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이탈로 칼비노 전집 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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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모없이 매춘부 누나와 사는 핀은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버린 부랑아 소년이다. 핀은 친구들에게 거미들이 집을 짓는 곳을 알려주거나 막대기를 가지고 전쟁놀이를 하며 무리지어 돌아다니고 싶지만 어른들 세계가 익숙한 핀을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라곤 어른들의 이야기 뿐인 핀은 그저 어른들의 세계로 몸을 '숨긴다'. 그렇다고 어른들의 세계라고 해서 핀을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선술집에서 벌어지는 온갖 음담패설과 농담, 조롱에는 핀에게 한 자리를 내주는듯 하지만 정작 그가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에도 아이라는 이유로 배제시킨다. 이럴 때마다 핀은 혼스러움을 느끼며 외로움을 안고 길을 잃은 사람처럼 배회한다.  

 

35.

핀은 놀이를 할 줄 모르는 아이였고  어른들의 놀이에도, 아이들의 놀이에도 끼지 못하는 아이였다. 

 

어느날, 누나를 찾아온 독일군인의 권총을 훔쳐 자신의 안식처인 거미집이 있는 곳에 숨긴 핀. 그러나 들고 다니던 권총허리띠 때문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지만, 그곳에서 레지스탕스 '빨간 늑대'를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탈출 직후 뜻하지 않게 빨간 늑대와 헤어진 핀은 길을 잃고 헤매다고 또 다른 유격대원 '사촌'을 만나서 그가 속해 있는 '오른팔네 파견대'에 가게 된다.  

 

그곳에는 독수리 바베우프를 키우는 요리사 '왼손잡이', 그의 아내 질리아, 호텔 종원업 출신으로 파견대의 대장인 '오른팔', 독서를 즐기는 '나무 모자', 무기와 여자에 열중하는 펠레, 현병대에서 탈영해 레지스탕스가 됐지만 여타 부대에서 그를 거부해 오른팔네 파견대로 오게 된 '헌병', 땜장이 출신 자친토, 동서 지간 네 명이 모두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있는 '공작' '후작' '백작' '남작'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출신도, 유격대에 들어온 이유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욕설과 고함만 질러대는 선술집의 남자들과는 다름을 느낀다. 

 

102.

핀이 보기에 인간이란 존재 안에는 벌레처럼 구역질 나는 어떤 것과 친구를 끌어들이는 따뜻하고 친절한 어떤 것이 함께 들어 있었다.  

 

138.

그(제나)는 부르주아나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각자 되도록 적게 일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세상을 더 좋아했다. 

 

141.

"각자 자기가 왜 유격대원이 되었는지 알아야 해. (...) 난 이제 시골로 돌아다닐 수가 없어. 그랬다간 녀석들이 날 체포해 버릴 테니까. 게다가 폭격 때문에 전부 다 부서져 버렸거든. 이 때문에 우리가 유격대원 노릇을 하는 거야. 다시 땜장이로 돌아가서 싼값에 계란과 포도주를 살 수 있고 체포당할 위험이 전혀 없고 경보를 울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서지.(...)" 

 

전투를 위해 야영지를 떠날 준비를 하는 오른팔네 파견대. 자신도 전투에 참여할 거라고 믿는 핀은 흥분하지만 역시나 파견대 남자들도 그는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뒤쳐진 오른팔과 함께 여단에 도착한 핀은 나쁜 늑대와 조우한 기쁨도 잠시 오른팔네 파견대는 무장 해제 당한다.  

  

핀은 숨겨놓았던 권총을 찾기 위해 거미집을 찾아가지만 이미 누군가 파내간 뒤였고, 이에 낙담하고 누나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핀의 권총을 그토록 탐내 훔쳐간 펠레는 결국 네라에게 그 권총을 선물로 주고 갔다. 핀은 그 권총을 뺏다시피하여 집을 다시 나오고 언제나 혼자일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거미집에서 울고 있을 때 '사촌'과 재회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반딧불 속을 걸으갔다. 

 

 

작가가 자신의 레지스탕스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말엽에 나치 독일 점령군과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파시스트 들에 대항하여 이탈리아 해방군이라 불리는 레지스탕스의 전쟁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면면을 살펴보자. 선원이나 땜장이, 독서를 즐기는 지식인 등 각 계층의 보통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사촌, 오른팔, 나무 의자, 왼손잡이, 나쁜 늑대처럼 소설 내에서 이름이 없다. 또한 부대가 해산할 거라는 소식에 핀은 부대원 각자가 부대를 만들어 대장이 되라고 말한다. '나무 모자'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유격대원들의 부대를, '헌병'에게는 부모들을 잡아들이는 파견대를, '공작'에게는 토끼 목 자르는 부대를, '왼손잡이'에게는 화냥년 남편들의 파견대를 만들라고 말이다.

그들은 왜 이름대신 별칭으로 불리며, 핀은 그들에게 이토록 어처구니 없는 부대를 만들라는 우스갯 말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혁명이나 저항운동에는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독립투쟁으로 후세에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얼마나 되랴. 그 수많은 저항자와 투쟁자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현재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이름 없이 스러져간 그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부여할 수 없어 다수의 나쁜 늑대, 다수의 나무 의자, 다수의 왼손잡이, 다수의 사촌을 내세운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령관 페리에라와 위원 킴의 대화에서 작가는 킴의 입을 빌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말한다. 

 

"인간들은 모두 투쟁하지, 그들 속에는 똑같은 분노가 자리 잡고 있어. 각자는 모두 서로 다른 자신이 하나가 돼서. 여기엔 오른팔 같은 놈도 있을 수 있고 펠레 같은 놈도 있을 수 있지...... . 자네는 그들이 얼마나 값진 존재인지 이해하지 못할 거야...... . 어쨌든 그들도 똑같은 분노를 가지고 있지...... . 아무도 아닌 일이 그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어...... . 이게 바로 정치 작업이야...... .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 (...) 내일이면 사망자도 생기고 부상자도 생기겠지. 그들도 그걸 알아.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고 무엇 때문에 그들이 싸워야 하지? 내게 말해 주겠나? 봐, 여기엔 농부들도 있고 산악 지대에 사는 주민들도 있어.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 독일군들이 동네를 불태우고 젖소들을 끌어가 버렸으니까. 그들의 전쟁은 본능적이고 인간적인 전쟁, 즉 조국을 지키려는 전쟁이야. 농부들에겐 조국이 있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늙은이든 젊은이든 마을 전체가 자기들의 볼품없는 총을 들고 무명 사냥복을 입고 우리와함께 싸우는 거야. 우린 그들의 조국을 지켜 주는 거고. 그래서 그들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지. (...) 그들(검은 여단)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게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우리를 해방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자손들을 해방시키는 데 사용될 것이고 더 이상 분노가 섞이지 않은 맑은 인간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이용될 거야. 그러면 그 속에서 사악해질 수는 없겠지. 하지만 저들은 쓸모없는 몸짓들, 무용한 분노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 비록 승리했다 해도 그건 쓸모없고 무용한 것들이지. 그것들은 역사를 만들지 못하고, 자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분노와 증오를 되풀이하고 영속시키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이야.(...)" 

p153-157

 

핀은 애초에 왜 총을 훔친걸까?

핀은 총을 소유하게 되면 남자 어른들의 세상에 진입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항상 어른들과 친구로 지내고 싶었으며 농담을 지껄이며 자신을 믿어주기를 바랐고 좋아하는 어른들과 같은 위치에 놓이고 싶었다. 그러나 핀의 기대와는 달리 어른들은 총이 있다는 핀의 말을 믿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시하기까지 했다.  

 

 

핀에게 있어 어른들의 삶은 술먹고 싸우고 거드름과 허세를 피우며 여자를 희롱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다 어떨결에 정치범이 되어 감옥에 들어가고 나쁜 늑대를 만나게 되면서 다른 세상을 만난다. 그 세상 또한 핀이 진입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상이지만 그곳에는 삶과 죽음이 실재한다. 허허실실 농담을 던지고, 그 농담에 화를 내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했던 사람들이 전투에서 하나둘 전사한다. 능력을 평가 받고 무장 해제를 당하며 서로 다른 생각으로 파시스트가 되고 레지스탕스가 된다.

핀은 이제 예전처럼 피에트로마그로와 함께 골목 안 가게에서 다시 구두를 고치고 싶지만 골목은 텅 비었고 사람들은 도망치거나 감옥에 갔거나 죽어버렸다. 핀은 어디로 가야하며 무엇을 할 수 있나? 갈 곳을 잃은 핀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울음 뿐이다. 

 

거미집은 위에서 언급했듯 핀의 유일한 안식처다. 핀은 진짜 친구를 만나게 되면 그 친구에게만 거미들이 집을 짓는 장소를 보여준다고 다짐했었다. 그렇다면 '사촌'과 핀이 거미집에서 재회하고 손을 잡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쁜 마음에 핀이 거미구멍을 보여주겠다고하자 사촌은 거미를 걱정해 사양한다. 그리고 그는 핀을 어린아이가 아닌 자신과 동등한 친구로서 대우하고 어른들 세계에서 부정적인 모습에 이골이 난 핀에게 세상에 아름다운 이면이 있음을 알려 준다.

이는 핀이 어린아이로의 회귀가 아닐까. 다시말해 핀이 핀으로서, 농부가 농부로서, 학생이 학생으로서 살아갈 세상의 도래를 희망함이 아닐까하는. 

 

"여자들은 모두 그래요, 사촌...... ." (...)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야. 우리 어머니는...... ." (...)

"반딧불이가 많구나."

"반딧불이도 가까이에서 보면 역시 불그스레하고 구역질 나는 벌레일 뿐이에요."

"그렇단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아름답잖니." 

  

 

작가의 서문을 읽으면 그가 이 소설을 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름 없는 소시민이이자 저항자요 투쟁자였던 그들의 삶을 전하고픈, 동료들을 향한 그의 깊은 애정이었음을.

 

 

독서와 삶의 경험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우주가 아니라 하나이다. 해석될 수 있는 삶의 모든 경험은 독서를 부르고 그 둘은 뒤섞인다. 책들이 항상 다른 책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진실, 즉 책은 실제 삶과 인간들 간의 관계에서 탄생한다는 것과 표면적으로만 모순되는 진실이다.

'작가의 서문'에서 p233

 

 

그는 외로웠고, 어른들의 삶을 이루는,피와 벌거벗은 몸뚱이로 된 이야기들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느꼈다. - P22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린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어른들을 즐겁게 해 주거나 짜증나게 하는 그 무엇으로 취급되는 어린아이로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핀도 어느 날엔가 어른이 될 것이고, 그러면 모든 이에게 심술궂게 굴 수도 있고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복수할 수도 있으리라. 핀은 지금 당장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니, 어른이 안 되어도 좋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남아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감탄하고 두려워하는 아이가 되어서 어른들과 함께 대장 노릇하며 기막히게 멋진 모험을 하고 싶었다. - P207

핀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맺혔고 그는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어른들은 이상하고 배신자 같은 족속이었다. 그들에게는 아이들의 놀이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른들에게도 아주 진지한 자신들의 놀이가 있었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놀이 속의 놀이 말이다. 아까는 낯선 남자와 더불어 독일이네 대항해서 놀이를 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자기들끼리 그 낯선 남자에 대항해서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들이 하는 말은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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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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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uestion of Morality   
 


작은 마을 나루카와에서 지역 유지 집안의 사람인 난보라는 노인이 사망했다. 사인은 독극물을 이용한 자살이라고 판명이 났는데타살 의혹이 제기된다. 불단에 스프레이로 쓰여진 메세지로 인해.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 범인은 누구?'  
 
프리랜서 영상 저널리스트였던 후시미는 슬럼프에 빠져 무위도식하던 중 옛 동료인 다나베에게 일자리를 제안받는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을 사진 작가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다나베와 동석한 젊은 여성 오치.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의 연출가이자 총감독으로 프로젝트에 대한 배경과 기본적인 설명을 얘기하며 후시미에게 합류를 부탁한다
 
13년 전, 나루카와 제2초등학교에서 교육자 마사키 쇼타로가 강연 도중 청중 한 사람에게 칼에 찔려 살해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현장에 있었던 삼백 명 가량의 증인과 용의자의 묵비권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회적으로 떠들썩해지는듯 했지만 때마침 일어난 911테러로 유야무야 처리된 사건. 범인은 어린시절 피해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무카이 하루토. 그는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교육자를 왜 살해했을까? 무카이 하루토가 법정에서 유일하게 한 증언은 한마디 뿐이었다.
"이것은 도덕 문제 입니다." 
 
아내의 요구로 뜻하지 않게 그녀의 고향인 나루카와 정착, 아들 도모키의 학교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사건들과 난보의 사망, 그리고 13년 전 나루카와 초등학교에서 발생했던 살인 사건, 그에 관련한 프로젝트에 스카웃 제의를 받은 현재, 후시미는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싶어 소름이 돋는다
   
  
 
1.
후시미의 아들 도모키는 동물을 괴롭히는 친구 마코토를 한 대 때렸다. 이에 마코토의 아빠 요시카와는 아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른 후 후시미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다요시미는 뻔한 내막을 알아채고 요시카와를 인간쓰레기라고 욕하지만,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그가 요구하는 돈을 건넨다가정폭력도 모자라 아들을 이용해 사건을 조작하는 요시카와의 행동에 침묵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후시미는 도덕적인가
 
2. 
폭력을 밥 먹듯 휘두르는 아버지, 아버지에게 매춘을 강요당하는 어머니, 두 사람의 부재로 열 살이나 터울지는 동생까지 돌봐야했던 어린 무카이 하루토구걸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강아지까지 잡아먹었던 이 소년은 결국 집을 나온다이 거지같은 집안에서 도망친 그가 버린 건 쓰레기 같은 부모만이 아니라 여섯 살에 불과한 여동생까지다. 자신이 집을 나가면 잔인한 아비가 동생을 어떻게 할지 뻔히 알면서도 혼자 집을 나온 무카이 하루토는 도덕적인가? 그때 그의 나이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
 
3.
유토리 교육(경험주의, 종합 학습)의 질 높은 실현을 위해서 교육자 육성회까지 만들어 교육에 헌신한 마사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방침에 어긋난 것에 대해서는 수용하지 않았다. 그 대상이 학생이든 동료든. 자신이 옳다는 확신으로 뚜렷한 목적성을 명분으로 타인의 역사와 개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정은 도덕이라 말할 수 있는가
 
4.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그의 아빠를 살인범으로 조작하는 건 도덕인가? 그리고 본인의 아들이 사건의 용의자로 짐작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5.
아버지로부터 생계를 위해 어린 나이에 매춘을 강요 당하고, 오빠의 친구들이 성매매 고객인 여자 아이. 9년만에 집에 돌아온 오빠가 이제는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건만, 오빠는 안부 인사 한마디 없이 본인의 목적에만 집중한다. 이에 아이는 13년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 그 모든 것을 무기 삼아 그들에게 보란듯이 복수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사건,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사람들을 교묘한 방식으로 끌어들인다. 무카이 미유키그녀의 도덕성에 대한 잣대는 어디서부터 줄을 그어야 할까
 
6.
불우하다는 말로는 모자랄만큼 진흙탕같은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살아왔다. 다행히 좋은 지능과 영리함 덕분에 고등학교 진학을 못했음에도 국립대에 합격해 교사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한때 존경했던 스승과 친구였던 동료 교사롤 보고 교사의 꿈을 접었고 자신의 운명에 복수하기 위해 자신을 버렸다새로운 미래 재설계를 위해 선택한 살인과 살해범이라는 직함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실행한 복수와 미래는 '도덕'이라는 명제에서 판단한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소설은 사건과 상황을 펼쳐놓고 독자에게 끊임없이 '도덕'과 그에 대한 선택의 여부를 묻는다이러한 선택은 옳은가이 선택이 도덕적인가? 그리고 우리가 도덕이라고 착각하는 것들이 과연 도덕인가?
 
159.
"무카이가 마사키를 죽였다는 판결, 그리고 무카이 하루토의 죄를 판가름한 것은 과연 법이라는 이름의 규칙일까요? 아니면 도덕일까요?"  

  
  
법은 다함께 잘 살자고 만든 실질적 규칙이고, 도덕 또한 같은 목적을 두었지만 실재하지 않을 뿐이다. 위의 정의에 언급되어 있듯 도덕은 개인 혹은 사회가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법이든 도덕이든 사..이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 만들어 놓은 정의定義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시 여긴다. 그리고 '자유롭고 조화로운 인간의 삶'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로부터 구속 당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도덕이 없는 건가?  
 
우리가 지키고자 노력해야하는 것, 도덕보다는 '인간성'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소설 속으로
 
420.
지금껏 만나 온 수많은 인물들. 봇코와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남자 회사원, 그리고 우치노 사토미. 그들 덕에 나는 지금껏 연명해 왔다. 때로는 선을 주장하고 떄로는 악을 날조해 가며 먹고살아 왔다
 
475.
"교사가 되거나 회사를 창업해서 성공해도 과거는 지울 수 없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기르던 강아지를 잡아먹은 과거와 여동생이 매춘을 한 과거도. 녀석은 결국 깨닫고 말았어. 그런 인간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를."
다키타의 모습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하는 길을 선택한 거야. 더욱 비참하고 잔혹한 자신을 만들어서 ', 실컷 즐기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선보이는 길을."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길을
 
482.
"살아가기 위해 싸우는 것...... . 그것 말고 명확한 의미의 도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여기 있어. 너와 나 사이에. 우리는 가끔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이러니저러니 지껄이고 있어. 그러니 무의미해도 지켜야 하는 게 바로 도덕 아닌가?" 
 
495.
'모두 씨'가 아닌 '당신'이라는 존재.

지금껏 만나 온 수많은 인물들. 봇코와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남자 회사원, 그리고 우치노 사토미. 그들 덕에 나는 지금껏 연명해 왔다. 때로는 선을 주장하고 떄로는 악을 날조해 가며 먹고살아 왔다. - P420

"교사가 되거나 회사를 창업해서 성공해도 과거는 지울 수 없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기르던 강아지를 잡아먹은 과거와 여동생이 매춘을 한 과거도. 녀석은 결국 깨닫고 말았어. 그런 인간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를."
다키타의 모습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하는 길을 선택한 거야. 더욱 비참하고 잔혹한 자신을 만들어서 ‘자, 실컷 즐기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선보이는 길을."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길을. - P475

"살아가기 위해 싸우는 것...... . 그것 말고 명확한 의미의 도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여기 있어. 너와 나 사이에. 우리는 가끔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이러니저러니 지껄이고 있어. 그러니 무의미해도 지켜야 하는 게 바로 도덕 아닌가?" -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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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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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말 괜찮아?

 

입에 착착 붙는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마음에 착착 붙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에서 언급된 도서들 중에서 두세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읽은 책이라 발췌한 문장 앞뒤 문맥의 흐름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 더 깊이 공감했다. 

 

4부로 나눠지는 에세이는 나의 감정, 시간, 관계, 세계를 살피는 시간을 갖는다.

누군가가 물어주는 안부, 어느 이에게 전하는 위로, 온전히 나를 다독여줄, 열정을 부어주고 충전할 나만의 시간과 공간, 때론 혼자이고 싶지만 부대끼고 귀찮은 그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그래서 쉽지 않은 타인과의 관계, 오롯이 나로서 설 수 있어야만 함께 하는 것이 더 자유스러울 수 있기에 나를 들여다봐야하는 나의 세계.

 

작가는 살면서 종종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 또 그 안에서 위로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다정하게 건드린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혹은 겪어봤을 크지 않은 상처들에 밴드를 붙여준다고 해야 할까...... . 

 

 

읽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도 해본다. 

 

굳이 어른으로 살거나 훌륭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매 순간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최선을  다해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걸 테니까요. 

p129

 

훌륭하지 않아도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이미 충분히 가치있는 인생이라는 말에 많이 공감한다. 다만 나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그것도 좋은 어른으로 살고 싶다. 젠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래서 내가 어느 시절 무서울 때 잠시 숨어 기댈 이가 있었던 것처럼 나도 그리해줄 수 있는 믿음직한 어른이고 싶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오래 전에 읽었던 책들을 단편적으로나마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장 그리니에가 쓴 <카뮈를 추억하며>에서는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에 쓴 카뮈의 '찬사의 글'이 떠올랐고, 허수경 시인의 시 들이 그리웠다. 그리고 아릿하게 읽었던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묵직한 감흥을 안겨주는 나의 완소 애정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등등등.

뒷표지를 덮고 그 책들을 다시 읽고 싶어 책장 앞을 서성인다.

 

발췌한 문장들이 모두 좋았지만, 무척 좋아하는 에세이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저)>의 일부분을 옮긴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오로지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떨어져 있어서 빈 채로 있는 그 여백으로 인해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 그리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 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나무들이 올곧게 잘 자라는데 필요한 이 간격을 '그리움의 간격'이라고 부른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절대 간섭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거리, 그래서 서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거리.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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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Philos Feminism 6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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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946  이슈테반 프리드먼

1946-1953  이슈테반 팔루디

1953-2004  스티븐 팔루디

2005-2015  스테파니 팔루디 

 

수전 팔루디가 2004년부터 트랜스젠더 아버지를 10여년간 추적한 기록이다. 남성 유대계 헝가리인에서 미국인으로, 여성 헝가리인의 삶을 살아왔던 아버지의 역사를 그와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거꾸로 되짚어 간다.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자신의 여성성을 찾고 싶었던 트랜스섹슈얼인 아버지와 이 시대 페미니스트의 대표선수 격인 수전 팔루디의 서로에 대한 관점이었다. 가끔 지인 중 페미니스트에게 성전환 수술한 여성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어떠냐고 봤을 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많은 페미니스트 들이 트렌스젠더 페미니스트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트랜스젠더는 페미니스트 들이 탈코르셋을 외치는 와중에 왜곡된 여성성을 더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이러한 나의 궁금증은 의미가 없었다. 스테파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기도 하고, 이 책은 페미니즘과는 별개(?)인 젠더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부분들이 더 크다. 수전 팔루디 또한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는 많지 않았다. 

 

2004년 7월 어느 오후, 아버지로부터 '사랑하는 부모'라는 서명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첨부된 이메일이 도착했다. 사반세기 가깝게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아버지는 자신이 살고 있는 헝가리에 한 번 방문하라고 써있다. 

 

수전이 10대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고압적이며 어머니가 법원에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할 정도로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왜 여성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왜 70대에 굳이 성전환 수술을 한 것일까? 수전은 2004년 8월에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헝가리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녀는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추적한다.  

 

페미니즘이란, 계속되는 만트라에 따르면, '산텍'에 대한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선택했을까?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것, 내가 조절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역사로부터 이룩해낸 것이 아닐까? 아내와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남자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 때문에 나는 여성평등을 위해 움직이는 운동가가 되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은 아버지가 겪은 '정체성 위기'의 잔해, 자신이 선택한 남성적인 페르소나를 주장하지 못했던 좌절에서 태어났다. 취미이자 피난처였던 페미니즘은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내가 도망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p99

  

 

이슈테반 프리드먼.

유대계 헝가리인으로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둘 다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각자의 사업과 사교생활에 바빴으며, 어린 아들을 가정교사에게 방치했다. 부모와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이슈테반. 유대인이 아닌 헝가리인(마자르인)으로 살았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프리드먼 집안 사람들은 가차없이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슈테반은 살아남아 미국으로 떠났고, 유대식 이름을 버리고 개명하여 미국에서 가정을 꾸렸지만 안정을 찾지는 못했다. 헝가리로 돌아온 그는 스테파니 팔루디로서 새로운 삶을 산다.  

 

그녀 삶의 이력을 쫓다보면 그녀가 고압적이고 독재적인 성향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모습은 어린시절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스테파니는 아버지, 어머니 두 사람 모두에게 방치됐었는데, 유독 어머니를 미워하고 비난하며 임종의 순간까지 외면한다. 그에비해 아버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 수전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페미니즘을 선택했다면, 스테파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여타 다른 여인들처럼 되고 싶었던 것일까?  

스테파니는 성정체성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잘 동화되었던 헝가리 유대인이였건만 히틀러가 득세하자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용소로 보내진다. 유대인이었지만 마자르인으로 살았던, 그러나 결국 국가로부터 배격된 민족 정체성까지 혼란을 겪는다.

 

"오래된 습관을 없애야 해. 그러지 않으면 언제나 이방인이 되고 말지. 이... 이 소속감 없는 불안 속에서 말이야."  

p145

 

"사람들은 구분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경계에 있는 사람들조차 구분이 필요하죠. 그래야 경계에 있을 수 있잖아요.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멜) 

p217

 

개인의 역사, 모든 개인이 저마다 경험하는 특별한 투쟁, 실망, 삶에 대한 열망, 이 모든 것이 '정체성'이라고 이름 붙은 하나의 유리병에 깔끔하게 들어갈 수 있을까?

p228

 

스테파니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 위험한 수술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전은 아버지의 담당의인 미슐레이 박사를 만나서 수술 이후 아버지의 성격에서 어떤 차이를 발견했냐고 묻는다. 그는 스테파니가 '행복한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그것이다. 얼마를 더 살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가장 마음 아프게 읽었던 부분은 자녀에 대해서 언급하는 두 부녀의 대화였다. 스테파니는 아이(자식)가 없다면 인간으로서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수전은 존경했던 한 여성이 낙태 수술 이후 평생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임신을 중지한 자신의 삶을 회복시키고 젊은 페미니즘을 키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고압적인 독재자이자 폭력자일 뿐만 아니라 가정을 버렸다는 사실이, 수전은 아이러니하다. 이 대화의 연장선에서 수전은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결혼했는지, 그리고 아버지와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에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이처럼 수전은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그의 내밀한 부분까지 알게 되며 아버지가 아닌 인간 스테파니(스티븐) 팔루디를 바라본다. 

 

25장의 제목이 <탈출>이다. 아마 이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테지만, 나는 문득 수전은 스테파니를 규정짓는 것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수전은 치매는 자아의 해체이자 정체성의 사망이라고들 하지만 오히려 스테파니로서는 말년에 앓았던 치매로 인해 그녀를 평생 괴롭혀온 피해망상과 과거의 현실들, 외면하려 했던 역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까닭은 단순히, 성전환자인 아버지를 페미니스트인 딸이 들여다본다는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헝가리 근현대 역사, 그 안에서 유대계 헝가리인들이 겪는 민족 정체성 혼란과 배신감, 트랜스젠더들의 성정체성 혼란과 심리적 고통 그리고 수술의 과정에서 오는 위험(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 등 일반적으로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스테파니 팔루니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수전 팔루디의 필력이 만나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부녀의 티격태격 하는 정다운(?) 말다툼이 웃음짓게 하고, 무겁게 누르는 역사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호기심을 넘은 진지한 궁금증 혹은 숙제 비슷한 고민 몇 가지가 생겼다. 트래스젠더, 페키니즘의 고정관념을 접어두고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트랜스섹슈얼은 ‘이전의‘ 자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리고 당신의 과거를 삭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그 성별이라고 믿는 성별처럼 ‘보이도록‘ 신체를 변형시킴으로써 당신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완고하고 성차별적인 이해에 동조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은 그런 변형을 통해서 생물학이 운명이 아님을, 그리고 ‘트렌스‘는 젠더에 처진 경계선을 단순히 건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인가?​ - P230

히르슈 펠트가 인정한 하나의 정체성은 ‘범인권주의자 panhumanist‘였다.

"당신은 어디 소속입니까? 당신은 무엇입니까?"는 정말로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당신은 독일인인가요? 유대인? 혹은 세계시민?"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의 대답은 어느 경우에도 ‘세계시민‘일 것이다, 혹은 ‘그 세 가지 모두‘이거나.​


- P249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대교도인가 기독교도인가?

헝가리인인 미국인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너무 많은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누워 있는 몸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이 있구나.



삶과 죽음.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 P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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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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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도덕. 도덕의 기준을 어디에 두었을까.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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