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그 섬에서
다이애나 마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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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날, 동료 사진기자로부터 건네받은 사진 한 장. 사진 속에는 소 두 마리를 몰며 밭을 가는 남자의 모습이 있다. 21세기에 캘리포니아에서 소로 밭을 가는 모습에 흥미를 느낀 저자는 사진 속 남자를 찾아간다. 찾아간 농장은 자신들을 '열 번째 섬'이라고 일컫는 포르투갈 아조레스 제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집단 ('열 번째 섬'은 북미 대륙에 사는 디아스포라를 아우르는 말). 모라이스와 만난 후 주말에 그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파티를 즐긴 후 여름마다 고향을 찾아가는 아조레스 이민자들을 취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해 9월 취재 중 만났던 프랭크의 호의로 아조레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2주 계획으로 간 섬에서 만난 사람들과 밧줄 투우. 서슴없이 음식을 나누고 여자가 혼자 산책하기에 안전한 장소를 묻는 저자의 물음에 당황해 하는 안내 데스크 직원이 사는 곳. 저녁을 나누면서 노래와 춤이 함께 하고, 이방인에게도 친근하게 대하는, 인터넷이 되지 않아 손편지를 쓰고 노새가 수레를 끄는 곳.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는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다이애나는 캘리포니아에 돌아온 후에도 섬을 잊지 못한다. 4년 후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자 희망 퇴직 후 다시 아조레스로 돌아간다. 
 
테르세이라 섬에 도착하자 바로 우연찮게 재회하는 소방대장(다이애나는 처음 만남에서 그의 말을 잘못 알아 듣고 이후에도 그를 주방장이라고 부른다). 덕분에 집을 구하고, 그녀가 별다른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답사할 장소, 인터뷰해야 할 다양한 사람들을 안내해준다. 밝은 바다에 청록색 거품이 일고 푸성귀 가득한 장기판 모양의 들판과 양옆으로 해안가가 둘러진 섬. 하지만 사이사이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하다가 로마나가 그 해 섬에서 머무르는 마지막날 같이 대화를 하던 중 다이애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무일푼인 상태로. 
 
캘리포니아로 돌아 온 다이애나. 프리랜서로 일하던 중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에 채용된다. 생태와 지역 사건에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시에라 주의 가뭄과 화재에 대해 취재하고 2015년 그에 대한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는 사이, 어느새 집으로 돌아온지 6년이 지났다. 상금을 받자 그녀는  1년간 휴직계를 내고 다시 또 아조레스로 향한다.  
 
 
손주를 둔 나이에도 재기와 활기가 넘치는, 해마다 섬에 돌아오지만 고향 사람들과 공통점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슬픈 로마나. 함께 있으면 지치지도 않고 끝없이 말을 쏟아내는 구두장이 할아버지와 그의 친구들, 오랜 세월 이민자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매니, 노르베투, 루이스 등 아조레스인들은 그들의 고향을 대부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어 있는 섬은 여행자들에게 낭만과 사랑을 전한다. 실제로 섬 원주민과 여행자들 중에도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기도 하고, 이별을 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여행자들이 아조레스 제도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쇼핑몰이나 영화관 따위는 없고 와이파이도 없어서 할 일이 없다는 불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볼 거라면 굳이 아조레스를 찾아갈 이유가 무언가? 
 
전 세계 삼림의 1%만 존재해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생태계로 꼽히는 고대 숲 라우리실바,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추형 화산 내부로 걸어갈 수 있는 아우가르 두 카르방 등 책은 단순히 아조레스의 아름다운 경관이나 여행자의 기록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조레스의 역사와 가난 때문에 떠나야 했던 사람들, 남아서 견뎌낸 사람들,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이와 아조레스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지치고 힘들 때 마다 아조레스를 기억하는 듯 하다. 그곳에서 얻은 에너지를 추억하고 그것이 모자라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힘을 받는. 
 
369.
카카후가 멸종 위기에 처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다로 처음 나가는 어린 새들이 계속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어째서 길을 잃은 것인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일생을 살면서 길을 잃는 것이 어린 카카후 뿐일까.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길을 잃는다. 그럴 때마다 충전이 될 수 있는 자신만의 히든 플레이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이 꼭 아조레스가 아니더라도. 
 

 
"If thiis were the last night of the world what would I do?"

 

 



 
  출판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 나는 내가 여기 사람들을 넘어섰든지 여기 사람들이 나를 넘어섰든지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요. 뭐가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더 나은 사람도 더 못한 사람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여기 사람들과 공통점이 없을 뿐인데 가끔은 그게 너무 슬퍼요." (로마나) - P195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늘 동전처럼 앞뒤로 뒤집어졌어요. 세상을 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 존재까지도 자유자재로 뒤집어졌죠. 그러다 보니 내 안에 있는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루이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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