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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
맥스 포터 지음, 민승남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평점 :
작가의 첫 번역책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터라 그의 작품은 번역 출간하는대로 읽고 있다. 이 책은 세 번째 한글 번역본이다.
새벽 3시 13분.
돌멩이가 잔뜩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 집을 빠져나오는 소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샤이.
그 야심한 시각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언덕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면서까지 어디로 가는 걸까?
들판에 다다르자 시골의 밤이 이렇게 밝은 줄 몰랐고, 너른 들판은 마치 자신을 깊게 안아주는 듯하다. 걸음을 멈추고 주의를 둘러보니 소년은 갑자기 외롭다고 느낀다.

샤이는 조울증과 불안, 폭력 충동과 죄책감의 반복, 자기파괴와 자기혐오, 환영과 악몽에 시달린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거라고 여기며, 누가 와서 제발 자기 좀 죽여주기를 바라는, 열여섯 살 소년.
소설은 소년이 죽을 결심으로 대안학교 '라스트 찬스'에서 나와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서너 시간을 서술한다. 그 사이사이에 소년이 대안학교에 오게 된 경위를 제3자의 시각에서 보여준다.
샤이의 엄마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소년이 치료가 필요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의 엄마는 그저 사춘기 방황쯤으로, 친구를 잘못 만나 길을 잃은 탓이라고 믿고 싶다. 주변 사람들은 버릇이 없어서, 천성적으로 거칠어서, 가정 교육이 잘못돼서 등 여러 이유를 갖다 붙인다. 그리고 아픈 자식들은 어느새 부모들의 수치가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정신과적 질병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보다 감정 기복과 폭력 충동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환자 본인이다. 감히 그들보다 지켜보는 사람이 더 고통스럽다는 말은 하지 말기를. 소설 속 엄마와 의붓아버지는 샤이가 마치 가정을 파괴하려고 드는 포식자인 것처럼 말한다.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가정' 안에 샤이의 자리는 점점 더 작아진다.
샤이가 배낭에 잔뜩 집어넣은 돌은 그가 안고 있는 미안함이다. 미안함과 돌의 무게가 비례하는 소년의 배낭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로 사는 게 지치고, 길고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에 있다고 느끼는 건, 샤이뿐만이 아닐터다. 우리는 각자 서 있는 그 터널에 끝이 있다고 믿으며 일상을 지켜낼 밖에는 도리가 없다.
모퉁이를 돌면 늘 그 자신이 거기에 있을 거라고 말하는 '라스트 찬스'의 교사 스티브의 말이 감동스러우면서 한편으로 슬픈 까닭은 이 소설이 긍정적으로 꽉 닫힌 엔딩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적 낭만없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그럼에도 한순간 한순간 고군분투하며 살아내는 그들이 포기하지 말고 좀 더 힘을 내주기를, 우리가 좀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깜냥이 커지기를, 간절히 바람하는 마음이 크다.
중년의 어른인 나에게도 무척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적지 않았다.
※ 도서지원
넌 아직 너를 몰라. 내 말을 믿어봐. 앞으로 알게 될 거야.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건 여러 계절이 걸리는 일이지. 넌 아직 봄이야.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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