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그리고 테오 - 반 고흐 형제 이야기
데보라 하일리그먼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테오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빈센트도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평전을 보여지는 삶과 죽음, 인상에 의존하지 않고 확실한 기록과 세세한 정보에 기반을 두어 왜곡되지 않게, 빈센트의 모습을 최대한 선명하게 그려내겠다고 했다.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사산된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 국립중학교 재학 시절 성적이 우수함에도 중퇴하고 화랑 하급 견습생, 물품 창고, 영업.회계 일 등을 거쳐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목사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전도사가 된다. 중산층의 삶을 버리고 스스로 극빈자가 되어 건강을 망치면서까지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지만, 이것이 종교적 열정이 아닌 타고난 정신질환의 증세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스물 일곱살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빈센트. 그는 독서와 예술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앞에는 빈곤한 현실이 늘 눈앞에 있었고, 그 구멍을 채워준 동생 테오를 의지하고 사랑했다.

스물 세살 나이에 구필 화랑 총매니저가 되며 승승장구하는 테오. 하는 일마다 중도에 접고 갈피를 못잡는 빈센트. 이십대 두 형제는 위로와 갈등, 화해를 반복하고 둘의 연대감은 더욱 단단해진다.

빈센트는 경제적 지원과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동생 테오에게 갖는 강박적인 부채감과 가족에게 공헌하고픈 마음으로 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잘 그리고 싶었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바랐다. 그래서 드로잉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노력파였다.

삼십대 중반을 넘기면서도 여전히 작품이 팔리지 않는 화가로서 빈센트는 테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해 미안하면서도 또 돈과 물감을 부탁해야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테오는 형에게 그림을 파는 일이나 돈 문제는 자신에게 있어 늘 달고 사는 지병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아버지가 급사하고 테오는 자신의 수입에서 15%를 빈센트에게 보내고 있고, 어머니의 생활비 뿐만 아니라 두 동생에게 돈을 보낸 적도 있다고 하니 테오의 부담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형에게는 건강과 그림에만 신경쓰라고 하다니...

빈센트는 자연에 나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마음이 편했지만 그에게 깊은 울림의 주제는, 그에게 '무한 감각'을 주는 초상화였다고 한다. 조카를 위해 그렸다는 아몬드 나무를 보면 빈센트의 그림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밝은 색감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그림과 이름이 1년만이라도 일찍 회자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테오도 여러모로 여유가 생겨 자신의 몸을 돌볼 틈이 있었다면...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 빈센트 죽음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형이 죽기 전부터 테오의 건강 상태가 최악이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아마 빈센트가 테오의 죽음을 마주했더라면 그의 자책감도 엄청났으리라. 빈센트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테오의 마지막 6개월 동안은 빈센트의 죽음 이상으로 안티깝다. 형제를 모두 아꼈던 테오의 아내 요안나의 상실감이 느껴진다.

강한 여인 요안나. 서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빈센트의 그림도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요안나가 없었다면 후대는 빈센트의 그림을 마주할 수도, 이들의 서신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테오 사후, 빈센트의 그림을 관리하고 가족의 서신을 책으로 출간한 사람. 고흐 형제에게 있어 서로만큼이나 그 둘을 이해하고 보듬어준 여인이다.

아버지와 테오, 가족을 사랑했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준데르트를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던 빈센트. 성향은 다르지만 삶에 있어 많은 부분이 닮았던 빈센트와 테오. 그들의 남다는 연대감과 애정, 그리고 삶의 궤적으로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책을 한동안 안고 있어야 했다.






[책 속 문장]



106.
'누구보다 슬프지만, 늘 기뻐하기를 쉬지 않으심.'
(빈세트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괴를리츠가 빈센트를 바라보는 시선)

137.
"내가 참말로, 너에게 혹은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거나 부담이 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야 한다면, 또 그래서 하릴없이 내 자신이 너에게 불청객이나 사족이 된 기분이 되어 차라리 내가 없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난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거야." (빈센트)

145.
지금 그는 '머리 위를 막아 줄 지붕도 없이, 휴식도 먹을 것도 피신할 곳도 찾지 못하고, 거기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가망도 없는 상태로, 아득한 먼 곳을 향해 부랑아처럼 터벅터벅 걷고 또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73.
빈센트는 이상화 된 여인을 그리지 않고, 그의 눈에 보이는 여인의 모습운 그대로 그렸다. 진짜 사람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왠지 그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녀느 시엔이다. (...) 테오에게 진실을 숨겨야 하는 슬픔. 그것이 바로 진정한 슬픔이다.

223.
"네 안에서 무언가가 '너는 화가가 될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때야말로 네가 붓을 잡아야 할 때야. 그러고 나면 그 목소리도 잠잠해 질거야. 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으로써 말이지." (빈센트)

240.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둘(빈센트, 테오)의 관점은 너무도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빈센트는 테오의 돈이 필요하다.

258.
"아무리 세상이 위대한 학교라고 해도, 모든 것의 근본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접해 온 가족과 함께한 생활 속에 있어." (테오)

268.
두 형제에게 보색이란, 서로 나란히 놓임으로써 서로를 보강해 주는 색을 말한다. 즉, 서로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는 색이다.

349.
좋은 작품, 좋은 공동체, 이는 바로 빈센트의 이상향이다.

378.
"그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존의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게 될 거예요. 언제냐고요?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테오)

387.
그의 삶은 예술이 전부이다.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자신과 테오를 위해서다. 늘 언제나, 테오를 위해.

394.
빈센트는 테오에 대한 걱정으로 속이 탄다.
테오는 빈센트에 대한 걱정으로 속이 탄다.
두 사람 다, 때로는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느낀다. (...)
그 두 사람은 '운명의 동반자'이다.



[빈센트 형이 없는 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빈센트 형이 없는 나는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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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혁명적인 글쓰기 방법론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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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읽어야지 마음만 먹던 책이였는데,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단 어렵게 쓰이지 않아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는 방식들이라 좋았다. 누군가는 식상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식상한 것조차 실천을 못하는 사람도 많고, 기본을 지키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인지라... 아는 것을 다시 짚어보고 공감되는 몇 가지들을 메모해 본다.


글쓰기를 위한 연장을 신중하게 선택하라. 그렇다고 문구점에서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금물.
나는 B5 사이즈나 그보다 조금 작은 노트를 선호한다. 필기구는 HB 연필. 사실 볼펜을 썼던 기간이 긴데 나는 여전히 연필이 좋다.

'첫 생각'을 놓치지 말아라. 굉장한 에너지가 들어있다.
이 부분은 공감이 많이 된다. 쓰고 난 후 고치고 고치다 보면 제자리에 와 있는 경우가 많다.

글감 노트 만들기.
읽으면서 헉! 했다. 글감, 그때 그때 생각나는 문구들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지에 기껏 적어놓고 나중에는 다 버렸다는... 작은 전용 수첩을 갖고 다녀야겠다는 생각.

세부 묘사를 이용하라. 세부 묘사는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종종 '이렇게까지 구체적이고 세부적일 필요가 있을까?'싶은 장면들을 만나곤 한다. 지금 되짚어보니 저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만약 내가 읽었던 소설들의 장면들을 간단하게 몇 줄로 서술했다는 가정을 하고 상상을 해보니 그 소설을 무슨 맛으로 읽었겠는가 싶다.

저자는 글을 쓸 공간은 방 하나에 비가 새지 않고 창이 하나 있고 난방만 된다면 그만이라고 했다. 이렇게 소박한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거기에 나무 책상과 의자만 하나 있으면 끝. 나는 몇 년전 책상 하나 구하려고 오프라인 매장부터 온라인 매장까지 뒤졌던 적이 있었다. 요즘에는 시스템 가구라고 해서 무척 깔끔하면서 뭔가 그럴듯 하다. 소재는 대부분 스틸. 하지만 너무 비대해서... 맘에 드는 나무 책상 하나 사기에도 쉽지 않았다. (맘에 드는 건 가격이 어마무지... 😵)
(참고로 원서의 출간년도는 1986년이다.)

자신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시켜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살아 보라고 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끔은 잘 듣지 않던 헤비메탈에 영혼을 던져보기도 하고, 계획없이 운전대를 틀어보기도 하고, 책 읽기에 최적화(?) 되어 있는 나의 자리에서 벗어나보기도 한다. 소소하지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 좋은 경험이더라.

자기가 쓴 글을 쓰자마자 다시 읽어 보지는 말라.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기 전에는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리라고 한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 말도 이해가 된다. 종종 한두달 전 일기를 읽다보면 정말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여러 의미에서).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으라는 문장에 "응?" 했는데, 읽다보니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듣자, 분석하지 말고!



20.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39.
스스로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결코 편하게 앉아서 사탕이나 먹으며 살겠다는 핑곗거리로 삼지 말라.

62.
나는 수업 계획을 미리 세워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에 겁먹지 않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충실하려 애쓴다. 그리고 매번 이 방법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결이 있다면, 마음을 계속 열어 두고 있는 것이다.

67.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공교육이 저지르는 가장 끔찍한 질문은 타고난 시인이자 소설가인 어린 학생들에게서, 그들의 문학을 빼앗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문학 수업은, 어린이들에게 문학 작품을 읽게 한 다음 곧바로 문학에 '대해서'만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130.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과 차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136.
그 대상들에게 선의의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216.
글쓰기에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223.
모범생이 되기 위한 모범생은 되지 말라. 규칙에 얽매이면 글쓰기에 필요한 '진짜 현실'이라는 반석을 얻지 못한다.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이야기꾼은 이런 방식으로 인생을 배워 나간다.
/ 그레이스 팔레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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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세상에서 처음 눈을 뜬 아이처럼 그 풍경을 바라보며 경탄하는 것, 이렇게 경탄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 카뮈

예술, 문학, 철학, 자연, 과학, 사회 등 다각적 관점에서 인문학을 만나 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왜 미학을 공부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다섯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다른 것(현실 혹은 세계)들의 만남이다. 예술이 이끄는 다른 영역과 만남으로 우리는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둘째, 감각의 쇄신. 좋은 예술작품은 감각을 쇄신한다. 이는 곧 생활의 쇄신으로 이어진다.

셋째, 넘어가는 능력. 각자의 삶이 감각을 넘고 사고를 전환함으로써 일상을 초월해 다른 온기와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더 넓고 깊은 지평으로 나아가기. 넘어섬을 통해 좌절을 겪더라도 삶을 개선을 의지를 키우게 된다.

다섯째, 자기 삶을 향유하는 일. 인생에 있어 영원한 완성을 이뤄낼 수는 없겠지만 심미적 경험은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심미적 경험이 삶의 변형에 이어지지 못한다면,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동안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나도 이 책을 통해 심미적 경험으로 잠시나마 삶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였을까?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를 보고 있자면 나는 지금의 내 모습,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본다. 조각배에 올라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매달리고, 배를 물어 뜯고, 아구 다툼을 한다. 배를 노 젓는 이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일을 할 뿐이며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을 외면한 채 배 위에서 강을 건너고 있다. 이 정도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라 투르의 [점쟁이 여자]는 정말 재밌다.
네 사람이 모여 있지만 시선도 손짓도 모두 제각각이다. 가운데 젊은 남성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젊은 두 여성과 늙은 점쟁이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 남자, 나중에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이 봄, 비록 미세먼지 때문에 망설여지더라도 벚꽃 피는 어느날에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유쾌한 이들과 즐거운 식사를 나눠야겠다.

43.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것에 배어 있는 작가의 흔적ㅡ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는 어떻게 이 세상을 표현했고, 어떻게 자기 삶을 살았을까? 예술도 결국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한 방식인 까닭이다.

73.
인간의 이념은 찬란하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것에 못 미친다. 간극은 그래서 생겨난다. 삶의 간극과 균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인간 능력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고, 현실 자체의 모순성에서 오기도 한다.

88.
슬퍼해야 할 것은 이 모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우리의 무감각일 것이다.

97.
수백 개의 무대가 있다면, 이 무대 뒤의 사연이란 수천, 수만 개에 이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어두운 배경 아래 잠겨 있는 것이다. 예술이 묻는 것은 바로 이것이고, 그림 감상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도 바로 이 배경 아래 잠긴 사연들이다.

127.
삶의 정경은 창문의 안과 밖, 여기 이곳과 저기 저 너머, 나의 이쪽 현실과 그들의 그 밖 현실 사이의 경계를 지금의 내가 얼마나 넘을 수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이 넘어섬, 아니 넘어서려는 의지야말로 비루한 일상에 품위를 부여하는 낭만적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143.
모든 인공적인 것은 사멸한다. 사람은 기막힐 만큼 짧고도 부박한 삶을 산다.

154-155.
창조성이란 자신만의 고유성이면서 동시에 대상으로 확대 된 객관성을 뜻한다. 그래서 좋은 글은 자신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를 함께 담는다. 그러므로 글쓰기란 나의 생각을 너의 생각으로 넓혀가고, 그들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불러들인다.(...) '나로 돌아온다'라는 것은 좁게는 자기 반성이지만, 넓게는 내가 서 있는 현실의 테두리를 돌아본다는 뜻이다. 네게로 나아가는 것은 너를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나의 이해를 통해 우리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함이다. 즉, 타자 지향과 자기 회귀는 주체의 동일한 자기 확대 운동 속에 있다.

182.
삶에는 잘못된 가르침과 전제가 무척 많다. 삶은 버겁고 위험하며 혼란스럽지만, 이 복잡함은 역설적으로 무겁게가 아니라 경쾌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마치 관광객처럼 여기에서 저기로 떼지어 다니며, 안내서에 없는 것은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매일매일 고갈시켜 가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이런 피상성을 너무 늦기 전에, 그래서 회복 불가능 하기 전에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눈으로는 수없이 보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옹졸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278.
그 노력은 강제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관심과 흥미 그리고 탐구로 추동돼야 한다. 단순히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영화를 보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묻고 보고 답변하며 또다시 탐구하는 절차 속에서 조금씩 체화된다. 교양은 수동적 주입이 아니라 적극적 형성의 과정인 것이다.

291.
좋은 사회란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폭력 이외의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곳이다. 이런 사회는 비극의 원인을 특정인에게 덮어씌우기보다는 그가 그 일을 하기까지 사회는, 이웃은 그리고 가족과 동료는 무엇을 했나를 먼저 성찰한다. 인간적 삶의 체계란 전가와 배제의 체제가 아니라 이해와 공존의 체제인 까닭이다.

298.
인문학은 나의 현재의 느낌ㅡ현재적 순간의 충일된 느낌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느낌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은 언어로 표현되며, 표현된 언어는 다시 성찰의 대상으로써 결정과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으로 나아간다. 감정ㅡ사고ㅡ언어ㅡ결정ㅡ판단ㅡ행위는 반성적 과정 속에서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런 경로 속에서 인간은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이렇게 돌아보는 가운데 주체성의 내용을, 그 정체성의 성격을 꾸려나간다.

339.
한 사회에 숨통이 트인다는 것은 그 사회가 생기를 얻어간다는 뜻이다. 문화의 문제가 '삶의 세부적인 면에 충실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회경제적, 정치적 조건에 지탱되면서 무엇보다 내용적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는 문화적 유연화의 많은 것이 개인과 사회가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잃지 않는 데서 시작됨을 말해준다.


생각한다는 것은 빈자리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자리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 '꽃 진 자리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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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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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골 마을 핸래티에서 자란 로즈가 가족간의 애증, 사랑, 결혼, 독립 등의 굴곡을 겪으며 가난과 그 시대 여성이 갖는 한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인생 여정을 열 개의 단편연작으로 엮은 소설이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자식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 딸의 허영과 꿈을 받이들이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보다 더 높은 권위에 자리하는 남동생,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 더 나은 세상에 진입하고 싶은 딸.

소설 속 로즈의 모습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여성이다. 어린 시절에는 (의붓)어머니를 바짝 약올려 매를 맞기도 하고, 외모와 성에 대한 호기심, 멋지게 보이는 동성 친구를 우상처럼 흠모하기도 하는 사춘기 시절을 지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지만 앞날의 두려움과 경제적 여유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연애를 거쳐 결혼을 하는.

로즈의 평탄한 삶이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친구 조슬린의 남편인 클리퍼드에게 빠진, 그때부터 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패트릭에 대한 순수하지 못했던 마음을 안고 결혼한 그때부터 그녀의 이혼은 예정된 일이였을까.

딸인 애나를 전남편에게 보내면서까지 로즈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단지 클리퍼드와의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혼을 기점으로 로즈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고자 했던 건 아닐까? 그건 [거지 소녀]에서 언급했던,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환상. 누구나 쫓지만 누구도 가졌노라고 장담할 수 없는 그것.

로즈를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 여겼던 클리퍼드, 그녀가 내연녀일 뿐이었던 톰, 로즈를 진심으로 사랑했을지도 모를 사이먼, 하지만 사이먼의 마음은 로즈도 독자도 알 수가 없다. 로즈는 이 남자들을 정말 사랑했을까?

이 소설에서 플로와 로즈의 관계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플로와 로즈.
두 사람은 의붓 모녀지간이다. 하지만 두 여자의 갈등에 있어서 그러한 관계가 주는 영향은 없어 보인다. 그저 시대적으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이 제한적이고, 그 시대에 이상적으로 여겨졌던 여성의 역할을 잘 수행함에 있어서 스스로 자긍심을 가졌던 여성들(플로와 같은)이 있었던 만큼 로즈에 대한 플로의 행동은 그녀가 친어머니였다 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싶다.

플로가 늙어 누군가를 보살펴야할 때, 그녀 곁에 있는 이는 친아들 브라이언이 아닌 로즈다. 두 여자의 오랜 세월 쌓아 진 애증은 여느 모녀와 다를 바 없다. 이혼하고 사랑에 버림 받고, 벌이가 그저 그래도 로즈가 돌아 온 집에는 플로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이는 한 시대를 약자로서 함께 겪어 온 동지애로써의 이해와 공감이 아니였을까.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스케일이 크다거나 극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자꾸 읽게되는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에서 내 삶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지난 날의 향수를 넘어 현재의 나 자신과 내 주변인들을 돌아보게끔 한다.

나는 그녀의 글에서 담담하지만 보통 사람이 갖는 힘을 느낀다.




[장엄한 매질]


37.
끝장을 봐야하는 이유는 결국 부분 적으로는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인 걸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고, 가장 무시무시한 허튼짓도 정당화 될 수 있고 그 행위에 어울리는 감정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의 관객에게ㅡ교훈을 깨닫더라도 깨달음을 표시할 수도 없을 상대에게ㅡ증명하기 위해서일까?



[특권]


73.
로즈는 그런 상실과 변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았다. 그녀가 배운 바에 의하면 인생이란 대체로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 이야기를 자꾸만 들추며 코라를 점점 더 나쁘게 묘사하는 플로를 보면 그녀가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토록 긴 시간이 흘렀는데, 그리고 이제 아무 소용도 없는데, 로즈는 플로가 자꾸 경고하고 자신을 바꾸려 한다고 여겼다.



[자몽 반 개]


89-90.
아버지에게 플로는 바람직한 여자의 전형이었다. 로즈는 그것을 알았고 실제로도 아버지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활달하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무엇을 만들거나 비축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빠릿빠릿해야 하고 흥정과 관리에 능해야 하며 사람들의 가식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적인 면에서는 어수룩하고 아이같아야 하며, 지도나 긴 단어나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우습게 보고, 아기자기하면서 알쏭달쏭한 생각, 미신, 전통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로즈가 망신거리인 것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 그러나 뭔가가 잘못되어 바람직한 종류의 여자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거지 소녀]


131.
헨쇼 박사는 가난을 그저 불우함이나 결핍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지만 가난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흉한 막대기 모양 전등을 사용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의미했다. 시도 때도 없이 돈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새로 산 물건을 놓고 악담을 하며 그것을 공짜로 얻은 건지 아닌지 입씨름하는 것을 의미했다. 플로가 정면 창문에 사서 단 비닐 커튼이나 가짜 레이스 따위를 두고 자부심과 질투가 난무하는 것을 의미했다. 뿐만 아니라 문 뒤에 박은 못에 옷을 걸고 욕실에서 나는 소리를 죄다 들을 수 있는 것, 또한 경건하고 발랄하고 조금은 외설적인 경고를 담은 수많은 액자로 벽을 장식하는 것을 의미했다.



[섭리]


256.
직접 가서 보지 않더라도 아이의 금발과 흰 살결, 윤기 흐르는 눈썹과, 자세히 봐야 보이는 투명하리만치 미세한 털이 일어나 불빛을 반사하는 옆모습을 놀랍고도 두려운 기쁨을 느끼며 그려볼 수 있었다. 평생 처음으로 그녀는 가정적인 삶을 이해했고 안식처의 의미를 알았으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271.
상살과 행운의 연속. 그녀가 과거나 미래에, 사랑에, 혹은 그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때,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다.


[사이먼의 행운]


301.
그 무엇이 밤새 어두운 부엌에 앉아 연인을 기다리는 로즈 나이의 여자보다 더 절박할 수 있을까? 로즈는 이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냈고 모든 것을 혼자서 했다. 그녀는 도대체 배우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 사이먼을 고리로 바꿔 거기에 온 희망을 걸어놓은 그녀는 이제 그를 결코 그 사람 자신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305.
패트릭 이후로 단 한번도 그녀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적이, 그런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다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모두.

311.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재앙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줄거리에 의심의 여지를 남기는 초점의 이동으로부터, 새로운 판단과 해법을 요구하면서 온당치 않고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창문을 열어젖히는 어긋남으로부터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믿었다.



[스펠링]


324.
남매는 싸웠고 누이는 눈물을 머금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로즈는 느꼈다. 그 모든 것의 한꺼풀 아래에서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주, 아주, 오랜 경쟁ㅡ누가 더 나은 사람인가? 누가 더 좋은 직업을 선택했는가?ㅡ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갈구한 것일까? 그것은 상대방의 인정, 아마도 둘 다 기꺼이 줄 의향은 있지만 아직은 아닌 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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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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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중력은 누구에게나 힘을 미친다. 누구나 똑같이 바닥에 닿게 하고, 서든 눕든 제 무게를 되살려준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고, 태양도 지녔지만 티끌도 가졌다. 그래서 중력은 모든 것이 제가끔 움직이고 저마다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조건이고 운명이다.



이진우는 생물학을 연구하는 샐러리맨이다. 그는 직장에 충실한 만큼, 그 이상으로 우주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 꿈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우주인 되는 것이 소망이 있었지만 병으로 열살에 삶을 끝낸 동생의 꿈도 함께 있다.

그러던 중 진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공고를 보고 지원한다. 우주공학자, 심리학 전공자, 현 군인 등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우여곡절 끝에 최종선발 4인에 들어 러시아로 향한다.

러시아에서 2인 탑승에서 1인 탑승으로 상황이 바뀌면서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던 네명의 우주인 후보들은 그야말로 '경쟁자'가 된다. 승급과 유일한 탑승자가 되기 위한 현실은 삶의 현장인 직장에서도, 인류의 발전이라는 과학 안에서도, 치열한 줄서기식 세력 다툼과 파벌의 힘 겨루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최초'와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누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될까? 이진우는 결과와 상관없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배웠다.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품어줄 수 있는, 너무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력같은 힘.

소설은 독자에게 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선택, 결과만이 중요한 경쟁시대에 정정당당한 승부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선택에 대한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진중하다. 이렇게 시종일관 진지함에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니. 그리고 훅 들어오는 폭풍같은 감동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멀스멀 적셔지는 잔잔한 따뜻함과 뭉클함은 뭐지....!


사족.
원소주기율표를 보고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는...




[책 속 문장]




236.
내가 알지 못했을 뿐 내 인생의 발걸음 하나마다 가까운 곳에서는 이런 개미들의 싸움이 있었다. 연구소에서건 여기서건.

245.
세상은 끝없이 의심하고 싸워야 하는 각축장이 아닌가. 선량하게 책임을 다하려고만 하면 급소를 내보이는 곳이다. 회사에서 그토록 배우지 않았던가. 경쟁이 있는 동안에는 살얼음을 딛듯이 조심하고, 말을 겸손하게 아껴야 한다는 것을.

301.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은 무거운 물체의 주변 공간은 중력 때문에 휘어져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의 근처도 그런 것이 아닐까.

318.
용기는 계속할 힘이 아니다. 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하는 것이다. 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379.
우리가 가만있기를 바라는 이 사람들과, 배워서 우주인다워지겠다는 우리의 기대는 애초부터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389.
진실과 목적. 진실을 밝히는 일과 목적을 이루는 일. 이 두 개가 동시에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다면 저는 무얼 택해야 할까요? 부끄러운 것은 실패가 아니라 노력하지 않는 것인데. 노력하는 것이 그의 아픔 위를 걷는 것이라면 무얼 택해야 할까요. 인간의 물리학에는 왜 한 공간에 두 개의 선택이 있을 수 없을까요?

394.
오만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높이 오를수록 아래를 더 무시하고 잔인하게 구는 사람들. 북돋고 끌어주기보다 자르고 떨궈내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이용해서 더 윗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켜주고. 미안함 없이 태연한 모습들. 그렇게 자리를 지켜봤자 고작 몇 달이나 몇 년에 불과해선지도 모른다.

408-410.
나는 여기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
아니, 내가 모험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있었더라면.........
나는 아직 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바쁘기만한 바보로 살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쳇바퀴를 돌면서 가끔 푸념하고 화를 내기만 하는 채로.
(중략) 뒷사람을 옳지 않게 떨궈버리는 일..... 내가 올라온 사다리를 밀어버리는 일...... 이것은 우주와 통하는 마음이 아니야, 별이 빛나는 칠흑이 아니야...... 이걸 쓰면 나는 결국 무너지리라. (중략) 진정한 것, 나는 그것을 갖고 싶었다.

419.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감옥은 자기가 만들어요. 이제는 거기서 나와도 돼요. 달을 거닌 사람들은 대단한 모험을 한 것이지만 의외로 달은 가까운 곳에 있답니다. 우리가 다다라야 할 가장 먼 곳은 우리 마음 속에 있어요.

439-440.
태양의 그 모든 불꽃들을 뭉쳐서 둥근 공으로 빛나게 하는 힘이 중력이다. 태양처럼 행성들을 데리고 홀로 사는 별도 있지만 별 두 개나 세 개가 중력으로 묶여서 쌍둥이나 남매들처럼 사는 경우도 있다. 서로 늘 힘을 미치면서. 이 모두에게는 중력이 삶의 조건이고 운명이다. 별들이 생겨나고 자라나고 무너지는 생로병사를 중력이 다 맡아서 다루는 것이다.
사람도 너와 나, 우리는 무게 없이는 살 수 없고 무게가 있는 곳에는 중력이 있다. 중력은 바람과 강, 밀물을 당길 때는 공평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갈 때는 오로지 개별적일 뿐이다. 버릴 과거는 없다. 아무도 모르니까. 피할 미래도 없다. 씨앗이 움트고 있으니까. 운명을 사랑해라. 그리고 가능성을 시험해봐라. 나아간 만큼 너의 인생이 된다. 다시 일어난 만큼 너는 강해진다. 그러니 반드시 생각해라.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너는 더 멀리 날아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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