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표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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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전쟁에 동원되었다. 예술가 중 일부는 전쟁에 자발적으로 동조하기도 했으나 다수의 예술가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성 상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군인으로서의 자화상>이다. 그림 속 군인은 상처입은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뒤에 누드 여성은 온전한 몸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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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집권한 히틀러는 모더니즘 예술작품을 조롱하기 위해 퇴폐미술전을 개최했다. 같은 시기에 나치는 '위대한 독일 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나치가 추구하는 온전함이란 가부장적인 남성과 남성이 주도하는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여성의 이미지를 실현해 그 이미지는 고통받는 사람이 없음을 이야기하며 게르만족이 유일하게 위대한 민족이라는 차별 이데올로기에 입각해 현실과 인간성을 왜곡한다. 퇴폐미술전에서 모욕을 당한 키르히너는 1938년에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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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표현주의 계보를 이어간 것은 신즉물주의 예술가들이었는데, 이들은 아무런 환상 없이 현실을 그려내려고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솜전투에 참전한 화가 오토 딕스는 냉정한 시선으로 현실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 <전쟁 환생자>는, 전쟁에는 위대한 영웅 따위는 없고 희생당한 나약하고 가련한 인간만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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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남성을 약하게, 여성을 강하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남자가 부재한 세상에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육체적. 정신적 노동 현장에 여성이 투입됐다. 그러나 자기주도적인 여성은 갖은 험담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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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혹함은 예술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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