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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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이라는 문구에서 보여지듯 '내밀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향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소심하고 비사교적인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라면 한켠에 가지고 있는 은둔의 욕구를 생각해 볼 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은 일정 부분 내향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하여 3년에 가까운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비대면이 일상화된 시대에 단순한 은둔이 아닌 상호 이해가 가능한 감정적.물리적 거리두기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프롤로그에서 MBTI에 대해 잠깐 언급하는데, 'I'형 인간인 나로서도 시작부터 공감하는 바가 컸다. 사람의 성향이라는 것이 깍두기 무 썰듯 딱 규정되어 있지 않다보니 모호하거나 전혀 다른 결과치가 있기는하지만, 내가 내향적 인간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점심 시간이 일의 연정선상으로 느낀적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문득, 전 직장 직속 상사였던 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회식도 업무 중 하나야!" 그때만 해도 입이 피노키오 코처럼 앞으로 삐죽 나오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회삿돈으로 그 비싼 음식들을 먹었으니 충성심 강한 그 양반 입장에서는 당연했겠구나 싶다. 점심 시간도 정도의 차이지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사내 식당이 아닌 바에야 왜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없냐고!라는 생각을 꽤 많이 했었던 기억이 있고, 저자처럼 점심 시간에 온전히 사라진 사람이 되지 못하기도 했다. 그나마 혼자 조용히 30여분 서점을 다녀온게 전부. 

웃고 싶을 때 웃는 사람이 매력적이며 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힘이라는 문구가 와닿았다. 얼마 전, 자상하지 않은 내가 자상의 가면을 벗어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십수년 간 나를 봐왔던 지인들이 그런 모습 처음 본다고 했던 걸 보면 내가 그동안 가면을 잘 쓰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1:1의 관계가 아닌 이상 웃고 싶을 때만 웃기란 참 쉽지 않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낄낄의 힘에 동의한다. 

보는 것에 상관 않고, 오로지 보이기 위한 것들의 성찬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얼마 전 모임이 있어 방문했던 카페가 생각이 나더라는. 유난히 낮은 테이블과 불편할 정도의 의자가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됐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마케팅 전략(이라고까지 할 수 있나싶지만)을 읽으면서 보여지는 것에 대한 폐해가 별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관조하는 데에 있어 적절한 거리와 여백이 필요함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액정 화면의 너머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가 더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팬데믹으로 인해 도시 소음이 다소 줄어들자 새소리가 한결 명랑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데에서 문득 근래에 아침 운동 중에 들리는 새소리가 기억났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들리는 새소리는 인용의 글처럼 언제부터인가 더 자주, 청아하게 들린다. 서울 중심 도시에서 한참 벗어난 우리 동네 역시 그동안 예외 없이 소음이 만만치 않았던 걸까. 우리가 음식이나 음료를 시음할때 입속을 맑은 물로 헹구어내듯이 정적 역시 무언가에 좀더 귀기울일 필요가 있을 때 환기해주는 기능을 하지 않을까라는.

 '권력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 부끄러워하고 은밀하게 행사해야 할 그 무엇이다' 라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권력을 부끄러워하라니. 대한민국 사회에서 수십년을 살고 있지만 권력을 부끄러워하는 이를 만나본 적이 있던가. '갑'과 '을'의 개념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의전의 대상을 역으로 놓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잠깐의 사족. 한겨울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에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기계를 돌리는 관리실 숙직 직원, 한여름 뙤약볕에서 혹은 장마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분리수거장을 관리하는 경비 아저씨, 발목이 잠기도록 쌓여있는 단지 내 낙엽을 당신 몸보다 더 큰 망에 쓸어담고 있는 할아버지. 늘 느끼지만 누군가의 노동이 당연하지 않음에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네 모습) 

정작 내가 가장 꽂혔던 문구는 '파이에 연연하지 않는 사랑'이었다. 연애든 우정이든 동지애든 가족애든 밀당없는 사랑이 그립다. 그에 앞서 밀당없는 마음에 나를 던질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그중 한두가지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미흡하나마 첨언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이라면 대단히 진중한 논제를 가지고 하는 독서모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이 책을 함께 읽었다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얘기가 무궁무진해 하루가 부족하다싶을만큼 이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긴 대화의 시간동안 '낄낄의 힘'은 여지없이 발휘될테고.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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