터 얻은 조언을 참고로 카알은 당분간 들라마르쉬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돈을 무기로 세 남자 위에서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브루넬다. 브루넬다에 기생하면서 저열한 권력을 휘두르는 들라마르쉬. 그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로빈슨과 카알. 그 대가는 고작 한 줌의 비스킷이다.







카프카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주인공의 불안이 나에게까지 스며든다. 작품마다 그렇듯 주인공은 늘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에 던져진다. <변신>의 그레고리가 아루 아침에 갑충이 되고, <소송>의 요제프 K가 어느날 아침 아무 이유도 없이 잠옷바람으로 체포된 것처럼, 카알 역시 아버지로부터 자기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물론 카알의 경우 열일곱 살 소년이 하녀를 임신시켰다는 이유는 있지만 외부에 의해 상황에 내몰린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유대인의 전통은 형식만 지킬 뿐 유럽에서 자수성가해 주류 사회에 진입하는데 성공한 카프카의 아버지는 하나 뿐인 아들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고 한다. 그런데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사람. 카프카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했으나 문학에 심취한 그에게는 쉽지 않았고, 그로인해 갈등도 계속됐다. 아버지를 두려워한 카프카를 보듬어준 사람이 어머니와 누이동생이었는데, 이러한 가정환경은 소설 <실종자>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권위적이고 무소불휘의 힘을 휘두르는 인물은 카알이 머무는 장소마다 등장한다. 살던 고향에서 추방시킨 카알의 아버지, 엄격한 규율과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한 마디의 변명도 들어주지 않은 채 추방시키는 외삼촌, 카알의 설명을 거짓으로 확대시켜 호텔에서 내쫓은 수위장, 그리고 고작 네 명뿐인 외진 주택에서조차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들라마르쉬까지 그들은 카알의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카알은 가는 곳바다 주변 사람들에게 흡수되지 못하고 소외당해 고립된다. 그 기반에는 틀에서 벗어난 '다름'이 존재한다.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학생이 하녀를 임신시키고, 권력자로 대변하는 아버지와 외삼촌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 하층민에 속하는 엘리베이터 보이에 불과한 주제에 동료들과는 다르게 도박도 음주도 하지 않는 것, 유약해 보이지만 폭력과 강요에 저항하는 것 등 '일반적'이지 않은 카알의 행보가 다수자들은 불편한 것이다.

그리고 카프카를 보듬고 이해해주었다는 어머니와 여동생은 호텔의 여주방장과 테레제에게 투영된다. 꽤 힘있는 위치에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호텔에서 여주방장의 입지는 그다지 크지 않다. 비교적 힘이 있는 웨이터장이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다. 호텔을 처음 방문할 때부터 특별한 이유없이 카알에게 호의를 베푼 여주방장은 주변의 거짓으로 인해 그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을 때에도 카알을 끝까지 돌봐준다. 또한 테레제 역시 카알이 호텔에서 쫓겨나는 순간까지 그에 대한 걱정을 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알의 인생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안착하기를 희망하는 세계에서 계속 배척당하는 카알이 향하는 곳은 그를 아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는 외진 곳이다. 미래가 보장된 미국의 상류 사회에서 외곽에 있는 호텔로, 정작 벗어나고 싶은 외진 길 어딘가에 있는 집으로 밀려나기까지 카알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작 벗어나고 싶은 외딴 집에서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져버렸고, 카알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버둥거릴수록 늪에 빠지듯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카알은 '그들'의 세계에서 실종된다. 그토록 노력한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비스킷 한 줌 뿐이다.

카프카 특유의 음습함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부르넬다의 집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살짝 길에서 비켜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부르넬다가 등장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애니메이션 <몬스터 하우스>에서 집과 일체가 된 비대한 여인 콘스탄스가 떠올랐다. 영화 속 콘스탄스가 세상의 조롱거리였고 그녀의 죽음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미완성작으로 보이는 단편 두 작품에서 브루넬라 또한 외모로 인해 숨어야 했던, 세상으로부터 실종된 사람이고 카알과 다른 점이라면 자발적 고립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의 성장 배경과 정체성을 염두에 두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작가가 죽을 때까지천착했던 정체성과 인간의 단절, 그리고 소외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이유가 그에 대한 이해라는 변명을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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