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키스 ㅣ 스토리콜렉터 98
아나 그루에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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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일  
크리스티안순 근교의 한 마을, 자신의 집 헛간에서 젊은 남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2007년 3월 19일
쉰세 살 우르술라와 스물아홉 살 야콥은 첫눈에 반해 4개월간 동거 중이다. 우르술라에게는 로또에 당청된 엄천난 돈이 있었고, 이 사실은 그녀의 딸 아네모네만 알고 있다. 그런데 야콥은 그 얘기를 듣고 난 직후, 기다렸다는 듯 우르술라에게 반지를 내밀며 청혼한다. 타이밍상 의심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미리 준비된 반지와 그렇다면 오히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야콥의 말에서 한치의 의심도 보이지 않는다. 우르술라는 그가 돈 때문에 청혼한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을 테지만. 기숙학교의 미술 선생으로 있는 우르술라는 야콥과 함께 꾸려나갈 새로운 인생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운영할 호텔을 알아보겠다고 떠난 야콥은 우르술라의 전 재산을 인출해 사라졌다. 심지어 급여 통장까지. 








 
이쯤되면 야콥이 사기꾼이라는, 그것도 아주 계획적이고 지능적인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독자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이 3분의 1쯤 넘어가면서 궁금해지는 건 이 매끈하게 생긴 젊은 남자의 살인을 불사하는 사기 행각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도입부에서 미카엘이라는 젊은 남성이 처참하게 살해된 살인 사건과 돈 많은 여성들의 뒤통수를 치고 돈을 빼돌리는 사기 사건의 연관성이다. 그런데 작가는 때맞춰 야콥과 살인 사건의 피해자 미카엘의 접점을 보여준다.    
 


본캐는 카피라이터, 부캐는 사립탐정인 단은 딸의 부탁으로 우르술라의 사건을 맡기로 하고, 파트너 주선 포털 사이트에 야콥의 신상을 업로드하면서 본격적으로 야콥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단서가 나오고 뜻하지 않게 단의 친구인 경찰 플레밍과 서로 탐탁치 않은 공조를 시작한다.  
 


야콥 혹은 요아킴, 한때는 요하네스였던 제이의 주변 인물들과 피해자들, 그리고 포털 사이트를 통해 들어온 제보를 따라가던 플레밍과 단은 그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대면하고, 예상치 못했던 인물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 사건의 중심에 다다를수록 가출, 중독, 수감, 사기에 감춰진 제이의 죄와 벌, 속죄와 가까워지면서, 독자는 사건과 별개로 감정의 반전을 맞게 된다.  









 
제이와 에릭은 당첨자들의 정보와 삶을 추적하고 관찰하면서 그들의 결핍된 부분을 주도면밀하게 파고들어 범죄를 저질렀다. 요하네스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제이와 사랑에 빠진 이유가 오직 그의 외모와 젊음 때문이기만 했을까? 중년의 막바지에 혼자서 삶을 감당하며 외로움과 정서적 고립에 둘러쌓인 채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간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공허함, 전화번호 하나면 모든 개인 정보 노출이 가능한 현재의 세상에서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예수의 12제자 중에 유일하게 진실성 있는 사도라는 이유로 유다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던 제이, 그리고 제이가 배신했다고 철썩같이 믿었던 그의 첫사랑은 제이를 유다라고 불렀다. 유다가 사랑했던 스승에게 키스하고 배신했듯, 자신에게 그러했으므로. 그러나 살기 위해 시작한 생계 수단이 범죄가 되고, 어린 동생의 죽음에 원인 제공을 했다고 믿으며 자책해온 제이의 심정은 그의 어깨에 새겨져 있던 산스크리트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프레야시타'. 
 


개인적 감상을 별개로 범죄자에게 불행한 어린 시절이라는 서사를 입혀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에는 분명 위험 요소가 있다. 더구나 제이에게 아픈 과거가 있는 것, 그가 겉으로 보이는 날라리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죄의 무게를 덜어내면 곤란하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비록 사랑은 아니었다해도 우르술라에게 안정감을 느꼈던 제이가 사기극으로 벌어들인 돈의 쓰임을 그녀에게 말했다면, 우르술라는 흔쾌히 그에게 돈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제이가 호텔에서 읽고 있었던 마태복음 26장은 이렇다.
유다가 예수께 입을 맞추었다. 주교의 군대가 신의 아들을 십자가형에 처하고 체포할 수 있도록. 




악에 대한 사죄, 죄에 대한 속죄, 자신에게 씌어진 저주와 배신자의 역할. 이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 본인일까, 아니면 타인에 의해 혹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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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 세기의 창조자
송기정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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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발자크는 프랑스 대혁명과 공화국 이념을 지지하는 공화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1831년 이후 정통왕파로 전향하는데, 그가 정치적 입장을 바꾼 이유는 단순히 이념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 하다. 민주주의가 막 태동한 프랑스 사회는 혼란의 연속이었고, 발자크는 7월왕정을 최악의 체제로 보았으며, 이 혼란에서 평화와 안정을 가저댜줄 수 있는 것은 강력한 권력 즉, 군주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소수 엘리트층과 군주에게 집중된 강력한 군주제와 이들을 견제한 세력인 종교가 조화를 이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개인의 잇속도 무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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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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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희연은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와 대화 혹은 서신을 나누는 등 일상에서 만나는 단어들을 채집해 기록한다. 이 책은 그렇게 채집한 단어들에 대한 단상이다.


책을 읽으면서 특별한 감상을 느끼지 않으면 뭔가 잘못 읽었거나 혹은 내가 놓친 게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책이 있는데, 이 에세이는 마치 내가 쓴 내 이야기인 양 읽으며 공감하고, 나를 시인의 자리에 대신 앉혀 놓으면서 짧은 생각을 했더랬다.










먼저 작가를 따라 써 보는, 지금 기준으로 작은 소망을 써보자했는데, 음... 어렵다. 일단 '작다'의 기준이 모호하고, 쓰다보니 소원인지 소망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알겠더라는. 시인이 왜 '까다로운 작은 소망들'에 꽂혔는지.


'헤아리며 살자'라는 말. 나도 '헤어린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람을, 식물을, 주변의 무엇을 헤어릴 수 있는 사람의 품은 얼마나 넉넉한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 받은지 백만 년은 된 것 같다. SNS나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으로 짐작이 가능한 근황, 두 개 손가락으로 터치 몇 번이면 안부인사를 나눌 수 있는 세상(나의 지인은 아주아주 오랜 뒤에 인간은 다 퇴화되고 손가락만 남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에서 손편지가 구시대 유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귀하다. 원래 유물은 귀하니까.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안다. 쓰는 맛, 기다리는 맛, 기다림 끝에 읽는 맛을.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 시인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에게도 셋이나 있다(이런...). 아... 편지 쓰고 싶다(받고 싶다도 아니고). 찐하게!  


내성적인 시인은 어린시절 자신의 한자 이름이 잘못 해석되어도 또렷하게 짚어내지를 못했다고 한다. 내 이름에는 편안하고 기쁘게 살라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바람이 담겨 있다(물론 할아버지가 결정하셨고, 아빠는 이~쁜 딸이름의 어감이 남자애같다고 기어코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따로 지어 불렀다. 그 이름은 연꽃처럼 맑은 사람이되라는 뜻이었는데.). 적어도 그닥 힘들게 살고 있지는 않으니 이름의 한 글자는 그럭저럭 맞춘 듯 하다. 삶이 늘 기쁘기만 할 순 없으니.


내 삶의 '모루'는 무엇일까. 책에서의 표현처럼 후려치는 모루에 의해 휘청거리는 시절이 누군들 없었으랴. 그러나 어찌되었든 나는 여타 많은 사람들처럼 시간의 힘에 기대어 잘 지나왔고, 지나가는 중이다.  


시인이 탕종을 빗대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얘기하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다. 나 또한 삶에서 우선하는 점은 회복력과 유연함이며, 하나 더 보태자면 탄력성이다. 유연함은 평소 마음씀이 넉넉하지 않으면 갖추기 힘들다(그래서 내가 힘들다). 회복력은 몸이든 마음이든 나 스스로 건강하기 위해 선택한 삶에 대한 태도인데, 새가슴에 뒤끝까지 긴 내가 지속적으로 유지하기에는 쉽지 않은 덕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그나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서 문득, '시는 소설보다 번역하기가 훨씬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서 오는 질감, 단어의 경중과 온도, 마음의 파도까지 담아낼 수 있는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겨우 청소년 문학 원서만 어찌어찌 읽어내는 내 수준으로는 어림없겠다(갑자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를 번역한 분의 위대함이여!).


시인은 복숭아를 보면서 '시드 볼트'를 얘기하는데, 나는 엉뚱하게 침이 고인다. 과일 중 딸기와 복숭아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한여름 잠깐 먹을 수 있는 복숭아의 귀함이 늘 아쉽다. 침을 삼키며 그의 글을 읽자니, '시드 볼트'의 문이 열리는 그날이 오지 않는 것이 인류와 지구가 제자리를 건겅하게 지켜내고 있다는 방증일 터다. 시인은 자신만의 '시드 볼트'를 이야기한다. 시인 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슴 깊숙한 곳에 잠궈 놓은 '시드 볼트'가 있을 것이다. 현실의 시드 볼트와는 다르게 우리의 '시드 볼트'는 활짝 열려야 제 구실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시드 볼트'가 열릴 때 기꺼이 귀담아 나눠야 할 것이다.
  


시인의 감성과 시인의 시선과 시인의 언어로 만난 일상의 찰나들. 이렇게 말을 예쁘게(오그라드는 거 말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참, 오랜만에 푸근했다. 첵을 덮고 보니, 요즘 나의 상태는 시를 읽어야하는 때인 것 같다.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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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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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반세기 동안 <파리 리뷰>에 실린 작품들 중 세계적 작가들이 뽑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작품들이라 할 수 있는데, 물론 작가 개인의 주관적 선택이니만큼 이 책에 실린 작품들만 최고다!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읽어보니 <파리 리뷰>에 실리는 것만으로도 신인 작가들한테는 굉장한 영광인 듯 하다). 뽑힌 열다섯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좋지만, 그 작품을 뽑은 작가들의 소감도 독서 에세이처럼 재미지다.









실린 작품의 작가들로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데니스 존슨, 레이먼드 카버, 제임스 설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이 있고,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댈러스 위브나 리디아 데이비스 등이 포진해 있다. 그들을 뽑은 작가들 중에도 반가운 제프리 유제니디스(이 양반은 마치 초경량 소설을 쓰듯 서평을 썼다)와 앨리 스미스도 보인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들은 <궁전 도둑 / 이선 캐닌> <어렴풋한 시간 / 조이 윌리엄스> <방콬 / 제임스 설터> <늙은 새들 / 버나드 쿠퍼> <스톡홀름 야간비행 / 댈러스 위브>를 꼽는다. 



삶의 비극이 일상화되면서 찾아오는 무감각(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출생부터 삶의 성장 과정에 이르기까지 사랑받지 못하고 고통받으며 절망 뿐인 맬의 쓸쓸함(어럼풋한 시간), 학생들을 더 나은 인생과 도덕적인 삶으로 이끌고 싶어 선생이 되었으나 도덕적이지도, 용감하지도 못한, 그저 무력한 방관자에 불과했던 헌더트(궁전 도둑), 삶과 그런 척 하는 삶의 경계에서 외줄을 타고 있는 현대인들, 우리의 일상을 언제라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불행들(라이클리 호수), 한때는 시대를 이끌며 전투적인 삶을 살았으나 어느새 나는 법을 잃어버린 새처럼 무기력하게 새장에 갇힌 새로 살아야하는 노년의 삶(늙은 새들), 명예를 위해서라면 이깟 몸뚱이 쯤이야 초개같이 떼어벌리 수 있는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스톨홀름행 야간비행). 



<늙은 새들>에서 노인 거주시설을 설계하는 건축가 아들에게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공중전화로 전화한다. 한참동안 대화를 이어가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어디에 있냐는 아들의 절박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시간이 다 된 공중전화는 그대로 끊기도 만다. 둘의 대화를 살펴보면 애증이 켜켜이 쌓인(대부분의 부모 자식 간이 그렇지 않을까) 듯하다. 위급한 순간에도 오가는 고성 속에 아버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아들의 두려움이 짙게 느껴진다.



가장 독특한 작품은 <스톨홀름행 야간비행>이다. 예순여섯 살의 무명 작가는 [파리 리뷰]에 소설이 실리는 조건으로 왼쪽 새끼손가락을 걸고 거래한다. 이를 시작으로 출판 및 문학상과 손, 팔, 다리, 발 등 신체 부위를 거래하며 작가로써 승승장구 한다(이 신체 부위는 필요한 사람에게 기증의 형태로 팔린다). 마침내 노벨상과 안구를 맞바꾸고,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 스톡홀름 비행기에 탑승한 그의 몸은 고름과 곪아가는 상처투성이다. 보잘 것 없는 그의 몸은 애처롭다기보다 끔찍하다. 소설은 흡사 <파우스트>를 연상시키지만, 결이 무척 다르다. 주인공 노老 소설가에게 작가로서의 자긍심이나 불멸의 작품 따위는 안중에 없다. 편집자가 시키는대로 원고를 수정할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정도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소설가로서의 명성 뿐이다. 상당히 기괴하고, 안쓰러우면서, 블랙 코미디같은 작품이다.



나의 최고작은 역시 제임스 설터! <방콕>은 대부분 캐럴과 홀리스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된다. 아내와 딸이 있고 서점을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홀리스를 찾아와 함께 방콕으로 떠나자고 유혹하는 전 연인 캐럴. 홀리스는 그녀에게 돌아가라는 말만 반복할 뿐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고, 캐럴은 돌아가라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아내와 딸까지 들먹여가며 자극적인 말로 유혹한다. 그러나 유혹에 실패한 캐럴이 돌아가는데, 정작 갈등은 그녀가 서점을 나가고 난 이후다. 홀리스는 캐럴의 말처럼 자신이 '삶'을 살고 있는지, '그런 척'하고 있는지 고민한다. 어쩌면 홀리스의 마음은 이미 방콕행 비행기에 탑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몸은 아직 서점 책상 앞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홀리스의 갈등과 흔들림이 낯설지 않다. 역시 설터!



독후노트에는 열다섯 작품의 감상평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놨을만큼 모든 작품이 좋았다. 내가 어디서 이 조합의 단편집을 읽을 수 있을까.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읽어도 레이먼드 카버 작품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카버적 소설'을 다시 만나는 기쁨 역시 빠지지 않는다. 느닷없이 닥쳐오는 불행에 속수무책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극복 뿐이다. 마찬가지로 가슴에 훅 들어오는 작품들을 마주대할 때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읽는 것 뿐이다.  



"생각이 움직일 수 있는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아래로 흐르는지 궁금해."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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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 세기의 창조자
송기정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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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인간극] 전체를 통해 대혁명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인간극]의 첫 소설이자 그의 이름으로 낸 첫번째 소설인 <올빼미당원들>을 통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발자크의 역사적 관점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소금세와 실제 올빼미당의 반란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고 있어, 일단 소설을 따라가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이 작품도 안 읽었네). 그런데 소설의 줄거리만 보면 비극적 연애소설인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을 이 소설에 녹여냈다고 하는데, 이래서 책은 줄거리만 알아서는 안 되는 거다. <올빼미당원들>의 배경이 되는 주요 사건들은 나열한 사건명만 읽어도 굵직하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번역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못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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