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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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동네에 '보라색 치마'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첫문장

 

담한 체형과 어깨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 뺨에는 드문드문 기미가 나 있고, 머리카락은 탄력이 없어 푸석푸석하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상점가 빵집에서 크림빵을 산 후 늘 같은 자리인 공원의 제일 안쪽 벤치에서 크림빵을 먹는다. 공원에서 놀던 아이들은 '보라색 치마'에게 장난을 걸고, 그녀는 아이들의 장난에 짜증 내지 않는다. 

 

녀가 아케이드상가 맞은편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네 부류로 반응을 보인다. 모르는 척하는 사람, 잽싸게 길을 비켜주는 사람, 길조로 여기고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 징크스 삼아 못내 슬퍼하는 사람. 한 마디로 유명인사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보라색 치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걷던 속도를 유지한다. 시장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녀는 물건이나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 '나' 즉 '노란색 카디건'이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는 이유는 '보라색 치마'와 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노란색 카디건'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보라색 치마'는 정규직이 아니다. 근무를 하는 날이나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한 달을 일하면 한 달 쉬기도 하고, 한 달 중 며칠만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가 연속 두 달 동안 무직 상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노란색 카디건'은 그녀가 늘 앉는 공원 벤치에 구직 정보지를 슬쩍 놓아둘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직장을 직접적으로 표시까지 해놓는다. 심지어 면접볼 때 사용하라고 향이 나는 샴푸 샘플을 그녀의 집 현관 문고리에 걸어둔다. 드디어 '노란색 카디건'이 유도하는 직장에서 근무하게 된 '보라색 치마'. 그곳은 바로 '노란색 카디건'의 직장이다. 이제 그녀는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기만 하면 된다! 

 

텔 메이드라는 직업상 단정한 용모를 규정할 수 밖에 없는데, '보라색 치마'는 거의 낙제에 가깝다. 그녀가 제대로 적응할까 걱정스러운 '노란색 카디건'.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가는 '보라색 치마'는 직장 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조차 그녀의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직장 동료와 잘 어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례처럼 내려온 소소한 부정행위에 대해서도 배운대로 실천(!)한다. 급기야 소장과 부적절한 관계까지 이르는 '보라색 치마'.  

 

'보라색 치마'를 동정해 보살피듯 하던 직장 선배들은 이제 더 높은 시급을 받는 그녀를 질투하고 헐뜯는다. 본사에서 분실된 비품에 대한 관리 감독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사항이 전달되면서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부정 행위를 모두 '보라색 치마'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다. 또한 관계를 정리하고자 하는 소장은 상황이 녹록치 않자 그녀를 스토커로 몰아붙인다.   

 

'보라색 치마'는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 칭찬 일색이었던 그들은 왜 자신을 비난할까? 

 

 

 

 

■ ■ ■ ■ 

 

 

'노란색 카디건'이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보라색 치마'는 타인의 시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외모와 입성, 그리고 공원에서 빵을 먹는 행동 등 일반적으로 남을 의식할 만한 상황에서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더구나 동네 꼬마들이 짓궂은 장난을 걸어와도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준다. '노란색 카디건'은 (어떤 의미에서든)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당당한 그녀가 부럽다. 

 

아쉽게도 '보라색 치마'와 달리 '노란색 카디건'은 그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p7

 

그런데 심지어 그녀는 운동 신경도 뛰어나고, 적응력도 빠르며 출근한지 얼마 안된 직장에서까지 칭찬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 안타까운 건 '노란색 카디건'이 아무리 옆구리를 찔러대도(?) 그녀는 '노란색 카디건'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쯤되면 질투할만도 한데, 가장 극적인 순간에 슈퍼 히어로처럼 나타나 그녀를 구원해 주는 '노란색 카디건'. 그러나 애쓴 보람도 없이...... . 

 

그렇지만 사라진 '보라색 치마'의 공원 벤치 자리에 '노란색 카디건'이 앉았다. 이제 그 벤치는 그녀 전용이다. 

 

 

 

 

□ □ □ □ 

 

비정규직이자 일용근로자이고 관계에 미숙한 '보라색 치마'는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도 모르는 새에 '노란색 카디건'의 도움으로 사회 집단 안에 들어오면서 단정한 용모와 익숙해져가는 사회 생활에서 독자는 뭔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게 되지만 이것도 잠시, 자신과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는 '비교'가 개입이 되면서 '보라색 치마'는 이전과는 다른 혐오의 대상이 된다.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게서 배운 사회적 지식이 오히려 화살이 되어 돌아온 상황.

단지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대상을 스토킹하는 '노란색 카디건'. 의도를 생각하면 안쓰럽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정도면 범죄다. 그러나 '보라색 치마'와 굳이 비교하자면 보통의 일반적인 직장 여성이다. 그녀는 어떤 결핍으로 '보라색 치마'를 스토킹한 것일까? 집단 구성원에서 너무 평범해 존재감이 미비한 다수의 사람들. 극단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노란색 카디건'은 타인의 관심에 굶주린 현대인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두 여성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 동네 사람들을 보면서 결국 우리가 '일반적', 혹은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범위가 기준을 들이대는 대상에 따라 잣대가 달라진다면 어떤 의미가 있나싶다.

결국 '보라색 치마'가 떠난 자리를 꿰차고 앉아 뿌듯해 하는 그녀를 보면서 흔하디 흔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관심'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자신을 본다면 경쟁적으로 올라오는 SNS, 댓글 폭력, 혐오와 비난의 수위는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물건이 든 봉투를 옆에 놓고 크림빵 봉투를 꺼냈다. 빵은 살짝 따뜻하다. 우선 반으로 갈라서, 한쪽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다른 한쪽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바로 그 순간, 탁!하고 누가 어깨를 때렸다. 

절묘한 타이밍에 내 어깨를 때린 아이가 꺅꺅 웃으면서 도망갔다.

소설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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