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지속성에 관한, 그리고 시간의 망각과 고요함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예외없이 시간 안에 살고 있다. 현대 사회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플래너를 시작으로 각종 계획과 시간 관리에 관련한 상품과 강의가 넘쳐나고, 그것도 부족해 초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생활습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끝이 없는 길을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일상에서 잠시 멈춰 볼 필요는 있다는 말이다.
'종종 무의미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함께 아무것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듯한 불만족감(p40)'을 느껴본 적은 없는가? 하루를 통틀어 완벽하게 방해받지 않은 휴식을 취할 틈이 있는가? 현 사회는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복무한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여기는 경쟁 심리와 우월주의에 충실한 욕망에 기인한다. 우리는 잠시 멈추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는가.
책에서는 지루할만큼 오랜 시간을 축적하고 인내한 건축물, 책, 인물, 식료품, 과학, 예술, 저장 등에 대해 언급한다.
타임머신, 페르디낭 슈발의 꿈의 궁정,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 피치 드롭 실험, 이집트의 문화재, 백과사전, 고전 악기, 주택 등을 들어 쌓여진 시간의 존엄함과 느림의 미학에 대해서 강조한다.
사진 작가 스티글리츠가 완벽한 한 순간을 찍기 위해 눈보라 속에서 세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마르셀 프루스트가 7년이라는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지 않았다면,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 기다림과 인내없이 조급함을 먼제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악기를 생각해 보라.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주는 악기는 대부분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수공예품이다. 나 또한 30년이 훌쩍 넘은 피아노를 가지고 있는데, 요즘에 만든 피아노와는 건반의 눌림이나 소리가 많이 다르다(고작 30년이 넘었을 뿐인데!).
버리는 것이 익숙한 풍요로운 사회에서 이제 집은 여러 세대를 위하고 가정의 역사를 쌓는 공간이 아닌 감가상각비에 맞는, 자산의 가치 척도로만 인식되는 '주택'일 뿐이다. 우리는 오래된 사찰, 궁, 성곽, 문화재를 답사할 때 천년이 지난 당시를 만날 수 있지만, 현 세대는 지금부터 천 년 후의 세대에게 시멘트 폐기물만 남겨줄 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을 인내한다는 것은 단순히 힐링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존폐 여부까지 달려있다. 빨리 변화하는 세상과 시장자유주의 원리에 발맞추기 위해 인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경쟁적으로 생산해내고 있으며 이는 인간을 피폐하게, 지구는 황폐하게 만든다. 순수 자연 변이를 무시한 채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유기체를 인간에게 맞추고 있어 종자의 멸종을 가속화하고 있고,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예술가 마셜 매클루언이 '지구라는 우주선에는 승객이 없다. 우리는 모두 승무원이다(p115)'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유기체의 한 종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