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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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가을, 사크라 디 산미켈레 수도원에 40년 동안 머물렀던 여든두 살의 노인이 죽어가고 있다. 그가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닌 '그녀'이고,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숨을 다해 나직이 읊조리는 것은 깊은 어둠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그녀'의 이름이다. 열세 살에 만난 첫사랑이 서로에 대한 영원한 사랑과 존중으로 빛나는 이야기다. 
 
 





도제, 마녀, 저주, 후작, 피에타상象, 수도원, 레오나르도 다빈치 날개, 미켈란젤로 등 단어나 소설의 분위기는 중세를 연상시키지만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00년대다. 미모 비탈리아니를 1인칭 화자로 하는 과거와 사크라 디 산미켈레 수도원의 수도원장 파드레 빈첸초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현재를 오가는 소설은 결국 시간의 간극을 좁혀가며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석공을 아버지로 둔 가난한 가정에서 왜소증을 안고 태어난 천재 조각가 미모 비탈리오니, 지역의 유력한 명문 귀족 집안의 영재로 태어난 비올라 오르시니. 한 사람은 미천한 신분의 가난한 장애인으로서, 다른 한 사람은 '여성'으로서 세상과 맞서게 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시대적 배경을 둔 이 소설에는 이름을 바꾸고 살아야만 했던 유대인, 서커스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장애인, 관습이라는 벽에 주저앉아야했던 여성, 성실만으로는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에 버거운 하급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그와는 다르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거나 유력 가문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는 기회주의자들도 있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인물은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화자 미모보다는 비올라다. 귀족 집안에서 외동딸로, 그것도 영재로 태어났으나 성性은 그녀에게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비올라가 열여섯 살에 쓴 시는 무척 인상적이다. 「나는 우뚝 선 여자다...」로 시작하는 긴 시는 십대 소녀가 얼마나 자유를 갈구했는지,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서른일곱 살이 되도록 그 시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눌러놓은 욕구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오르시니 가문'이라는 이름은 비올라에게는 화려한 감옥이다. 그러나 그 감옥이 매 위기마다 비올라의 뒷배가 되어 준다는 점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이 소설의 통쾌하면서도 아픈 부분은 비올라의 '날개'다. 비록 날아오르지 못하고 추락할지라도, 때로는 지칠대로 지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숨을 고르며 날개를 펼친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날개를 접으라고 하는 사람은, (비록 그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도) 비올라에게 입혀진 아름다운 드레스가 끔찍하다고 말했던, 비올라를 가장 사랑하고 이해하는 미모라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신의 '정상성'에 대한 비올라의 말을 읽다보면 여성은 '정상적'일 수가 없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느님을 믿기는 믿냐는 미모의 물음에 비올라의 오빠 추기경 프란체스코의 말은 작가의 뼈있는 작심발언이라고 할만 하다. "나는 교회를 믿어, 그 말이 그 말이긴 하지만. 정권이나 독재자와는 반대로 교회는 사리지지 않아." 이는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한다.   


마지막 반전. 미모 비탈리아니의 「피에타」 마리아는 누구일까. 그게 누구든 미모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비올라를 향한, 그 시대의 여성들을 향한 헌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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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삶에서 배울 수 있다면
홍신자 외 지음 / 판미동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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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혀 다른 삶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세 사람이 인도 오로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눈 대화를 김혜나 소설가 쓴 에세이다. 삶, 명상, 자연 등에 대한 그들 생각을 나눈 내용들이 담겨 있다. 참고로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 무용가 홍신자, 소설가 김혜나 그들이 함께한 때는 2013년이다. 


일단 두 분과 오로빌이라는 마을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홍신자 선생은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뉴욕으로가 무용 수업을 8년 간 받은 끝에 삼십 대 중반에 올린 작품 「제례」로 큰 명성을 얻었다. 이후 인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와 7년의 결혼 생활 후 칠순에 베르너 사세와 재혼해 동반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독일인 베르너 사세 선생은 1966년 장인의 제안으로 기술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나주에서 4년을 보냈고, 그 인연으로 독일 최초 한국학 박사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 최대 공동체 마을, 오르빌. 인도의 동남부, 벵골만이 보이는 폰디체리시에서 북쪽으로 약 10킬리미터 쯤 지나면 나오는 이 작은 마을은 전 세계 남녀노소가 국적, 정치, 종교를 초월한 공동체 생활을 지향하는 곳이다. 이야기는 김혜나 작가가 베르너 사세의 초대를 받고 인도로 출발하면서 시작한다.  






 


 
김혜나 작가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다르고, 그 다름과 차이가 부끄러워 그것을 숨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라 삶이 힘들고 버거웠다고 말했다. 이러한 힘듦이 그만의 일일까. 이 말이 무척 공감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다들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 먼저 몇 자 적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오로빌 그 자체보다 삶을 관조하는 두 선생의 말씀이다.
우선 명상. 명상의 공간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그 시간이 길어야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에서 10분 내외면 충분하다.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의 몸에 있는 에너지를 느끼며 집중하면 된다. '함께한다'는 것 즉 'together'의 정확한 의미의 이해, '비움'에도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고, 미래의 일을 혼자 상상하면서 두려움을 만들어 내지 말라고 말씀한다. 또한 불교의 108배나 산에 오르는 길에 사람들이 하나씩 올리는 작은 돌탑, 사유를 동반한 한 걸음 한 걸음 등 기도하는 마음을 조금씩 올려가는 게 곧 요가가 아니겠냐며 미리 한 가지 계획만 세워 두고 그것을 따라가며 살고 싶지 않았다는 사세 선생의 말씀도 와닿는다. 그리고 정말 기억해야할 것은 외형적인 것들을 개의치 않고 그냥 사람으로 살아가고, 타인을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사람으로 인정하고 이해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오로빌은 운영 방식, 수입과 지출 구조, 자아실현과 수련의 도구가 되는 노동 등 그야말로 대다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공동체다. 사실 완독 후 오르빌을 방문하고 싶은 생각보다는 나의 삶, 그리고 내가 사는 이곳에서 '내 방식의 오로빌'을 어떻게 구현해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오로빌식 삶'에서 저마다 지향하는 바를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들여온다면 우리의 벽은 조금씩 낮아질 수 있으려나... .  김혜나 소설가는 오로빌을 떠나면서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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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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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열한 편이 실려있다.
'어머니'라는 존재들에게 바치는 헌사, 독서에 대한 사유, 현재의 삶을 살라는 조언, 끝없이 폐기물(다의적으로)을 양산해 내는 산업화된 세계와 돈을 섬기는 세태에 대한 경계, 무용無用하지만 소중한 대상을 향한 애상愛想, 사랑을 대하는 태도와 질투, 그리고 돌이켜보면 마치 찰나와 같았던 삶에 대한 단상. 





 
 


여성이 결혼을 하는 것은 신이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보뱅. 여성이 결혼을 함으로써 포기하고 잃게 되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을 향한 갈망에 대해 말한다. 자식이 생기고 남편은 멀어진다. 더는 자신의 삶도, 누구의 삶도 아닌 삶을 살아가는 수수께끼 같은 여성의 삶. 「빈 자리」를 읽으면서 은섬 씨를 비롯해 내가 아는(직.간접적 모두) 여성들의 삶을 떠올려본다. 더불어 이 책을 읽기 직전 읽은 조앤 디디온의 『상실』 속 모성, 사이사이 보고 있는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등장하는 어머니들, 과거부터 지금까지 현실 속 어머니들의 삶을 떠올려보면 그들이 이 사회의 한 축을 지탱한다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보뱅이 말하는 독서는 짙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와 같다. 책을 읽음으로써 먼 세상, 더 깊은 곳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 독서는 강요될 수 없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스스로 읽고 오직 본인만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배우고 발견한다. 글을 쓰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든, 일기장에 쓰는 게 전부인 나같은 사람이든.  


보뱅이 말하는 삶. 그는 어떤 것으로도 유년의 삶에 한계를 지우면 안되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지나간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에 지나치게 애면글면하지 말고 현존하는 지금의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무용無用하지만 소중한 것이야말로 오직 '나'만의 것이고, 그것이 곧 '나' 자신이 된다. 그러니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소중히 여기시라. 



인간은 일상에서 크고 작은 상실의 경험을 반복하고 있고, 누구나 결핍된 존재이며, 소멸하는 것으로부터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말해지지 않는 것이 진실'이라고 쓴 보뱅의 글은, 아마도 책이나 교육을 통해서 배운 진리는 더 이상 회자되지 않으며 그 가치조차 자취를 잃어가는 세상에 대한 일침이 아닐런지.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는 3인칭 시점에서 서술하며 글 속에 등장하는 '작가'를 '당신'이라고 지칭한다. 읽다보니 '당신'은 보뱅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그는 말함으로써 자신의 부재를 밝힌다. / p121').  


어지간한 자기계발서나 잠언집보다 더 와닿는다. 이토록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뼈때리는 말씀을 하시다니... . 그의 다정한 혜안이 더 와닿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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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수업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안온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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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첫번째 이야기는 실존 인물인 음악가 마랭 마레의 일대기다. 다른 두 개의 글은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둔 철학적 사색, 다른 하나는 중국에 전해내려오는 거문고 연주자인 백아의 전설을 각색한 내용이다. 이들 세 이야기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듯보이지만, 공통된 제재는 변성變聲과 허물벗기이다. 






 



화자는 예술가, 특히 작곡 분야에서 왜 남성의 수가 더 많은지를 사춘기에 찾아오는 변성과 관련지어 서술한다. 그는 신체적 변화의 허물벗기에 있어서 여성은 폐경(완경), 남성은 변성이라고 본다. 여성은 사춘기가 지나도 소프라노 음색과 음역을 잃지 않지만, 남성은 완전히 달라지는 목소리에 정체성까지 흔들린다. 남성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거세를 하거나 소리를 대신할 작곡가가 되거나 악기 연주자가 되는 것. 특히 작곡은 소리의 영역을 재구성한다. 유년의 욕망을 이루지 못하는 남성이 작곡을 통해 그 갈망을 채운다는 논리다(모짜르트를 생각하면 일견 납득이 된다). 저음에서 고음으로의 변환이 몸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오직 악기로서만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변환의 이름은 음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또한 화자는 문학에서 목소리를 발견한다. 그전에 음악의 고어古語는 언어라고 정의한다. 지저귐, 흘얼거림, 울음소리, 음성이 그것이다. 소리와 의마가 합쳐진 이야기의 발명은 인간의 시간에 의한 것이고, 멜로디의 발명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며 이야기보다 앞선다. 그러나 이야기와 멜로디는 인간의 시간을 세상에 부여하는 힘을 가진다는 점에서 같은 결을 가진다. 


마랭 마레와 백아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비올라, 비파, 거문고 등 악기를 인간의 신체에 비유한다. 인간의 한 생애에서 오는 여러 변화와 굴곡, 이해와 감정, 위기와 극복 들을 음악(악기)과 변성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백아의 스승 성련은 변성기(허물 벗기)를 한단계 성장하는 계기이자 과정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순수하기만한 변성 이전의 시기에서 벗어나 인간의 많은 감정들을 음악에 실어야만 더 성장할 수 있다. 이는 음악가에 국한된 것은 아닐터다. 



일단 내용적인 측면을 떠나서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음독을 하게 되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나 홀로 낭독회'가 되어버리고마는, 아름다운 문장의 향연이다. 아름답기만해서는 매력이 없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들은 어려워서가 아니라 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사유다. 


우리는 긴 음악을 들으면 너무 길다고, 지루하다고 불평을 한다. 그러나 '음악은 스스로 즐기고, 듣는 이에 의해 즐겨진다. 우리의 내면에서 주어진 시간에 아랑곳없이 영원히 노닐고 있다(p69)'. 인생이라고 이와 다르겠는가. 




※ 도서지원
 

9월의 빛이다. 그 빛 자체도 변해서 여름 막바지의 묵직하고 농익은 빛이다. 봄날의 메마르고 선명하고 생생하고 날이 선 빛이 아니다. 황금을 담뿍 품은 빛에 일종의 농후함이나 안개가 섞여 그 자체로 붉어진 혹은 흐려진 빛이다.(...) 그는 섬과 다리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시간 저 너머에서 늙지 않는 강물이 농후한 빛에 잠겨 영원한 상처처럼 흐른다. 하지만 아름다워서 거의 아문 듯이 보이는 상처. 그것은 인간의 시간을 앞설 뿐 아니라 이어나갈 신의 상처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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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10 - 태왕의 꿈, 완결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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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덕의 마지막 이야기다. 2022년 7월에 시작한 대장정이 약 2년 반만에 마무리 됐다. 이는 독자의 입장이고, 작가는 20여년에 걸쳐 이 소설을 준비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집필했으니 그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책을 받아들고 마지막권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읽기만했던 나조차도 1권부터 순서대로 머릿속을 스치며 감개무량한데, 이 책을 쓰고 만든 사람들의 감정은 어떨지 짐작이 가능하다.  


작가 후기에서도 언급하는 부분이지만, 이 소설은 허구적 상상에 기대기보다는 정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많은 문헌들과 사료들을 조사하고 참고했다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다. 실질적으로 광개토태왕에 대해 남아 있는 사료가 많지 않아 역사적 자료와 사이사이 구멍난 부분은 앞뒤 맥락을 짚어 인과관계가 성립가능하도록 추적 유추해야만 했을텐데, 사실 이 작업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작품을 쓰고자 만주, 백두산, 실크로드 등 광개토태왕의 원정길을 추적하고, 대학원 사학과 박사 과정까지 수료한 작가의 열정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고구려사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동(북)아시아사 전반의 방대한 양을 다루어야한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당시 대륙의 중원과 북방 상황은 수많은 부족들이 먹고 먹히며 존멸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4,5세기 치열한 격동의 시대였고, 그 한가운데 가장 융성했던 고구려가 있었다.  


10권은 404년, 후연의 요동성 침입 직전의 시기부터 413년 담덕 붕어 후 태자 거련이 세운 광개토태왕릉비(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 온누리에 나라를 넓히고, 평화와 안락을 염원한 태왕) 제작까지 이어진다. 특히 마지막에 다루어지는 광개토왕릉비의 제작 과정도 흥미롭다.  


ㅡ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시국 상황때문인지 아무래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변함없이 군주의 자질과 됨됨이, 그리고 잘못된 판단에 대한 태도다.  


담덕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집을 부려 부여로 위령제를 지내러 갔다. 그 결과 담덕 본인도 목숨이 위태로워졌음은 물론 고구려의 기둥이 되어주었던 우적 장군을 잃었다(소설에서 이때 입은 부상은 이후 담덕의 발목을 계속 잡고 그의 죽음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후연에게 도발의 빌미를 주었으며, 그토록 공들여 세우고 아꼈던 7중목탑과 노승 석정도 잃었다. 담덕은 자신의 독선에 대해 깊은 후회와 반성을 거듭한다.


그렇다면 후연의 모용희는 어떤가? 
그에게 전쟁의 명분은 없다. 그저 자신의 화풀이에 불과하다. 특히 담덕과 고구려에 대한 증오가 가득하지만 정작 고구려를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고구려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거란으로 진격한다. 자신의 무용한 화풀이에 군사 1만 5천이 죽고, 국가적 위기는 한층 더 높아졌음에도 대안은 커녕 반성조차 없다. 백제의 젊은 전지왕이나 모용운, 풍발도 정도나 방식의 차이일뿐 애민 정신이 없기는 모용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나 이번 마지막 이야기는 담덕의 보다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 없다. 자신의 실수와 자만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수정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리더의 필수 덕목이다. 현재 전 세계가 대내.대외적으로 더없이 혼란스럽다(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리더가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긴 시간 동안 『담덕』을 읽으면서 때때로 안타웠고, 때때로 가슴이 벅찼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이야기가 와닿았던 것은 인류의 잘못된 선택과 옳은 길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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