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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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들을 호송하는 열차는 비좁고 불결하기는 남녀가 마찬가지였으나 여자 죄수의 경우 남자 죄수 및 교도관과 호송병들부터 가해지는 성추행까지 더해져 호송 환경은 최악이었다. 그래서 마슬로바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있었다.  그나마 네흘류도프가 모스크바에서 청탁을 넣은 덕분에 뻬르미에서부터 청치범 대열로 옮긴 후 사정이 나아졌다. 무엇보다 정치범들 사이에서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듣고 그들과 사귀어 좋은 영향력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새로운 동료들에게 매혹된 마슬로바는 기차에서 내려 평균 30베르스따를 걷는 강행군에도 즐거움을 느낀다. 오히려 모르고 지나쳤던 사실은 알게 해준 유죄 판결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정도가 된다. 특히 부유한 장군 집안 출신으로 평범한 노동자 생활을 하며 동료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정치범이 된 마리야 빠블로브나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마슬로바는 마리야와 자신을 향한 시몬손의 플로토닉한 사랑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네흘류도프는 이런 마슬로바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 시몬손이 네흘류도프에게 마슬로바와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시몬손은 마슬로바가 자신과의 결혼이 네흘류도프의 허락이 있어야만 한다고 여긴다.  
 

613.
그녀는 자유롭지만, 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여자 죄수들이 남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알게된 따라스는 아내 페도시야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죄를 저질러 체포되어 죄수의 한 사람으로 아내와 함께 이송된다. 멋지구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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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길에 오른 죄수들은 교도소에서 기차역까지 7월의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 속을 걸어간다. 그들 중에는 임산부도 있다. 결국 죄수 다섯 명이 일사병으로 쓰려져 죽었고, 그들의 죽음이 지켜보는 이들에게 불러일으킨 감정은 부패할 우려가 있는 시체의 처리와 법적 절차에 대한 성가신 고민이었다. 급기야 임산부가 호송 열차에서 해산할 상황에 놓였지만 장교는 개의치 않는다.  
 
 
네흘류도프는 도보 이송 도중 일사병으로 사망한 죄수들을 살해당했다고 여긴다. 무더위에 기차역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일상적인 명령서에 서명한 소장, 죄수들의 몸상태를 검진한 교도소 의사,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명령을 이행한 호송 장교. 아무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들이 모두 죽은 죄수들을 살해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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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연민이 사라진 조직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늘 우선 순위를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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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케테 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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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을 처음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절로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앙상한 아이를 뼈가 드러날 만큼 마르고 거친 손과 다리로 감싸 꽉 끌어안고 아이의 몸에 얼굴을 반쯤 묻은 어미의 모습은 많이 슬펐다. 죽은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그저 새끼 잃은 짐승일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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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만으로도 케테 콜비츠가 시대의 아픔과 정신적인 고통을 육체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강력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라는 저자의 설명을 납득한다. 케테 콜비츠의 삶과 작품은 공감, 연민에 기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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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이고 사회참여적인 가족 분위기, 이상주의적 휴머니스트인 남편을 비롯한 가족의 지지를 안고 예술가가 된 케테 콜비츠의 정서가 공감과 연민인 점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다. 열여덟 살 둘째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그녀. 현재까지도 어른들의 잘못으로 죽은 수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 사회는 올바르게 흘러간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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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죽은지 8년이 지나서야 몸을 추스린 그녀가 발표한 작품은 '전쟁' 연작이다. 케테 콜비츠는 여성적인 평화 연대를 제안한다. 작품 <엄마들>에서는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 연대한다. 더이상 세계의 권력 싸움에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그러나 세상의 그녀의 바람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책에 실린 콜비츠의 자화상도 무척 인상적이다. 동시에 김향안 님이 쓴 문구도 무척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의 70대는 인간으로서 완성되어가는 시간이다. 여기에는 남녀도 빈부도 없다. 하나의 인간이 존재하다 소멸되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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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슬로바의 상소가 기각되고 슬픈 마음을 안고 슈스또바의 집을 방문한 네흘류도프는 정치범으로 몰려 투옥되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지막으로 어느 종교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당자 또뽀로프를 찾아가는데,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그 이유는 오직 네흘류도프가 뻬쩨르부르그에 연줄이 있는 영향력 있는 귀족이라는 것이었다. 탄원서 한 장만 내밀었을 뿐이데, 그 자리에서 유배가 취소되다니. 네흘류도프 자신도 어떨떨할 지경이다. 
 
 
네흘류도프는 또뽀로프의 집을 나오면서 며칠동안 그가 만났던 민중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투옥되고 추방되는 이유가 정의를 파괴하거나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재산을 갈취하는 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러시아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리와 부패, 무능과 부당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마리에트의 초대로 극장을 찾은 네흘류도프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희생을 바탕으로 출세하고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허위와 위선에 역겨움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슬슬 네흘류도프에게 빈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458.
정의나 선이나 법률이나 신앙이나 종교 같은 말들은 단지 구호에 지나지 않으며, 그 속에 가장 야비한 탐욕과 잔학성이 숨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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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표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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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전쟁에 동원되었다. 예술가 중 일부는 전쟁에 자발적으로 동조하기도 했으나 다수의 예술가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성 상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군인으로서의 자화상>이다. 그림 속 군인은 상처입은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뒤에 누드 여성은 온전한 몸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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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집권한 히틀러는 모더니즘 예술작품을 조롱하기 위해 퇴폐미술전을 개최했다. 같은 시기에 나치는 '위대한 독일 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나치가 추구하는 온전함이란 가부장적인 남성과 남성이 주도하는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여성의 이미지를 실현해 그 이미지는 고통받는 사람이 없음을 이야기하며 게르만족이 유일하게 위대한 민족이라는 차별 이데올로기에 입각해 현실과 인간성을 왜곡한다. 퇴폐미술전에서 모욕을 당한 키르히너는 1938년에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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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표현주의 계보를 이어간 것은 신즉물주의 예술가들이었는데, 이들은 아무런 환상 없이 현실을 그려내려고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솜전투에 참전한 화가 오토 딕스는 냉정한 시선으로 현실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 <전쟁 환생자>는, 전쟁에는 위대한 영웅 따위는 없고 희생당한 나약하고 가련한 인간만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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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남성을 약하게, 여성을 강하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남자가 부재한 세상에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육체적. 정신적 노동 현장에 여성이 투입됐다. 그러나 자기주도적인 여성은 갖은 험담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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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혹함은 예술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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