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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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내가 묻힐 관을 아버지와 내가 만들어야 해요."

나는 이 책을 오해했다. 처음 소개글을 접했을 때 암투병 중인 아버지의 관을 부자가 만드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고, 그래서 내용이 제법 무거울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관을 준비하는 이는 이제 쉰을 바라보는 아들이고 목수의 달인인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며, 아버지도 별 말 없이 흔쾌히 그 요청을 받아들이며 그가 세상과 작별한 이들을 추억하는 과정은 담담하지만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제 두 사람은 '영혼의 집(the long home)' 만들기를 시작한다.

나의 예상보다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는) 심하게 좋았다. 내가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오면서 가졌던 수많은 감정들, 부모님과의 관계, 연로하신 부모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마음 등 공감을 넘어 저자의 글에 이입하면서 그들의 자리에 나와 부모님을 세워두면서 읽었다.

저자는 미국 오하이오의 소도시에서 고향을 떠나지 않고 가정을 꾸리고 집을 고치며 가족, 친구들과의 연대를 이어가면서 살고 있다.
저자는 장인의 죽음 직후, 처음 관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내와 가볍게 주고받던 얘기에서 시작해 결국 자신이 누을 관을 짜자고 결심하지만, 사실 그의 진짜 속내는 암을 진단받은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만드는 행위에 있었다.

책은 부자가 관을 만드는 과정만 담고 있지 않다. 저자의 어머니의 죽음, 절친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그들과의 추억과 유품, 아버지와의 대화까지 중년의 남자가 아들로서, 친구로서 갖는 그리움, 소회를 풀어놓는다. 그의 단상들이 한낱 지나가는 독자에 불과한 나의 세세한 감정 들까지 끄집어낼 줄은 몰랐다. 읽는 동안 좋은 시간이었다.

이 책은 저자 아버지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되었다. 여든여섯 살에 돌아가신 담백하고 자상했던 분의 명복을 빈다.
  



■ ■ ■ ■


저자는 '영혼의 집 만들기' 프젝트에서 가장 심란하고 두려운 진실은 언젠가 아버지는 돌아가실 거라는 사실이라고,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더불어 자신은 아버지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을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중년의 아들이 아버지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에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부모가 정년퇴직을 하고 몸과 뇌가 허물어져가면 자식들은 그들을 신뢰하는 부모가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초단위로 바뀌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퇴물이 되어 어느새 그들의 경험과 연륜은 폐기처분 시켜버린다. 나도 시대를 쫓기에 바빠 노년의 혜안을 무시하거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됐다.

어머니의 죽음과 유품을 정리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인간이 삶을 지탱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존재감이라는 데에 다시 긍정하게 한다.  

114.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할 일을 남겼는데, 아버지에게 책임질 일이 있다는 것은 선물과도 같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옷장을 비우고, 묵주를 분류하여 정리하고, 보석을 감정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정장 외투와 구식 가운들은 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연극부에 기증했다. 아버지는 복잡한 삶을 정리하려고 열심히 일했다. (...) 프로젝트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아버지는 온 마음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며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한 과정, 즉 끊임없는 움직임은 내가 아버지를 알아온 이래로 아버지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어느 어르신이 쓸모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게 몸서리쳐지도록 싫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떤 형태로든 타인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전혀 미치지 못하는 삶은 슬프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내의 유품을 정리함으로써 자식들의 물리적.감정적 소모를 도왔다. 
 
 
저자의 어머니가 그에게 했다는 마지막 한 마디,

"외로워지지 마."


노년의 부모 마음은 다 비슷한가. 삶의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자식이 외로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영원히 혼자만의 세상으로 떠날 당신보다 남아 삶을 버텨내야 하는 자식의 고단함을 더 걱정하는.
   
 
읽으면서 내내 부러웠던 것은 그와 그의 아버지의 작업실이었다. 몸을 써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오랜 로망이기도 하다. 서울 토박이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지만 대식구였고, 탈 서울 이후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생활을 적응하는 데에만 3년 이상이 걸렸지만, 온전한 귀촌 생활은 자신이 없어 마음만 맴맴 돌고 있다(내 친구는 아직 덜 아쉽고, 덜 고픈거라고 제대로 찌른다).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잡생각 없이 몸(노동)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그 시간의 가치를 알기에 요가와 등산을 하지만 노동의 맛과는 또 다르다.

209.
집에 나오면서 전동 대패를 가지고 왔는데, 그걸 작업대에 내려놓은 다음 봉지에 담아온 점심을 그 옆에 나란히 두었다. 할 일을 가지고서 여기 혼자 있는 게 기뻤다. 그곳이 어디든 일을 가지고 혼자 있는 게 나는 좋았다. 나는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싶었다. 잡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노동의 니린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저자가 아내와 나눈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죽은 이가 그리울 때는 그에 대한 추억을 말로 나타내야한다는 것. 그리울 때 그립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삶에 작은 에너지가 된다. 
 
죽음에 대해 부모와 담담히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슬픔이 줄어든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만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모르는 척 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슬픔은 독이 아닌 정화가 되지 않을까...... . 
  




나는 가을날 떡갈나무 같다

떡갈나무 이파리 죽어서 땅에 떨어진다
내 몸 죽어서 따응로 돌아가듯이

그러나 떨갈나무 여전히 살아서 봄을 기다린다
내 영혼도 그렇게 살아남아
영원한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2018년 5월 아버지의 시

"내가 묻힐 관을 아버지와 내가 만들어야 해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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