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폐지를 줍는 마스크를 볼 수 없다가 한참 후 우연히 달라진 모습의 그녀를 본다.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고개를 돌리는 '마스크'. '행운'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쉬는 시간. 휘청거리는 노인을 잡아주자 그 노인은 '행운'에게 말을 건넨다. 몇 마디 대화 후에 대뜸 금요일 저녁 8시까지 자신의 집으로 저녁 식사와 경제철학을 배우러 오라는 말을 남긴다. 아흔이 넘은 퇴직한 학자. 손녀를 통해 알게 된 그들의 가족사. 놀라는 것도 잠시 손녀는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하고 '행운'은 정중히 거절한다.
직장 동료 '남현동(택배 구역이 남현동이라서 남현동이라고 불린다)'. 아버지의 장례로 결근해야 하는 그 대신 일을 맡은 '행운'에게 답례를 하겠다며 술자리를 청한다. 두 사람 모두 묵언수행하는 스님 못지 않게 말이 없다. 무거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행운'이 자리를 뜨려는 순간에 말을 시작하는 '남현동'.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원망, 유서를 통해 알게 된 오해. 아무에게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회한을 '행운'에게 풀어놓고 자유롭게 떠나는 '남현동'.
그 외에도 살갑게 다가오는 청림과 주창, 그리고 다른 이들. 빚에 팔려간 연인의 어머니를 구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오고, 가난한 살림에 여섯 식구의 생계를 택배만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사채를 쓰고,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면서 정작 병원에는 가지 못하며, 가장으로써 가족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그들.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 작정하고 달아난 도박 중독자 사장때문에 모두 살 길을 찾아 제각각 흩어진다.
다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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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오히려 깊은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속내를 꺼내놓는다.
가족이 힘이 아닌 짐이지만 섣불리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다(특히 우리나라는 유교적 관습으로 그 성격이 강하다). 남편은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철썩같이 믿었건만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며 배신감만 안긴다. 그저 자기 세계에 갇혀 자식에게는 관심이 없는 무정한 아버지라 여겼는데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그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했을 줄이야! '나'의 확신이 나'만'의 확신이라는 것, 그 확신이 상대 뿐만 아니라 주변인 모두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안타까움.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해서 얻어진 불화. 사실 이 모든 일의 기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다.
등장 인물들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들을 '행운'의 앞에서는 술술 뱉어낸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행운'은 말이 없다. 조언이나 충고 따위는 물론이고, 위로도 하지 않는다. 그저 듣는다. 다만 사이사이 재미없고 건조한 농담을 던질 뿐.
친절하지 않은 무뚝뚝한 말투, 미운 말은 다하고 결국에는 지고마는 헛똑똑,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소질. 거기에다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하는 재미없는 농담. 독자인 나조차도 이 남자에게 마음이 감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소설에서는 끝까지 '행운'의 미스터리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다. 단지 소설 사이사이마다 전해지는 하드보일드 풍의 분위기와 '행운'의 손놀림과 등장인물 들과의 대화, 그의 지성과 마지막 장면의 통화를 통해 독자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주인공 '행운(K)'에게서 필립 말로의 쓸쓸함과 고독이 왜 떠올려졌는지 알겠더라는. 한국의 새로운 하드보일드 작가의 출현이려나. 앞으로 '정혁용'이라는 사람이 계속 글을 쓰고 책을 낸다면 나는 앞으로 꾸준히 찾아 읽을 예감이 든다.
[소설 속으로]
60.
연민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동정으로 전락하고. 누구에게도 누군가를 동정할 권리가 없다.
180.
밤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고, 뒷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택시를 타도 기사들을 신경 쓰지 않고, 헤어진 남자친구의 성난 전화도 무서워해본 적 없고, 직장 동료나 모르는 남자의 성희롱을 견딘 적도 없고, 남자들은 당연히 주어지는 기회를 힘들여 쟁취한 적도, 사소한 것 하나까지 관습과 싸워 얻어야 하는 그런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살아온 이의 공포나 괴로움을 이해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전 누군가를 짐작으로 이해하거나 공감할 만큼 머리가 좋지 않아요.
205.
진리와 진실은 달라요. 진리는 사는 데 도움이 되죠. 하지만 진실은 꼭 그렇지 않아요. 모를 때 알고 싶지만 알고나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상처만 배부르게 먹는 거죠. 일어난 일은 일어난 대로 흘려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살면서 모든 일의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