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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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편의 소설이 실린 소설집은 시의성 면에서 이보다 더 탁월할 수 있을까싶을 정도로 현 세태를 풍자적으로, 밀도있게 다루고 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소소하지만 적지 않은 장치와 상황 들, 그리고 묘한 딜레마는 독자를 공감과 이입 속으로 충분히 끌어 당기고 있다.  









보이는 것으로 전체를 재단하는 세상, 본인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세상, 예의까지는 바랄 것도 없이 최소한의 에티켓조차 지키지 않는 익명의 세상. 타인과의 안전거리, 상대를 이해해야 하는 부담, 일탈이나 돌발 상황에 대한 두려움. 이러한 것들의 강박과 불안, 우울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갖는 열패감. 더 나아가 극단의 경쟁 사회에서 연속된 실패의 책임을 늘 자신에게 돌리고 마는 가슴 아픈 현실들.   


호기심과 질문이 사라진 교실, '친한' 사이가 되어야만 하는 이들, 대중 예술과 정치, 선한 영향력, '잘' 산다는 것의 기준, 일방적 주장과 경청 없는 논쟁보다 우선되어야 할 대화, 한 방향의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는 쌍방향의 '통通'. 


작가는 이처럼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현실에 직면한 고충들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독자가 생각해야할 바들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근래에 읽은 단편들 중에 단연 발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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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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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언어)를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 


제목과 저자를 알려주지 않은 채 소설의 일부만 읽어도 단박에 한강 작가의 글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 색깔이 강하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유년시절부터 상실과 가까운 존재의 죽음을 경험하고 자신의 일부를 잃어가면서 이미지와 꿈과 상상의 세계를 마주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은 그들의 슬픔이 처연하다. 그렇게 절망의 끝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빛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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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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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복간을 기다려왔던 에세이집이다.  


언어와 사물, 사람의 정체성과 근원에 대한 상상력의 깊이와 범위가 남다른 작가. 우리가 미처 생각치 못한 언어적 상상력. 거기에 더해진 경험은 (문학과 번역, 읽기와 쓰기를 포함한) 언어뿐 아니라 문자, 몸의 감각, 역사, 신화, 철학, 생물, 민속, 예술, 지리를 넘나들며 아우른다.  


3부에 해당하는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을 읽노라면 독자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의 소설들로 이어진다. 특히 『Hiruko 3부작』은 작가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유해왔던 많은 것들을 담아낸 소설이었음을, 이 에세이를 통해 짐작케한다.   





 



여행 일기를 여행 중에 쓰지 않고, 여행이 끝난 후 지어낸 이야기라고 고백하는 그의 일기는 가족에 대한 회상이자 그들의 이상향을 추억하는 판타지 소설처럼 읽힌다. 사물의 의인화, 그 사물을 통해 새로운 세계(언어)에 진입하는 과정, 그와 반대로 사람을 낱개의 글자로 관찰하는 모습 등 다와다 요코의 글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조금 낯설 수도 있겠으나 이내 그만의 세계에 매료될 것이다.  


단어에 씌어진 고정관념이나 오해.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왜곡된 민족주의와 편협한 사대주의.
익숙해지고 내재화되면 하나의 사고​思考나 틀에 갇히게 되는 보편적 모습들.  


나는 종종 다와다 요코야말로 코즈모폴리턴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언어를 관찰하는 것에서 이를 구현하고 있다. 읽다보면 사유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 도서지원

 

모어에서는 단어들이 사람과 꼭 붙어 있어서 도대체 언어에 대한 유희를 하는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서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다. 외국어를 쓸 때는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 같은 것을 갖게 된다. 이 제거기는 서로 바짝 붙어 있는 것과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모두 뗴어놓는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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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의 사랑 거장의 클래식 6
딩옌 지음, 오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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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을 포함해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작가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중국 소수민족 둥샹족 출신으로 각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무슬림이다. 그래서 중국소설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특히 티베트 고원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에서의 묘사는 무척 아름답다.  
 






사랑이라고 믿었으나 악연으로 얽힌 속세의 고리를 끊고 티베트 사원으로 향하는 샤오줘의 자유와 여유. (『속세의 괴로움』) 


서로 사랑하지만 그들의 사랑을 실현할 길이 없는 마전과 융춰의 시선. (『설산의 사랑』)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생존을 위해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뇌하는 퉈쥔의 고뇌는 우리의 모습과 다름하지 않다.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며 한편으로는 약자를 향한 따뜻한 온기와 배려를 잃지 않는 삶의 태도. (『아프리카봉선화』) 


우리는 정답도 없고 뚜렷한 해결책도 없는 삶을, 그럼에도 사랑하고 희망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이 대단한 존재일지도. 정말 UFO를 보게 되면 더 이상 기다릴 게 없어지는 것이 두렵다는 한페이의 말처럼 어쩌면 희망이란 단어는 완성형이 아닐 때 그 가치를 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UFO가 온다』)  


종교, 관습, 세대 등 낯선 곳에서 느끼는 이질감, 군중 속 이방인으로서 처한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무용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공허함. 끝없는 경쟁을 하고 때로는 상대에게 상처를 입혀가며 분투하는 누군가의 모습에서 삶의 충실함을 발견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그러한 삶에 뛰어들 용기는 없다. 외로움과 지루함에 질식해 죽든,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풍파를 헤쳐나가든, 결국 본인이 선택해야 한다. 상대를 잘 알지 못하지만 서로의 공허를 공유하고 경청한, 짧은 시간이 준 따뜻한 삶의 한 자락. (『잿물』) 


혈연과 관습을 뛰어넘는 가족애와 인간애. 우리가 의지해야하는 존재는 법과 서류가 인정하는 명목상의 가족 관계가 아닌 교감과 정서적 이해가 가능한 유대 관계일 것이다. (『늦둥이』)


기부가 돈이 아닌 사랑이라고, 그래서 자카트(종교세)는 하늘에 내는 세금이라고 말하는 아버지.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할 줄 아는 지혜와 온정, 그리고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행위. (『자카트』) 


ㅡ 


대다수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행복하기 위해 공부하고, 사랑하고, 취직하고, 창업을 하고,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한다. 한참 달리다보면 목적이 돈인지, 행복인지 아리송해지지만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결론에 이르기 일쑤다. 많은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자신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 대해, 살면서 사이사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소설들이었다. 


가보지 못한, 그래서 선뜻 그려지지 않는 고원의 도시에서 승려들과, 흰 색 모자와 히잡을 쓴 무슬림들이 어우러져 함께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악의 없는 순수한 수행 사이에서 웃고 기도하고 교류하며 지내는 사람들은 참으로 아름다울 테지.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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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의 광기 -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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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 1806-1843」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이 문학의 절정기에 이른 1800년 무렵부터 정신이 파괴됐다고 알려진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조명한다. 더불어 이 시기, 문화적 측면의 유럽사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횔덜린의 삶은 반으로 나뉜다. 태어나고 1806년까지 36년, 목수 치머의 집에서 죽을 때까지 광인으로 보낸 36년. 전반기 삶에서, 시인은 평범하고 관습적인 세상 속에서 버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인생 후반기에는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은 만나지만 세상 밖으로 자신을 고립시켰다.  





 



1806년에서 1809년까지, 횔덜린이 어머니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한 경위와 입원 후 그의 상태와 처방 기록 및 재정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병원에 고립된 채 극심한 고독과 우울감에 의해 파괴된 시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지인의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횔덜린이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자연 속 목수의 집에서 보낸 단조로운 일상과 출판 계획을 서술하고, 한편으로는 당시 서유럽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및 괴테가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 및 일기 등을 담고 있어서 시대적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1810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는, 횔덜린 본인이 쓴 편지와 메모, 가족을 포함해 횔덜린의 지인들과 목수 치머의 집으로 시인을 찾아갔던 사람들이 쓴 편지 및 일기, 그리고 바이블링거를 비롯해 그를 방문했던 몇몇 사람들의 증언 들이 실려 있다. 주로 그의 병증과 건강 상태, 시적 정신에 대해 쓰고 있다. 


ㅡ 


아감벤은 일단 횔덜린이 정말 미쳤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 본인이 직접 언급하지만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기록의 이면에 대한 저자의 유추다. 그가 정말 광인이었는지, 혹은 광인으로 살기를 작정한 것인지를 따라가는데, 저자는 다른 각도와 관점에서 기록들을 탐구한다. 그는 여러 사료와 그 사료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통해 겉으로 보여지는 횔덜린의 기이한 모습은 광기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취한 태도에 무게를 둔다. 왜냐하면 횔덜린의 외적인 모습과 말 표현 사이의 불일치가 모든 증언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사건에 연루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을 둘러싼 광기의 의혹을 의도적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을 짐작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궁금증은, 아감벤이 횔덜린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궁금증은 에필로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철학자 아감벤은 횔덜린의 시에서 드러나는 칸트적 관점과 확장된 실러의 사유, 아리스토텔리스 철학을 통해 시인이 사유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거주하는 삶'을 도달하려 했음을 짚는다. 그는 시인이 말하는 '거주하는 삶'이란 습관과 관습에 따라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거주하는 삶' 혹은 '습관적인 삶'은 자기 자신과 세계 전체와의 관계 안에서 고유한 방식의 연속성과 응집성을 지닌 삶일 것이며, 우리가 파악해야 하는 점은 바로 '삶의 연속성이 갖는 특별한 방식'이라는 것. 즉 아감벤이 횔덜린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삶은 모호한 경계에 자리잡고 있고 우리는 성공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대체로 실패에 가깝기에 삶을 실패와 성공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의 틀에 가둬놓을 것이 아니라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본질적인 성취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횔덜린이 본인의 삶 자체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1809년까지의 서술에서 괴테의 연대기를 함께 서술하는데, 성공가도를 달리는 괴테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밀어내는 횔덜린을 대립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싶었는데, 이 부분도 에필로그에서 충분히 서술하고 있다.  


아감벤은 시적으로 거주하는 삶이란 우리가스스로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지는 삶이라고 썼다. 아감벤도, 횔덜린도, 우리에게 묻는다. "시적으로 거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번을 집중 반복해 읽으면서 내 삶에 대한 통찰의 시간이 저절로 주어졌다.  

 
완독 후 「프롤로그」를 다시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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