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0층 한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그 집외에 다른 집은 그을름조차 없고, 거주자는 거실 창 밖으로 추락사한 아버지와 가해자라고 보여지는 딸이 있다. 그러나 상처 하나 없는 딸이 가해라고 하기에는 정황상 맞지 않다.
자신이 혼자 살던 빌라에서 피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 33세 K 씨. 발견 당시 창문 유리창은 부숴져 있었지만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어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정도만 드나들 수 있는 정도다. 살림은 쏟아지고 사방에 피가 튀어 격투의 흔적은 역력한데,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다. 그런데, 경찰은 두 손목이 등 뒤로 둘러진 채 가슴에서부터 발목까지 청테이프로 묶여있는 한 여성을 옷장에서 발견한다. 이 여성이 범인일까? 그러나 여성에게서 격투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집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Y 씨. 그가 죽은 현장은 거실 바닥에 흥건하게 물어 퍼져나가고 거실 벽면의 벽지가 벽시계 높이까지 젖어 있었다. 감식반이 벽지를 쓸어내리자 묻어 나온 하얀 가루에서는 짠맛이 느껴졌다. 누군가 바닷물을 집 안에 채워넣었단 말인가?
강제로 아이와 떨어져 긴 세월 동안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온 시미. 남편의 훼방으로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만날 수 없다가 제대 이후 찾아갔을 때는 아들이 엄마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다. 정작 엄마가 필요할 때는 곁에 없었다고, 아빠를 혼자 견뎌냈다고, 그래서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만 듣고 돌아섰다.
우연히 신입사원 화인의 뒷목 아래 부분에 새겨진 타투를 보고 관심이 생겨 그녀로부터 소개 받은 타투이스트를 찾아간 시미. 예상과는 다르게 쥐색 양복을 입고 있는 삼십대 중후반의 남자. 그는 왜 장년층이 입을 법한 넉넉한 양복을 입고 있으며 자신의 작품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걸까?
그리고 시미는 왜 나이 쉰이 넘어 문신가를 찾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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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가정폭력, 직장내 폭력 및 갑질, 스토커로 인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피해자에게 있어 그 고통은 아물어 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질 때마다 바늘로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찌르는 듯한 고통을 전달하는, 영원히 굳지 않아 딱쟁이가 될 수 없는 상처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순간순간 불쑥 올라오는 분노의 충동은 어쩔 수 없다. 피해자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터져나오는 열망을 참고만 있어야 하는가.
우리의 몸에는 얼마나 많은 상흔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을까.
화인의 문신을 바라보는 시미의 시선.
'어쩔 수 없어, 사는 게 다 그래' 혹은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외면과 핑계와 폭력을 가하는 (방관자를 포함한)가해자와 약자들의 아픈 외침을 향한 작가의 시선.
150쪽이 채 되지 않은 작은 소설이 웬만한 장편소설 이상의 임팩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도 작가가 놓지 않은 사람을 향한 온기. 역시 구병모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소설 속으로]
132.
하나만 딱 새기고 끝나지 않는 분들이 계셔요. 일단 시작하면 대여섯 개까지는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 데 없이 자기 몸을 다 채우도록 그려 놓는 사람도 있지요.
148.
스스로가 빛나지 않는다면, 시미는 다만 몇 발자국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