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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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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서문에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스스로 나서서 프랑스에 대해 다방면으로 칭찬하는 것을 비틀어 꼬집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공적인 정보와 여론을 만들어 내는 문필가 집단을 두 가지의 종으로 분류해 분석할 것이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발자크가 사람을 동물이나 식물의 분류법처럼 직종을 풍자적으로 종種, 혹은 품종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과 찰떡같이 들어맞는 삽화들, 그리고 '이렇게 써도 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하며 통쾌한 문장들로 인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짜릿함이 전달된다.
 
발자크는 '논객Publiciste'이라는 명칭이 옛날에는 위대한 작가에게 부여했지만, 지금은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정치나 하는 엉터리 삼류작가에게 부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예전에는 논객의 평론이 하나의 구심점이 있는 큰 거울 같았다면, 오늘날에는 이 거울을 산산조각 내 그 가운데 조각만으로 이것이 전체인 양 대중의 눈을 현혹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요즘의 비평가는 생각이나 개념이 중요하지 않으며 그냥 비판만 해서 상처를 줄뿐만 아니라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대중과 인기에 따라 움직인다고 평한다.  
 
 
우선 논객으로 분류된 이들은 기자다. 그중 신문사에서 편집국장부터 사주에 이르기까지 상위층에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서 논객을 행세한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신문사를 경영하거나 언론의 지배력을 이용해 이윤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보와 개혁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공격해야 할 정부와 닮아가고, 순수 언론인은 설 곳을 잃어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설은 야당 혹은 여당 편으로 두 가지 틀 밖에 없다보니 사설 담당자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엇비슷한 문장만 쓰게 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대다수의 구독자의 생각을 도식화해 표현하기에 급급하다(신문 사설의 대다수 구독자가 어떤 계급인지는 알만하다). 주필은 습관적으로 쓰고, 구독자는 습관적으로 읽는다. 사설 작가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 스스로 죽어가는 글을 쓰는 줄도 모르고 있으며 언론은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만 자유롭다. 특히 특정한 소재를 다루는 전문기자는 문장 몇 개로 신문의 견해에 의견을 보태야하기 때문에 사설의 미사여구를 담당한다. 배치와 편집, 광고를 담당하는 기자야말로 신문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명령에 따라 기사의 내용과 분량이 결정되고, 무엇보다 잡보 안에서 신문사에 이득(광고)이 될 만한 것을 찾아내는 것도 이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도당파라고 품종을 나눈 국회 출입기자들은 국회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기에게 이로운 편을 저울질하면서 글을 쓴다.. 
 
58.
우선 때리고 변명은 나중에. 
 

신문에 색깔을 입혀주고 그 신문과 결탁해 그 신문을 보호하는 자들이 정치인이다. 신문사는 권력을 따라 움직이고, 국가의 장래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신문사에서 기생하는 사람들 중 한 부류가 파견 담당관인데 발자크는 신문사에 기사를 물어다 주고 정치.문학 평론을 하며 정관계 인사들 사이에서 배신하기가 일쑤인 그들을 '주인을 쫓아다니는 개'라고 빗대어 표현했다. 통속주의자들은 상투적 논거 안에도 써놓기는 장황하게 써놓지만 들여다보면 그 어떤 명료함도 없는, 텅 빈 지하 창고같은 냄새가 난다. 발자크는 공기가 통하지 않는 지하실 저장고에 놓인 촛불처럼 지성이 언제 꺼질지는 불보듯 뻔하다고 말한다.  
 
107.
개념이 없을수록 승승장구한다. 
  
 
기자 혹은 뉴스 앵커가 국회의원이 되고 신문마다 사설은 지지하는 정당의 색깔에 맞춰져 있고 정치, 언론, 경제는 사랑의 작대기처럼 서로 엇갈려 복잡하게 유착되어 있어 서로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발자크의 말처럼 근거도 없는 일을 사실처럼 보도해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위기에 몰리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눙치면 그만이다. 교묘한 화법으로 어림짐작해 기사를 쓰는 언론과 국회위원. 여론몰이에 휩쓸리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거의 신앙에 가까운 맹신을 보여주는 부류의 사람들을 바람잡이 삼아 사실 왜곡과 진실 은폐를 관행인 양 일삼는 언론과 정치 관계자들. 주변에서 자주 보여 낯설지도 않다.
 




 


그렇다면 비평가는 어떤가. 
 
134.
오늘날 비평은 단 한 가지를 위해 쓰인다.
바로 비평가를 먹여 살릴 것.  
 
사상의 의무를 다 해야한다고 믿으며 연구하고 분석하는 부류의 구식비평가는 더 이상 없다. 발자크는 사상가인 척 무조건 부정하거나 혹은 신랄하지 않는 칭찬 일색의 평론, 허세만 가득한 글을 쓰는 이들을 비판한다. 발자크가 모든 삼류자가 가운데 가장 하위 종이라고 분류한 이들인 문예 비평가들은 돈의 논리에 따라 법적인 틀 내에서 비도덕적인 것을 기꺼이 감행하고, 신문은 출판 도서들을 포함한 (비평을 가장한) 문화 광고로 가득해 제대로 된 문학 비평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유명세를 위해 혹은 돈을 좇아 양심이라고는 내다버리고 자극적이며 왜곡된 글을 쓰는 자들, 푼돈을 받으며 과장.과대 때로는 저급한 언어로 쓴 기사로 타인을 조롱하는 자들과 광고 일색인 월간지들을 짚어내면서 오히려 그러한 저급하고 속물적인 인쇄물에 돈을 지불하고 읽는 사람들이 있음을 의아스럽다는 듯 꼬집어 말하고 있다. 이는 그저 '읽을' 뿐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각정하지 않는 지성인을 자처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읽다보면 이 책이 정말 1842년에 출간됐던 책이 맞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괴리감은 고사하고 불과 20세기, 21세기 어느날에 출간되었다고 해도 시의 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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