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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의 광기 -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7월
평점 :
부제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이 문학의 절정기에 이른 1800년 무렵부터 정신이 파괴됐다고 알려진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조명한다. 더불어 이 시기, 문화적 측면의 유럽사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횔덜린의 삶은 반으로 나뉜다. 태어나고 1806년까지 36년, 목수 치머의 집에서 죽을 때까지 광인으로 보낸 36년. 전반기 삶에서, 시인은 평범하고 관습적인 세상 속에서 버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인생 후반기에는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은 만나지만 세상 밖으로 자신을 고립시켰다.

1806년에서 1809년까지, 횔덜린이 어머니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한 경위와 입원 후 그의 상태와 처방 기록 및 재정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병원에 고립된 채 극심한 고독과 우울감에 의해 파괴된 시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지인의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횔덜린이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자연 속 목수의 집에서 보낸 단조로운 일상과 출판 계획을 서술하고, 한편으로는 당시 서유럽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및 괴테가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 및 일기 등을 담고 있어서 시대적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1810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는, 횔덜린 본인이 쓴 편지와 메모, 가족을 포함해 횔덜린의 지인들과 목수 치머의 집으로 시인을 찾아갔던 사람들이 쓴 편지 및 일기, 그리고 바이블링거를 비롯해 그를 방문했던 몇몇 사람들의 증언 들이 실려 있다. 주로 그의 병증과 건강 상태, 시적 정신에 대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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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은 일단 횔덜린이 정말 미쳤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 본인이 직접 언급하지만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기록의 이면에 대한 저자의 유추다. 그가 정말 광인이었는지, 혹은 광인으로 살기를 작정한 것인지를 따라가는데, 저자는 다른 각도와 관점에서 기록들을 탐구한다. 그는 여러 사료와 그 사료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통해 겉으로 보여지는 횔덜린의 기이한 모습은 광기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취한 태도에 무게를 둔다. 왜냐하면 횔덜린의 외적인 모습과 말 표현 사이의 불일치가 모든 증언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사건에 연루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을 둘러싼 광기의 의혹을 의도적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을 짐작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궁금증은, 아감벤이 횔덜린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궁금증은 에필로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철학자 아감벤은 횔덜린의 시에서 드러나는 칸트적 관점과 확장된 실러의 사유, 아리스토텔리스 철학을 통해 시인이 사유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거주하는 삶'을 도달하려 했음을 짚는다. 그는 시인이 말하는 '거주하는 삶'이란 습관과 관습에 따라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거주하는 삶' 혹은 '습관적인 삶'은 자기 자신과 세계 전체와의 관계 안에서 고유한 방식의 연속성과 응집성을 지닌 삶일 것이며, 우리가 파악해야 하는 점은 바로 '삶의 연속성이 갖는 특별한 방식'이라는 것. 즉 아감벤이 횔덜린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삶은 모호한 경계에 자리잡고 있고 우리는 성공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대체로 실패에 가깝기에 삶을 실패와 성공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의 틀에 가둬놓을 것이 아니라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본질적인 성취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횔덜린이 본인의 삶 자체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1809년까지의 서술에서 괴테의 연대기를 함께 서술하는데, 성공가도를 달리는 괴테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밀어내는 횔덜린을 대립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싶었는데, 이 부분도 에필로그에서 충분히 서술하고 있다.
아감벤은 시적으로 거주하는 삶이란 우리가스스로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지는 삶이라고 썼다. 아감벤도, 횔덜린도, 우리에게 묻는다. "시적으로 거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번을 집중 반복해 읽으면서 내 삶에 대한 통찰의 시간이 저절로 주어졌다.
완독 후 「프롤로그」를 다시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