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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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희연은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와 대화 혹은 서신을 나누는 등 일상에서 만나는 단어들을 채집해 기록한다. 이 책은 그렇게 채집한 단어들에 대한 단상이다.


책을 읽으면서 특별한 감상을 느끼지 않으면 뭔가 잘못 읽었거나 혹은 내가 놓친 게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책이 있는데, 이 에세이는 마치 내가 쓴 내 이야기인 양 읽으며 공감하고, 나를 시인의 자리에 대신 앉혀 놓으면서 짧은 생각을 했더랬다.










먼저 작가를 따라 써 보는, 지금 기준으로 작은 소망을 써보자했는데, 음... 어렵다. 일단 '작다'의 기준이 모호하고, 쓰다보니 소원인지 소망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알겠더라는. 시인이 왜 '까다로운 작은 소망들'에 꽂혔는지.


'헤아리며 살자'라는 말. 나도 '헤어린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람을, 식물을, 주변의 무엇을 헤어릴 수 있는 사람의 품은 얼마나 넉넉한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 받은지 백만 년은 된 것 같다. SNS나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으로 짐작이 가능한 근황, 두 개 손가락으로 터치 몇 번이면 안부인사를 나눌 수 있는 세상(나의 지인은 아주아주 오랜 뒤에 인간은 다 퇴화되고 손가락만 남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에서 손편지가 구시대 유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귀하다. 원래 유물은 귀하니까.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안다. 쓰는 맛, 기다리는 맛, 기다림 끝에 읽는 맛을.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 시인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에게도 셋이나 있다(이런...). 아... 편지 쓰고 싶다(받고 싶다도 아니고). 찐하게!  


내성적인 시인은 어린시절 자신의 한자 이름이 잘못 해석되어도 또렷하게 짚어내지를 못했다고 한다. 내 이름에는 편안하고 기쁘게 살라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바람이 담겨 있다(물론 할아버지가 결정하셨고, 아빠는 이~쁜 딸이름의 어감이 남자애같다고 기어코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따로 지어 불렀다. 그 이름은 연꽃처럼 맑은 사람이되라는 뜻이었는데.). 적어도 그닥 힘들게 살고 있지는 않으니 이름의 한 글자는 그럭저럭 맞춘 듯 하다. 삶이 늘 기쁘기만 할 순 없으니.


내 삶의 '모루'는 무엇일까. 책에서의 표현처럼 후려치는 모루에 의해 휘청거리는 시절이 누군들 없었으랴. 그러나 어찌되었든 나는 여타 많은 사람들처럼 시간의 힘에 기대어 잘 지나왔고, 지나가는 중이다.  


시인이 탕종을 빗대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얘기하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다. 나 또한 삶에서 우선하는 점은 회복력과 유연함이며, 하나 더 보태자면 탄력성이다. 유연함은 평소 마음씀이 넉넉하지 않으면 갖추기 힘들다(그래서 내가 힘들다). 회복력은 몸이든 마음이든 나 스스로 건강하기 위해 선택한 삶에 대한 태도인데, 새가슴에 뒤끝까지 긴 내가 지속적으로 유지하기에는 쉽지 않은 덕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그나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서 문득, '시는 소설보다 번역하기가 훨씬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서 오는 질감, 단어의 경중과 온도, 마음의 파도까지 담아낼 수 있는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겨우 청소년 문학 원서만 어찌어찌 읽어내는 내 수준으로는 어림없겠다(갑자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를 번역한 분의 위대함이여!).


시인은 복숭아를 보면서 '시드 볼트'를 얘기하는데, 나는 엉뚱하게 침이 고인다. 과일 중 딸기와 복숭아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한여름 잠깐 먹을 수 있는 복숭아의 귀함이 늘 아쉽다. 침을 삼키며 그의 글을 읽자니, '시드 볼트'의 문이 열리는 그날이 오지 않는 것이 인류와 지구가 제자리를 건겅하게 지켜내고 있다는 방증일 터다. 시인은 자신만의 '시드 볼트'를 이야기한다. 시인 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슴 깊숙한 곳에 잠궈 놓은 '시드 볼트'가 있을 것이다. 현실의 시드 볼트와는 다르게 우리의 '시드 볼트'는 활짝 열려야 제 구실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시드 볼트'가 열릴 때 기꺼이 귀담아 나눠야 할 것이다.
  


시인의 감성과 시인의 시선과 시인의 언어로 만난 일상의 찰나들. 이렇게 말을 예쁘게(오그라드는 거 말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참, 오랜만에 푸근했다. 첵을 덮고 보니, 요즘 나의 상태는 시를 읽어야하는 때인 것 같다.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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