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살아오면서 어떤 호의와...... 얼마만 한 경멸과 때로는 악의를 만나왔기에, 자신을 지키는 부적을 온몸에 그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p136

​

아파트 10층 한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그 집외에 다른 집은 그을름조차 없고, 거주자는 거실 창 밖으로 추락사한 아버지와 가해자라고 보여지는 딸이 있다. 그러나 상처 하나 없는 딸이 가해라고 하기에는 정황상 맞지 않다. 

 

자신이 혼자 살던 빌라에서 피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 33세 K 씨. 발견 당시 창문 유리창은 부숴져 있었지만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어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정도만 드나들 수 있는 정도다. 살림은 쏟아지고 사방에 피가 튀어 격투의 흔적은 역력한데,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다. 그런데, 경찰은 두 손목이 등 뒤로 둘러진 채 가슴에서부터 발목까지 청테이프로 묶여있는 한 여성을 옷장에서 발견한다. 이 여성이 범인일까? 그러나 여성에게서 격투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집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Y 씨. 그가 죽은 현장은 거실 바닥에 흥건하게 물어 퍼져나가고 거실 벽면의 벽지가 벽시계 높이까지 젖어 있었다. 감식반이 벽지를 쓸어내리자 묻어 나온 하얀 가루에서는 짠맛이 느껴졌다. 누군가 바닷물을 집 안에 채워넣었단 말인가? 

 

강제로 아이와 떨어져 긴 세월 동안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온 시미. 남편의 훼방으로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만날 수 없다가 제대 이후 찾아갔을 때는 아들이 엄마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다. 정작 엄마가 필요할 때는 곁에 없었다고, 아빠를 혼자 견뎌냈다고, 그래서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만 듣고 돌아섰다. 

​

 

우연히 신입사원 화인의 뒷목 아래 부분에 새겨진 타투를 보고 관심이 생겨 그녀로부터 소개 받은 타투이스트를 찾아간 시미. 예상과는 다르게 쥐색 양복을 입고 있는 삼십대 중후반의 남자. 그는 왜 장년층이 입을 법한 넉넉한 양복을 입고 있으며 자신의 작품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걸까? 

 

그리고 시미는 왜 나이 쉰이 넘어 문신가를 찾아갔을까?  

 

​

​

​

■■■■

​

소설에서는 가정폭력, 직장내 폭력 및 갑질, 스토커로 인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피해자에게 있어 그 고통은 아물어 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질 때마다 바늘로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찌르는 듯한 고통을 전달하는, 영원히 굳지 않아 딱쟁이가 될 수 없는 상처다.

​

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순간순간 불쑥 올라오는 분노의 충동은 어쩔 수 없다. 피해자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터져나오는 열망을 참고만 있어야 하는가.

 

우리의 몸에는 얼마나 많은 상흔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을까.

​

​

화인의 문신을 바라보는 시미의 시선. 

'어쩔 수 없어, 사는 게 다 그래' 혹은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외면과 핑계와 폭력을 가하는 (방관자를 포함한)가해자와 약자들의 아픈 외침을 향한 작가의 시선.

​

150쪽이 채 되지 않은 작은 소설이 웬만한 장편소설 이상의 임팩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도 작가가 놓지 않은 사람을 향한 온기. 역시 구병모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

 

​

​

[소설 속으로] ​

​

132.

하나만 딱 새기고 끝나지 않는 분들이 계셔요. 일단 시작하면 대여섯 개까지는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 데 없이 자기 몸을 다 채우도록 그려 놓는 사람도 있지요. 

  

148.

스스로가 빛나지 않는다면, 시미는 다만 몇 발자국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

​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p138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P1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