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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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보라색 치마'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첫문장

 

담한 체형과 어깨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 뺨에는 드문드문 기미가 나 있고, 머리카락은 탄력이 없어 푸석푸석하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상점가 빵집에서 크림빵을 산 후 늘 같은 자리인 공원의 제일 안쪽 벤치에서 크림빵을 먹는다. 공원에서 놀던 아이들은 '보라색 치마'에게 장난을 걸고, 그녀는 아이들의 장난에 짜증 내지 않는다. 

 

녀가 아케이드상가 맞은편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네 부류로 반응을 보인다. 모르는 척하는 사람, 잽싸게 길을 비켜주는 사람, 길조로 여기고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 징크스 삼아 못내 슬퍼하는 사람. 한 마디로 유명인사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보라색 치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걷던 속도를 유지한다. 시장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녀는 물건이나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 '나' 즉 '노란색 카디건'이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는 이유는 '보라색 치마'와 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노란색 카디건'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보라색 치마'는 정규직이 아니다. 근무를 하는 날이나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한 달을 일하면 한 달 쉬기도 하고, 한 달 중 며칠만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가 연속 두 달 동안 무직 상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노란색 카디건'은 그녀가 늘 앉는 공원 벤치에 구직 정보지를 슬쩍 놓아둘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직장을 직접적으로 표시까지 해놓는다. 심지어 면접볼 때 사용하라고 향이 나는 샴푸 샘플을 그녀의 집 현관 문고리에 걸어둔다. 드디어 '노란색 카디건'이 유도하는 직장에서 근무하게 된 '보라색 치마'. 그곳은 바로 '노란색 카디건'의 직장이다. 이제 그녀는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기만 하면 된다! 

 

텔 메이드라는 직업상 단정한 용모를 규정할 수 밖에 없는데, '보라색 치마'는 거의 낙제에 가깝다. 그녀가 제대로 적응할까 걱정스러운 '노란색 카디건'.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가는 '보라색 치마'는 직장 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조차 그녀의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직장 동료와 잘 어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례처럼 내려온 소소한 부정행위에 대해서도 배운대로 실천(!)한다. 급기야 소장과 부적절한 관계까지 이르는 '보라색 치마'.  

 

'보라색 치마'를 동정해 보살피듯 하던 직장 선배들은 이제 더 높은 시급을 받는 그녀를 질투하고 헐뜯는다. 본사에서 분실된 비품에 대한 관리 감독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사항이 전달되면서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부정 행위를 모두 '보라색 치마'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다. 또한 관계를 정리하고자 하는 소장은 상황이 녹록치 않자 그녀를 스토커로 몰아붙인다.   

 

'보라색 치마'는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 칭찬 일색이었던 그들은 왜 자신을 비난할까? 

 

 

 

 

■ ■ ■ ■ 

 

 

'노란색 카디건'이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보라색 치마'는 타인의 시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외모와 입성, 그리고 공원에서 빵을 먹는 행동 등 일반적으로 남을 의식할 만한 상황에서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더구나 동네 꼬마들이 짓궂은 장난을 걸어와도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준다. '노란색 카디건'은 (어떤 의미에서든)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당당한 그녀가 부럽다. 

 

아쉽게도 '보라색 치마'와 달리 '노란색 카디건'은 그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p7

 

그런데 심지어 그녀는 운동 신경도 뛰어나고, 적응력도 빠르며 출근한지 얼마 안된 직장에서까지 칭찬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 안타까운 건 '노란색 카디건'이 아무리 옆구리를 찔러대도(?) 그녀는 '노란색 카디건'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쯤되면 질투할만도 한데, 가장 극적인 순간에 슈퍼 히어로처럼 나타나 그녀를 구원해 주는 '노란색 카디건'. 그러나 애쓴 보람도 없이...... . 

 

그렇지만 사라진 '보라색 치마'의 공원 벤치 자리에 '노란색 카디건'이 앉았다. 이제 그 벤치는 그녀 전용이다. 

 

 

 

 

□ □ □ □ 

 

비정규직이자 일용근로자이고 관계에 미숙한 '보라색 치마'는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도 모르는 새에 '노란색 카디건'의 도움으로 사회 집단 안에 들어오면서 단정한 용모와 익숙해져가는 사회 생활에서 독자는 뭔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게 되지만 이것도 잠시, 자신과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는 '비교'가 개입이 되면서 '보라색 치마'는 이전과는 다른 혐오의 대상이 된다.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게서 배운 사회적 지식이 오히려 화살이 되어 돌아온 상황.

단지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대상을 스토킹하는 '노란색 카디건'. 의도를 생각하면 안쓰럽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정도면 범죄다. 그러나 '보라색 치마'와 굳이 비교하자면 보통의 일반적인 직장 여성이다. 그녀는 어떤 결핍으로 '보라색 치마'를 스토킹한 것일까? 집단 구성원에서 너무 평범해 존재감이 미비한 다수의 사람들. 극단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노란색 카디건'은 타인의 관심에 굶주린 현대인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두 여성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 동네 사람들을 보면서 결국 우리가 '일반적', 혹은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범위가 기준을 들이대는 대상에 따라 잣대가 달라진다면 어떤 의미가 있나싶다.

결국 '보라색 치마'가 떠난 자리를 꿰차고 앉아 뿌듯해 하는 그녀를 보면서 흔하디 흔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관심'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자신을 본다면 경쟁적으로 올라오는 SNS, 댓글 폭력, 혐오와 비난의 수위는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물건이 든 봉투를 옆에 놓고 크림빵 봉투를 꺼냈다. 빵은 살짝 따뜻하다. 우선 반으로 갈라서, 한쪽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다른 한쪽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바로 그 순간, 탁!하고 누가 어깨를 때렸다. 

절묘한 타이밍에 내 어깨를 때린 아이가 꺅꺅 웃으면서 도망갔다.

소설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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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제중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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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XX년 5월 24일 화요일 낮 12시 15분.

프렌치백화점, 폴 라버리 디자이너의 프랑스 초현대적 침실 전시가 시작되면서 벽침대가 내려오고 그와 동시에 피투성이 시체 한 구가 굴러 떨어진다. 사망자는 프렌치백화점 대주주이자 대표이사 사이러스 프렌치의 아내 위니프레드 마치뱅크스 프렌치다. 

 

삽시간에 백화점은 혼란에 빠지고 마침 6층 아파트에서 회의 중이었던 사이러스 프렌치와 그의 비서 웨슬리 위버, 이사 네 사람이 내려오고 퀸 경감과 엘러리도 사건 현장에 도착해 수사를 시작한다. 

 

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은 자정부터 새벽 2시 이전으로 범행 시간의 범위는 월요일 밤 11시 30분부터 화요일 오전 9시 30분으로 추정한다. 현장에 흘린 피의 양과 부검 결과 실질적인 범행 현장은 전시실이 아닌 다른 장소이며 사인은 총상이고 총알의 각도상 피해자는 앉아 있는 상태에서 살해당했다. 

 

경찰과 엘러리는 피해자 발견 장소가 사망 현장이 아니라는 점과 프렌치 집안의 사유 장소인 6층의 아파트는 가족과 비서만이 각자의 이니셜이 새겨진 열쇠를 가지고 있으며 그외의 사람은 출입이 제한된다는 점에 백화점을 모두 수색한다. 뿐만 아니라 프렌치 사장의 집을 찾아가 피해자와 실종자의 방을 살펴 본다.

 

장과 아파트에서 발견된 증거품은 M.F라는 약자가 새겨진 스카프, 피해자의 핸드백에서 나온 C가 새겨진 립스틱, 그리고 사라진 아파트 열쇠. 그리고 아파트 서재의 탁자에는 연관이 없는 다섯 권의 책과 담배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털이, 옷장에는 피해자 딸 버니스의 옷과 구두가 있다. 또한 색깔이 다른 북엔드의 펠트와 펠트에 흔적이 남아있는 지문 채취용 가루.  

 

러리는 백화점 마감 이후에 출입이 가능한 출입구와 사용 용도, 그리고 조명의 밝기를 확인한다. 피해자의 핸드백에서 나온 립스틱의 주인은 그녀의 딸 버니스이며 립스틱에는 마약 캡슐이 숨겨져 있었다. 현재 실종 상태인 버니스 카모디. 엘러리는 이 사건이 단순 살해 사건이 아닌 마약 범죄와 연관되어 있음을 유추하고 범위를 확대해 추리한다. 

 

 

붓 자매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기적이며 문란한 생활을 했던 의붓어머니를 지켜보았고 피해자에게서 나온 스카프의 주인 마리온 프렌치, 위니프레드와 불륜 관계인 소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험악한 성정의 소른 부인, 딸에게는 관심도 없는 전처에 진저리를 치는 빈센트 카모디, 백화점 아파트에 북엔드를 기증했던 그레이, 위니프레드의 오빠 위니프레드의 마치뱅크스, 버니스의 돈을 노리는 그녀의 약혼자 트래스크, 아파트의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어 언제든 철통 보안의 백화점 내 어디든 갈 수 있는 보안반장 크라우더, 사건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서적 판매부 책임자 스프링어.

이 사람들 중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사건 범행 시간에 알리바이를 확인해 줄 이가 없다.

누가 범인일까? 

  

 

엘러리는 사건 발생 후 이틀이 지나 사건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은다. 아버지 퀸 경감의 건강 상태를 들어 자신이 대신 브리핑하는 것에 양해를 구하며 사건의 경위를 설명해 나간다. 

재에 펼쳐져 있었던 책이 던진 단서와 버니스의 립스틱, 스프링어의 행적을 통해 살해 살인 사건이 마약 범죄와 연관이 있으며 뿐만 아니라 실종된 버니스가 마약 밀매단 고객이자 유통에도 관계했음을 밝힌다.

황상 백화점 폐점 이후 입장은 용이하나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나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예정에 없던 회의로 인해 일찍 출근한 웨슬리의 면도날이 아파트 욕실에서 사라졌다. 아파트 옷장 안 구두 가방에 놓여진 버니스의 구두 위치가 미심쩍다. 서재 재털이에 쌓인 담배 꽁초의 길이와 버니스의 방에 남겨진 담배 꽁초의 길이가 다르다. 버니스가 열쇠를 분실한 것도 모른 채 집으로 걸려온 미심쩍은 전화. 프렌치 부인이 앉아서 총상을 입은 것으로 보아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과 살해 후 아파트를 원활하게 드나들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사라진 부인의 열쇠.

이를 통해 엘러리는 범인은 남자이며 단독범행임을 확실히 한다. 이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단 한 사람.

범인은 바로 그다!

■ ■ ■ ■

사건 발생 후 엘러리가 증거와 정황을 놓고 추리한 시간은 이틀, 그런데 책은 450여 쪽에 달한다. 개인적으로 스토리를 논리적이고 세밀하게 풀어놓는 방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호흡이 긴 장편이 맞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는 읽는 내내 독자로서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엘러리의 천재적 추리가 흥미진진한데, 읽다보면 그가 남다른 지능을 갖고 있음과 더불어 많은 독서량과 호기심이 지능을 앞선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면 그럴 것이고, 아는 만큼만 보는 것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이 엘러리의 가장 크고 탁월한 장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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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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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영도

'공주님'이라고 불릴만큼 마마걸인 딸 유비가 하루 아침에 연락이 닿지 않는다.  사위 사사 도모키는 아내가 장모와의 갈등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며, 현재는 치료와 안정을 위해 정신과 클리닉에 입원해 있다고 알려줄 뿐 일체의 면회를 사절할 뿐만 아니라 딸과의 전화 통화조차 막아놓은 상태.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하코자키 시즈코는 딸의 안전과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사립탐정사무실을 찾는다.  

 

화촉

한 예식장에 같은 날 시간차를 두고 예약된 두 예식이 모두 어그러지는 사태가 벌어진다. 한쪽은 신부가 도망가고, 한쪽은 신랑의 전 여자친구가 나타나 신랑 대기실에서 성관계 도중 발각된다. 이십대 초반인 신부는 집안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예순 살이 넘은 남자와 마지못해 결혼을 결정하고, 다른 예식의 예비 신랑은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심리적으로) 양다리였으며 결혼식에서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이 두 결혼식, 뭔가 수상하다. 같은 날, 같은 예식장에서 예정된 두 예식 모두 파혼이라니!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동네에서 평판이 좋지 못한 모녀가 어린 아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자가 있다며 탐정사무실을 찾아온다. 아들의 목숨을 노리는 자는 바로 아들의 친할머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혼한 전 남편의 어머니다. 등교길에 칠십대 노인의 운전 미숙으로 일어난 교통 사고. 모든 상황과 증언, 근거는 단순 사고임을 말하고 있는데, 오직 구치다 미키는 전 시어머니의 사주라고 억지를 부린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 ■ ■ ■ 

 

동네의 골목 사립탐정 스기무라가 의뢰받은(정확히, 의뢰는 두 건, 한 사건은 어쩌다 보니 휩쓸리게 된) 세 사건을 중편소설로 엮은 옴니버스 소설집이다. 

위의 세 사건은 체육계 혹은 남성 집단의 서열화와 그에 대한 폐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의해 함몰되는 가족의 붕괴, 특히 여성을 향한 혐오와 인권유린을 다루고 있다. 

  

 

<절대영도>에서는 같은 대학 재학생, 졸업생으로 구성된 필드하키 동아리에서 선배(다카네자와 데루유키)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사생활은 아예 인정되지 않는다. 양해 따위는 필요없다는 듯이 후배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건 예사고, 회원들(특히 후배)의 연인이나 부인을 불러내 술시중 뿐만 아니라 저속한 농담과 음담패설, 외모 비하 등 여성 혐오를 드러내며 하대하고 희롱 및 성추행까지 한다. 이란 모임이 싫어서 탈퇴를 결심한 다마키 고지의 집으로 속임수까지 써가며 쳐들어가 결국에는 그의 아내를 집단 성폭행하고 자살로 몰고 간 '그' 집단을 다마키는 응징한다.  

 

소설에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 다카네자와가 가장 나쁜 사람일까(사실 그는 이 소설에서 거의 절대악이다)? 가족보다 선배의 말을 더 우선하며 자신의 아내를 희롱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선배의 명령이라는 이유로 아내가 지켜보는 곳에서 후배의 아내를 집단 강간하는 도모키는 정상인가?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배만 아니면 멋진 남편이기에, 남편이 시키는대로 변죽을 울리는 유비는 같은 여성으로서 갖는 수치심과 모멸감 따위는 길에 내다 버린 것인가!

 

사실 이렇게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집단에서 학연 지연에 의한 따돌림과 여성의 성폭행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가까운 사례로 학연으로 갈등을 겪어 러시아로 귀화한 A 선수, 얼마 전까지 코치의 성추행 사건으로 떠들썩 했던 S 선수 등 어렵지 않게 접하는 사회 문제다. 특히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이용해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행위는 얼마나 비열하고 야비한가. 특히 최근에 n번방 사건처럼 큰 이슈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앞으로 학생을 가르칠 예비 선생인 교대 남학생들조차 카톡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외모 비하와 성희롱을 일삼았다. 이러한 행위들이 얼마나 일반화 되어 있는지 생각하면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지금, 자신의 단톡방을 점검해 보는 건 어떨지...... . 

 

 

<화촉>에서는 개인의 행복과 선택보다 돈을 우선하는 부모로부터 결혼을 강요받는 스가노와 엄마를 오랜 죄책감과 피해의식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시즈카, 두 여성이 등장한다. 16,7세기 이전에는 여성이 사람이기보다는 물건, 상품에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이름을 내놓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가문의 명예나 권력에 의해서 결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충효사상을 으뜸으로 치는 지역에서는 수절이 영광이고, 재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허락이 필요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는 여전히 결혼을 결심한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허락'을 받는다. 부모는 자식의 배우자가 될 사람의 집안 내력, 학력, 심지어 연봉까지 물어본다고 들었다. 사실 가장 개인적인 부분을 부모라는 이유로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월권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자식의 결혼을 허락하고 말고가 어디있나? 물론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본인들의 선택인 것을. 부모로서 먼저 살아온 연륜으로 조언 정도는 할 수 있을테다.  그러나 결정은 본인들의 선택이고 부모의 몫은 축복으로 끝내야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느정도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트라우마를 안고 살든, 이겨내든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엄마의 피해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결혼식을 이용한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 이는 엄마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냉정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자신이 안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는 각자 짊어져야 한다. 자식 혹은 부모의 짐을 대신 지는 것, 타인에게 짐을 지우는 것,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짐으로 인해 사는 것이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두가 혼자서 배를 저어 시간을 강을 나아가도 있다. 따라서 미래는 항상 등 뒤에 있고 보이는 것은 과거뿐이다. 강가의 풍경은 멀어지면 자연히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아니라 마음에 새겨져 있는 무언가라고.  

p301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에서는 다 남 탓인 두 여인이 있다. 언니 미키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이른 나이부터 소위 '문제아'였다. 사고를 일으켜 관심을 끌고 동정을 얻어내며 외모를 이용해 남자를 유혹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음에 있어 남편도 자식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아?'라는 듯 더 자극적이고 강하게 꾸미고 행동한다. 덕분에 십대에 아이를 낳고, 결혼 후에 다시 출산을 하지만 사실 두 아이 모두 아빠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동생 미에는 학생 시절부터 언니의 추문과 나쁜 평판으로 인해 제대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 누구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고,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는 말이 뒤통수를 당겼다. 내가 원해서 그녀의 동생이 된 것도 아니고, 언니와 자신은 다른 사람인데, 아무도 두 사람을 별개로 보지 않았다.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저지른 범죄. 하지만 미에의 내면에는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을까. 

 

461.

아무리 괴로운 과거라도 그건 당신의 역사에요. 어제의 당신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당신이 있고, 당신의 내일이 있는 거예요.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행복한 미래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아요. 

 

자신의 '어제'를 한번도 선택할 수 없었다는 미에의 비명. 미에의 말대로 '어제'는 선택할 수 없지만, '내일'은 선택할 수 있지 않나. '내일'은 곧 '모레'의 어제. 이 사실을 미에가 알았더라면 언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려나...... .  

모쪼록 미키의 딸 사자나미만큼은 엄마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 좋은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스기무라 탐정.

필립 말로의 고독한 분위기도, 엘리리 퀸의 천재적 추리도, 셜록의 젠틀한 면도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따뜻한 인간미가 전해지는 새로운 캐릭터다. 소설에서 스기무라의 추리나 수사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러한 면이 좀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스기무라 탐정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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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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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더 이 남자가 궁금해졌다. 

□ □ □ □

 

어느해 8월, 지갑에 9만8천원 뿐인 채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마흔다섯 살 남자. 구인란을 뒤지다가 컨테이너 숙소가 제공되는 영세 택배 업체에 취직한다. 목구멍은 포도청이고, 힘들어도 타인과 대면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서. 

 

그 남자가 맡은 구역은 행운동. 그래서 동료 택배 기사들은 그를 '행운'이라 부르고, 누군가 그에게 이름을 물어오면 '행운'이라 부르라고 말한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타고난 소질도 없고, 의지도 없는 남자. 남의 일상에 관심도 없을 뿐더라 상대의 관심도 불편하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그의 일상에 침입자들이 불쑥 나타난다.  

 

운동 1688번지대의 작은 벤치에 정오를 지나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차림ㅡ청바지, 흰 티, 뉴욕 양키즈 야구 모자ㅡ으로 앉아 담배를 피우는 여성. 어느날 그녀는 차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워 문 그의 차로 다가와 나중에 한꺼번에 갚겠다며 담배 한 개비를 꾸어간다. 그렇게 하루하루 담배 한 개비 씩 꾸어가던 얼마 후, '춘자'라고 이름을 밝히며 매주 일요일에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면 일당 백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이유는 죽은 남편이 '행운'과 너무 닮아서. 일언지하에 거절하지만 그녀의 지난 날 병력과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못해 수락한다.

 

 

'행운'은 노상방뇨 중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는 마이클(행운이 즉석에서 붙여준 이름)을 100번지 비탈 동네의 인적 드문 곳에서 10대 무리에게 맞고 있을 때 구해준다. 이후 '행운'이 그 동네 택배를 돌 때마다 1시간여를 따라다니는 마이클이 왠지 싫지 않아 그와 함께 요깃거리를 나누곤 한다.  

 

 

요일 마지막 배송지 Bar '코카인'. 저녁 8시 이후에 배송해 달라는 부탁으로 일을 마치고 술도 가볍게 한 잔 하는 곳. '행운'은 그곳 종업원이 게이인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술만 마시고 나오니까. 그리고 그들이 게이라는 것보다 숨겨진 더 큰 사실. 그것 때문에 나중에 '행운'은 폭력배와 형사에게 고역을 치르게 된다. 

 

 

역에서 폐지를 줍는 삼십 대 초반 여성 '마스크'(물론 이것도 '행운'이 붙인 이름이다). 우연찮게 아파트 경비원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는 그녀를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마주칠 때마다 잠시 양갱을 나누며 대화를 하는 사이가 된다.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도박 중독자인 아버지로 인해 차츰 생활이 나락으로 떨어져 그저 하루하루 연명해 가는 그녀를 향해 '행운'은 말한다. 

 

살아요. 죽지 말고. 부탁이에요.

 

언제부터인가 폐지를  줍는 마스크를 볼 수 없다가 한참 후 우연히 달라진 모습의 그녀를 본다.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고개를 돌리는 '마스크'. '행운'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 쉬는 시간. 휘청거리는 노인을 잡아주자 그 노인은 '행운'에게 말을 건넨다. 몇 마디 대화 후에 대뜸 금요일 저녁 8시까지 자신의 집으로 저녁 식사와 경제철학을 배우러 오라는 말을 남긴다. 아흔이 넘은 퇴직한 학자. 손녀를 통해 알게 된 그들의 가족사. 놀라는 것도 잠시 손녀는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하고 '행운'은 정중히 거절한다. 

 

 

장 동료 '남현동(택배 구역이 남현동이라서 남현동이라고 불린다)'. 아버지의 장례로 결근해야 하는 그 대신 일을 맡은 '행운'에게 답례를 하겠다며 술자리를 청한다. 두 사람 모두 묵언수행하는 스님 못지 않게 말이 없다. 무거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행운'이 자리를 뜨려는 순간에 말을 시작하는 '남현동'.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원망, 유서를 통해 알게 된 오해. 아무에게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회한을 '행운'에게 풀어놓고 자유롭게 떠나는 '남현동'.

  

 

 외에도 살갑게 다가오는 청림과 주창, 그리고 다른 이들. 빚에 팔려간 연인의 어머니를 구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오고, 가난한 살림에 여섯 식구의 생계를 택배만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사채를 쓰고,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면서 정작 병원에는 가지 못하며, 가장으로써 가족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그들.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 작정하고 달아난 도박 중독자 사장때문에 모두 살 길을 찾아 제각각 흩어진다. 

 

다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선 남자. 

 

 

 

■ ■ ■ ■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오히려 깊은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속내를 꺼내놓는다.

가족이 힘이 아닌 짐이지만 섣불리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다(특히 우리나라는 유교적 관습으로 그 성격이 강하다). 남편은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철썩같이 믿었건만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며 배신감만 안긴다. 그저 자기 세계에 갇혀 자식에게는 관심이 없는 무정한 아버지라 여겼는데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그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했을 줄이야! '나'의 확신이 나'만'의 확신이라는 것, 그 확신이 상대 뿐만 아니라 주변인 모두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안타까움.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해서 얻어진 불화. 사실 이 모든 일의 기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다. 

 

 

등장 인물들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들을 '행운'의 앞에서는 술술 뱉어낸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행운'은 말이 없다. 조언이나 충고 따위는 물론이고, 위로도 하지 않는다. 그저 듣는다. 다만 사이사이 재미없고 건조한 농담을 던질 뿐.

 

친절하지 않은 무뚝뚝한 말투, 미운 말은 다하고 결국에는 지고마는 헛똑똑,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소질. 거기에다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하는 재미없는 농담. 독자인 나조차도 이 남자에게 마음이 감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소설에서는 끝까지 '행운'의 미스터리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다. 단지 소설 사이사이마다 전해지는 하드보일드 풍의 분위기와 '행운'의 손놀림과 등장인물 들과의  대화, 그의 지성과 마지막 장면의 통화를 통해 독자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주인공 '행운(K)'에게서 필립 말로의 쓸쓸함과 고독이 왜 떠올려졌는지 알겠더라는. 한국의 새로운 하드보일드 작가의 출현이려나. 앞으로 '정혁용'이라는 사람이 계속 글을 쓰고 책을 낸다면 나는 앞으로 꾸준히 찾아 읽을 예감이 든다.  

 

 

 

[소설 속으로] 

 

 

60.

연민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동정으로 전락하고. 누구에게도 누군가를 동정할 권리가 없다. 

 

180.

밤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고, 뒷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택시를 타도 기사들을 신경 쓰지 않고, 헤어진 남자친구의 성난 전화도 무서워해본 적 없고, 직장 동료나 모르는 남자의 성희롱을 견딘 적도 없고, 남자들은 당연히 주어지는 기회를 힘들여 쟁취한 적도, 사소한 것 하나까지 관습과 싸워 얻어야 하는 그런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살아온 이의 공포나 괴로움을 이해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전 누군가를 짐작으로 이해하거나 공감할 만큼 머리가 좋지 않아요.

 

205.

진리와 진실은 달라요. 진리는 사는 데 도움이 되죠. 하지만 진실은 꼭 그렇지 않아요. 모를 때 알고 싶지만 알고나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상처만 배부르게 먹는 거죠. 일어난 일은 일어난 대로 흘려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살면서 모든 일의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나의 일상은 사막이다.

연민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동정으로 전락하고. 누구에게도 누군가를 동정할 권리가 없다. - P60

밤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고, 뒷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택시를 타도 기사들을 신경 쓰지 않고, 헤어진 남자친구의 성난 전화도 무서워해본 적 없고, 직장 동료나 모르는 남자의 성희롱을 견딘 적도 없고, 남자들은 당연히 주어지는 기회를 힘들여 쟁취한 적도, 사소한 것 하나까지 관습과 싸워 얻어야 하는 그런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살아온 이의 공포나 괴로움을 이해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전 누군가를 짐작으로 이해하거나 공감할 만큼 머리가 좋지 않아요. - P180

진리와 진실은 달라요. 진리는 사는 데 도움이 되죠. 하지만 진실은 꼭 그렇지 않아요. 모를 때 알고 싶지만 알고나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상처만 배부르게 먹는 거죠. 일어난 일은 일어난 대로 흘려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살면서 모든 일의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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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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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1974년 2월 20일 수요일 저녁, 여성 카니발 전날 밤, 어느 도시에서 스물일곱 살의 젊은 여성 카트리나 블룸은 엘제 볼터스하임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한다. 그 파티에서 자신을 탈영병이라고 고백한 루트비히 괴텐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의 도주를 돕는다. 그러나 경찰은 그의 말과는 다르게 괴텐이 절도와 강도 용의자임을 카트리나에게 알리며 그녀를 참고인 자격으로 연행한다. 

 

하룻밤 사이에 카트리나는 경찰이 추적 중인 강도의 연인이며 그의 도주를 도왔을 뿐만 아니라 공범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는다. 괴텐의 사건을 쫓던  <차이퉁> 신문기자 베르너 퇴트게스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자극적인 기사로 이슈몰이를 하고 그로인해 카트리나의 주변인물까지 고통당함은 물론 그녀의 어머니는 쇼크로 사망하기에 이른다. 더이상 견디기 힘든 카트리나는 결국 퇴트게스를 총으로 살해한다. 

 

 

■ ■ ■ ■

 

소설의 부제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백히 드러난다. 작가가 지적하고 싶었던 폭력은 어떤 폭력을 말하는 것일까? 

 

카트리나 블룸은 어떤 사람인가? 

어린시절과 결혼생활은 불운했지만, 친절하고 차분하며 계획성 있게 맡은 일을 처리하는 데에 책임감 있다. 필요 이상의 금전적 호의는 거절할 줄 알며 여건이 되는대로 일거리를 찾아서 자립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또한 다정함과 치근덕거림을 구분할만큼 자신의 감정에 예민하고 상대를 선택하는데 있어 외적인 조건에 상관하지 않으며 주관이 뚜렷하다.

 

이토록 자신의 생활에 있어 반듯한 그녀를 언론은 어떻게 탈바꿈시켰을까? 

 

먼저 괴텐과 그녀가 2월20일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는 추측을 확신하듯 보도한다. 괴텐과 카트리나가 파티장에서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춤을 추었던 사실, 그들의 눈빛과 몸짓 등을 지켜본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 같았다' 혹은 '공산주의 냄새를 맡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인터뷰이의 말을 사실처럼 기사화한다. 

 

카트리나가 가정부라는 신분으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노동의 과정과 전문성, 성실함은 삭제시킨 채 강도질에 동조하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인양, 그리고 과거에 그녀와 관계있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정보를 전부인 듯 오도한다. 이제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오랜 친분이 있는 몇 사람을 제외하면 고립된 상태다.

 

또한 언론은 카트리나와 그녀의 가족, 주변인들까지 사찰에 가까운 신상털기에 나서 사건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마녀사냥으로 확대시켜 개인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간다. 암수술 이후 안정을 취해아 하는 카트리나의 어머니를 찾아가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강행해 사망까지 이르게 하고(심지어 그 죽음도 딸의 행실에 대한 충격이 원인이라고 기사화한다), 그녀의 고용주였던 블로르나 부부를 좌익 공산주의 빨갱이로 몰아붙여 사회적 지위와 생계를 위협하고, 파티 호스트였던 엘제 볼터스하임의 부모까지 들춰낸다. 도대체 이들이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 사건에서 악질적인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카트리나를 희롱했던 슈트로입레더와 <차이퉁> 신문기자 퇴트게스이다.

슈트로입레더는 자신이 카트리나에게 억지로 떠안긴 반지와 열쇠로 그녀가 궁지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입지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퇴트게스는 허구와 사실을 교묘하게 섞어 기사를 이슈화 한다. 그가 그토록 쓰레기 기사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소설에 언급되지는 않는다. 데스크의 지시였는지, 개인의 출세욕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널리스트로서 가져야할 기본 소양이나 양심, 소명감 따위는 그야말로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은 사람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카트리나는 왜 슈트로입레더에 대해서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슈트로입레더 같은 사람을, 그러니까 부유할 뿐만 아니라 정계나 재계, 학계에서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 때문에 영화배우만큼 유명한 사람을 거부한다고 하면, 누가 그녀의 말을 믿어 주겠는가? 그리고 그녀 같은 가정부가 영화배우 같은 사람을 거절한다고 하면, 그것도 윤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취향을 이유로 거절한다면, 누가 그녀의 말을 믿겠는가?

p112

여론은 한낱 가정부에 불과한 자신보다 명망있는 유명인의 말을 더 신뢰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의 머릿속에 '설마 신문이 거짓말을 하겠어?'라는 무의식의 지배를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이야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고, 국민의 의식도 높아져 예전보다는 여론몰이에 덜 휘둘리기는 하지만, 1970년대에 신문의 역할은 절대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 <차이퉁>이 가장 대표하는 신문이라는 것이 카타리나를 더 두렵게 했을 것이다. 소설에서 언급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차이퉁을 통해서 듣게 된 것이네',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나같이 차이퉁을 읽거든요'처럼 <차이퉁>에 실린 기사는 경찰이 수사한 내용보다 더 진실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식에 저항할 힘을 잃었을테다. 그리고 소설 초반에 살인 사건 이후 카니발 고위급 위원이 한 말과 다른 기자 쇤너의 죽음은 씁쓸함을 남긴다. 물론 카니발을 통해 지역 경제를 걱정하는 그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후 언론 플레이로 결국 살인자가 되어버린 카트리나와 더불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지인들을 생각하면 '즐기고 노는 데' '신뢰'가 필요하다는 말은 신뢰의 무게가 어디에 있어야하는지, 경중이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작가가 지적하고자 하는 폭력이 무엇인지를 독자는 안다.

언어와 글의 폭력.

문명인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교양이 폭력이 되는 순간 인생 전체가 어떻게 곤두박질 치게 되는지, 시대의 저널리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떠한 사태가 일어날지 여실히 보여준다. 요즘 시쳇말로 '기레기 기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기자의 자질 문제일 뿐일까? 기자가 진실을 왜곡하지 않은 기사를 쓴다고 해도 데스크와 언론사를 스폰하는 기업 혹은 권력의 영향은 지대하다. 결국 한 사람의 기자가 양심을 지킨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결국 저널리스트들이 본연의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함은 물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여론의 눈도 절실한 시대가 되었다. 작가가 희망하듯 모쪼록 신뢰가 살아 있는, 죽지 않은 저널리즘을 기대한다.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카트리나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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