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소
아이바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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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시청 수사 1과에서 미해결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다가와 신이치는 과장 미야타 지로의 지시로 2년 전 나카노 역 앞 선술집 강도 살인 사건을 맡게 된다. 술집 '구라타야'에서 검은색 복면과 옷으로 뒤덮어 외모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범인이 휘두르는 회칼에 의해 두 명이 살해된 사건이었다. 피해자는 당시 31세 수의사 아카마 유야와 산업폐기물 처리업자 45세 니시노 마모루. 확인된 내용과 단서라고는 외국인에 의한 강도 살인, 현장 부근의 골목에서 대량의 피가 묻은 복면을 발견했으나 지문 검출은 실패, 도쿄에서 다발했던 외국인 절도단으로 상정하고 수사를 개시했지만 미제 사건으로 남아 다가와 신이치의 손에 떨어졌다. 


형사 이케모토와 사건 현장인 술집 '구라타야'로 다시 가서 사건 당시를 재현한 다가와는 우연찮게 선술집 '스낵엔젤'의 마담 나쓰요를 통해서 범인의 도주 경로와 공범이 있었음을 찾아낸다. 그런데 이 사건 수상하다. 우발적 강도 살해 사건이라고 여겼었는데 의도가 다분한 계획적 살인 사건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2년 전 당시에는 기본적인 탐문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수사 지휘관은 현 경시청 이사관 야지마, 수사 미비를 거론하기에도 성가신 상황이다. 더구나 재수사를 지시한 미야타 과장과 야지마 이사관의 관계는 껄끄럽고, 조직도상 야지마는 다가와의 직속상관이다. 그러나 사건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고 목격자가 나온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다가와는 피해자의 신변 조사를 시작한다. 


범인을 기다렸다 태우고 도주한 차량 조회와 피해자 니시마의 본가를 탐문한 결과, 차량 소유주는 롯폰기의 고급 클럽 마담인 아베 사나에로 확인됐고 그녀는 당시 소유했던 차량을 처분했다고 했지만 조사한 바 폐차처리 되었다.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것. 그리고 니시마의 어머니로부터 얻은 수확은 니시마가 죽기 전날 전화로 자주 먹었던 '곱창조림'을 더이상 사먹지 말라는 당부와 장례식장에 찾아온 육가공 업체의 대표 핫타의 명함이다. 육가공 식품 업체의 대표가 산업폐기물 처리업자와 무슨 연관이 있어서 장례식장을 방문한 것일까?  


다가와는 또다른 피해자 아카마의 본가와 그가 독립해서 기거했던 센다이의 주변을 탐색한 결과 아카마가 죽은 후 집에 빈집털이범이 그의 업무용 노트북 두 대를 훔쳐갔고, 그의 연인으로부터 보관하고 있던 아카마의 수첩을 받는다. 또한 니시마와 아카마의 사건과 관련된 현장에 의문의 남성이 배회했던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아카마가 업무상 자주 드나들었던 축산농장주인 마스부치의 태도도 미심쩍다.



한편 인터넷 미디어 <비즈투데이>기자 쓰루타는 옥스마트를 표적 취재하는 중이다. 옥스마트는 전형적인 박리다매 구조이기 때문에 초대형 쇼핑 센터를 짓고 유명 임대 매장을 유치하여 임대료 그리고 매상에 상응하는 로열티와 마진으로 수익을 거두는 영업 전락을 쓰고 있다. 집중적인 물량 공세로 치킨 게임을 거듭하며 경쟁 업체를 처내는 방식은 가차없다. 이로인한 피해는 점주들이 고스란히 안게 된다. 이에 관련한 기사를 업로드 하고 얼마 후 사무실로 옥스마트가 미야기 현에 대규모 쇼핑센터를 건설하는 데에 있어 미트박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쓰루타는 그와 관련한 자료를 받기 위해 제보자를 만나는데 그는 전 미트박스의 공장 생산관리과장 고마쓰 다카시다.  


고마스 다카시의 제보에 의하면 미트박스는 노폐우의 저질육과 탈지대두를 원료로 한 대체육, 내장, 혈액에 각종 식품첨가물과 약품을 섞어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회사다. 첨가물은 기본적으로 관련 기관의 기준을 통과한 것을 쓰고 동물 실험을 거쳐 발암이나 독성 시험에 이상은 없었지만, 여러 종류의 첨가물을 대량으로 혼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은 확인되지 않았고, 정부에서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 고객들은 자신들이 먹는 음식이 걸레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다가와가 옥스마트와 미트박스를 조사하기 시작한 후 사건이 점점 구체화되어지자 경찰 내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에 옥스마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다가와는 쓰루타의 기사를 접하게 된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불려나와 살해된 두 사람, 아카마와 니시마의 접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단서들, '역수', '곱창조림', '고급여관', 아카마의 수첩에 적힌 암호같은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비틀거리는 소>는 식품 위조와 대형 유통산업에 의한 폐해를 굵직한 소재로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다.  


대형 유통회사인 옥스마트는 '독점 금지법', '부당염가판매 규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부동산 투기, 언론과 정치인 매수,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협박 등 규제와 법을 교묘하게 위반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문어발식 자회사(계열사) 늘리기와 저가경쟁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대형 소핑센타와 프렌차이즈들이 대거 입점하여 지역 상권의 소상인들을 몰락시키면서 생계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는 단순히 상권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형 쇼핑센타가 건설 예정인 지역의 자방자치단체는 상하수도 및 도로 등 인프라에 선투자한다. 쇼핑센타가 오픈해 막대한 물량으로 저가 경쟁에 돌입하면 주변 상점은 줄줄이 문을 닫으며 초토화된다. 프렌차이즈 중심의 소비 구조, 주차장과 인접 도로로 인한 인간 중심보다는 자동차 중심의 지역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러다가 높은 마진율을 감당 못하는 입점주들이 매장에서 철수하고 결과적으로 기대한 이익이 창출되지 않으면 쇼핑센타는 폐점한다. 폐허가 된 거대한 쇼핑센타는 매각이 어려워 방치 상태가 되고 지역 상권이 사라진 상황에서 쇼핑 난민이 생겨나는 웃지 못할 사회현상이 발생한다. 여기에는 시청자와 구독자를 상품으로 수익을 내는 대형 언론사도 한 몫한다.


당장 우리 동네를 살펴봐도 수많은 상가에서 동네 상점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빵집, 아이스크림, 떡볶이 전문점, 분식집, 치킨 집 등 온통 프렌차이즈 간판으로 도배되어 있다. 소비자에게는 원하는 상품을 선택할 기회가 없다. 기업이 내놓은 맛과 기호에 소비자가 맞춰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 언젠가 한 번은 와본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기분은 해가 바뀔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시골이 아니라면 어느 도시나 같은 프렌차이즈, 대형 쇼핑몰이 장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관광객 유치를 의식한 테마 도시를 제외하면 그 지역만의 독특한 향기와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소설에서 표현하는 미트박스의 음식은 과연 사람이 먹을 수 있기는 할까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수시로 구매하는 햄을 비롯한 육가공 식품의 포장재에 표기된 내용을 살펴보면 정확이 어느 부위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표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함유율이 얼마나 되는지도 표기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소설에서 고마쓰는 미트박스에서 제조하는 상품을 식품이 아닌 공업품이라고 단정한다. 말끔하게 다듬어 진공포장 상태로 며칠동안 보관해도 상하지 않는 채소들과 우리가 아무 의심없이 먹고 있는 간편식들은 과연 안전할까? 


소설을 읽다보면 시중 마트에 쏟아져 나오는 간편식들과 반조리식을 납품받아 영업을 하는 프렌차이즈 식당들의 음식들을 더이상 먹을 수없을 것 같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소비를 할 것이다. 예전에 모 패스트푸드 음식이 심각한 논란이 되었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꾸준히 영업을 하고 있듯 말이다. 질낮은 가공식품이 마치 트렌드인 양,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먹을 게 하나도 없어"라는 말을 외치며. 물론 대형 마트의 폭탄 세일과 값이 싸고 편리한 반조리 식품들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폭탄 세일에 사들인 물품을 온전히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음식을 조리하고 맛을 보는 감각적인 기쁨을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동네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이 소비문화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지를 한번 돌아봐야 할 때다.


식빵맛이 최고인 작은 빵집, 로스터 마스터 아저씨가 볶아주는 커피 원두 가게(지나다니면서 한 잔씩 얻어 마시기도 했던), 조금 비싸지만 신선함에서는 따라가지 못할 과일 가게 등 단골 가게들이 몇 해 전부터 순차적으로 문을 닫았고, 현재 남은 단골이라고는 정육점 뿐이다. 종종 동네를 걷다가 새로 생긴 옷가게나 도너츠 가게(여기는 꽈배기가 일품이다), 통닭 집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장사가 될까?'라고 혼자 물음표를 찍는다. 주변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마트와 프렌차이즈들이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부디 그들이 건승하기를 기원한다.  


소설의 결말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독자는 더 씁쓸해진다.  



"대형 쇼핑몰에 갈 때면 마음이 풍족해진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어. 실상은 대기업에 좋을 대로 돈을 뜯기고, 연출된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건데도 말이야. 이 상점가처럼제 분수에 맞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게 제일 아닐까?"





♤ 도서를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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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ㅣ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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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국립오케스트라 단원인 서른다섯 살의 콘트라바스 연주자다. 그는 누군가를 향해 음악을 들려주면서 콘트라바스의 선율이 들리냐고 묻는다. 글쎄... 덩치만큼이나 묵직한 저음을 자랑하는 바스의 선율을 첼로와 구별해낼 수 있는 청중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다. 남자는 오케스트라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악기는 바스라고 자신한다. 바스야말로 음악의 골격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남들이야 뭐라하건 본인 생각이다. 
 
7.
콘트라바스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상상할 수 없어요. 바스가 반드시 끼어 있어야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제1바이올린이나 관악기는 없어도 됩니다. 북이나 트럼펫이 없어도 되고요. 이런 건 다 없어도 됩니다. 하지만 바스는 없으면 안됩니다.  
 
이 남자, 활을 긋고 피치카토로 연주하면서 현마다 음을 들려주며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시시때때로 음율을, 소리를 들었냐고 재차 확인한다. 그런데 홀짝홀짝 마신 맥주 탓일까, 이제는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콘트라바스의 주체할 수 없는 부피와 무게, 그에 따른 연주자의 체력 소모, 길고 큰 활로 인한 연주 기법의 불편함, 습기와 온도에 유달리 약한 특성, 이 덩치를 끌고 다니면 여자와 데이트하기도 힘들다는 것까지 구구절절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바스와 궁합을 맞는 악기나 성악가를 찾기는 쉽지 않고 정작 해보고 싶은 것은 실내악인데, 실내악에서 바스는 객원으로 가능할 뿐 상시 연주자는 필요하지 않다. 오케스트라 내에서도 바스 연주자는 연습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들이 열심히 연습하는지조차 관심도 없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스는 맨바닥과도 같은 존재다.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은 나오고 특별한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해고될 일도 없다. 그야말로 철밥통이다. 하지만 존재감없이 월급을 받으며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괴감은 남자의 고뇌를 깊게 한다. 남자는 자기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면 바스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뿐 재능이 있었다면 아마도 바이올린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70.
어쨌든 저는 절대로 잘리지 않습니다. 내키는 대로 연주하건 말건 잘리지 않습니다. 부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그게 바로 위험 요소입니다. 
 
남자는 사라라는 성악가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존재조차 잘 모른다. 메조소프라노인 사라의 노래에 반주를 해주는 상상만으로도 기쁜데, 실제로 바스는 음 영역대가 맞지 않아 그것도 어렵다. 남자는 결심한다. 자신의 존재를 과감하게 알리기 위해 큰무대에서 "사라!"를 외치며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멋지게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겠다고. 그런데 할 수 있을까? 






 
 


마치 한 편의 1인극을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책을 읽었다. 이 남자의 허세에 헛웃음이 나기도 하고, 툴툴거리며 내뱉는 불평들이 귀엽기까지 했으며, 소심함에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다들 알다시피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를 대표하는 악기는 바이올린이다. 퍼스트 바이올린 수석이 오케스트라 단원을 대표할 만큼 바이올린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콘트라바스는 모든 공연에 연주되지 않는다. 그러나 화자의 말처럼 바스가 갖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든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만 할 수는 없다. 세컨드 바이올린이 멜로디의 선율에 아름다운 화음을 넣어주고 비올라와 연결 고리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크고 작은 고리들이 연결되어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무엇이든 경중은 있을 수 있지만 그에 대한 가치는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타인의 삶을 경시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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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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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8일 평온한 일요일 오전, 사이타마현 고나가와의 시티가든 쇼핑몰 스완에서 11시부터 정오까지 1시간 동안 무차별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오타케 야스카즈와 니와 유키즈로 범행 후 자살했다.  

스물한 명의 사망자를 낸 잔혹한 사건, 그중 스카이라운지에서 유일하게 부상없이 살아남은 열일곱 살 소녀 이즈미. 사건 당시 같은 장소에서 한쪽 눈에 총을 맞고 실명한 이즈미의 동급생 고즈에에 의해 이즈미가 살인마 니와 유키즈의 지시대로 다음 살해 대상을 선택했다는 게 폭로되면서 비난의 화살은 그녀에게 꽂힌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10월 어느날, 이즈미는 법률 사무소 변호사 도쿠시타 소헤이로부터 초대장을 받고 모임 장소로 나간다. 그곳에는 '스완' 사건 당일 총격으로부터 살아남은 다섯 명이 자리하고 있다. 이 모임은 그날 사망한 노부인 요시무라 기쿠노 씨의 아들 요시무라 히데키가 주최하며 변호사 도쿠시타에게 의뢰한 것으로써 어머니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모임을 수락한 다섯 명에게는 기본적인 수수료와 진실을 밝힐 때 마다 보너스가 지급된다.  

피해자에서 한순간에 악인이 되어버린 이즈미, 모임 첫날부터 묵비권을 행사하며 모인 사람들을 조롱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하타노, 정의감에 불타는 노인 호사카, 알고 있는 사실을 정확히 말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중년 여성 이쿠타, 그리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불안해 보이며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도산. 그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503.
너도 마찬가지였어! 살기 위해 남을 방패막이로 삼는 녀석이었어! 내가 즐기려고 사람들을 죽인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하지만, 그래. 꼭 너만 그런 건 아니야. 모두 자신만 생각하며 기회와 능력, 필요만 있으면 남을 죽이지. 타인 따위 벌레처럼 짓밟지. 그래. 그게 바로 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이야. 부끄러할 필요 없어. 네가 옳아. 1밀리미터도 의심할 것 없이 옳아.

죽기 직전, 니와 유즈키의 외침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전작 <도덕의 시간>에서 독자를 도덕적 딜레마에 빠트렸던 오승호 작가가 이번에는 신작 <스완>을 통해서 선과 악의 부조리에 대해 묻는다.  

이 소설에서 진정한 악인은 누구이며 의인은 누구일까?

각자의 눈앞에 총부리가 정조준 되어 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앞다투어 도망간다.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목숨을 담보로 한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여론과 언론은 역지사지와 이해가 없는, 결과만으로 비난을 쏟아낸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어야 옳았을까? 애당초 악인은 사건의 범인들이다. 그러나 악을 비난하는 화살은 자살한 범죄자가 아닌 그저 봉급생활자일 뿐인 경비원들과 기적적으로 생존한 이즈미에게로 향한다. 살아있다는 것이 죄인가? 사람들은 스물한 명이 사망한 사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쏟아내야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는 악이 존재함으로써 선이 증명되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정의와 선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하며 입을 모아 이즈미를 비난하지만, 과연 세상은 선의에 동조할까?

사실 우리는 선의보다 악의에 더 관심이 많다. 매일 쏟아져나오는 뉴스에는 선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다. 세상에 선의가 없어서일까? 그건 사람들이 악의에 더 열광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고즈에와 이즈미는 주인공 오데트가 아닌 훅조 오딜을 서로 연기하겠다고 경쟁한다. 순결한 사랑을 상징하는 오데트는 오딜이 있기에 빛날 수 있다. 세상은 허구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악마와 천사처럼 흑과 백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 같은 상황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선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의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허물에 대해서 함부로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가능한한 악의를 누르고 선의를 선택하며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주변에 있는 이들의 모습이 우리 자신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번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비난 이전에 그 고통을 서로가 이해하고 위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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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편지 -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개정판 ㅣ 카프카 전집 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변난수.권세훈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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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사유했던 삶과 문학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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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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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그리스 정부 사이에 체결된 협약으로 에게해 위의 섬들 가운데 소아시아에 가장 가까운 섬(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은 '핫 스폿hot spot'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 지위란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그리스 해안으로 접근하는 수천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장소다. 이 핫 스픗의 공식 명칭은 '1차 접수 시설'이고 난민들은 이 섬을 통과해서 발칸반도나 북유럽 등지로 가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현재 유럽 최대 난민 수용 캠프는 레스보스섬 모리아다. 이곳에서는 난민 보호와 치안을 명목으로 해안 경비대와 프론텍스 파견 정찰함, NATO 소속 선박들이 무자비한 폭력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을 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치안이란 누구를 위한 치안인가? 물론 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치안이다. 난민들이 천우신조로 살아남아 육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약없는 기다림,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 범죄에 노출된 위험, 부족한 식량과 물자와 전기, 그리고 비리와 부정부패. 희망을 갖고 목숨을 담보로 자국을 탈출했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유럽연합과 그리스 정부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수용소 사령관은 난민들을 적절하게 재우고 먹이는 데 필요한 자원 공급을 거부하는 그리스 정부에 책임을 넘기고,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 지원이 따라주지 않는다면서 유럽연합 쪽을 비난한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관료들은 그리스 행정부의 무기력과 무관심을 탓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5년간 10억 유로가 넘는 지원금을 그리스 당국에 송금해 주었으므로 세간의 비난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그 지원금은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그리스는 왜 그들의 입장에서 골칫덩이에 불과한 '핫 스폿' 지정 철회 요청을 하지 않을까?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1948년 제정된 세계 인권선언문 제14조에는 "박해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른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으로 망명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전 세계 193개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이 문헌에 서명했다. 그리고 협약문에는, 체결국은 난민 보호를 보장하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국제 협약 이행을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음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인종, 종교, 출신국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며 자국의 영토에 들어온 난민을 국가 안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위한 이유가 아니고는 추방할 수 없음을 밝힌다. 따라서 현재 레스보스 섬의 난민들에게 망명을 신청할 권리조차 주지 않는 것은 인권 침해다.  


무엇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이들이다. 공식적인 수용소든 비공식적인 텐트촌에 있든, 난민 아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어린이 고유의 활동'을 전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동반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들의 경우에는 성폭력 범죄에까지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아동 관련 협약은 동반 보호자 없는 아동들은 어른들과 분리된 곳에서 잠을 자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당연히 지켜지고 있지 않다.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하는 파트리스 만수르는 이렇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을 '낭비'라고 표현했다. 유치원도, 학교도 없고 언어 소통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그럼에도 유엔인권이사회는 아동 권리 협약 체결 30주년을 요란스럽게 자축했다고 한다. 누구에게 보내는 축하인가? 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아동 학대의 참혹한 실태를 외면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유엔난민기구는 1919년에 베르사유 조약과 국제연맹 헌장의 결실로 창설되어 처음에는 난민지원센타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제네바 국제연맹사무국 부속 기구였다. 1933년에 국제연맹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기구를 창설하여 난민고등판무소라고 명명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지구의 5대륙에 병참기지를 두고 있고, 유엔세계식량계획과 항구적인 공조 협약을 맺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 아주 엄격한 틀로 규정되어 있다면, 난민고등판무관의 독립성은 거의 전적으로 보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 지글러는 모리아를 비롯한 핫 스폿 전역에서 자행되는 현장에 난민고등판무관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난민고등판무관은 난민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며, 에게해 핫 스폿을 비롯해서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눈 멀고 귀 먹은 관료들과 시급히 맞서 싸우라고 일갈한다. 


장 지글러는 더 나아가 1951년 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경제 이주민'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그것도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현재에 국가가 가난해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떠나온 사람들도 난민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 국가의 기근을 다른 나라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없다. 그러나 현재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가해자는 경제 선진국이며 그 피해는 대체로 가난한 나라가 입는다. 공정하지 못한 게임에 가까운 FTA는 빈부격차를 늘리며 개발도상국의 빈민층을 나락으로 몰고 있다. 먹이사슬처럼 이어진 국가 간 경제가 기근 난민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핫 스폿은 유럽연합의 기구들과 각 회원국이 협조하여 대외 국경 지역에서 망명 신청자들의 일차적인 접수, 신원 확인, 명부 작성, 지문 채취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핫 스폿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영토에서만 운영 중이다. 단 그 외 국가에서 요청하거나 유럽 위원회에서 운영국에 보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핫 스폿을 설치할 수 있다.' 

(유럽 의회)  
 
그러나 장 지글러는 말한다. 


우리 유럽 민족은 반反난민 국가들에게 제공되는 지원금의 즉각적인 중단을 관철시켜야 한다.
우리는 유럽 대륙 어디에서나 보편적 망명권이 엄중하게 존중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핫 스폿을,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건, 즉각적이고 결정적으로 폐쇄할 것을 요구한다.
그곳이 바로 유럽의 치부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 미국은 종교 박해를 피해 나라를 떠난 난민들이 세운 나라다. 우리나라 역시 전쟁의 폐허에서 국제 사회의 지원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18년 예멘인 500명 넘는 인원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관심 밖이었던 난민 문제에 대한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당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결과를 떠나서 대부분의 정서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자 나름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놓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스스로, 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지, 난민 문제가 온전히 당면한 문제가 아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난민에 의한 범죄율 증가 등 가짜 뉴스에 휘말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난민을 수용할 시 우려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객관화시켜서 판단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우리도 난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홍수와 가뭄, 폭설, 폭염 등 이상 기후와 코로나19처럼 전 세계를 잠식하는, 영화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전염병으로 더이상 세계에서 안전 지대는 없다.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된다면 지구는 7.5년 안에 아주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학계 보고가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구라도 난민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지금 핫 스폿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지켜야하는 것이 바로 인권, '인간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77.
나 자신이이처럼 인간성이 상실된 현장의 직접적인 책임자는 아니지만, 유럽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니 이제까지 침묵한 한 인간으로서, 나 역시 이처럼 참혹한 광경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가담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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