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사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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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유럽 역사를 배울 때 가장 헤매던 시대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사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이 시기, 프랑스 혁명 직후 공포 정치가 지나가고 나폴레옹 1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종신 집정관이 된 즈음부터 시작된다. 프랑스 역사상 정치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웠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치소설로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실존 인물도 등장하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사법 제도도 단편적으로 만날 수 있다.  










일단 발자크의 작품집 『인간극』 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에도 여지없이 다채로운 인간 군상이 펼쳐진다.  


말랭의 지시로 미쉬를 감시하는 사람은 그의 재산을 시샘하는 공드르빌의 소작농 비올레트다. 그는 자신의 행운이 이웃의 불행과 파멸에 달려 있다고 믿으며, 자기보다 상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여기고, 그 적을 해코지하는 데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때 열정적으로 지지했으나 종신 집정관으로 취임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하는 보나파르트에 실망해 왕당파와 내통하는 정치인 말랭은 마치 신념이 있는 것처럼 굴지만 그저 출세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덕에 팔자에도 없는 귀족까지 됐다만. 말랭과 비슷한 사람이 면장 굴라르인데 혼란한 시국을 틈타 벼락출세를 했고, 출세를 하니 명예욕이 생겨 유서 깊은 옛 가문들과 연계를 맺고자 어슬렁거린다.  


비상한 인물이었으나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해 그저 국민 의회 위원 중 한 사람에 불과했던 푸셰는 폭풍우 속 같은 정국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범용했던 그는 총재 정부하에서 각광을 받는 스타가 된 것이다. 자신이 속했던 산악당과 왕당파의 비밀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그는 정국을 주시하며 보나파르트에게 정보를 제공해 유용하게 써먹었다. 또한 신중하고 타고난 통찰력으로 들고나야할 때를 아는 자였다. 그래서 나폴레옹을 압도할 정도의 실권을 쥐고 있고, 그의 의심을 샀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산악당 소속이었다가 나폴레옹의 쿠데타의 협력해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쥐었다가 놓을 줄 았았던, 그래서 그 격변의 시대에 정상적으로 정계를 은퇴해 회고록까지 남긴, 그야말로 권모술수의 대가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의 결말에서 발자크는 말랭의 납치 사건의 진범을 언급하기 위해 푸셰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데, 그가 실제로 나폴레옹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다.기회주의자이자 최고의 처세술을 가진 그가 천수를 다한 사실이 왠지 씁쓸하다.    


사실 당시 대다수 귀족의 모습을 대변하는 이가 도트세르가 아닐까? 그는 왕가의 복귀를 기원하면서도 현실의 정부에 복종했다. 왕당파 패배 이후로 원한에 잠겨 소리없이 살아갔다. 혁명의 폭풍우가 지나가도록 방관했다가, 왕정복고 체제하에서는 숨겼던 저축으로 부유해졌고, 신중했던 자신들의 충성심을 자랑스러워하며 재기했다가, 왕정복고 체제가 다시 무너지자 시골로 되돌아간 귀족. 그야말로 악하지는 않지만 비겁한 대부분 우리의 모습.


여타 그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물에 대해 광장히 세밀하게 묘사한다. 글자를 읽고 있지만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한 그의 인물 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이러한 묘사들이 인물들의 성격과 특성을 너무 잘 나타내주고 있다. 소설에는 허구의 인물도 있지만 실존했던 인물도 있어서 이러한 부분들이 더 인상적으로 읽혀진다.    



제1집정관 음모가 발각되어 코랑탱이 헌병대를 이끌고 생시뉴 성으로 향하고, 다른 한편에서 미쉬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아내 마르타를 로랑스에게 보내는 장면은 현대의 어지간한 스릴러 소설보다 긴장감이 팽팽하다. 이 장면을 서술하는 분량이 적지 않은데, 그 안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 묘사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발자크의 필력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1부가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소설같았다면, 3부는 사면초가에 놓인 생시뉴 사람들과 법정 미스터리를 방불케 하는 진실 밝히기다. 진실을 말해도, 진실을 숨겨도 어차피 그들을 기다리는 건 유죄다. 그럼에도 침묵을 지켜야만하는 이유는 진실을 밝히는 순간 단순한 절도죄에서 끝나지 않으며 사형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자가 뻔히 알고 있는 일차원적인 진실이 문제가 아니다. 발자크는 독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미쉬의 발언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위장인지, 아니면 그들 모두 함정에 빠지고도 덫에 걸려든 줄도 모르는 건지. 그런데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는 것. 용감무쌍한 로랑스도, 헌신적인 미쉬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터다.


3부에서 법률 실무가 보르댕과 변호사 드 그랑빌이 의뢰인인 로랑스 일행에게 사건 진행의 정황을 설명하고, 변론하는 장면은 발자크의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어서 소설의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다. 발자크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놓치지 말라고 권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거슬렸던 부분은 드 시뫼즈 쌍둥이 형제는 미쉬 덕분에 망명 생활 동안에도 돈이 궁하지 않아서 여행을 즐겼고, 외국 궁정에서 환대도 받았다. 그런데 온갖 멸시와 비난을 감내하며 종당에서 목숨까지 걸었던 미쉬를 생각해 볼 때 과연 망명 생활자로서의 그들 행동은 적절했을까? 또한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로 인해 여러 사람이 고통 당하고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도 출신과 명예를 따지는 그들의 오만한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로랑스조차 미쉬를 구하기 위해 그토록 증오하는 황제의 장화에 입이라도 맞추러 가겠다고 하건만.



드 그랑빌의 변론처럼 우리 사회는 불행을 돌이킬 수 없게 될 때에야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 소설에는 발자크의 작품에서 종종 보이는 통쾌한 한방은 없다. 그러나 위에 썼듯 그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재미에 푹 빠질 수 있는 소설이다. 3부는 별개의 법정 소설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발자크 만세를 외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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