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체형과 어깨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 뺨에는 드문드문 기미가 나 있고, 머리카락은 탄력이 없어 푸석푸석하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상점가 빵집에서 크림빵을 산 후 늘 같은 자리인 공원의 제일 안쪽 벤치에서 크림빵을 먹는다. 공원에서 놀던 아이들은 '보라색 치마'에게 장난을 걸고, 그녀는 아이들의 장난에 짜증 내지 않는다.
그녀가 아케이드상가 맞은편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네 부류로 반응을 보인다. 모르는 척하는 사람, 잽싸게 길을 비켜주는 사람, 길조로 여기고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 징크스 삼아 못내 슬퍼하는 사람. 한 마디로 유명인사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보라색 치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걷던 속도를 유지한다. 시장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녀는 물건이나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 '나' 즉 '노란색 카디건'이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는 이유는 '보라색 치마'와 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노란색 카디건'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보라색 치마'는 정규직이 아니다. 근무를 하는 날이나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한 달을 일하면 한 달 쉬기도 하고, 한 달 중 며칠만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가 연속 두 달 동안 무직 상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노란색 카디건'은 그녀가 늘 앉는 공원 벤치에 구직 정보지를 슬쩍 놓아둘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직장을 직접적으로 표시까지 해놓는다. 심지어 면접볼 때 사용하라고 향이 나는 샴푸 샘플을 그녀의 집 현관 문고리에 걸어둔다. 드디어 '노란색 카디건'이 유도하는 직장에서 근무하게 된 '보라색 치마'. 그곳은 바로 '노란색 카디건'의 직장이다. 이제 그녀는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기만 하면 된다!
호텔 메이드라는 직업상 단정한 용모를 규정할 수 밖에 없는데, '보라색 치마'는 거의 낙제에 가깝다. 그녀가 제대로 적응할까 걱정스러운 '노란색 카디건'.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가는 '보라색 치마'는 직장 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조차 그녀의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직장 동료와 잘 어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례처럼 내려온 소소한 부정행위에 대해서도 배운대로 실천(!)한다. 급기야 소장과 부적절한 관계까지 이르는 '보라색 치마'.
'보라색 치마'를 동정해 보살피듯 하던 직장 선배들은 이제 더 높은 시급을 받는 그녀를 질투하고 헐뜯는다. 본사에서 분실된 비품에 대한 관리 감독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사항이 전달되면서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부정 행위를 모두 '보라색 치마'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다. 또한 관계를 정리하고자 하는 소장은 상황이 녹록치 않자 그녀를 스토커로 몰아붙인다.
'보라색 치마'는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 칭찬 일색이었던 그들은 왜 자신을 비난할까?
■ ■ ■ ■
'노란색 카디건'이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보라색 치마'는 타인의 시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외모와 입성, 그리고 공원에서 빵을 먹는 행동 등 일반적으로 남을 의식할 만한 상황에서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더구나 동네 꼬마들이 짓궂은 장난을 걸어와도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준다. '노란색 카디건'은 (어떤 의미에서든)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당당한 그녀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