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바스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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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국립오케스트라 단원인 서른다섯 살의 콘트라바스 연주자다. 그는 누군가를 향해 음악을 들려주면서 콘트라바스의 선율이 들리냐고 묻는다. 글쎄... 덩치만큼이나 묵직한 저음을 자랑하는 바스의 선율을 첼로와 구별해낼 수 있는 청중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다. 남자는 오케스트라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악기는 바스라고 자신한다. 바스야말로 음악의 골격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남들이야 뭐라하건 본인 생각이다. 
 
7.
콘트라바스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상상할 수 없어요. 바스가 반드시 끼어 있어야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제1바이올린이나 관악기는 없어도 됩니다. 북이나 트럼펫이 없어도 되고요. 이런 건 다 없어도 됩니다. 하지만 바스는 없으면 안됩니다.  
 
이 남자, 활을 긋고 피치카토로 연주하면서 현마다 음을 들려주며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시시때때로 음율을, 소리를 들었냐고 재차 확인한다. 그런데 홀짝홀짝 마신 맥주 탓일까, 이제는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콘트라바스의 주체할 수 없는 부피와 무게, 그에 따른 연주자의 체력 소모, 길고 큰 활로 인한 연주 기법의 불편함, 습기와 온도에 유달리 약한 특성, 이 덩치를 끌고 다니면 여자와 데이트하기도 힘들다는 것까지 구구절절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바스와 궁합을 맞는 악기나 성악가를 찾기는 쉽지 않고 정작 해보고 싶은 것은 실내악인데, 실내악에서 바스는 객원으로 가능할 뿐 상시 연주자는 필요하지 않다. 오케스트라 내에서도 바스 연주자는 연습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들이 열심히 연습하는지조차 관심도 없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스는 맨바닥과도 같은 존재다.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은 나오고 특별한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해고될 일도 없다. 그야말로 철밥통이다. 하지만 존재감없이 월급을 받으며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괴감은 남자의 고뇌를 깊게 한다. 남자는 자기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면 바스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뿐 재능이 있었다면 아마도 바이올린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70.
어쨌든 저는 절대로 잘리지 않습니다. 내키는 대로 연주하건 말건 잘리지 않습니다. 부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그게 바로 위험 요소입니다. 
 
남자는 사라라는 성악가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존재조차 잘 모른다. 메조소프라노인 사라의 노래에 반주를 해주는 상상만으로도 기쁜데, 실제로 바스는 음 영역대가 맞지 않아 그것도 어렵다. 남자는 결심한다. 자신의 존재를 과감하게 알리기 위해 큰무대에서 "사라!"를 외치며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멋지게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겠다고. 그런데 할 수 있을까? 






 
 


마치 한 편의 1인극을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책을 읽었다. 이 남자의 허세에 헛웃음이 나기도 하고, 툴툴거리며 내뱉는 불평들이 귀엽기까지 했으며, 소심함에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다들 알다시피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를 대표하는 악기는 바이올린이다. 퍼스트 바이올린 수석이 오케스트라 단원을 대표할 만큼 바이올린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콘트라바스는 모든 공연에 연주되지 않는다. 그러나 화자의 말처럼 바스가 갖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든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만 할 수는 없다. 세컨드 바이올린이 멜로디의 선율에 아름다운 화음을 넣어주고 비올라와 연결 고리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크고 작은 고리들이 연결되어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무엇이든 경중은 있을 수 있지만 그에 대한 가치는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타인의 삶을 경시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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