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 심리학 카운슬러인 기시미 이치로가 우리나라 영화 열아홉 편을 끌어와 등장 인물들과의 상담을 통해 사랑, 결혼, 부부, 부모, 자아, 인생, 관계에 대해서 짚어본다. 책에서 언급한 영화 중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와 <버닝>을 제외하면 모두 본 영화라서 정황을 알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영화의 내용을 모른다고 해서 책을 읽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자의 <미움 받을 용기>가 기억에 남아 있는 독자라면 만족하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저서를 아껴준 타국 독자들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 역사,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 이 글을 쓰기 위해 한국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제들을 다뤄보자는 생각을 실행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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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결혼을 하고, 결혼 후에는 내 집 마련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듯 현재 보다는 미래를 설계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함께 있는 현재가 충분한지를 먼저 들여다보라고,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한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어 '사랑이란 상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며,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외일수도 있지만 미래가 필요 없는 게 사랑이라고.
결혼은 완전한 평등을 토대로 해야하며 대상을 향해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것도, 행복하게 해달라는 것도 올바른 결혼은 아니므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신뢰를 쌓고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와 같은 관계 방식은 연인이나 부부가 아니더라도 모든 관계에 있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상대가 완전한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동등한 대화를 이끌 수 있다. 나는 상사니까, 부모니까, 선생이니까, 선배니까, 어른이니까처럼 경험과 연륜이 많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만 버린다면 가정과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관계 문제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동의했던 내용 중 하나는 지금 겪는 문제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이를 역사적 문제에서 왜곡시켜 적용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현재의 내 모습에서 누구를 탓해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물론 유년 시절의 가정폭력을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며 이는 그것과는 별개다). 문제 해결의 중심을 타자에 놓으면 해결은 요원하다. 그 중심에 자신을 놓아야만 길이 보인다. 남 탓은 해결을 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동의 내용 중 또 하나는 자신으로서 살라는 것. 엄마, 아빠,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아닌 그 자신으로. 자식을 보호하지 말고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기 방어기제를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비난이 두려운 건 아닌지, 아이가 상처받고 책임져야 할 부분을 자신의 몫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는 온전한 자립이 아니라 그저 부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반항에 불과한 건 아닌지, 진정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부딪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부모는 아이의 이런 준비를 못미더워 보호라는 핑계로 일방적 강요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공감했던 부분은 우리는 행복과 성공을 동일하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행복과 성공이 다름은 분명히 알지만, 우리는 대체로 (경제적으로)성공한 사람은 행복하고, 돈이 많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는 거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친구들을 만날 때 가끔 좋은(?) 차를 타고 거침없이 돈을 쓰는 이를 보면 뭔가 걱정없이 살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작은 행복과 대비되는 큰 행복이란 없으며 큰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닌 성공 혹은 행운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때론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변명을 늘어 놓지만, 변명 이전에 그 선택을 자신이 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만 어느 때에라도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있다. 실패가 온전히 내 몫이 될 때, 언젠가 찾아오게 될 성취감 또한 온전히 내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나의 실패를 내 것으로 인정하며 살고 있는가?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지금의 이 삶이 실전이다. 그래서 언젠가 더 괜찮아질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를 충만하게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