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충동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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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보통'의 범위에 들지 않는 두 인물을 등장시켜 사회 공동체 안에서 어느 범위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후 법적인 처벌까지 받고 사회에 복귀한 남자와 자신의 살인 충동을 스스로 인지한 소년이 그들이다. 이미 국내에서 출간된 앞선 두 편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가 던진 질문에 독자는 시원스럽게 답을 내놓기 어렵다.


이리이치 가나메는 세 여성을 끔찍한 방식으로 폭행했는데 어이없게도 세 번째 사건 당시 피해자가 죽을 것 같아 자기가 직접 신고해 체포됐다.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고백을 하고, 정신의학자들은 그가 조현병이냐 아니냐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열여섯 살 소년 아키나리는 특정한 상황에 처하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오래 전 이리이치와는 다르게 아키나리는 이 사실을 믿을만한 선생에게 털어놓았고 자기가 저지르게 될 범죄로 인해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 결과로 가족들이 입을 피해까지 염려하며 두려움에 어쩔 줄을 모른다. 이 두 사람은 우리가 사는 지역 한 가운데에 살고 있다. 이제 고민은 독자의 몫이다.


이리이치와 아키나리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고립이다. 타인에 의한 고립과 스스로를 단절시킬 수 밖에 없는 고립이 모두 존재한다. 소설에서 지하야와 그녀의 스승 데라카네의 논쟁이 독자를 대신한다. 지하야는 사회 구성원들이 인내를 가지고 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러나 데라카네는 어차피 인간은 자신을 제외하면 타인이니 애초에 완전한 이해란 존재하지 않고, 현실에서 포용이란 이론적 세뇌에 불가할 뿐이므로 범죄자들이 사회 구성원의 이해와 관용으로 흡수되는 일은 요원하다는 주장이다.


소설에서 덴조시 사람들은 이리이치를 쫓아내기 위해 마을 간담회를 열어 작위적으로 토의를 끌고 가고,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아키나리에 대한 괴소문은 하루가 다르게 퍼져나간다. 시라이시는 범죄자들 재활을 위해 회사를 설립해 이리이치를 첫 번째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어하고, 데라카네는 아키나리를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기를 권유한다. 회사와 연구실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과거의 범죄 이력을 들어, 그리고 앞으로 범죄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그들을 격리시키는 것은 정당할까? 그렇다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는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허구의 이야기에 한정될 때에는 지하야의 손을 들어주겠지만, 현실이 될 때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라이시나 데라카네의 손으르 들어줄 거라고 짐작한다. 몇 년 전 성범죄자 신상이 우편물로 도착했을때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마음 속에서 빨간불이 켜졌던 내가 떠올려진다. 지하야는 '편견과 갈등을 동반한 자유와 그런 것들에서 분리된 속박'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냐며 자조섞인 말을 읊조린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선택권조차 있기나 할까? 결국 강요받는 선택을 하게 될테니 말이다. 이리이치는 삼촌의 가족들을 걱정해, 아키나리는 가족들을 걱정해 격리를 선택한다. 결국 작가가 썼듯 우리 모두가 염소 조련자일지도 모른다. 사실 모든 사람은 본능과 충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식물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사람도 아름다운 꽃을 꺾고, 동물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강탈하며 사육한다. 인간의 욕망은 모순의 순환을 동반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입장만 고집할 수 없다. 이 소설이 갖는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예측 가능한 결말과 예상치 못한 반전을 하나씩 던져준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된 순간 독자는 한동안 먹먹함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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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리학 ㅣ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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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서문에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스스로 나서서 프랑스에 대해 다방면으로 칭찬하는 것을 비틀어 꼬집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공적인 정보와 여론을 만들어 내는 문필가 집단을 두 가지의 종으로 분류해 분석할 것이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발자크가 사람을 동물이나 식물의 분류법처럼 직종을 풍자적으로 종種, 혹은 품종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과 찰떡같이 들어맞는 삽화들, 그리고 '이렇게 써도 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하며 통쾌한 문장들로 인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짜릿함이 전달된다.
 
발자크는 '논객Publiciste'이라는 명칭이 옛날에는 위대한 작가에게 부여했지만, 지금은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정치나 하는 엉터리 삼류작가에게 부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예전에는 논객의 평론이 하나의 구심점이 있는 큰 거울 같았다면, 오늘날에는 이 거울을 산산조각 내 그 가운데 조각만으로 이것이 전체인 양 대중의 눈을 현혹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요즘의 비평가는 생각이나 개념이 중요하지 않으며 그냥 비판만 해서 상처를 줄뿐만 아니라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대중과 인기에 따라 움직인다고 평한다.  
 
 
우선 논객으로 분류된 이들은 기자다. 그중 신문사에서 편집국장부터 사주에 이르기까지 상위층에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서 논객을 행세한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신문사를 경영하거나 언론의 지배력을 이용해 이윤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보와 개혁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공격해야 할 정부와 닮아가고, 순수 언론인은 설 곳을 잃어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설은 야당 혹은 여당 편으로 두 가지 틀 밖에 없다보니 사설 담당자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엇비슷한 문장만 쓰게 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대다수의 구독자의 생각을 도식화해 표현하기에 급급하다(신문 사설의 대다수 구독자가 어떤 계급인지는 알만하다). 주필은 습관적으로 쓰고, 구독자는 습관적으로 읽는다. 사설 작가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 스스로 죽어가는 글을 쓰는 줄도 모르고 있으며 언론은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만 자유롭다. 특히 특정한 소재를 다루는 전문기자는 문장 몇 개로 신문의 견해에 의견을 보태야하기 때문에 사설의 미사여구를 담당한다. 배치와 편집, 광고를 담당하는 기자야말로 신문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명령에 따라 기사의 내용과 분량이 결정되고, 무엇보다 잡보 안에서 신문사에 이득(광고)이 될 만한 것을 찾아내는 것도 이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도당파라고 품종을 나눈 국회 출입기자들은 국회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기에게 이로운 편을 저울질하면서 글을 쓴다.. 
 
58.
우선 때리고 변명은 나중에. 
 
​
신문에 색깔을 입혀주고 그 신문과 결탁해 그 신문을 보호하는 자들이 정치인이다. 신문사는 권력을 따라 움직이고, 국가의 장래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신문사에서 기생하는 사람들 중 한 부류가 파견 담당관인데 발자크는 신문사에 기사를 물어다 주고 정치.문학 평론을 하며 정관계 인사들 사이에서 배신하기가 일쑤인 그들을 '주인을 쫓아다니는 개'라고 빗대어 표현했다. 통속주의자들은 상투적 논거 안에도 써놓기는 장황하게 써놓지만 들여다보면 그 어떤 명료함도 없는, 텅 빈 지하 창고같은 냄새가 난다. 발자크는 공기가 통하지 않는 지하실 저장고에 놓인 촛불처럼 지성이 언제 꺼질지는 불보듯 뻔하다고 말한다.  
 
107.
개념이 없을수록 승승장구한다. 
  
 
기자 혹은 뉴스 앵커가 국회의원이 되고 신문마다 사설은 지지하는 정당의 색깔에 맞춰져 있고 정치, 언론, 경제는 사랑의 작대기처럼 서로 엇갈려 복잡하게 유착되어 있어 서로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발자크의 말처럼 근거도 없는 일을 사실처럼 보도해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위기에 몰리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눙치면 그만이다. 교묘한 화법으로 어림짐작해 기사를 쓰는 언론과 국회위원. 여론몰이에 휩쓸리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거의 신앙에 가까운 맹신을 보여주는 부류의 사람들을 바람잡이 삼아 사실 왜곡과 진실 은폐를 관행인 양 일삼는 언론과 정치 관계자들. 주변에서 자주 보여 낯설지도 않다.
 




 


그렇다면 비평가는 어떤가. 
 
134.
오늘날 비평은 단 한 가지를 위해 쓰인다.
바로 비평가를 먹여 살릴 것.  
 
사상의 의무를 다 해야한다고 믿으며 연구하고 분석하는 부류의 구식비평가는 더 이상 없다. 발자크는 사상가인 척 무조건 부정하거나 혹은 신랄하지 않는 칭찬 일색의 평론, 허세만 가득한 글을 쓰는 이들을 비판한다. 발자크가 모든 삼류자가 가운데 가장 하위 종이라고 분류한 이들인 문예 비평가들은 돈의 논리에 따라 법적인 틀 내에서 비도덕적인 것을 기꺼이 감행하고, 신문은 출판 도서들을 포함한 (비평을 가장한) 문화 광고로 가득해 제대로 된 문학 비평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유명세를 위해 혹은 돈을 좇아 양심이라고는 내다버리고 자극적이며 왜곡된 글을 쓰는 자들, 푼돈을 받으며 과장.과대 때로는 저급한 언어로 쓴 기사로 타인을 조롱하는 자들과 광고 일색인 월간지들을 짚어내면서 오히려 그러한 저급하고 속물적인 인쇄물에 돈을 지불하고 읽는 사람들이 있음을 의아스럽다는 듯 꼬집어 말하고 있다. 이는 그저 '읽을' 뿐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각정하지 않는 지성인을 자처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읽다보면 이 책이 정말 1842년에 출간됐던 책이 맞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괴리감은 고사하고 불과 20세기, 21세기 어느날에 출간되었다고 해도 시의 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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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모폴리턴 칭기즈 칸 - 팍스몽골리카, "수레가 통하는 길이 끊기지 않게 하라"
서정록 지음 / 학고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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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로 기억한다. 아빠는 입학 축하 선물로 대백과사전을 사주셨다. 출판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급스런 빨간색 양장본으로 권당 천쪽이 훌쩍 넘는 책이었는데 인명사전에는 사이사이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이야기처럼 실려있어서 동화책을 읽듯 인명 백과사전을 읽었더랬다. 내가 칭기즈칸을 처음 만난 건 그때였다. 익숙치 않았던 몽골이라는 나라, 우리나라 역사에서 흔치 않은 유목 민족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유발했고, 모래알 같다는 부족을 일시에 통일한 지배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고등학생 시절에 원나라를 접하면서 다시 몽골의 역사를 살짝 들췄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칭기즈칸을 만난다. 
 
 
막강한 힘을 가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 예수게이의 이른 죽음으로 비참한 어린시절을 보내야했던 테무친. 힘을 따라 움직이는 부족들은 예수게이가 죽자 곧바로 다음의 권력자를 향해 떠났고 테무친 일가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나 삶의 힘겨운 여정을 통해 테무친은 수장이 갖춰야할 소양과 몽골인이 국가로서 체제를 갖춰야하는 이유를 찾게 되며 무엇보다 평생의 지기들을 얻는다. 
 
힘있는 부족의 수장은 그 힘만큼 적들도 많다. 키야트족 예수게이가 죽은 후 테무친이 열다섯 살이 되는 해에 형제 부족 타이치오드족 사람들 300명이 그가 성년이 되기 전에 죽이기 위해 키모르카를 찾아온다. 테무친이 끌려간 곳은 타이치오드족의 본거지 빈데르였는데, 이곳은 칭기즈 칸과 인연이 깊다. 칭기즈 칸이 유년 시절을 보냈고, 그의 탄생지로 유력하며 몽골 고원 통일 후 대칸에 오른 곳으로서 고통과 영광이 공존하는 장소다. 타이치오드 사람들이 테무친을 죽이려고 하자 타르코타이 키릴토크가 그들을 만류한다. 죽음보다 더한 모욕을 주자고 제안하는데 이것으로 테무친은 목숨을 연장해 탈출할 수 있었다. 이때 테무친을 도왔던 소르칸 시라와 그의 두 아들 침바이와 칠라온은 평생 테무친의 동지가 된다. 테무친 일가가 몰락한 채로 핍박을 피해 숨어 들어간 푸른 호수에서 살 때 테무친은 말 여덟 마리를 도둑맞는다. 이때 우연히 만나 3일 밤낮을 함께 달려 말을 찾아준 보오르초 역시 영원한 친구로 곁을 지킨다. 
 
1185년 테무친이 스물네 살 되던 해 옹 칸을 찾아간다. 옹 칸이 위기에 빠져있을 때 구해준 이가 아버지 예수게이었고, 당시 그는 예수게이와 안다 맹약을 맺으며 "네 자손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고 말했다. 그를 찾아간 테무친은 옹 칸을 아버지로 섬길 것을 맹세했고 실제로 그는 웅 칸을 끝까지 존중했다. 이때 보르칸 칼돈산에 사는 오리앙카이족의 자르치오다이 노인이 젤메라는 젊은이를 데려와 테무친에게 주고 갔는데 그도 평생동안 최측근으로서 테무친을 지킨다. 그리고 메르키트족이 테무친의 아내 버르테를 납치한 사건은 영원한 라이벌이자 친구인 자무카를 하나로 묶어준다. 물론 자무카는 안다 맹약을 두 번이나 맺으면서도 결국 서로에게 칼을 겨눌 수 밖에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이렇게 테무친의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면서 그의 세력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런데 몽골 고원의 부족들이 아무것도 없는 테무친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떠돌아 다니는 유목 부족의 특성상 칭기즈 칸에게 잔인한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책에서도 배신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부족은 가차없이 멸족시키는 테무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이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도륙이 아닌 원칙의 안에서 이루어진 결단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테무친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끝까지 고수한 부분은 신뢰와 존중과 소통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자신 혹은 부족의 야망이나 복수가 아닌 몽골 고원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상이 있었다.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비참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경험으로 하층 유목민의 생활에 깊이 이입한 테무친은 그들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기의 이상으로 받아들였다. 칸에 오른 후 천호제, 만호제를 통해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각자의 능력만큼 대접받는 세상을 열고자 했으며 쿠릴타이 문화를 특권층이 아닌 모든 백성들에게 확대했고 관철시켰다. 이러한 진정성있는 노력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추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저자가 소개한 글들을 읽어보면 그는 칸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만큼 소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는 특별한 자질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 같은데, 그러한 모습을 백성들은 친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몇 해 전, 지인들이 몽골 답사를 갔을 때 개인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새삼 못내 아쉽기만 하다. 지도를 옆에 두며 테무친의 발자취를 따라 갔는데, 그때 답사를 다녀왔다면 그를 따르는 발길이 좀 수월했을까? 여건이 되기를 기대하며 초원에서 그가 나누었던 신뢰와 소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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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2 - 특별합본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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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길산이 금강산에서 수련을 끝내고 구월산으로 돌아오고 선흥이 화적단, 대용이 수적단으로 합류하면서 무리의 체계를 갖춰 나간다. 거기에 박대근까지 상단의 수장이 되어 그들은 본격적으로 백성을 구명하고 타락한 세상을 혁명하는 활빈을 천명한다.  

의리로서 길산의 무리와 의형제를 맺었지만 양민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선흥과 대용이 도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고된 부역과 터무니 없는 세금으로 인해 노비로 전락한 등장 인물들의 사연은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부패한 세상에서 삶을 버텨낸 선량한 모든 양민들을 대변한다.  

내가 2권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생뚱맞지만, 그림처럼 글로 그려낸 땅과 산, 바다의 형세, 즉 지리다. 무슨 책을 읽든 지리와 관련한 책을 읽을 때면 지도를 옆에 펼쳐놓아야할 만큼 지리 감각이 바닥인 나로서는 이렇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묘사가 놀랍기만 했다. 또한 구체적으로 묘사한 배 건조 과정까지 부수적으로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머릿속에 들어온 다른 하나는 양반 집안의 김아무개가 운부라는 기승으로 세상을 떠도는 사연은 천하디 천한 광대 길산의 내막과 다름하지 않으며 김기와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따라서 길산의 수하에 모인 모든 이들이 운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천적 행동가로서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운부와 일평생 글로써 개혁정신을 펼친 반계 유형원이 조화를 이루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스쳤다.  

참, 이경순이 화포장으로 우대용과 연이 닿았으니 조만간 묘옥과 길산도 해후하겠구나싶다.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다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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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ㅣ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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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난한 제화공 셰몬은 외상값을 받아 외투를 만들 가죽을 사려고 했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오던 중 예배당 아래에서 벌거벗은 채로 추위에 떨고 있는 미하일이라는 젊은 청년을 집으로 데려온다. 오갈데 없는 미하일에게 제화 기술을 가르치자 그의 실력은 금새 소문이 났다. 그러기를 6년, 미하일라는 이제 셰몬의 집을 떠나려고 한다. 그가 제화공의 집에 와서 미소를 머금은 적은 딱 세 번 뿐이었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우리는 알고 있나?  
 
 
이 책을 처음 읽은 때가 고3 졸업식을 마친 직후였다. 눈치 안보고 서점을 어슬렁 거릴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었음에도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던 그때, 이 책을 동네 단골 서점에서 발견했다. 두껍기만 한 작가의 여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너무 얇아서 의아해하며 서점 바닥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후 다른 책을 사가지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이 단편소설집이 나의 책장에 꽂힌 것은 수 년이 지난 후였으며 이후 몇 년 간격으로 사이사이 읽는 책이 되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연이은 성공을 거두며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큼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안정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시기에, 오십이 넘은 대문호에게 찾아온 위기. 세속적 성공에도 허무하고 만족할 수 없었던 작가는 철학, 신학을 비롯해 학문에 몰입하지만 그 채울 수 없는 무언가의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그가 답을 찾은 것은 노동으로 삶을 채워가는, 자신의 영지에서 일하는 농부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을 곰곰 생각해보면 그가 삶에 대한 이러한 의문을 가진 것은 훨씬 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이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면서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에는 신앙과 노동의 연대에서 깨달음을 얻는 모습은 그의 단편들과 일치한다.  

톨스토이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바는 사랑과 연민, 그리고 연대다. 물질적 탐욕을 경계하고, 이웃에 대한 조건없는 베풂과 이방인에 대한 관대한 포용, 그리고 악에 악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무저항으로써 저항하라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연민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돌봄이 실천되어야함을 강조한다.  

유복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쾌락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결혼과 여성을 불신하면서 종교에 심취해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아내와 불화가 있었고, 청빈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안락한 생활을 저버리지 못했던 모순적인 삶을 생각하면 사이사이 물음표를 찍게 되는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여러 갈등으로 인해 삶과 죽음, 그리고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더욱 깊게 고민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 평가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단편집들이 갖는 가치는 분명하다. 더 각박해져가는 무한 경쟁시대에 타인(이웃)에 대한 사랑과 용서가 원론적인 것에 그칠 수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의식적으로 놓아서는 안되기 때문일 터다. 무엇보다 <바보 이반>을 통해 전달하는 무저항의 메세지는 나를 늘 딜레마에 빠트린다. '이반'은 나를 언제, 어디까지 시험에 들게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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