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삼국지연의보다 재미있는 정사 삼국지 1~2 세트 - 전2권 - 20만 유튜브 독자들을 소환한 독보적 역사채널 써에이스쇼의 삼국지 정사 삼국지
써에이스 지음 / 원너스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무협지라고 여긴 <삼국지연의>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고,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두 해 전쯤 읽다가 중간에 멈춤 상태로 잊혀졌다.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어지간하면 알만한 적벽대전 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작은 전투들도 많아서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지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둔 상태로 숙제처럼 저 깊은 어딘가에 남아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유튜브를 보지 않는 나로서는 생소한 작가인데, 꽤 유명한 분인 듯.
일단 재밌는 삽화가 눈에 들어오는데, 사망자는 눈을 X처리, 죽지 않고 잡히면 포승줄 등 웬만한 눈치면 짐작할 수 있는 센스있는 삽화가 일단 한 몫한다. 글은 최소한으로 해 구구절절한 내용들을 줄이고, 인물의 설명은 각주를 달았다. 무엇보다 위.촉.오를 중심으로 국가가 아닌 시대순으로 진행을 해 역사지도를 그리기에 수월하다. 그래서 100년여의 방대한 내용이 단 두 권에 들어가 있다.  
 
한나라 영제 재위, 184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토벌대에 황보숭, 노식, 동탁, 조조, 손견, 유비 등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1세대에 속하는 동탁, 유비, 조조, 여포, 원소, 손견 등, 2세대에 손권, 제갈량 등, 3세대의 조조의 아들들(조비 외), 사마의, 육손 등, 4세대에 유선, 제갈각, 사마의의 아들들(사마소 외), 손권의 아들들 등이 있다. 그 시대에 칠순을 넘겨 살았던 영웅도 있었고 허무하게 요절한 이들도 있어서 인물들이 활동했던 시대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 사실 세대를 구분하는 건 게 의미는 없다. 그러나 100년의 역사니만큼 살아온 순서를 일렬로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하다. 
 
복잡한 역사적 사건을 정리하는 건 무리가 있고, 인물에 대한 느꼈던 바를 조금 짚어본다.
 
삼국시대 초반에 등장하는 동탁과 여포. 거친 성정의 동탁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제일 비호감인 여포. 아무리 난세라지만 그렇게 출중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의리 없어, 몰염치해, 간사해,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박쥐의 전형(박쥐 미안). 그러고 보면 본인은 살겠다고 한 짓이 결국 딱 죽기 좋은 짓만 한 셈이다.
동탁과 여포가 죽은 후 본격적인 삼국시대, 천하삼분지계가 시작된다. 
 
읽으면서 가장 고개를 갸우뚱했던 인물은 유비.
전투에서 선봉을 서지도 않고, 딱히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본인의 무예가 출중하지도 않고, 심지어 용감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전시적 행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주변에 사람이 많다. 도망은 어찌나 잘 다니는지(적벽대전 중에도 이길 생각보다 일단 도망갈 준비를 먼저 할 정도로) 다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디로 도망가든 일단 이 사람을 다 받아준다. 뭐지?
그런데 읽을수록 사람 됨됨이가 조조, 손권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조조를 피해 달아나야하는 유비는 10만 명에 달하는 백성과 함께 떠난다.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어 부하들이 백성을 버리라고 하지만 유비는 차마 그러지 못한다. 결과적으로는 처자식까지 버리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다른 권력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동맹과 배신을 반복하는 경쟁자들의 관계에서도 가능한 신의를 지켰고 항복한 적장에게 재산을 돌려준다. 오나라의 주유는 유비를 가리켜, '용맹하여 영웅다운 자태를 갖고 있으며, 몸을 굽혀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평했다. 용맹은 모르겠지만, 주유의 말대로 신하와 논의는 했어도 휘둘리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단정하고 검소한 제갈량이 유비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만 했다.
한나라의 유방이 개인적인 능력에서는 항우를 당해낼 수 없었지만, 인재를 두루 등용해 승자가 된 사실을 떠올려보면, 유비 또한 주변의 사람 덕에 초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게 아닌가싶다.  참고로 유비가 제갈량을 얼마나 무한 신뢰했는지는 그의 유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선생의 재능은 조비의 열 배에 달하니 필시 나라를 태평하게 안정시키고 대업을 이루기에 충분합니다. 만약 내 아들이 보좌할 만하면 보좌하시고, 그 아이가 재능이 없다면, 그대가 스스로 취하도록 하시오."
"착한 일을 작다고 아니하면 안되고 악한 일은 작다고 하면 안된다. 제갈량을 어버이처럼 섬기며 그와 함께 일을 처리하라."
제갈량에 대한 신뢰 뿐만 아니라 유비의 성정을 짐작케 한다.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보다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조조가 아닐까. 위나라의 기틀을 닦았고, 세상과 돌아가는 판세를 읽을 줄 알았던 사람. 조조에 대해서 <위서>와 <조만전>의 평가는 전혀 다른데, 두 문헌을 모두 읽어보면, 검소하고 남에게 잘 속지 않으며 원칙을 준수하고 전투에 임할 때와 대치할 때의 자세가 달랐다. 다만 경박한 면이 없지 않아 자신보다 잘난 신하 꼴을 보지 못해 가혹한 면도 있었던 듯 하다. 조조가 후대에 크게 좋은 인물상으로 남지 않은 이유는 아마 엄청난 결과에 비해 호걸다운 면모는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의 유언을 읽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된다.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으니 장례가 끝나면 모두 상복을 벗고 군을 이끄는 장수들은 주둔지를 떠나지 말라. 내 시신에는 평상복을 입히고 무덤에는 금은보화를 묻지 말라."  
 
사실 처음에 호감을 가졌던 사람은 손권이었다. 진수는 그를 '몸을 굽혀 치욕을 참으면서 재능 있는 자를 임용하고 지혜로운 자를 존중했고 비범한 재능이 있었으니 영웅 중에서 걸출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권력을 손에 쥐면 어쩔 수 없는건가. 귀는 가벼워지고, 사람 보는 눈은 어두워지며, 권력 후반에는 공포 정치까지. 가진 게 많아지니 지킬 게 많아진 때문이려나. 외형상에 불과했다하더라도 초나라와는 비교적 동맹관계를 잘 유지했었고, 상황이나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했던,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젊은 시절의 그가, 책장을 넘기면서 점점 그리워졌다. 
 
사마의는 권력 1인자가 되어 그 당당했던 조씨 가문을 끌어내리고 그의 후손ㅡ사마염ㅡ이 황제에 등극해 진니라를 세워 삼국시대를 마감한 터를 닦은 장본인이다. 우리나라의 연개소문을 떠올리면 좀 이해가 수월하려나. 성정은 조금 다르지만 권력을 취하고 실행하는 과정까지는 닮아 있다. 
 
씁쓸한 황제 촉한의 유선. 유비의 아들로서 성정이 너그러운 건 아버지와 닮은 듯 하나 결단력이나 주관이 뚜렷한 건 닮지 못했나보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유선에게 인상적인 모습은 보지 못했다. 위, 오나라가 권력다툼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면 유선은 내부적으로 혼란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래도록 황제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물론 제갈량을 비롯한 유비를 따르던 신하들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촉에 항복하고 신변의 위험을 감안해도, 한때 황제였던 자의 가벼움이라니...... . 
 
그외에도 육손, 제갈각, 강유 등 수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있지만 그 이야기를 다 풀어놓자면 책을 그대로 옮겨와야 할 지경이다.  
  
 
재미있는 사실.
외모도 출중했다는 제갈량의 부인은 박색이었다고. 그러나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으며 생활에 필요한 기구를 발명해서 썼다고 한다. 제갈량은 234년 북벌을 감행했을 때 운송수단인 수레 '유마'를 발명했다는데, 그야말로 부창부수. 
 
궁금한 사실.
유비가 죽고 유선도 크게 북벌의 욕망이 크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제갈량은 왜 끊임없이 북벌을 시도했을까? 실패는 크고 성공은 미약했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북벌. 같은 꿈을 꾸었던 주군은 죽고 없는데, 젊은 주군은 그 그릇이 되지 못함을 제갈량이 모르지 않았을텐데, 왜였을까? 대업을 이루라는 주군의 말을 이뤄주고 싶었던 거였을까? 
  
 
<정사 삼국지>를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워밍업으로서는 최고가 아닐까싶다. 진수의 완역본을 다시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옆에 이 두 권을 놓고 참고해가며 읽으면 훨씬 이해가 수월할 것으로 예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체와 고흐 :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 전통과 도덕적 가치를 허문 망치 든 철학자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공공인문학포럼 엮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년여 정도, 서양철학을 소홀히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외국인이 쓴 사회과학 도서를 읽고, 미뤄놓은 동양철학 재독에 여력이 없기도 했다.
(신간에 정신팔려...가 진실에 더 가깝겠지만.) 
 
오랜만에 니체의 글을 만났다. 그것도 고흐의 그림과 함께. 글 모음이라 개인적으로 감질나게 읽을 수 밖에는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그의 글을 읽으니 좋았고 아직 니체의 글을 접하지 못한 이라면 이 책이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한두 해 전에 고흐 평전을 읽은 터라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그의 그림이 새삼 더 애틋하다. 예상보다 많은 고흐의 작품이 실려 있어 특별히 고흐를 애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처음 보는 작품도 있을 수 있어 좋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한때 얼마나 사랑했던가. 펼치기만 해도 설레었던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일었다. 
 
 
[니체]  
 
54.
양심을 따르는 것은 의지를 따르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실패했을 경우 양심은 자기 변호나 기분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은 극소수인 데 반해, 자신을 양심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주 많다. ㅡ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에 '남들도 다 그래'라는 편한 핑계를 대며 스스로 양심을 합리화 시키며 살고 있는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잘살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물론 남들보다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그 욕구로 인해 타인의 고통은 모르쇠로 일관한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56.
자서전을 통해 생존 가운데 체험하고 탐구한 것뿐 아니라 자신이 믿었던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하겠다는 전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ㅡ 반시대적 고찰 
: 어린 시절 적지 않은 위인전을 읽으며 자랐다. 지금의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인전도 부족해서 본인이 직접 쓴(물론 다수가 대필작가를 통해서 쓰겠지만) 자서전까지 챙겨 읽는다. 우리는 왜 어린 나이부터 위인전을, 청년이 되어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을 읽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본인이 주체가 아닌 이상적인 삶의 기준을 무의식적으로 강요받는 건 아닐까?
 
110.
내가 동정을 비난하는 까닭은 그것이 수치에 대한 감정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타인을 동정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무례한 짓이다. 동정은 운명을 파괴하고, 치명적인 고독에 특권을 부여하며, 거리낌 없이 죄를 용서한다. 인간은 자신이 누군가를 동정할 때 느껴지는 고귀한 감상 때문에 이 무례한 괴물에게 도덕의 관념을 덧씌웠다.ㅡ 이 사람을 보라 
: '동정'이란 남의 어려운 처지를 알아주거나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동정을 받는 대상이 어떠한 관점에서(혹은 전반적으로)는 자신보다 낮은 처지라는 것을 전제한다. 그래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우월의식을 품게 된다. 동정은 공감과 배려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우리는 종종 이들을 구분없이 사용하곤 한다. 동정을 무례한 괴물에게 덧씌운 도덕적 관념이라고 말하는 니체의 말에 동의한다.
옆에 나란히 한 그림, 고갱에게 헌정했다는 <자화상>을 본다. 이 '동정'이라는 단어가 고흐에 얼마나 친밀하다고 여기는가. 그러나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그를 누가 감히 동정할 수 있나.
 
122.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오늘날에도 인간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분리된다. 만약 하루의 3분의 2정도를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그가 정치가이든 상인이든 혹은 관리나 학자이든 그저 노예일 뿐이다. ㅡ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나는 노예인가, 자유인인가! 니체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겠지만) 노예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싶다.
 
156.
현대인들은 인간의 고민을 위선이라고 비난한다. 우리는 너무 빨리 결정하고 있다. 고민이나 사색은 그저 걸어가면서 해치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점차 품위를 상실하고 있다. 인간이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단지 기계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 머릿속에 이미 기계가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 기계의 성능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품위가 결정되는지 모른다. ㅡ 즐거운 학문 
: 성장중심의 사회에 살면서 현대인(특히 우리나라)이 자주 쓰는 단어가 '빨리빨리', '신속하게'다. 멍 때리는 것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며, 느리고  빈 틈이 있다는 것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말이 자유여행이지 일정표를 만들어 전혀 자유스럽지 않은 여행을 한다. 많은 디스토피아 문학에서 사유의 부재를 우려하고 있지만, 이미 지금을 사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유가 존재하나?
이 글에 옆에 있는 그림 <르픽 가의 빈센트 방에서 본 파리 풍경>. 고흐는 이 방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174.
그 행복은 너무나 가혹한 행복이다. 잠시 후 나무들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한낮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생활이 다시 그를 삶의 터전으로 던져 버린다. 맹목의 눈을 가진 생활이 어젯밤처럼 그의 동반자가 되어 그를 기만한다. 그의 뒤에는 소망, 망각, 향락, 부정, 무상이라는 그림자가 펼쳐진다. 그리고 또다시 황혼이 찾아온다. ㅡ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찰나의 행복했던 순간은 지나고 다시 먹고사는 걸 고민해야 하는 일상의 비루함은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햇빛처럼 반짝이는 짧은 달디 단 행복으로 우리는 그 비루함을 감수하고 산다. 해와 달이 늘 뜨고 지듯이 우리 삶도 뜨고 지고를 반복하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
  
244.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분열이다. 어느 한 군데에도 확실성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발로 이 땅을 디딜 수 있는 자가 없다. 단지 사람들은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살고 있다. 모레는 감히 예측할 수 없기에 오직 내열을 그리워한다. ㅡ 권력에의 의지
: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혀 산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별 감흥조차도 없지만, 그래도 여전하다. 미래에 대비해 보험도 들어야 하고, 노후자금도 마련해 놓아야 하니 오늘만 살 순 없다. 그렇다고 해서 뜻대로 미래를 대비하지도 못한다. 물가는 오르고, 아이의 학원비, 연로하신 부모의 생활비, 각종 공과금과 대출금, 틈틈이 다니는 여행 경비 등 하루하루 달리기의 연속이다. '오늘만 살다 죽겠소'라는 마음가짐도 걱정스럽지만, 때때로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자싶다.
 
300.
섬세한 감각과 섬세한 취미를 가질 것. 강력하고 대담하며, 자유분방한 마음을 유지할 것. 침착한 눈동자와 확고한 발걸음으로 인생을 짓밟을 것. 터무니없는 일을 당해도 마치 축제에 참가한 것처럼 즐길 것. 미지의 세계와 해양, 인간과 신들을 기대하며 인생을 지켜볼 것. 마치 그 미지의 세계를 지키는 병사와 선원들이 잠시 동안의 휴식과 즐거움으로 피로를 잊는 듯, 혹은 이 찰나의 쾌락 속에 인간의 눈물과 진홍색 우수를 잊는 듯이 밟은 음악에 귀를 기울일 것. ㅡ 즐거운 학문 
 : 터무니없는 일을 당해도 마치 축제에 참가한 것처럼 즐기고, 인생을 지켜보려면 얼마나 내공을 쌓아야 가능할까. 미지의 세계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배움의 길. 소망하는 바이다. 
 
니체는 인간이 학문에 의해 신의 지혜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학문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결합이 신의 삼위일체를 대신해 줄 것으로, 그리고 학문이 인간과 전혀 상관없는 것에 집착하기를 바라는 기대 즉 착각에 의해 학문이 발달했다고 말한다. 학문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끝까지 지속해야만 하는 것이 학문아닐까.  

 

 

[고흐]

131.
작품명 : 구두 한켤레 
 닳고 풀어헤쳐진 구두 한 켤레. 누구의 신발이려나. 일상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따라오는 니체의 글, '마치 진리는 인간이 존속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증명이나 되고 이쓴 듯 말하고 있다'. 생존의 증명이 고단함이라는 건가. 자신이 살아있고, 그리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동생에게 증명하듯 살아야 했던 그의 일생이 전해진다.

 

205.
작품명 : 담뱃대를 문 자화장
고흐의 많은 자화상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귀를 잘라내고 붕대를 감은 모습보다 더 인상적인 이유를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덥수룩한 수염, 잔뜩 일그러진 양미간,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듯한 시선, 그리고 그림은 짙은 색감까지. 마흔도 되지 않은 남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회한이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279.
작품명 : 숲속의 소녀 
개인적으로 고흐적인 느낌이 덜 하다고 생각하는 그림이다.
홀로 나무를 등지고 숲속에 서 있는 어린 소녀. 왜 아무도 없이 혼자 서 있는 걸까?
소녀의 자리에 고흐를 대신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한때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펼치기만 해도 설레었던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 오랜만에 감성과 이성이 넘나드는 책읽기였다. 니체, 다시 만납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대예찬 - 타자 윤리의 서사 예찬 시리즈
왕은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게 누구이든 무엇이든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환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환대는 어떤 것이 존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거나 알지 못해 고마움을 모를 뿐이다.

책머리에

 

 

환대의 정의는 국어사전에 의하면 '반갑게 맞아 후하게 대접함'이다, 저자는 환대가 우리의 본성인 것만큼이나 타자를 두려워하고 배격하는 것도 우리의 본성이며, 두 개의 상반된 본성이 빚어내는 현상과 그것의 윤리성에 주목한다고 했다.

저자는 철학자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환대'에 대한 개념을 바탕으로 삼아 성경의 '창세기'와 '판관기',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흰',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권정생 선생의 '몽실 언니', 석가모니가 들려주는 '수대나태자경'을 통한 보시, 디아스포라, 이스라엘ㅡ팔레스타인 문제, 도스토옙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영화 '타인의 삶', 오에 겐자부로 선생, 소설가 최은영의 '신짜오 신짜오', 그 외에도 소설 해바라기, 나의 미카엘, 가시선인장, 야만인을 기다리며, 필경사 바틀비,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밤비 등의 문헌을 통해서 진정한 환대의 의미, 이론과 실천의 괴리,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지는 환대, 환대와 애도, 환대와 용서 등 현 사회에서 보여지는  타자성의 존중 즉 환대에 대해 짚어본다. 

 

<환대의 전통 윤리와 폭력의 경계>

자신의 집에 들인 손님을 폭력배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딸과 손님의 아내를 제물로 내놓는 것이 과연 환대인가? 맹세한 보시를 지키기 위해 왕자의 신분으로 적국에 자국의 중요한 보물을 주고, 아내와 아이까지 타자가 원한다고 해서 건네주는 것은? '창세기'의 롯과 '판관기'의 노인, '수대나태자경'의 왕자는 모르는 남에게는 끝없는 환대와 보시를 베풀었을지언정, 정작 가족에게는 폭압을 행사한 모순이 따른다. 이는 가족에 대해서는 타자화 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이에게 환대를 베푼다는 관점에서는 성립되기 힘들다. 

위의 내용을 통해서 환대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윤리다. 하지만 그 윤리 안에 가부장적 관습을 기반한 여성폭력을 통반한다면 이를 윤리적으로 볼 수 있을까? 역사 안에서 실현된 환대와 폭력의 경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진정한 환대에는 때로 희생과 고통이 따르고, 하나의 윤리를 위해서 다른 하나의 윤리를 저버리기도 한다. 환대는 끝없이 내놓어야 하는 것. 그렇다면 환대에는 완성형이 있을 수 없다. 결국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자꾸만 뒤로 미뤄지는 그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데 목적이 있다(p64)'고 저자는 말한다.

 

 

<겸손, 인정, 사랑, 용서의 환대, 그리고 실천의 괴리>

우리는 종종 섣부른 공감과 이해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맞춘 배려는 무리에 동화시키려는 전체주의와 다름하지 않다. 환대할 수 없는 대상을 환대하는 것, 타인의 타자성을 인정하는 것, 타자의 슬픔을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상대를 위로하고 같이 울어주는 것이 진정한 환대다.   

타자성을 존중하며 '나와 당신'의 관계를 놓지 않는 것이 가지는 힘. 그러나 실천은 녹록치 않다. 소설 '신짜오 신짜오'에서 투이의 엄마와 화자의 엄마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현실에서 보기 어렵다. 이는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다면 최소한으로 가져야할 윤리다. '상처와 고통 앞에서 논리는 아무런 소용도 없고, 논리를 통한 자기합리화는 비정하고 폭력적(p219)'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을 타자에 앞세우는 존재론은 폭력적일 수밖에(p231)' 없다. 어떤 대상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 자기 만족에 불과하다면 보이는 결과와 상관없이 이는 환대라고 볼 수 없다. 쉬운 예를 들어 기부를 하는 행위가 환대로 보여지겠지만, 기업의 이미지 홍보나 개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환대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월의식까지 내포하고 있다.

타자성을 존중하며 '나와 당신'의 관계를 놓지 않는 환대가 필요하다.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환대>

영화 '타인의 삶'에서는 비즐러는 이득은 커녕 그로인해 자신의 안위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도청 대상에게 도움을 준다. 소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에서 브루노가 슈무엘에게 주는 따뜻한 음식과 마음도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환대의 실천적 행위다.

이처럼 환대는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위태로운 모험을 감수하며 그냥 주는 것이다. 환대는 것이다. 머리나 이성이 아닌 마음이 움직여야만 가능하다. 논리와 이성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 이미 환대는 끝났다.

  

 

<배제하지 않는 환대>

저자는 레비나스의 인간중심적인 환대이론보다 데리다의 확장적인 환대이론이 더 윤리적이며, 환대의 본질에 가까다고 말한다. 동화 '밤비'의 내용을 빌어 동물은 인간의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전한다. 인간이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는 망가질 뿐이다. 수많은 사회학자, 자연과학자들이 탈 인간중심을 외치고 있는데, 이것이 환대라니, 우리는 환대에 대해서 만큼은 아주 기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나 보다. 

 

 

환대는 댓가나 교환 개념이 개입하지 않은 조건 없는 순수한 선물이다. 그리고 진정한 환대는 타자가 타자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또한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환대는 의미를 잃는다. 무조건적인 환대는 인간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다.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현대사회에서 환대는 부재 중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지구 곳곳에 흐르는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애정하는 수많은 소설들을 번역한 왕은철 님이 쓴 환대에 대한 에세이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깊이 빠져 읽은 산문이다. 어느 틈엔가 놓아버린 것들에 대한 상념ㅡ다수 혹은 개인, 소소한 신념, 나와의 약속, 허울뿐인 배려, 흔들리는 이해와 공감ㅡ들에 에 빠져 읽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환대가 어렵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한 적극적 이해를 통한 공감을 위한 노력은 계속 할 것이다.

이 뼈있는 글들을 일일이 옮겨 적을 수 없지만, 본문에 있는 박완서 선생의 말씀으로 대신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알려고 하고, 그것을 함께 하고, 나누어 가지려는 사람의 선의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나 누가 감히 타인의 고통을 참으로 알았다고 할 수 있으랴, 타인의 고통에 대해 참으로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두려운 오만은 없을 것 같다

p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식점 엔푸쿠테이에서 일하는 후지마루. 언젠가는 엔푸쿠테이의 주인 쓰부라야처럼 멋진 요리사가 되는 꿈을 키우며 열심히 일한다. 열흘에 한 번 T대 자연과학부 식물학 교수 마쓰다 연구팀에 점심을 배달하면서 후지마루는 식물의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된다. 마쓰다 교수팀의 대학원생인 모토무라를 통해 좀더 식물에 가깝게 접근하고, 팀원들과도 친해지면서 (식물)과학을 향한 연구자들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한다. 

 

모토무라의 배려로 연구 중인 애기장대 잎의 단면을 현미경을 통해 처음 본 후지마루는 새로운 세계를 맛보며 연구 열정이 가득한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두 번 고백을 하지만 모두 거절 당한다. 비록 거절당했지만 모토무라가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연애와 결혼의 의사가 없기 때문임을 밝혔으므로 그들은 여전히 친구같은 관계를 유지한다. 

 

 오로지 식물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개인 생활을 포기하면서 매진하는 연구원들. 그 과정에서 식물학을 연구하는 학생이나 연구원들의 고민 들이 드러난다. 기업에 취직한다는,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창업이 가능하다는, 그 어떤 미래도 보장되지 않은 학문의 길. 그 길 위에서 이미 경제적 자립을 이룬 동년배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때때로 여러 의미에서 불안하지만,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기 위해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 받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161.

"그러나 '배가 고프니까' '맛있고 예쁘니까'라는 기분은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한 중요한 욕구입니다. 기초연구도 같은 욕구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알고 싶다'는 마음은 공복감과 비슷해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지 않고는 배갤 수 없기 때문에 연구하는 겁니다.

식물(연구)와 결혼했다고 단언하는 모토무라는 '잎사귀 제어 시스템' 연구를 목표로 애기장대의 사중변이체를 성공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신을 다한 노력 끝에 드디어 사중변이체 떡잎을 성공시킨 모토무라. 논문 발표만 남겨둔 상황에서 오류를 발견한다. 처음 계획했던 'AHHO' 유전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실수로 'AHO' 유전자가 들어가 버린 것이다. 'AHHO'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AHO'로 하기에는 '잎사귀 제어 시스템'의 연관성을 확신할 수 없다. 모토무라는 고민 끝에 마쓰다 지도교수에게 털어놓는데, 마쓰다는 질책보다는 대안과 위로를 전한다. 

349.

깜빡 실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선입견 없이 잘 관찰하고 성실하고도 공정하게 계속 사실을 기록한다.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생각을 거듭해서, 이 세계의 이치에 조금씩 다가가기를 계속한다. 자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왜"라고 질문을 던지며 수수께끼의 근본을 향하여 계속해서 연구한다. 그것이 실험이며 연구다. 

  

학창시절 공부와는 담쌓고 산 후지마루지만 모토무라를 비롯한 연구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무엇인가에 진지한 애정을 갖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집중한다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이 요리를 대하는 마음도 이와 같다는 생각에 설레고 흐뭇하다. 

18.

자른 채소를 불빛에 비춰보면서 굉장하구나, 하고 빠져드는 때가 있다. 이것저것 다 누군가가 설계도에 기초하여 만든 것같이 아름답고 정묘하다. 채소만이 아니라 생선 내장의 배치, 뼈의 형태, 눈알이나 비늘의 질감도. 그때마다 후지마루는 생명체를 먹는 거구나, 하고 느낀다. (...) 후지마루는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었지만, 결국 요리란 건 생과 사를 잇는 멋진 행위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개념과 감정이 없이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번식을 하는 것이 식물에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면 호감을 느끼고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임을, 그것이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 아님을 모토무라는 후지마루를 통해서 천천히 깨닫는다. 그녀가 사랑을 무겁게 여기지만, 그 무거움을 이기는 행복감을 느끼는 걸 보면 식물이 자라듯 모토무라 또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96.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누구하고든 만나서 사귀는 일은 할 수 없고, 안 할 거예요." 

255.

'사랑이 무겁다......'라고 모토무라는 생각했다. 후지마루가 가라아게에 담은 사랑은 깨닫지 못했지만, 즐거워하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무겁지만 행복하다.  

내성적인 가토가 선인장을 매개로 후지마루와 사이가 좋아진 것, 대학원 시절 자신이 부탁한 사진을 찍기 위해 산에서 추락사한 친구에 대한 자책감을 안고 있는 마쓰다 교수, 오랜 연구원 생활로 연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은 이와마, 연구를 빙자해 대학 잔디밭에 식자재로 사용할 고구마를 심은 모로오카 교수 등 소소한 에피소드들 잔재미를 주지만, 무엇보다 자연과학부 식물 연구소와 온실 등을 묘사한 장면들이 삽화 한 컷 없이 독자로 하여금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소설의 구성은 이렇다 할 만큼 독특한 면이 많지 않고, 스토리 또한 극적인 사건 없이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처한 상황에서 애쓰며 살고 있는 건 모두 똑같다는 후지마루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렇지"를 연발하면서 따뜻한 늦겨울 햇살이 쏟아져들어 오는 창가에 앉아 이 소설을 읽고 있자니, 온실 한가운데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이번 봄에는 잎이 크고 넉넉한 식물을 들이겠다는 다짐을 둔다.

 

뭔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비춰주는 경우가 있구나,하고 그들을 보면서 모토무라는 실감한다. (...) 모토무라는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하고 거듭 생각한다. - P229


언어도 없고, 기온이나 계절이라는 개념조차 없는데도, 식물은 정확히 봄을 알고 있다. 온도계나 일기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건 초겨울의 따뜻한 날씨가 아니라 진짜 봄이다. 슬슬 여느 해와 같이 활발하게 생명 활동을 할 시기가 왔다‘라고 판단하고 기억한다. 반대로 인간은 뇌와 언어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뇌도 기쁨도 모두 뇌가 내놓는 것이고, 그것에 휘둘리는 것은 물론 인간이기에 맛볼 수 있는 묘미겠지만, 관점을 바꿔놓고 보면 인간은 뇌의 포로라고 할 수도 있다. 실은 화분의 식물보다도 더 좁은 범위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 - P3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체와 고흐 :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 전통과 도덕적 가치를 허문 망치 든 철학자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공공인문학포럼 엮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고흐와 니체, 그들의 고뇌는 어느 지점에서 만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