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 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그리스 정부 사이에 체결된 협약으로 에게해 위의 섬들 가운데 소아시아에 가장 가까운 섬(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은 '핫 스폿hot spot'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 지위란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그리스 해안으로 접근하는 수천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장소다. 이 핫 스픗의 공식 명칭은 '1차 접수 시설'이고 난민들은 이 섬을 통과해서 발칸반도나 북유럽 등지로 가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현재 유럽 최대 난민 수용 캠프는 레스보스섬 모리아다. 이곳에서는 난민 보호와 치안을 명목으로 해안 경비대와 프론텍스 파견 정찰함, NATO 소속 선박들이 무자비한 폭력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을 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치안이란 누구를 위한 치안인가? 물론 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치안이다. 난민들이 천우신조로 살아남아 육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약없는 기다림,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 범죄에 노출된 위험, 부족한 식량과 물자와 전기, 그리고 비리와 부정부패. 희망을 갖고 목숨을 담보로 자국을 탈출했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유럽연합과 그리스 정부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수용소 사령관은 난민들을 적절하게 재우고 먹이는 데 필요한 자원 공급을 거부하는 그리스 정부에 책임을 넘기고,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 지원이 따라주지 않는다면서 유럽연합 쪽을 비난한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관료들은 그리스 행정부의 무기력과 무관심을 탓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5년간 10억 유로가 넘는 지원금을 그리스 당국에 송금해 주었으므로 세간의 비난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그 지원금은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그리스는 왜 그들의 입장에서 골칫덩이에 불과한 '핫 스폿' 지정 철회 요청을 하지 않을까?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1948년 제정된 세계 인권선언문 제14조에는 "박해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른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으로 망명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전 세계 193개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이 문헌에 서명했다. 그리고 협약문에는, 체결국은 난민 보호를 보장하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국제 협약 이행을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음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인종, 종교, 출신국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며 자국의 영토에 들어온 난민을 국가 안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위한 이유가 아니고는 추방할 수 없음을 밝힌다. 따라서 현재 레스보스 섬의 난민들에게 망명을 신청할 권리조차 주지 않는 것은 인권 침해다.  


무엇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이들이다. 공식적인 수용소든 비공식적인 텐트촌에 있든, 난민 아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어린이 고유의 활동'을 전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동반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들의 경우에는 성폭력 범죄에까지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아동 관련 협약은 동반 보호자 없는 아동들은 어른들과 분리된 곳에서 잠을 자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당연히 지켜지고 있지 않다.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하는 파트리스 만수르는 이렇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을 '낭비'라고 표현했다. 유치원도, 학교도 없고 언어 소통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그럼에도 유엔인권이사회는 아동 권리 협약 체결 30주년을 요란스럽게 자축했다고 한다. 누구에게 보내는 축하인가? 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아동 학대의 참혹한 실태를 외면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유엔난민기구는 1919년에 베르사유 조약과 국제연맹 헌장의 결실로 창설되어 처음에는 난민지원센타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제네바 국제연맹사무국 부속 기구였다. 1933년에 국제연맹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기구를 창설하여 난민고등판무소라고 명명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지구의 5대륙에 병참기지를 두고 있고, 유엔세계식량계획과 항구적인 공조 협약을 맺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 아주 엄격한 틀로 규정되어 있다면, 난민고등판무관의 독립성은 거의 전적으로 보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 지글러는 모리아를 비롯한 핫 스폿 전역에서 자행되는 현장에 난민고등판무관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난민고등판무관은 난민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며, 에게해 핫 스폿을 비롯해서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눈 멀고 귀 먹은 관료들과 시급히 맞서 싸우라고 일갈한다. 


장 지글러는 더 나아가 1951년 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경제 이주민'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그것도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현재에 국가가 가난해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떠나온 사람들도 난민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 국가의 기근을 다른 나라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없다. 그러나 현재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가해자는 경제 선진국이며 그 피해는 대체로 가난한 나라가 입는다. 공정하지 못한 게임에 가까운 FTA는 빈부격차를 늘리며 개발도상국의 빈민층을 나락으로 몰고 있다. 먹이사슬처럼 이어진 국가 간 경제가 기근 난민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핫 스폿은 유럽연합의 기구들과 각 회원국이 협조하여 대외 국경 지역에서 망명 신청자들의 일차적인 접수, 신원 확인, 명부 작성, 지문 채취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핫 스폿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영토에서만 운영 중이다. 단 그 외 국가에서 요청하거나 유럽 위원회에서 운영국에 보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핫 스폿을 설치할 수 있다.' 

(유럽 의회)  
 
그러나 장 지글러는 말한다. 


우리 유럽 민족은 반反난민 국가들에게 제공되는 지원금의 즉각적인 중단을 관철시켜야 한다.
우리는 유럽 대륙 어디에서나 보편적 망명권이 엄중하게 존중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핫 스폿을,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건, 즉각적이고 결정적으로 폐쇄할 것을 요구한다.
그곳이 바로 유럽의 치부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 미국은 종교 박해를 피해 나라를 떠난 난민들이 세운 나라다. 우리나라 역시 전쟁의 폐허에서 국제 사회의 지원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18년 예멘인 500명 넘는 인원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관심 밖이었던 난민 문제에 대한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당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결과를 떠나서 대부분의 정서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자 나름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놓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스스로, 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지, 난민 문제가 온전히 당면한 문제가 아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난민에 의한 범죄율 증가 등 가짜 뉴스에 휘말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난민을 수용할 시 우려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객관화시켜서 판단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우리도 난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홍수와 가뭄, 폭설, 폭염 등 이상 기후와 코로나19처럼 전 세계를 잠식하는, 영화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전염병으로 더이상 세계에서 안전 지대는 없다.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된다면 지구는 7.5년 안에 아주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학계 보고가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구라도 난민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지금 핫 스폿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지켜야하는 것이 바로 인권, '인간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77.
나 자신이이처럼 인간성이 상실된 현장의 직접적인 책임자는 아니지만, 유럽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니 이제까지 침묵한 한 인간으로서, 나 역시 이처럼 참혹한 광경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가담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