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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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철장,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는 크리스티앙 보뱅. 조건없이 사랑하고, 구속없는 자유를 아는 작가의 소설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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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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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화가, 그리고 이를 통한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다. 유년 시절을 비롯해 고독과 우울에 대한 감정을 푸른 빛을 머금은 그림들 안에 스미듯 풀어 놓는다. 








1956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첫 단독 전시회 당시 도록에 전기적인 내용을 싣는 것을 거부하고 인터뷰도 응하지 않았다는 발튀스는 그림이 스스로 말해야 한다고 믿었던 예술가다. 우리는 간혹 문학을 포함한 예술 작품을 대면할 때 너무 많은 정보와 지식을 끌어안고 대한다. 도슨트의 해설도 무척 재미있지만, 때로는 진중하게 오로지 작품하고만 대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발튀스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는. 


루시안 프로이드의 인물화에는 단순한 인상이나 표정을 넘어서 켜켜이 쌓인 세월도 담아낸다. 이런 내용을 읽고 단박에 검색한 그의 그림은 그야말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의 표현처럼 그의 그림 안에 있는 이들의 삶이 보이는 듯한 기분은 나만이 아닐 것 같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사회가 규정해 놓은 관습이나 규범을 모두 무시하고 경멸했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오는데, 루시안은 전문 모델이나 모르는 사람을 그리지 않았고 그와 가까운 이들(자식을 포한함)이 모델이 되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오직 화가로서만 살기를 원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는 루시안, 거기다 그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도 저마다 달라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책에 실린 루시안의 작품 <잠든 애너밸>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뭔가... 다정한 느낌이고, 연민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그림 속 애너벨은 루시안의 딸, 이기적이라고는 하나 그도, 아버지다.  


아흔아홉 해를 살았고, 90대에 접어들어서야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화가 루치타 우르타도. 예술가 남편과 자식들의 뒤에서, 그가 그림을 그린 시각은 가족이 잠든 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아무도 '그의 것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그렸음에도 자신의 그림을 보이기를 주저했다는 루치타. 그는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볼때면, 나는 예전부터 천왕봉이 떠올랐다. 운무 가득한 산 정상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은 지리산 천왕봉에 서 있던 '누구'와 같았고, 그래서 그의 고독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책에 실린 프리드리히의 <북극해>는 저자의 말처럼 그의 자아같다. 저자는 '산산조각 났지만 침몰하지 않은 배의 모습'을 그와 같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오도가도 못한 채 갇혀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프리드리히는 저자의 말처럼 살아남으려는 것이었을까, 살아진 것이었을까.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보면 전자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조지 클라우슨의 <애도하는 젊은이>를 통해 '의미 있는 상실'을 짚는 저자. 모든 의미 있는 상실이라... . 그렇다면 의미 없는 상실은 무엇이려나. 의미 없는 상실을, 굳이 상실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잃어버린 것과 놓아버린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는 중(요즘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읽고 있는 철학책이 있어서 무슨 글이든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들어 올림'에 대한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들어 올림'은 '여기 있음'을 증명하는 것. 증명을 위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소소하고 단정해 더 마음이 간다.   


ㅡ 


어린 시절(아마 대여섯 살 무렵), 우리 두 남매가 가장 많이 한 놀이 중 하나가 동굴놀이였다. 피아노 의자와 스탠드 옷걸이, 책상 의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놓고 그 위에 이불을 올리면 마치 텐트같은 형태가 된다. 우리는 그곳을 동굴 기지 삼아 휴대용 랜턴과 간식을 챙겨 들어가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았더랬다. 마치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어른들이 우리를 못찾을 것처럼.  


어른이 되고 종종, 이렇듯 어딘가로 당당하게 숨어들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한편으로는 누군가 찾아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이 책을 덮고 난후 별안간 떠오른 기억이요, 생각이다. 문득, 나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얼마나 쏟아내며 살고 있을까.   


ㅡ 


읽으면서, 이 작가는 나와 성향이 참 다르구나... 싶었다. 그가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상상한다면, 나는 늘 정착할 곳을 머릿속에 그린다(살면서 이사도 거의 다닌 적이 없으면서). 북향의 집을 선호하는 반면 나는 남서향을 집을 선호한다(이것도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부터이지만). 저자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보다는 꽃을 잘 꽂는 사람에게 끌린다는데, 나는 정반대다. 그럼에도 이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고독'이라는 공통 명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그림 속 마르트 드 멜리니가 언제나 혼자서 부유하는 듯하다고 했는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이 글을 얼른 마치고 푸른 내음이 나는 고요한 어느 시간과 공간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제목이 '여름의 피부'인데, 왠지 늦가을에 다시 읽고 싶다.
모든 색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계절에 푸른 그림을 앞에 두고.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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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러블 스쿨보이 1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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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전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의 직후부터 시작한다.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의 배경을 잠깐 설명하자면, 빌 헤이든은 소비에트 정보부 작전 지휘관 카를라의 지시에 따라 영국 정보부에 들어와서 30년 넘게 그들을 염탐했다. 그의 정체가 탄로남과 동시에 영국 정보부(서커스)는 완전히 몰락했고, 미국 정보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헤이든의 정체를 밝힌 조지 스마일리가 현재 책임자로 임명됐다. 현재 서커스는 직원을 4분의 3이나 빼앗기고, 정보망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해외 지부도 철수했다. 재무부가 비자금도 정지시켰고, 백악관과도 연줄이 끊어졌다. 이 상태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홍콩에서도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다. 영국 정보부 중심부인 런던에서 고위 러시아 스파이가 발각되었고, 이로인해 미국과의 사이가 껄끄러워졌으며 아시아 여러 지부에서 철수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런데 런던의 고위급 내부자들은 이 기사를 접하고 의도된 기사임을 알아챈다. 누가? 왜? 어떻게 이토록 내부자 관점에서? 그리고 또다른 호외! 제리 웨스터비가 홍콩으로 돌아온다.  


마을에서는 마치 학생같다고 그를 '스쿨보이'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시골 마을에서 머무르고 있던 제리 웨스터비에게 런던으로부터 전보가 도착한다. '후견인'이 중병에 걸려 입원했고, 죽기 전에 스쿨보이를 보고 싶다는, 그러니 돌아오라는 내용의 전보에 서명한 사람은 세 사람. 이제 때가 됐다. 


드레이크 코, 본토를 탈출해 차우저우의 가난한 소년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뒤 사업가로 성공해 대영 제국 훈장을 받은 남자. 죽은 아들을 침례교식으로 매장하고 영국식 석상을 만든 하카족 바다의 집시. 아편 사업으로 자선 병원을 운영하는 자선사업가. 중국식 정원에 미국식 바를 만들고 러시아와 손잡고 벌어들인 돈을 신탁 계좌에 넣어둔, 정치를 싫어하는 자본가. 이처럼 모순덩어리 삶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ㅡ 


카를라의 손길이 어디까지 뻗쳐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조지 스마일리는 최측근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믿지 않았고, 갈수록 카를라에 집착하며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포착된 두 사람, 드레이크 코와 리제라고 불리는 엘리자베스 워딩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라진 리카르도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코의 동생 넬슨, 그리고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이 불안한 샘 콜린스. 슬슬 사건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1부가 끝난다. 


1부는 소제목ㅡ시계태엽 감기ㅡ에서 전해지는 짐작처럼 본격적인 사건이 진행되기 전 배경 설명에 가깝다. 500여쪽에 달하는 내용이 말해주듯, 거리나 인물들의 행동 반경, 인물의 표정 및 감정까지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225쪽부터 약 대여섯 페이지에 걸쳐 제리가 홍콩을 빠르게 움직이며 은행에 도착하기까지 서술하는 장면은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저절로 그려진다. 모든 정보가 카를라에게 넘어갔다는 전제 하에 진행하는 작전이기에 오로지 혼자서 모든 부분을 수행해야한는 제리의 상황은 별다른 자극적인 표현 없이도 긴장감 있게 전달되어 인상적이다.  


상하이 출신 드레이크 코 형제의 이야기는 전쟁과 이념으로 얼룩진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이와 닮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독자로서 사건과 별개로 이들의 사연에 이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내 엘리자베스에 대해 전혀 몰랐던 피터 워딩턴에게서 앤에 대해 전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조지 스마일리의 씁쓸한 감정, 죽을 때까지 남편이 석탄청의 간부라고 여기고 살았던 컨트롤의 아내에게 연민 비슷한 마음이 느껴져 사이사이 어줍잖은 감상이 끼어들기도 했다.  

ㅡ 


스마일리는 그동안 드레이크 코가 서커스의 관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그들이 코의 사업에 관심이 있음을 드러내려고 한다. 전술은 180도로 전환되었다. '코의 나무를 흔든다.' 


뒤로 갈수록 내용은 더욱 촘촘해지고 흥미롭다. 본격적인 전개는 2부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족
전작을 읽지 않아도 작가가 본문에서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으니 초반에 책을 덮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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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78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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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나는 아라비아 말들로 가득한 마구간, 책이 높다랗게 쌓인 여러 개의 방을 가지고 싶어. 그리고 마법의 잉크스탠드로 로리의 음악만큼이나 유명한 작품을 쓸거야.  


위의 문장은 열두 살의 내가 가장 사랑했고, 읽을 때마다 설레었던 문장이다. 앞서 말했듯 나의 첫번째 인생소설이라고 할 만큼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어지간해서는 모르는 바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마치 다른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새로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단연코 조다. 조는 등장인물들과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소소한 에피소드와 사건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다른 자매들과는 유독 많은 감정들을 공유한다. 또한 독보적으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스스로 가장의 역할을 떠안을만큼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다르다.  



그런데 이번에 1권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인물은 셋째 베스였다. 일단 베스의 죽음에 대한 복선이 소설 초반부에 이미 드러나 있음을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74.
이 세상에는 누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까지 말없이 수줍게 구석 자리를 지키며, 다른 이들을 위해서 너무나 씩씩하게 살아가는 베스 같은 소녀들이 정말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난롯가의 작은 귀뚜라미가 울음을 멈추기 전까지는 그 희생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사랑스럽고 햇살 같은 존재는 침묵과 그림자만 남기고 사라진다. 


이 부분을 곱씹고 읽다보니 책장을 넘길때마다 베스의 죽음에 가까워져간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는 새에 긴장하고 있더라는.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타인을 향한 베스의 특별한 교감 능력은 그야말로 순수한 배려와 사랑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ㅡ 


에이미가 학교에서 과한 체벌을 당하자 미련없이 학교를 그만두게 한 어머니, 마치 부인. 그리고 마치 부인이 메그와 조에게 말하는, 자식의 미래에 대한 바람을 말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어른)의 본보기일 수 있다. 모든 부모가 그녀처럼 중심을 잡는 것도 아니고, 그녀와 같은 가치관을 갖는 것은 더더욱 아니나,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물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무엇보다 그 시대에 딸에게 결혼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조언은 새롭게 다가온다. 작가 본인이 비혼자였기에 그 말에 더 힘이 실리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에는 19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인들도 사이사이 언급된다. 소설 초반 마치家 여성들이 그들의 아침밥을 포기하고 도움을 주러 간 집의 사람들은 독일인이었고, 에이미가 교실 창 밖으로 던진 라임을 받아 먹는 아이들은 아일랜드인이었다. '소녀들의 숙적인 아일랜드 아이들(p121)'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실제로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로 인해 당시 소녀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으나, 한편으로 청교도 목회자인 네 자매의 아버지를 떠올려보면 종교적 측면에서 다루어진 것인지에 대해 추측해 볼 수 있다. 가정소설이자 성장소설인 작품에서 이러한 점들을 미미하게나마 다뤘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발한 발상과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개성이 넘치는 요즘 시대에 이 소설은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보수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조언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보고 순순히 인정하는 네 자매의 모습과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가난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마치 부인의 말씀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이며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가 단순히 네 자매의 알콩달콩 좌충우돌 성장기이기 때문만은 아닐 터다. 결국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이 소설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애, 인류애, 공동체.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 사교계에 대한 로망과 허영심이 컸던 메그가 가난한 남자인 브룩을 선택한 이유도 사랑과, 건강, 평온함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너무 소설적인가. 


1권을 읽으면서 불현듯 들었던 생각은, 네 자매 또래(12세~16세)에 해당하는 현재의 아이들에게 놀이 시간을 주었을 때 다양한 놀이를 스스로 개발해서 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피시방, 노래방, 방송 댄스 등 천편일률적인 유흥이나 진로에 관련한 특기사항이 아닌 그야말로 아무런 이해득실 없이 신나고 유쾌하고 다양한 놀이. 마치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고가의 캠핑 문화, 이것조차도 부담스러워 대여하는 글램핑 등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만들어진 문화에 스스로를 끼워맞추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마 '성공적인 삶'을 위해 조직해 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우리네 모습은 '창의력'을 강요하면서도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삶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런지.  


중년의 나이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사춘기 시절의 불편했던 나를 들여다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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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78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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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여름 휴가다.
메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인 킹씨 네 가족은 석 달간 휴가를 떠났고, 조가 시중을 들고 말벗을 해드리는 마치 대고모도 장기간의 여행을 떠났다. 메그와 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지게 지내볼 작정이다. 여기에 베스와 에이미까지 끼어들어 공부를 잠시 쉬겠다고하자, 어머니는 흔쾌히 일주일 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원하는대로 지내보라고 한다.  


하루 이틀은 그럭저럭 게으름을 즐기며 보냈지만 슬슬 무료해지기 시작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벤트를 만들어대는 그들의 성향상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무대 장치와, 의상, 소품 등을 직접 만들어 자기들만의 연극까지 할 정도면 그 에너지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 가능하지 않은가?). 거기다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자리를 비운 어머니와 해나 때문에 엉망진창 좌충우돌이 되어버린 하루. 


어머니는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해야 오히려 편안한 일상이 된다는 것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어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작은 짐을 짊어 지라고, 그로인해 가끔은 무겁겠지만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며, 오히려 짐을 지는 법을 배우면 더 가벼워질 것임을 단 한 마디의 말없이 가르친다.  


갈수록 이런 금과옥조의 조언이 점점 더 힘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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