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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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1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겨레>에 연재한 글 26편을 모은 것으로서 가족, 전쟁포로, 일본어, 돈, 죽음, 사랑 등 26개의 주제로 스물네 명의 문학평론가와 시인이 참여했다. 김수영 평전 축약본같은 느낌도 든다.  










1921년에 태어난 김수영은 우리말보다 일본어가 더 익숙하고, 해방 후 오히려 우리말이 낯설은 세대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청년기에 해방을 맞고, 전쟁까지 겪은 그가 언어 이민를 통해 일본과 냉전의 억압, 전쟁 후 미국의 억압,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해 직시한다. 김수영은 자신과 같은 세대의 사람이 일본어로 글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민족과 민중 의식이 없다는 해석은 왜곡이라고 말한다. 그가 위태롭게 본 것은 우물 속 개구리 같은 민족과 민중 개념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작가들에 대한 좁은 시각과 편견을 우려하면서, 일본어로 부조리한 역사를 기록하는 작가들이 있음을 언급한다. 김응교 시인이 쓴 글, '지리멸렬의 시대에 유대인 카프카가 써야 했던 독일어처럼, 김수영에게 일본어는 소수자 언어가 아닐까. '친일문학=일본어 사용 / 민족문학=한국어 사용'이라는 낡은 이항대립은 그의 글쓰기 앞에서 박살 난다. 양극단 사이에서 아픈 몸으로 걸으며, 이국어를 통해 세계 지성을 습득하고, 결국 그는 모국어로 거대한 뿌리를, 아프지 않을 때까지, 온몸으로 썼다.'는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두 번의 이주 경험을 통해 김수영은 본인이 살던 세계에서 바라던 것들을 버려두고 돌아와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어떠한 의식과 감정에도 과잉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현실의 이면을 들춰내 환기한다. 김수영은 산문 <내가 겪은 포로 생활>에서 포로는 인간이 아니었고 생명이 없는 것이었다고 썼다. 포로수용소는 전쟁터와 다름없이 참혹한 곳이다. 석방 후 포로수용소의 처참함을 알 리 없는 이들과 섞여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던 김수영은 자신을 저 혼자 돌아가는 팽이에 빗대어 표현했다. 수용소의 처참함을 당연히 알 리 없건만, 그럼에도 나는 팽이에 빗댄 그의 심경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김수영에게 전통은 불완전한 시간이요, 결여의 대상이면서 바로 보아야 할 역사이자 삶의 태도였다. 이는 앞서 얘기한 언어에 대한 인식과 이어진다. 문학적 본질 속에 전통이 내재되어있고, 그것을 일상적 언어와 고유한 내면으로 승화해야 함은 역사가 곧 인간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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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분단, 냉전과 이념, 혁명과 반동의 역사 등 평생 이분법적 대립에서 갈등한 김수영은 이에 대한 해소가 시대의 과제이자 시의 과제로 인식했고,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꽃을 통해 은유한다. 김수영이 관찰하는 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즉 생명과 죽음과 살고자하는 의지(혁명)와 자유의 몸짓이다.  


시 <"김일성만세">를 통해 시인은 불온사상을 인정하는 것이 언론 자유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치적 사상을 몰아내고 개인의 신념의 여부와 관계없이 문학의 공간이 보장되어야만 시인(뿐만 아니라)이 자유롭고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저항과 혁명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김수영에게 어떤 수식을 붙인다면 혁명시인 쪽이 더 어울린다고 썼다. 비록 전투적인 혁명을 주도하는 문인이었다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반공을 강조하는 군사정권 시대에 시인과 예술인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주장하고, 5.16쿠데타 이후 혁명을 실패한 과거가 아닌 미래에 되살아날 것임을 시로써 노래한 그가 혁명시인이라는 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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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동하거나 해결책을 찾아나서지 않는다. 그는 산문 <일기초>에서 '돈을 버는 일에 게을러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의무'이며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제일 불손하고 욕된 시간'이라고 썼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돈에 초연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시 '돈'을 통해 경제적 궁핍에 정신적으로 시달렸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의 설움은 이 모순에서 비롯된다. 엄경희 문학평론가는 김수영이 이러한 모순에서 오는 설움을 감내하고 그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토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자발적 선택이자 자발적 소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이 설움은 긍지를 포함한 정념이라고 본다. 이러한 정신의 결연함을 통해 생활에 흡수되지 않은 자의 정신세계를 보존했던 것이라고. 


김수영은 밥벌이를 위한 번역을 '세상에서 가장 욕된 시간'이며 '지긋지긋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번역은 그에게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기에 모멸감을 안긴 존재였지만 동시에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고 했을 만큼 타자와의 소통의 수단이자 진정으로 세계를 호흡하는 창구였다. 


김수영은 작가로서 자신을 신경 쓰이게 하고 혼동시키며 지속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문제 세 가지를 든다. 죽음과 가난과 매명이다. 가난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문제이자 자본주의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다.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더 나아가 부자가 되기 위해 매문과 매명을 한다. 김수영은 이에 대한 비굴과 허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 뿐만 아니라 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김행숙 시인은 이 대목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얘기한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언급하는데, 경제활동이 직.간접적으로 어려웠던 여성이 글쓰기에서 배척되어왔던 현실과 김수영 시인이 처한 상황은 결이 조금 다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이 예술가의 활동을 박탈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할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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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모습과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와 입장 등 스스로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가장의 입장에서) 가족에 대한 기대나 집착, 사물, 사랑과의 거리두기의 필요성을 말하는데,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다. 동시에 한때 그릇되고 정의롭지 못한 시대를 살아온 앞선 세대를 비판하면서도 점차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의 모습에 닮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함을 얘기하는 것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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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관념보다는 '온몸'으로 쓰는 '신체적 글쓰기'를 했다. 그는 죽음을 삶에 대한 각성의 계기로 삼았고, 죽음은 각성된 생명과 새로운 출발을 독려하는, 한마디로 삶을 깨어 있게 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구체적 현실의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아의 한계를 온전히 깨닫는다. 김수이 문학평론가는 김수영을 통해 사랑과 욕망이 공존하는, '인간의 복잡성이자 모순이며 문학사의 난제'를 말하는데, 여기에 무척 공감한다. 



이 책의 부제가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인데, 개인적으로 스물여섯 편의 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성찰 '혁명' '자유'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돌아보고, 사회를 돌아보며 물질주의에 함몰된 세상의 성찰과 성찰을 통해 더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혁명과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자유. 이것이 김수영을 대변하는 단어들이 아닐까싶다.  




 사족 

김수영의 아내를 대상으로 하는 여성혐오, 그리고 그와 동일시 하는 자기혐오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시인으로서 돈의 속박에서 자유롭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가 자격지심이 되어 생활력이 강한 아내를 통해 스스로를 향한 분노를 쏟아낸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에 대한 글을 쓴 노혜경 시인이 말한 대로 그가 폭력가장임은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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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3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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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원의 검토를 받고자 제출한 카이사르의 토지법안의 내용과 취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 로마는 인구과잉에 시달리고 있고, 분배 곡물은 국고가 부담하기에 버기울 지경에 처해 있다. 폭동과 불안이 만연해 빈민에게 군입대 말고도 다른 기회를 제공하여 인구과잉을 해결해야하는 게 현실이다. 또한 한곳에 정착해 평화롭고 생산적인 시민이 되기를 기다리는 퇴역 군인이 50만여 명이다. 카이사르가 발표한 법은의 내용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대 토지로 정착한지 오랜 된 캄파니아 공유지와 로마 군단의 주요 훈련 장소인 카푸아 근처의 공유지를 제외한 이탈리아 반도의 모든 공유지를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고는 동방 속주의 세수가 크게 늘어 사유지를 대량 매입하는 데에 자금이 충분기 떄문에 큰 무리가 없음을 확인시키고, 이에 따른 조건으로 토지 소유주에게 매매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로부터 분배 토지를 받은 자는 20년 동안 그 땅을 팔거나 떠날 수 없음을 명시한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토지 입과 분배에 일절 관여치 않기 위해 이 업무를 스무 명의 상급 기사와 원로원 의원으로 구성된 판무관단에게 맡기자고 제안한다. 


카토와 비불루스는 말을 잃었다. 비불루스는 카이사르가 술피키우스법 혹은 룰루스법을 고쳐서 들고 나오기를 바랐으나, 카이사르가 그렇게 허투른 사람이던가. 카토는 카이사르가 검토를 바라고 제출한 100장이 넘는 법안을 잘근잘근 씹어서 읽어서 함정을 찾아내리라 벼르고 있다. 



스토아 철학자같은 성정을 갖춘 카토의 시각에서 보자면 카이사르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성적으로 난잡하고(카토 관점에서), 규율 따위는 무시하는 듯 하다가도 귀족적 자부심과 로마법은 충실한 사람으로 도대체 종잡을 수 없고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니, 앞뒤, 겉과 속이 한결같은 카토가 얼마나 싫어할지 짐작이 된다. 그래도 잘한 건 인정하고 협업을 해야지, 어떻게든 파헤치려고만 하면 되겠나. 그야말로 현재의 정당 정치를 보는 것 같다. 다르다면 카토는 개인의 잇속 때문이 아니라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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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3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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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집정관이 된 카이사르는 제일 먼저 원로원 회의록에 관련한 두 가지를 변경한다. 첫번째는 공개.비공개회의 모두 작성된 회의록에 집정관들과 법무관들 전원이 읽어본 후 이상이 없으면 서명한다. 두번째는 공개회의 시 기록된 회의 내용을 포룸 로마눔의 특별 게시 공간에 게재한다. 이에 대해 원로원 의원들은 정치나 파벌의 경계를 막론하고 찬성한다. 비록 사소한 시작이었지만 첫번째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한편, 율리아의 방에서 한창 유행 중인 폼페이우스의 작은 흉상을 아우렐리아가 발견했다. 할머니는 손녀가 폼페이우스를 흠모한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사랑없는 브루투스와의 결혼에 제동을 건다. 이 사실을 카이사르에게 알리면서 폼페이우스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두 남녀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갖도록 제안한다. 이에 카이사르는 율리아와 폼페이우스의 결혼에 생각이 미친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만, 단순한 영웅을 향한 동경이 사랑까지 가기에는 나이 차가 너무 크다. 



물론 오래 전 마리우스와 율리아(카이사르의 고모)를 떠올려보면 예외적인 일도 아니지만, 여하튼 난 별로일세. 그나저나 아우렐리아와 카이사르. 닮아도 너무 닮았고, 달라도 너무 다르다. 모자이길 망정이지, 적으로 만나지 않은 게 서로에게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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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고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인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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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랑을 이야기해왔던 사강. 제목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모순에서 탄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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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3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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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갈리아의 알로브로게스족과 아이두이족, 세콰니족 반목 때문에 현재 두 갈리아는 전집 집정관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상황을 봐서 먼 갈리아에서의 갈등은 로마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부족 간의 문제였다. 카이사르는 집정관 이후 이탈리아 갈리아를 원했고, 노리쿰에서 흑해까지 모두 그의 정복지가 되기를 바람한다. 이탈리아 갈리아를 얻기 위해서라면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만약 보니파로 인해 카이사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면(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더 좋겠지만), 이탈리아 갈리아를 얻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장 가질 수 없다하더라도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기에 카이사르에게 이탈리아 갈리아는 절실히 필요했다.  


카이사르는 먼 히스파아를 통치하면서 로마의 일인자이자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협력자들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했다. 이는 파벌과는 다른 개념이다. 카이사르에게는 크라수스와 그의 인맥이, 다른 한편으로는 폼페이우스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폼페이우스가 원하는 퇴역병들의 땅을 확보하고 동방에서 맺은 조약을 비준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를 자신에게 확실히 묶어놓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거기다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사이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둘 중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카이사르에게는 아주 예민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쯤되면 카이사르의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짐작이 간다. 역사가 스포일러다보니 갈리아에 대한 카이사르의 집착은 그가 본격적으로 권력을 잡기 위한 시점부터 종신 독재관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 보면 납득이 간다. 이토록 야망이 큰 사람에게 딸의 희생쯤이야 대수일까.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 하긴, 열다섯 살에 예순이 넘은 영조와 결혼한 정순왕후도 있다만... . 그냥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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