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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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중력은 누구에게나 힘을 미친다. 누구나 똑같이 바닥에 닿게 하고, 서든 눕든 제 무게를 되살려준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고, 태양도 지녔지만 티끌도 가졌다. 그래서 중력은 모든 것이 제가끔 움직이고 저마다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조건이고 운명이다.



이진우는 생물학을 연구하는 샐러리맨이다. 그는 직장에 충실한 만큼, 그 이상으로 우주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 꿈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우주인 되는 것이 소망이 있었지만 병으로 열살에 삶을 끝낸 동생의 꿈도 함께 있다.

그러던 중 진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공고를 보고 지원한다. 우주공학자, 심리학 전공자, 현 군인 등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우여곡절 끝에 최종선발 4인에 들어 러시아로 향한다.

러시아에서 2인 탑승에서 1인 탑승으로 상황이 바뀌면서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던 네명의 우주인 후보들은 그야말로 '경쟁자'가 된다. 승급과 유일한 탑승자가 되기 위한 현실은 삶의 현장인 직장에서도, 인류의 발전이라는 과학 안에서도, 치열한 줄서기식 세력 다툼과 파벌의 힘 겨루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최초'와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누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될까? 이진우는 결과와 상관없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배웠다.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품어줄 수 있는, 너무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력같은 힘.

소설은 독자에게 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선택, 결과만이 중요한 경쟁시대에 정정당당한 승부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선택에 대한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진중하다. 이렇게 시종일관 진지함에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니. 그리고 훅 들어오는 폭풍같은 감동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멀스멀 적셔지는 잔잔한 따뜻함과 뭉클함은 뭐지....!


사족.
원소주기율표를 보고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는...




[책 속 문장]




236.
내가 알지 못했을 뿐 내 인생의 발걸음 하나마다 가까운 곳에서는 이런 개미들의 싸움이 있었다. 연구소에서건 여기서건.

245.
세상은 끝없이 의심하고 싸워야 하는 각축장이 아닌가. 선량하게 책임을 다하려고만 하면 급소를 내보이는 곳이다. 회사에서 그토록 배우지 않았던가. 경쟁이 있는 동안에는 살얼음을 딛듯이 조심하고, 말을 겸손하게 아껴야 한다는 것을.

301.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은 무거운 물체의 주변 공간은 중력 때문에 휘어져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의 근처도 그런 것이 아닐까.

318.
용기는 계속할 힘이 아니다. 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하는 것이다. 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379.
우리가 가만있기를 바라는 이 사람들과, 배워서 우주인다워지겠다는 우리의 기대는 애초부터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389.
진실과 목적. 진실을 밝히는 일과 목적을 이루는 일. 이 두 개가 동시에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다면 저는 무얼 택해야 할까요? 부끄러운 것은 실패가 아니라 노력하지 않는 것인데. 노력하는 것이 그의 아픔 위를 걷는 것이라면 무얼 택해야 할까요. 인간의 물리학에는 왜 한 공간에 두 개의 선택이 있을 수 없을까요?

394.
오만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높이 오를수록 아래를 더 무시하고 잔인하게 구는 사람들. 북돋고 끌어주기보다 자르고 떨궈내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이용해서 더 윗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켜주고. 미안함 없이 태연한 모습들. 그렇게 자리를 지켜봤자 고작 몇 달이나 몇 년에 불과해선지도 모른다.

408-410.
나는 여기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
아니, 내가 모험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있었더라면.........
나는 아직 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바쁘기만한 바보로 살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쳇바퀴를 돌면서 가끔 푸념하고 화를 내기만 하는 채로.
(중략) 뒷사람을 옳지 않게 떨궈버리는 일..... 내가 올라온 사다리를 밀어버리는 일...... 이것은 우주와 통하는 마음이 아니야, 별이 빛나는 칠흑이 아니야...... 이걸 쓰면 나는 결국 무너지리라. (중략) 진정한 것, 나는 그것을 갖고 싶었다.

419.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감옥은 자기가 만들어요. 이제는 거기서 나와도 돼요. 달을 거닌 사람들은 대단한 모험을 한 것이지만 의외로 달은 가까운 곳에 있답니다. 우리가 다다라야 할 가장 먼 곳은 우리 마음 속에 있어요.

439-440.
태양의 그 모든 불꽃들을 뭉쳐서 둥근 공으로 빛나게 하는 힘이 중력이다. 태양처럼 행성들을 데리고 홀로 사는 별도 있지만 별 두 개나 세 개가 중력으로 묶여서 쌍둥이나 남매들처럼 사는 경우도 있다. 서로 늘 힘을 미치면서. 이 모두에게는 중력이 삶의 조건이고 운명이다. 별들이 생겨나고 자라나고 무너지는 생로병사를 중력이 다 맡아서 다루는 것이다.
사람도 너와 나, 우리는 무게 없이는 살 수 없고 무게가 있는 곳에는 중력이 있다. 중력은 바람과 강, 밀물을 당길 때는 공평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갈 때는 오로지 개별적일 뿐이다. 버릴 과거는 없다. 아무도 모르니까. 피할 미래도 없다. 씨앗이 움트고 있으니까. 운명을 사랑해라. 그리고 가능성을 시험해봐라. 나아간 만큼 너의 인생이 된다. 다시 일어난 만큼 너는 강해진다. 그러니 반드시 생각해라.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너는 더 멀리 날아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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