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세상에서 처음 눈을 뜬 아이처럼 그 풍경을 바라보며 경탄하는 것, 이렇게 경탄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 카뮈

예술, 문학, 철학, 자연, 과학, 사회 등 다각적 관점에서 인문학을 만나 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왜 미학을 공부해야하는가에 대해서 다섯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다른 것(현실 혹은 세계)들의 만남이다. 예술이 이끄는 다른 영역과 만남으로 우리는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둘째, 감각의 쇄신. 좋은 예술작품은 감각을 쇄신한다. 이는 곧 생활의 쇄신으로 이어진다.

셋째, 넘어가는 능력. 각자의 삶이 감각을 넘고 사고를 전환함으로써 일상을 초월해 다른 온기와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더 넓고 깊은 지평으로 나아가기. 넘어섬을 통해 좌절을 겪더라도 삶을 개선을 의지를 키우게 된다.

다섯째, 자기 삶을 향유하는 일. 인생에 있어 영원한 완성을 이뤄낼 수는 없겠지만 심미적 경험은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심미적 경험이 삶의 변형에 이어지지 못한다면,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동안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나도 이 책을 통해 심미적 경험으로 잠시나마 삶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였을까?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를 보고 있자면 나는 지금의 내 모습,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본다. 조각배에 올라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매달리고, 배를 물어 뜯고, 아구 다툼을 한다. 배를 노 젓는 이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일을 할 뿐이며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을 외면한 채 배 위에서 강을 건너고 있다. 이 정도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라 투르의 [점쟁이 여자]는 정말 재밌다.
네 사람이 모여 있지만 시선도 손짓도 모두 제각각이다. 가운데 젊은 남성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젊은 두 여성과 늙은 점쟁이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 남자, 나중에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이 봄, 비록 미세먼지 때문에 망설여지더라도 벚꽃 피는 어느날에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유쾌한 이들과 즐거운 식사를 나눠야겠다.

43.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것에 배어 있는 작가의 흔적ㅡ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는 어떻게 이 세상을 표현했고, 어떻게 자기 삶을 살았을까? 예술도 결국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한 방식인 까닭이다.

73.
인간의 이념은 찬란하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것에 못 미친다. 간극은 그래서 생겨난다. 삶의 간극과 균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인간 능력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고, 현실 자체의 모순성에서 오기도 한다.

88.
슬퍼해야 할 것은 이 모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우리의 무감각일 것이다.

97.
수백 개의 무대가 있다면, 이 무대 뒤의 사연이란 수천, 수만 개에 이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어두운 배경 아래 잠겨 있는 것이다. 예술이 묻는 것은 바로 이것이고, 그림 감상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도 바로 이 배경 아래 잠긴 사연들이다.

127.
삶의 정경은 창문의 안과 밖, 여기 이곳과 저기 저 너머, 나의 이쪽 현실과 그들의 그 밖 현실 사이의 경계를 지금의 내가 얼마나 넘을 수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이 넘어섬, 아니 넘어서려는 의지야말로 비루한 일상에 품위를 부여하는 낭만적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143.
모든 인공적인 것은 사멸한다. 사람은 기막힐 만큼 짧고도 부박한 삶을 산다.

154-155.
창조성이란 자신만의 고유성이면서 동시에 대상으로 확대 된 객관성을 뜻한다. 그래서 좋은 글은 자신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를 함께 담는다. 그러므로 글쓰기란 나의 생각을 너의 생각으로 넓혀가고, 그들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불러들인다.(...) '나로 돌아온다'라는 것은 좁게는 자기 반성이지만, 넓게는 내가 서 있는 현실의 테두리를 돌아본다는 뜻이다. 네게로 나아가는 것은 너를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나의 이해를 통해 우리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함이다. 즉, 타자 지향과 자기 회귀는 주체의 동일한 자기 확대 운동 속에 있다.

182.
삶에는 잘못된 가르침과 전제가 무척 많다. 삶은 버겁고 위험하며 혼란스럽지만, 이 복잡함은 역설적으로 무겁게가 아니라 경쾌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마치 관광객처럼 여기에서 저기로 떼지어 다니며, 안내서에 없는 것은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매일매일 고갈시켜 가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이런 피상성을 너무 늦기 전에, 그래서 회복 불가능 하기 전에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눈으로는 수없이 보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옹졸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278.
그 노력은 강제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관심과 흥미 그리고 탐구로 추동돼야 한다. 단순히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영화를 보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묻고 보고 답변하며 또다시 탐구하는 절차 속에서 조금씩 체화된다. 교양은 수동적 주입이 아니라 적극적 형성의 과정인 것이다.

291.
좋은 사회란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폭력 이외의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곳이다. 이런 사회는 비극의 원인을 특정인에게 덮어씌우기보다는 그가 그 일을 하기까지 사회는, 이웃은 그리고 가족과 동료는 무엇을 했나를 먼저 성찰한다. 인간적 삶의 체계란 전가와 배제의 체제가 아니라 이해와 공존의 체제인 까닭이다.

298.
인문학은 나의 현재의 느낌ㅡ현재적 순간의 충일된 느낌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느낌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은 언어로 표현되며, 표현된 언어는 다시 성찰의 대상으로써 결정과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으로 나아간다. 감정ㅡ사고ㅡ언어ㅡ결정ㅡ판단ㅡ행위는 반성적 과정 속에서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런 경로 속에서 인간은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이렇게 돌아보는 가운데 주체성의 내용을, 그 정체성의 성격을 꾸려나간다.

339.
한 사회에 숨통이 트인다는 것은 그 사회가 생기를 얻어간다는 뜻이다. 문화의 문제가 '삶의 세부적인 면에 충실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회경제적, 정치적 조건에 지탱되면서 무엇보다 내용적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는 문화적 유연화의 많은 것이 개인과 사회가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잃지 않는 데서 시작됨을 말해준다.


생각한다는 것은 빈자리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자리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 '꽃 진 자리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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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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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골 마을 핸래티에서 자란 로즈가 가족간의 애증, 사랑, 결혼, 독립 등의 굴곡을 겪으며 가난과 그 시대 여성이 갖는 한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인생 여정을 열 개의 단편연작으로 엮은 소설이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자식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 딸의 허영과 꿈을 받이들이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보다 더 높은 권위에 자리하는 남동생,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 더 나은 세상에 진입하고 싶은 딸.

소설 속 로즈의 모습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여성이다. 어린 시절에는 (의붓)어머니를 바짝 약올려 매를 맞기도 하고, 외모와 성에 대한 호기심, 멋지게 보이는 동성 친구를 우상처럼 흠모하기도 하는 사춘기 시절을 지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지만 앞날의 두려움과 경제적 여유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연애를 거쳐 결혼을 하는.

로즈의 평탄한 삶이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친구 조슬린의 남편인 클리퍼드에게 빠진, 그때부터 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패트릭에 대한 순수하지 못했던 마음을 안고 결혼한 그때부터 그녀의 이혼은 예정된 일이였을까.

딸인 애나를 전남편에게 보내면서까지 로즈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단지 클리퍼드와의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혼을 기점으로 로즈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고자 했던 건 아닐까? 그건 [거지 소녀]에서 언급했던,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환상. 누구나 쫓지만 누구도 가졌노라고 장담할 수 없는 그것.

로즈를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 여겼던 클리퍼드, 그녀가 내연녀일 뿐이었던 톰, 로즈를 진심으로 사랑했을지도 모를 사이먼, 하지만 사이먼의 마음은 로즈도 독자도 알 수가 없다. 로즈는 이 남자들을 정말 사랑했을까?

이 소설에서 플로와 로즈의 관계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플로와 로즈.
두 사람은 의붓 모녀지간이다. 하지만 두 여자의 갈등에 있어서 그러한 관계가 주는 영향은 없어 보인다. 그저 시대적으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이 제한적이고, 그 시대에 이상적으로 여겨졌던 여성의 역할을 잘 수행함에 있어서 스스로 자긍심을 가졌던 여성들(플로와 같은)이 있었던 만큼 로즈에 대한 플로의 행동은 그녀가 친어머니였다 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싶다.

플로가 늙어 누군가를 보살펴야할 때, 그녀 곁에 있는 이는 친아들 브라이언이 아닌 로즈다. 두 여자의 오랜 세월 쌓아 진 애증은 여느 모녀와 다를 바 없다. 이혼하고 사랑에 버림 받고, 벌이가 그저 그래도 로즈가 돌아 온 집에는 플로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이는 한 시대를 약자로서 함께 겪어 온 동지애로써의 이해와 공감이 아니였을까.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스케일이 크다거나 극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자꾸 읽게되는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에서 내 삶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지난 날의 향수를 넘어 현재의 나 자신과 내 주변인들을 돌아보게끔 한다.

나는 그녀의 글에서 담담하지만 보통 사람이 갖는 힘을 느낀다.




[장엄한 매질]


37.
끝장을 봐야하는 이유는 결국 부분 적으로는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인 걸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고, 가장 무시무시한 허튼짓도 정당화 될 수 있고 그 행위에 어울리는 감정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의 관객에게ㅡ교훈을 깨닫더라도 깨달음을 표시할 수도 없을 상대에게ㅡ증명하기 위해서일까?



[특권]


73.
로즈는 그런 상실과 변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았다. 그녀가 배운 바에 의하면 인생이란 대체로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 이야기를 자꾸만 들추며 코라를 점점 더 나쁘게 묘사하는 플로를 보면 그녀가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토록 긴 시간이 흘렀는데, 그리고 이제 아무 소용도 없는데, 로즈는 플로가 자꾸 경고하고 자신을 바꾸려 한다고 여겼다.



[자몽 반 개]


89-90.
아버지에게 플로는 바람직한 여자의 전형이었다. 로즈는 그것을 알았고 실제로도 아버지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활달하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무엇을 만들거나 비축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빠릿빠릿해야 하고 흥정과 관리에 능해야 하며 사람들의 가식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적인 면에서는 어수룩하고 아이같아야 하며, 지도나 긴 단어나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우습게 보고, 아기자기하면서 알쏭달쏭한 생각, 미신, 전통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로즈가 망신거리인 것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 그러나 뭔가가 잘못되어 바람직한 종류의 여자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거지 소녀]


131.
헨쇼 박사는 가난을 그저 불우함이나 결핍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지만 가난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흉한 막대기 모양 전등을 사용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의미했다. 시도 때도 없이 돈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새로 산 물건을 놓고 악담을 하며 그것을 공짜로 얻은 건지 아닌지 입씨름하는 것을 의미했다. 플로가 정면 창문에 사서 단 비닐 커튼이나 가짜 레이스 따위를 두고 자부심과 질투가 난무하는 것을 의미했다. 뿐만 아니라 문 뒤에 박은 못에 옷을 걸고 욕실에서 나는 소리를 죄다 들을 수 있는 것, 또한 경건하고 발랄하고 조금은 외설적인 경고를 담은 수많은 액자로 벽을 장식하는 것을 의미했다.



[섭리]


256.
직접 가서 보지 않더라도 아이의 금발과 흰 살결, 윤기 흐르는 눈썹과, 자세히 봐야 보이는 투명하리만치 미세한 털이 일어나 불빛을 반사하는 옆모습을 놀랍고도 두려운 기쁨을 느끼며 그려볼 수 있었다. 평생 처음으로 그녀는 가정적인 삶을 이해했고 안식처의 의미를 알았으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271.
상살과 행운의 연속. 그녀가 과거나 미래에, 사랑에, 혹은 그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때,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다.


[사이먼의 행운]


301.
그 무엇이 밤새 어두운 부엌에 앉아 연인을 기다리는 로즈 나이의 여자보다 더 절박할 수 있을까? 로즈는 이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냈고 모든 것을 혼자서 했다. 그녀는 도대체 배우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 사이먼을 고리로 바꿔 거기에 온 희망을 걸어놓은 그녀는 이제 그를 결코 그 사람 자신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305.
패트릭 이후로 단 한번도 그녀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적이, 그런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다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모두.

311.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재앙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줄거리에 의심의 여지를 남기는 초점의 이동으로부터, 새로운 판단과 해법을 요구하면서 온당치 않고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창문을 열어젖히는 어긋남으로부터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믿었다.



[스펠링]


324.
남매는 싸웠고 누이는 눈물을 머금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로즈는 느꼈다. 그 모든 것의 한꺼풀 아래에서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주, 아주, 오랜 경쟁ㅡ누가 더 나은 사람인가? 누가 더 좋은 직업을 선택했는가?ㅡ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갈구한 것일까? 그것은 상대방의 인정, 아마도 둘 다 기꺼이 줄 의향은 있지만 아직은 아닌 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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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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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중력은 누구에게나 힘을 미친다. 누구나 똑같이 바닥에 닿게 하고, 서든 눕든 제 무게를 되살려준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고, 태양도 지녔지만 티끌도 가졌다. 그래서 중력은 모든 것이 제가끔 움직이고 저마다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조건이고 운명이다.



이진우는 생물학을 연구하는 샐러리맨이다. 그는 직장에 충실한 만큼, 그 이상으로 우주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 꿈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우주인 되는 것이 소망이 있었지만 병으로 열살에 삶을 끝낸 동생의 꿈도 함께 있다.

그러던 중 진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공고를 보고 지원한다. 우주공학자, 심리학 전공자, 현 군인 등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우여곡절 끝에 최종선발 4인에 들어 러시아로 향한다.

러시아에서 2인 탑승에서 1인 탑승으로 상황이 바뀌면서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던 네명의 우주인 후보들은 그야말로 '경쟁자'가 된다. 승급과 유일한 탑승자가 되기 위한 현실은 삶의 현장인 직장에서도, 인류의 발전이라는 과학 안에서도, 치열한 줄서기식 세력 다툼과 파벌의 힘 겨루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최초'와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누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될까? 이진우는 결과와 상관없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배웠다.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품어줄 수 있는, 너무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력같은 힘.

소설은 독자에게 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선택, 결과만이 중요한 경쟁시대에 정정당당한 승부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선택에 대한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진중하다. 이렇게 시종일관 진지함에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니. 그리고 훅 들어오는 폭풍같은 감동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멀스멀 적셔지는 잔잔한 따뜻함과 뭉클함은 뭐지....!


사족.
원소주기율표를 보고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는...




[책 속 문장]




236.
내가 알지 못했을 뿐 내 인생의 발걸음 하나마다 가까운 곳에서는 이런 개미들의 싸움이 있었다. 연구소에서건 여기서건.

245.
세상은 끝없이 의심하고 싸워야 하는 각축장이 아닌가. 선량하게 책임을 다하려고만 하면 급소를 내보이는 곳이다. 회사에서 그토록 배우지 않았던가. 경쟁이 있는 동안에는 살얼음을 딛듯이 조심하고, 말을 겸손하게 아껴야 한다는 것을.

301.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은 무거운 물체의 주변 공간은 중력 때문에 휘어져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의 근처도 그런 것이 아닐까.

318.
용기는 계속할 힘이 아니다. 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하는 것이다. 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379.
우리가 가만있기를 바라는 이 사람들과, 배워서 우주인다워지겠다는 우리의 기대는 애초부터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389.
진실과 목적. 진실을 밝히는 일과 목적을 이루는 일. 이 두 개가 동시에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다면 저는 무얼 택해야 할까요? 부끄러운 것은 실패가 아니라 노력하지 않는 것인데. 노력하는 것이 그의 아픔 위를 걷는 것이라면 무얼 택해야 할까요. 인간의 물리학에는 왜 한 공간에 두 개의 선택이 있을 수 없을까요?

394.
오만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높이 오를수록 아래를 더 무시하고 잔인하게 구는 사람들. 북돋고 끌어주기보다 자르고 떨궈내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이용해서 더 윗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켜주고. 미안함 없이 태연한 모습들. 그렇게 자리를 지켜봤자 고작 몇 달이나 몇 년에 불과해선지도 모른다.

408-410.
나는 여기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
아니, 내가 모험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있었더라면.........
나는 아직 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바쁘기만한 바보로 살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쳇바퀴를 돌면서 가끔 푸념하고 화를 내기만 하는 채로.
(중략) 뒷사람을 옳지 않게 떨궈버리는 일..... 내가 올라온 사다리를 밀어버리는 일...... 이것은 우주와 통하는 마음이 아니야, 별이 빛나는 칠흑이 아니야...... 이걸 쓰면 나는 결국 무너지리라. (중략) 진정한 것, 나는 그것을 갖고 싶었다.

419.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감옥은 자기가 만들어요. 이제는 거기서 나와도 돼요. 달을 거닌 사람들은 대단한 모험을 한 것이지만 의외로 달은 가까운 곳에 있답니다. 우리가 다다라야 할 가장 먼 곳은 우리 마음 속에 있어요.

439-440.
태양의 그 모든 불꽃들을 뭉쳐서 둥근 공으로 빛나게 하는 힘이 중력이다. 태양처럼 행성들을 데리고 홀로 사는 별도 있지만 별 두 개나 세 개가 중력으로 묶여서 쌍둥이나 남매들처럼 사는 경우도 있다. 서로 늘 힘을 미치면서. 이 모두에게는 중력이 삶의 조건이고 운명이다. 별들이 생겨나고 자라나고 무너지는 생로병사를 중력이 다 맡아서 다루는 것이다.
사람도 너와 나, 우리는 무게 없이는 살 수 없고 무게가 있는 곳에는 중력이 있다. 중력은 바람과 강, 밀물을 당길 때는 공평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갈 때는 오로지 개별적일 뿐이다. 버릴 과거는 없다. 아무도 모르니까. 피할 미래도 없다. 씨앗이 움트고 있으니까. 운명을 사랑해라. 그리고 가능성을 시험해봐라. 나아간 만큼 너의 인생이 된다. 다시 일어난 만큼 너는 강해진다. 그러니 반드시 생각해라.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너는 더 멀리 날아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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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개정신판
파커 J. 파머 지음, 홍윤주 옮김 / 한문화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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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아와 소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의 부제처럼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사실 나는 장담할 수 없다. 그간 살아 온 길들이 과연 진정한 '나'를 정의해 줄 수 있는지, 그 모습이 타고난 본성이였는지, 아니면 만들어진 모습이였는지.

물론 그 안에는 나 자신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타고난 면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학교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정 내 분위기로 인해 틀 안에 나를 맞춰 넣은 모습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도 파악이 안되는 '나답게' 혹은 '자아'를 어떻게 찾아야 한다는 걸까? 요즘 트렌드처럼 너도나도 여행자, 순례자가 될 수는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의 본성이 길 위에 있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저자는 인간의 자아가 지닌 본성은 능력과 한계를 함께 지니고 있으므로 자신이 가진 재료와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이나 주변의 기대가 아닌 나의 타고난 본성과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라고 한다.

내 한계를 나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 존재하는 자임을 인지해야한다.

18.

아무리 숭고한 비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내부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부여된 강제의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폭력이다.

25.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헤아리도록 도와 주는 것은 언제나 침묵이다. 또한 말로는 결코 건드릴 수조차 없는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것도 역시 침묵이다.

35.

사람은 누구나 천부의 재능을 타고 이 땅에 태어난다. 그래놓고는 인생의 절반을 그 재능을 내다버리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미혹되어 잊어버리고 산다. 젊은 시절,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는 별 상관없는 기대들에 둘러싸인다. 우리의 자아를 알아주기보다는 어떤 틀 안에 끼워 맞추려는 사람들의 기대 말이다.

42.

소명의 시작은 세상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본성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살다보면 길이 닫힐 때도 있고, 탈진될 때도 있다. 작가는 탈진이란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다 생기는 결과라고 얘기한다. 유기적인 실체 속, 즉 내 본성에서 생성되는 것을 사용한다면 다 써버린다해도 스스로 다시 생겨나 새롭게 하므로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길이 닫히는 것에는 우리 앞에서 길이 열리는 것만큼이나 많은 교훈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107.

열림은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고 닫힘은 우리의 한계를 보여준다.

스스로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얘기하고 있다. 이는 자신이 실패자임을 인정하고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재능과 본성을 점검해 보고 이미 존재하는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지 말며 스스로의 재능을 믿으라는 의미이다.

작가는 '리더십'은 공동체 사회에서 모든 사람의 소명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보통 '리더'라고 하면 특별한 자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나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살아가야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때론 누군가의 손을 끌어주는 입장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인도를 받는 입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규모의 차이일 뿐 개개인 모두가 리더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고 이해했다).

몇 개 모임의 리더로서 작가가 언급한 '리더가 갖기 쉬운 다섯 가지 그늘' 중 네가지가 머릿속에 남는다.

첫째, 자기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불안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빼앗는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일례로 불안한 교사일수록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수동적으로 주입하려고 한다.

'정체성은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이나 그 역할에 주어지는 타인에 대한 지배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p163)'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세상은 전쟁터이며 사람에게 적대적이라는 믿음이다.

'세상은 경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대개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p164).' 현실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조화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셋째, 일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 우리 인간의 몫이라는 믿음이다.

작가는 '인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개인'이라고 바꿔 말하고 싶다. 모든 일에 책임을 리더, 개인이 떠안는다면 누구도 리더를 하기는 어렵다. 리더는 구성원 개별의 능력을 인정하고 믿어야하며 몫을 나눌 수 있어야한다.

넷째, 두려움, 특히 인생의 혼돈에 대한 두려움이다.

'여기서 말하는 혼란이란 의견의 차이, 혁신, 도전과 변화를 의미한다(p168).' 익숙함의 틀을 깨고, 낯섦에 두려움을 갖지 말자. 그것이 성장의 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관계 안에서 개인은 '혼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고독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 보호 받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존중과 보호는 좋은 관계 안에서 더 잘 이루어진다.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본성과 존재 가치를 스스로, 그리고 스스로가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경쟁이 아닌 조화 안에서 개인이 존중되어지는 사회관계를 희망한다.

10년만에 다시 읽은 이 에세이로 요즘 복잡한 주변과 나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종교적인 부분이 있으나 색채가 그리 강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효도 차원에서 주일마다 두 손을 모으는 내가 읽기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책 속 문장]

81.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은 일과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것을 알려 주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95.

그렇지 않은 척 가장하는 것, 지킬 수 없는 약속의 노트를 내미는 것은 나 자신의 원형을,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원형을 훼손하는 것이다.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125.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누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소멸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끼는 이에게는 생명을 주는 일이다.

128-130.

"당신은 우울증을 당신을 망가뜨리려는 적의 손아귀로 보는 것 같군요. 그러지 말고 당신을 안전한 땅으로 내려서게 하려는 친구의 손길로 생각할 수 있겠어요?" (...) 우울증은 나를 안전한 땅, 한계와 재능, 약점과 강점, 어둠과 빛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나의 진실, 나의 본성의 땅 위로 내려서게 하는 친구의 손이었다.

138.

약점과 치부, 어둠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런 것 때문에 내가 흔들리는 일이 줄어든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원하는 것은 내 자아의 일부로 알아달라는 것 뿐이니까 말이다.

관계를 맺되 그 안에서 서로 혼자일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 역설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함꺼 살되, 그 방식은 영혼의 고독을 존중해야 한다. (p172)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아주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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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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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 마을이 무너지는 걸 본적이 있는가. 우리 마을이 그랬다. 그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서로를 증오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게 때로는 얼마나 간단한지 모른다.

본문 중에서


지난 봄, 성폭행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때만 하더라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한 가족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아이스하키 팀은 해체 직전이고, 마을의 균열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하키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지역구 의원 리샤르드 테오, 하키는 그저 하키일 뿐 빙상 위에서는 그 어떤 간섭도 있을 수 없다는 신임 코치 사켈, 늘 그래왔듯 하키 그 이상의 하키를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전임 코치 수네, 하키가 인생의 전부이고 하키팀을 살리기 위해 마뜩치 않은 정치인과 손을 잡아야하는 단장 페테르, 남편과 아이를 위해 항상 자신이 원하는 바를 내려놓았지만 점점 힘에 부치는 미라, 가족과 형제를 위해 언제라도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티무와 그 일당.


성폭행 사건을 고발하고 진실을 밝혔지만 증거가 없어 케빈을 법적으로 처벌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야는 '걸레'로, '공주님'으로 불린다. 마야 곁에는 아나가 버티고 있다. 자매와 다름없는 둘 사이에도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나. 왜 그랬을까. 순간의 실수였다. 그로인해 자매이자 친구를 잃었다. 자책감과 상실감에 죽고 싶을 때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비다르와 만났다. 그로부터 위로 받고, 그로 인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비다르. 형제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충돌을 조절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럴 수 없었다.


벤이. 책장을 넘길 때 마다 그의 죽음을 확인하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세 누나의 사랑이, 용기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마야의 모습이, 어수룩하지만 그를 믿는 동료들이 그를 살게 했을까.


비다르의 죽음이 나를 울게 했다면, 마야의 배웅과 쪽지를 받은 벤야민의 모습에 안도감이 든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예요. 생존자예요."

(...) 그들의 걸음은 느리고 어쩌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살금살금 그 복도로 들어서지 않는다. 폭풍처럼 진격한다.

p523



아이스하키가 전부인 동네에서 하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한지 알고 있을까? 하지만 그들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간다. 하키를 하지 않는 인생도 존재한다는 것을. 하키를 잘하지 못해도, 하키가 아니여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마야와 아나' 대 세상 전부

'베어타운' 대 나머지 전부

'우리' 대 당신들


하지만 언제라도 그들은 '우리와 당신들'이 될 것이다.


베어타운 하늘에 눈부신 태양은 변함없이 떠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하키 경기장에서는 미친듯이 소리를 지를테고, 자신의 이익에 맞춰 서로 으르렁댈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아프고 위험에 처하면 팔을 걷어 부치고 달려갈 것이며, 함께 지붕을 고치고 같이 먹을 샐러드를 만들 것이다. 그게 베어타운이다.


나는 다시 궁금해진다.

마야와 아나, 벤야민의 미래가.


일부 독자들은 '베어타운'이 작가의 이전 작품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읽기에는 '베어타운'도, 이번 작품도 다르지 않다. 무심한 듯, 별거 아니라는 듯 쑥스럽게 내미는 손의 온기같은 따스함은 결을 같이 한다.

작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손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책 속 문장]



31.

레오는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선택하게 되어있다는 사일을 깨달았다. 거짓에는 비교를 불허하는 장점이 있다. 진실은 벗어날 수 없는 반면 거짓은 쉽게 믿을 수만 있으면 된다.



50.

그 바보들은 베어스타운 아이스하키단이 없어진 이유가 케빈 때문이 아니라 '그 추문'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케빈이 누군가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마야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해 여름에 폭력 사태가 베어타운을 강타했다고 얘기하겠지만 그건 거짓이 될 것이다. 폭력의 조짐은 그전부터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좌우되는 삶을 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서로 용서가 되지 않는다.


125.

산다는 건 우라지고 우라지고 또 우라지게 힘든 거라 가끔은 거의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아무리 원래 그런 거라지만 말이다.


184.

경기는 간단할지 몰라도 사람들은 절대 간단하지가 않다.


207.

그날 밤 침대에 누운 여자는 세 명이다. 세 명뿐이다.

(좋의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직원 뿐, 미라 자신은 없다.)


256.

꼭 존경을 받지 않아도 돼. 그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야.


310.

남자들은 평생 어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건 그들의 인생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남자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귀신과 괴물 때문이지만 여자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남자들 때문이다.


373.

불안. 그것은 우리를 소유하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414.

다들 이건 한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럴 리 없다. 속으로는 우리도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을.


521.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둘러싼 문제가 복잡해지는 이유도 우리가 대부분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565.

"나를 위한답시고 싸울 필요 없어! 나를 위한답시고 뭘 하려고 들 필요도 없어! 그냥 나를 믿어주기만 하면 돼. 나를 어디 데려다놓으려고 하지 말고 나 혼자 갈 수 있게 뒤에서 도와줘!"




(...)

우리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면

나를 위해 무기를 내려놓고

나를 위해 지옥의 구멍을 닫고

내 친구가 되어 줘,

나를 위해 좋은 남자가 되어줘.


(...)

언제쯤 나를 위한답시고 일을 망치는 걸 그만둘래?

네가 날 위해서 뭘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일단 내 말을 듣기부터 해.

Hear Me (마야의 자작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아주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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