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난한 제화공 셰몬은 외상값을 받아 외투를 만들 가죽을 사려고 했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오던 중 예배당 아래에서 벌거벗은 채로 추위에 떨고 있는 미하일이라는 젊은 청년을 집으로 데려온다. 오갈데 없는 미하일에게 제화 기술을 가르치자 그의 실력은 금새 소문이 났다. 그러기를 6년, 미하일라는 이제 셰몬의 집을 떠나려고 한다. 그가 제화공의 집에 와서 미소를 머금은 적은 딱 세 번 뿐이었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우리는 알고 있나?
이 책을 처음 읽은 때가 고3 졸업식을 마친 직후였다. 눈치 안보고 서점을 어슬렁 거릴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었음에도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던 그때, 이 책을 동네 단골 서점에서 발견했다. 두껍기만 한 작가의 여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너무 얇아서 의아해하며 서점 바닥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후 다른 책을 사가지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이 단편소설집이 나의 책장에 꽂힌 것은 수 년이 지난 후였으며 이후 몇 년 간격으로 사이사이 읽는 책이 되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연이은 성공을 거두며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큼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안정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시기에, 오십이 넘은 대문호에게 찾아온 위기. 세속적 성공에도 허무하고 만족할 수 없었던 작가는 철학, 신학을 비롯해 학문에 몰입하지만 그 채울 수 없는 무언가의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그가 답을 찾은 것은 노동으로 삶을 채워가는, 자신의 영지에서 일하는 농부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을 곰곰 생각해보면 그가 삶에 대한 이러한 의문을 가진 것은 훨씬 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이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면서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에는 신앙과 노동의 연대에서 깨달음을 얻는 모습은 그의 단편들과 일치한다.
톨스토이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바는 사랑과 연민, 그리고 연대다. 물질적 탐욕을 경계하고, 이웃에 대한 조건없는 베풂과 이방인에 대한 관대한 포용, 그리고 악에 악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무저항으로써 저항하라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연민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돌봄이 실천되어야함을 강조한다.
유복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쾌락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결혼과 여성을 불신하면서 종교에 심취해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아내와 불화가 있었고, 청빈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안락한 생활을 저버리지 못했던 모순적인 삶을 생각하면 사이사이 물음표를 찍게 되는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여러 갈등으로 인해 삶과 죽음, 그리고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더욱 깊게 고민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 평가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단편집들이 갖는 가치는 분명하다. 더 각박해져가는 무한 경쟁시대에 타인(이웃)에 대한 사랑과 용서가 원론적인 것에 그칠 수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의식적으로 놓아서는 안되기 때문일 터다. 무엇보다 <바보 이반>을 통해 전달하는 무저항의 메세지는 나를 늘 딜레마에 빠트린다. '이반'은 나를 언제, 어디까지 시험에 들게 하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