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를 입은 비너스 을유세계문학전집 146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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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적 사랑을 애걸하는 남자 제베린, 살아 있는 동안 갖고 있는 모든 쾌락을 전부 소진하고 죽겠다는 여자 반다.  


정신의학자 크라프트 에빙이 이 작가의 이름에서 마조히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소설은 화자 '나'의 꿈에서 시작하는데, 그 짧은 꿈을 통해 이 작품이 어떤 소설인지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당시에 왜 논란이 됐는지 완독하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의외(?)로 소설은 선정적이거나 외설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폭력과 가학성, 그리고 여성에게 억압당하는 남성이라는 설정 때문에 논란이 됐을 거라는 게 사견私見이다.  






 


제베린이 모피에 집착하고, 반다는 제베린을 대할 때면 늘 채찍을 쥐고 있다. 제베린이 모피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가 매질을 당하면서 느낀 고통을 통해 쾌락을 처음 경험했을 때 매질을 한 친척 아주머니가 모피 재킷을 입고 있었다. 소설에서의 모피와 채찍은 권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쾌락을 이끄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물리적 학대를 당하는 것에 매료되는 제베린과 남을 희생해서라도, 동성심을 버리고, 쾌락을 즐기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반다. 애초에 제베린이 먼저 반다에게 접근하고 노예가 되겠다고 자처한 것이라해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는 그도 미처 알지 못했다. 반다의 변덕과 조울 증세, 거기다 변화무쌍한 연기까지, 그야말로 능수능란하게 제베린을 조종한다. 반다가 제베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끝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여인이다.  


반다는 끝까지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 거라고 말한다. 남자들의 존경 따위는 바라지도 않을 뿐더러 그저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 기도교적인 영원한 삶은 원하지 않는다. 이승에서의 반다 폰 두나에프로서 끝낼 것이다. 마음에 드는 남자라면 누구든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라면 누구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생각이다. 즐겁게 쾌락과 향락을 위해 살 거라고 서슴없이 밝힌다. 이것만 두고 반다가 사디즘적 성향이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녀가 제베린을 학대하면서 쾌락을 느꼈지는 독자에 다라 다를 수 있다. 처음에는 제베린의 요청에 의해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가 심취했다는 점에서 의심해볼만하지만, 제베린을 제외하면 다른 누구에게도 그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보면 가학적 성애에서 한 발 물러서야하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사랑의 배신과 절망을 경험하고 집으로 돌아온 제베린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이나 쾌락보다는 폭력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를 쾌락으로 간주할 수 있느냐, 그리고 아무리 사랑을 전제한다해도 사람을 노예나 개로 취급하는 것이, 또한 사랑이 타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문제인가를, 소설은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반다의 변화와 끝까지 오리무중에 빠진 그녀의 진심이었다.  




#도서지원

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그녀가 미친 걸까? 이 모든 것은 터무니없는 나의 상상력을 한번 무찔러 보려는 의도를 가진, 짓궂고 재간 있는 여인의 머리에서 나온 걸까? 아니면 이 여자는 정말로 자신과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느끼고 의지를 지닌 인간들을 마치 벌레처럼 발로 으깨 버리는 데에서 악마와 같은 쾌감을 맛보는 네로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인가?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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