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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잔해를 줍다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6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평점 :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연상케하는 소설은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허리케인이 지나간 다음날로부터 그 이전 12일을 담고 있다. 흑인 일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단순한 재난 소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막내를 출산하면서 세상을 떠난 아내의 빈 자리를 채워가며 사남매를 돌보고 살피는 데에 한계가 있는 클로드. 경비를 지원받아 농구 캠프에 참가해 스카웃 제의를 받고 싶은 랜들에게 동생들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존재다. 투견 차이나와 강아지들에게 집착하는 스키타. 다섯 식구 중 유일하게 여자이자 터울이 많이 나는 동생을 돌보는 일을 도맡고 엄마 역할까지 해내야하는 에시는 고작 열다섯 살.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어 엄마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는 주니어.

인상적인 부분은 스키타가 출산을 마친 투견 차이나와 그 강아지들을 대하는 태도와 말들은 여느 엄마와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두려워하는 에시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면서 동시에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소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느닷없이 에시의 상황을 알게 된 가족 모두 누구 하나 딸이자 여동생을 향해 화내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스키타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음에도 말없이 에시의 비밀을 지켜주었고, 랜들은 사실을 알았을 때 매니가 보란듯이 에시에게 든든한 오빠가 있다는 것을 단 한 번의 몸짓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잠깐 놀라기는 했으나 아빠 역시 에시를 걱정했다. 가난하고 제 앞가림하기에도 버거운, 하루하루가 상처와 아픔의 연속이지만 바티스테 가족의 버텀목은 그들 서로다.
핵가족을 넘어서 1인 가구 시대에 접어들어 '가족의 유대'가 점점 더 희미해져가는 요즘이다. 돈 앞에서는 형제자매끼리도 아귀다툼이 흔한 세태에, 이들처럼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 생사의 기로에서 가족을 향한 사랑,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유대는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진부한 소재라고 치부할 수 있으나 어쩌면 지금 세상에 더욱 필요한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