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토론! - 이슈와 친해지는 20가지 찬반 논쟁 토론하는 10대
김범묵.박정란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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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쟁 토론의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화', '과학', '법', '사회' 네 가지 키워드로 20가지의 주제를 실질적인 토론 방식으로 담았다. 
 
근래에는 유대인의 전통적 학습방식인 하브루타를 토론 형식으로 끌어들여 주목받고 있다. 자유 토론 형식을 띠고 있어 사고의 확장이 장점으로 여겨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그러나 튜터가 없으면 논점없이 확장된 채로 토론이 마무리가 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반면 찬반(경쟁) 토론은 정해진 논제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토론의 목적이 명확하다. 명확한 근거와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사례를 제시해야 하기에 논리적이다. 또한 세부 사항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고는 확장할 수 있고, 반론에 대비하기 위해 상대측 입장이 될 기회가 있기 때문에 역지사지로 인한 인정과 설득의 관점이 생긴다.  
 
이 책은 이러한 경쟁 토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시 : 흉악 범죄 관련) 
 
1. 논제를 제시한다. ㅡ  예) 흉악 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해야 할까 
 
단순히 논제만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이 논제를 정한 까닭을 설명한다. 시의성,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 찬.반 양측의 현재 여론 등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토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용어의 정의, 논제를 바라보는 관점 등을 예를 들어주고 도움이 되는 자료를 책에 실었다.  
 
 
2. 논제에 대한 양측의 주장과 그에 대한 근거와 사례를 제시한다. 
 
찬성 주장 :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하면 피해자에게는 심리적 보상을 제공하고, 예비 범죄자들을 압박해 유사 범죄를 예방하는 등 공익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신뢰성 있는 자료 제시)
반대 주장 : 무죄로 밝혀진 피의자는 물론, 피의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등 신상 공개로 인한 부작용은 매우 심각하다.
(신뢰성 있는 보도 자료 제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양측은 2~3개의 논점 주장을 한다. 
이때 제시하는 근거와 자료는 신뢰성 있는 기관에서 발행한 자료를 발췌, 제시해야 한다. 
 
 
3. 토론 갈무리
진행자는 양측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한다. 
 
 
책에서 언급한 주제들은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안들이다.
한국식 나이, 카공족, 신조어 사용, 개고기 식용, 인터넷 실명제, 원격의료 진료, 동성결혼의 합법화, GOM 완전 표시제, 일본 제품 불매운동, 학생부 종합 전형 폐지 여부, 노인 기준 연령, 남북통일 문제 등 크고 작게  갈등을 겪고 있다. 토론 논제로서 접근하기에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입시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토론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성인이며 이들은 그 어떤 직접적인 사회적 경험 없이 투표권을 갖게 된다. 이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서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여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나 정치가 생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안들을 토론의 경험을 거쳐 간접적으로나마 인지해 이러한 사회적 이슈들을 외면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디베이트 토론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충분한 도움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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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온도 - 얼어붙은 일상을 깨우는 매혹적인 일침
이덕무 지음, 한정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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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 실학자이자 규장각 사검서 간서, 간서치 이덕무가 쓴 혹은 그가 모아 놓은 시를 엮었다. 글을 읽고 쓰는 데에 있어 말이 필요없는 사람. 개인적으로 더할나위 없이 존경하는 학자다. 
 
연암 박지원을 통해 이덕무를 처음 알게 된 때부터 틈이 날 때마다 그의 글을 조금씩 읽어왔다. 한시에 대한 깊이가 턱없이 얕은 내가 읽어도 이덕무의 글은 "아... 좋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게 된다. 청렴이라는 표현이 사치스러울만큼 궁핍했고, 그 궁핍함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았던 그를 위로해준 건 백탑파 친구들과 책(글)이었다. 서자로 태어나 큰 출세는 할 수 없었지만, 정조에게 글의 우아함을 인정받고 사후 왕의 지시로 유고집까지 간행했던 조선 최고의 문장가. 몇 년전 <문장의 온도>에 이어 이덕무의 글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와 반갑다. 
 
이덕무의 시는 대단한 사상이나 이념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소소한 자연 현상이나 일상과 생활 소품들을 바라본 편안한 감상의 글이 많다. 그렇지만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관찰력과 통찰이 깊은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가치를 그는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밭 사이 가는 풍물, 눈이 온통 즐겁고
완두는 가늘며 기다랗고 옥수수는 거칠고 굵네
아구새 서리 맞아 반질반질 빛이 나고
기러기 추위 피해 그림자 늘어뜨렸네
소나무 장승 무슨 벼슬 얻어 머리에 모자 썼나
('과천 가는 길에' 에서) 
 
사방 산 고요한 밤, 낙엽 날리는 바람 소리 요란하고
저 멀리 돌문 차가운 푸른 우물 상상하네
달 뜬 삼경 바람 소리 더욱 요란하고
그 소리 푸른 전나무에 솟구쳐 구름소반까지 들어가네
('첫겨울' 에서) 
  
 
그는 사대정신에 묶이지 않는 혁신적인 문장가다. 엮은이는 혁신을 위해 필요한 조건은 '불온성'이라고 말한다. 당시 양반들이 중국의 사조를 그대로 베끼거나 따라한 것에 반해 이덕무는 중국 사조의 틀에 벗어고 향토적인 조선의 시를 썼다. 주변에 평가에 개의치 않았고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받아들이며 경험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다. 청나라를 방문했을 때에도 청나라 문인들과 사유와 글을 거리낌없이 주고받았다. 또한 글을 쓰고 나눔에 있어 신분과 나이를 초월해 교감을 나눴다. 
 
묵은 찹쌀로 담근 술 맛있게 김 오르니
털모자 쓴 글방 선생 날마다 찾아오네
낫을 찬 꼴머슴은 갈대 베다 쉬고 있고
냇가의 수건 두른 여인 빨래하며 노래하네
서리 내린 들녘에는 벼 쪼아 먹는 기러기 쫓고
볕 쬐는 언덕에는 고양이 숨겨 국화를 지키네
타향의 사투리는 객지의 시름을 잊게 하니
깊고 깊은 흙담집에 누워서 듣네
(천안 농가에서 쓰다)  
 
닭 잡고 밥 짓느라 부엌에서 도란도란
울타리에 저녁 안개 서려 으스름 짙어가네
반쯤 누런 버들잎은 시들어 쳐지고
대추는 새빨갛게 익었네
냇물은 빨리 흘러 그물 치기 어렵고
산바람은 차가워 이불 자주 끌어안네
목동이 돌아올 적 뿔 두드리는 소리 나니
이것이 바로 틀림없는 가을 소리네
(조촌 사는 일가 사람을 만나 함께 읊다)  
 
 
이덕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벗들을 빼놓을 수 없다. 
박지원, 박제가, 백동수, 유득공, 이서구 등이 대표적이인데, 그들은 '백탑시사'라는 시문학 동인 맺어 시작詩作 활동을 했다. 그들은 단순히 글만 나눈 게 아니라 서로의 빈곤한 살림을 위무하고 술을 나누며 시와 산문을 써 우정을 나눴다. 박제가는 신혼 첫날밤에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장인의 말을 빌려 벗을 찾아다닐 정도였다니 말해 무엇할까. 
 
도연명 문집 즐겨 읽으니
그 사람 이름 높은 선비로다
겉모습 온화하고 마음속 슬기로워
첫째는 인품 둘째는 재주로다
한가로이 매화나무 감상하며
다정하게 술잔 기울이네
벗들 돌아가니 어찌 달래랴
마음속 친구 생각 금할 수가 없네
(벗들에게 보여주다) 
 
봄 지나 서로 만나 아담한 모임 갖추니
마을 북쪽 성곽 서쪽, 손님이 찾아오네
내리쬐는 처마 빛 청량한 대나무에 반짝이고
잠시 시원한 뜰 그늘, 한낮 우는 닭 천진하네
어두워지도록 놀자는 약속, 옷깃 잡아 나서는데
술 마시고 떠들며 더위 잊자고 술병 당기네
간혹 보는 벗이기에 정감 넘쳐 흐뭇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대나무 발에 저녁달 비치네
(관헌의 여름 모임) 
 
 
매화를 사랑한,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삶의 냄새가 글에 드러나는, 가장 빛나는 것은 일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시를 쓺에 흥興과 정情 있는, 인간의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 만물로 시선을 옮겨 인간 세상을 더 눈여겨 볼 수 있었던, 그래서 시선과 관점의 변환이 가능했던, 그런 사람, 이덕무. 
 
 
400여쪽이 넘는 소설 한 권보다 읽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가 쓴 시 한 편마다 따라오는 사념 혹은 감흥이 읽는 시간보다 더 길었다. 어수선한 요즘, 이덕무의 시를 만나 잠시 편안했다. 
 
엮은이가 이덕무의 평전을 약속했다. 그 약속을 고대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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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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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게 끝나, 지니. 머지않아. (재키) 

 
여성은 하루에 100단어만 말할 수 있고, 모든 책을 읽을 수 없으며, 살림을 위한 용도의 글만 읽을 수 있다. 핸드폰 뿐만 아니라 이메일 계정도 삭제. 가장 기본적인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몸짓까지 감시 당하며, 우편물조차 집안의 남성만이 받을 수 있다. 여권과 개인 재산은 몰수되고, 마음대로 여행도 할 수 없다. 여성들만이 착용하는 손목의 카운터는 하루에 100단어를 초과하는 순간부터 몸에 고통을 가한다. 여성 성소수자는 수용소로, 강간과 불륜에 있어서도 여성만 감옥에 간다.
 
2년 전부터 시작된 불길한 조짐. 칼 코빈 목사가 등장하면서 빅토리아 시대의 가정 교양을 부활시키고 여성들을 공공 영역에서 배제하려는 '순수운동'을 주도하면서 여성 혐오를 표면화 했다. 코빈 목사와 한통속인 마이어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미국의 디스토피아는 시작됐다. 
 
신경언어학자인 진 매클렐런. 1년 전까지는 해당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있는 학자였지만 현재는 하루에 100단어를 초과해서 말을 해서는 안되는 여성이다. 다섯 살 딸에게 노래를 불러주지도, 잠자리 동화를 읽어줄 수도 없다. 아이가 악몽에 시달려도 입을 틀어 막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모든 일은 이제, 남편 패트릭의 몫이다.
사춘기 아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던 시절은 사라졌다. 학교의 교육은 '순수운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급기야 큰 아들 스티븐은 린에게 우유를 사다 놓는 일은 엄마가 하라고, 그게 바로 여자인 엄마가 할 일이라며, 비수를 꽂는다. 딸 소니아는 말할 것도 없고, 아들 들도 이런 세상에서 살 게 할 수는 없다. 린은 오래 전 친구인 재키가, 그리고 희망이 그립다. 
  
어느날 집으로 진을 찾아 온 칼 코빈 목사. 그는 허수아비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을 농단했던 대통령의 형 바비가 스키 사고로 뇌 손상을 입자 '베르티케 영역'의 신경언어학 권위자인 진에게 치료약을 개발하는 팀에 합류하라고 부탁(이라고 포장한 명령)한다. 진은 그들이 제시한 조건ㅡ한시적인 카운터 제거, 보수, 이후 카운터 수치 증량ㅡ에 딸 소니아의 카운터 제거를 보태서 수락한다. 연구소에는 예전 동료이자 불륜 관계인 로렌조와 진이 존경하는 린이 기다리고 있다. 
 
연구실에 다니면서 진은 의심스러운 점들을 하나둘씩 발견한다. 며칠 사이에 준비할 수 없는 의료 검사 시설들, 색깔로 구분된 연구 세 팀, 그리고 문서의 제목에서 들어나는 의혹. 칼 목사가 개발하려는 것은 치료약인가, 실어증 유발 혈청인가!
진의 의심은 속속들이 드러나는 증거로 인해 확신이 된다. 실어증 유발 혈청이 여성에게 투입되는 순간,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 와중에 로렌조의 아이를 임신한 진은 함께 떠나자는 로렌조의 제안에 갈등한다. 남아 있자니 딸 소니아의 인생과 뱃속의 아이가 걱정이고, 떠나자니 세 아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사면초가 진 매클렌런. 외부와 단절된 미국은,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 될까.
  
 
본격적으로 디스토피아가 시작되기 전, 성소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재키는 활발한 사회 운동을 하며 미래를 예견했었다. 그리고 우체부 델의 아내는 여성 혐오를 넘어 인종 혐오 시대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소설은 공간적 배경을 미국으로 제한하지만 타자를 혐오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을 향한다. 
 
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린은 동성애자다. 재키 또한 동성애자이고 사회운동가다. 우체부 델은 백인이지만 흑인 아내와 결혼했다. 이성애자 남편의 아내는 여성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부부 들에게는 딸이 있다.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여성이 낳는다. 이렇듯 혐오의 대상은 나와 전혀 무관한 이들이 아니며 나 자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당장 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관심하다.  
 
어느 한 집단이 일방적으로 규정한 규칙에 맞춰 개인성을 말살하고 세뇌하는 과정은 의외로 쉽다. 지금도 사회가 원만하게 꾸려져 가기에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상식처럼 여기고 있고, 소수의 희생이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당연시 한다.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는 '다수결의 원칙',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관습, 소수 의견의 배제, 이기주의를 포장한 개인주의, 나와 타자의 기준이 달라지는 이중적 잣대 등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다른 디스토피아 문학에 비해서 비교적 낙관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 낙관적인 결말이 제자리 걸음에 다름하지 않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미 현실은 소설에서 우려하는 바가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려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127.
잃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그 모든 단순하고 평범한 것들. 
 
264.
"박사님, 저항은 어디에나 있어요." 
 
348.
내 잘못이 맞다. 다만 내 잘못은 목요일에 모건의 계약서에 서명했을 때 시작된 게 아니다. 20년 전에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투표하지 않았을 때부터.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시위에 참여하거나 포스터를 만들거나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 수 없다고 재키에게 수없이 말했던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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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삼국지연의보다 재미있는 정사 삼국지 1~2 세트 - 전2권 - 20만 유튜브 독자들을 소환한 독보적 역사채널 써에이스쇼의 삼국지 정사 삼국지
써에이스 지음 / 원너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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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협지라고 여긴 <삼국지연의>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고,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두 해 전쯤 읽다가 중간에 멈춤 상태로 잊혀졌다.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어지간하면 알만한 적벽대전 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작은 전투들도 많아서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지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둔 상태로 숙제처럼 저 깊은 어딘가에 남아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유튜브를 보지 않는 나로서는 생소한 작가인데, 꽤 유명한 분인 듯.
일단 재밌는 삽화가 눈에 들어오는데, 사망자는 눈을 X처리, 죽지 않고 잡히면 포승줄 등 웬만한 눈치면 짐작할 수 있는 센스있는 삽화가 일단 한 몫한다. 글은 최소한으로 해 구구절절한 내용들을 줄이고, 인물의 설명은 각주를 달았다. 무엇보다 위.촉.오를 중심으로 국가가 아닌 시대순으로 진행을 해 역사지도를 그리기에 수월하다. 그래서 100년여의 방대한 내용이 단 두 권에 들어가 있다.  
 
한나라 영제 재위, 184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토벌대에 황보숭, 노식, 동탁, 조조, 손견, 유비 등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1세대에 속하는 동탁, 유비, 조조, 여포, 원소, 손견 등, 2세대에 손권, 제갈량 등, 3세대의 조조의 아들들(조비 외), 사마의, 육손 등, 4세대에 유선, 제갈각, 사마의의 아들들(사마소 외), 손권의 아들들 등이 있다. 그 시대에 칠순을 넘겨 살았던 영웅도 있었고 허무하게 요절한 이들도 있어서 인물들이 활동했던 시대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 사실 세대를 구분하는 건 게 의미는 없다. 그러나 100년의 역사니만큼 살아온 순서를 일렬로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하다. 
 
복잡한 역사적 사건을 정리하는 건 무리가 있고, 인물에 대한 느꼈던 바를 조금 짚어본다.
 
삼국시대 초반에 등장하는 동탁과 여포. 거친 성정의 동탁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제일 비호감인 여포. 아무리 난세라지만 그렇게 출중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의리 없어, 몰염치해, 간사해,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박쥐의 전형(박쥐 미안). 그러고 보면 본인은 살겠다고 한 짓이 결국 딱 죽기 좋은 짓만 한 셈이다.
동탁과 여포가 죽은 후 본격적인 삼국시대, 천하삼분지계가 시작된다. 
 
읽으면서 가장 고개를 갸우뚱했던 인물은 유비.
전투에서 선봉을 서지도 않고, 딱히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본인의 무예가 출중하지도 않고, 심지어 용감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전시적 행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주변에 사람이 많다. 도망은 어찌나 잘 다니는지(적벽대전 중에도 이길 생각보다 일단 도망갈 준비를 먼저 할 정도로) 다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디로 도망가든 일단 이 사람을 다 받아준다. 뭐지?
그런데 읽을수록 사람 됨됨이가 조조, 손권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조조를 피해 달아나야하는 유비는 10만 명에 달하는 백성과 함께 떠난다.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어 부하들이 백성을 버리라고 하지만 유비는 차마 그러지 못한다. 결과적으로는 처자식까지 버리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다른 권력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동맹과 배신을 반복하는 경쟁자들의 관계에서도 가능한 신의를 지켰고 항복한 적장에게 재산을 돌려준다. 오나라의 주유는 유비를 가리켜, '용맹하여 영웅다운 자태를 갖고 있으며, 몸을 굽혀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평했다. 용맹은 모르겠지만, 주유의 말대로 신하와 논의는 했어도 휘둘리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단정하고 검소한 제갈량이 유비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만 했다.
한나라의 유방이 개인적인 능력에서는 항우를 당해낼 수 없었지만, 인재를 두루 등용해 승자가 된 사실을 떠올려보면, 유비 또한 주변의 사람 덕에 초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게 아닌가싶다.  참고로 유비가 제갈량을 얼마나 무한 신뢰했는지는 그의 유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선생의 재능은 조비의 열 배에 달하니 필시 나라를 태평하게 안정시키고 대업을 이루기에 충분합니다. 만약 내 아들이 보좌할 만하면 보좌하시고, 그 아이가 재능이 없다면, 그대가 스스로 취하도록 하시오."
"착한 일을 작다고 아니하면 안되고 악한 일은 작다고 하면 안된다. 제갈량을 어버이처럼 섬기며 그와 함께 일을 처리하라."
제갈량에 대한 신뢰 뿐만 아니라 유비의 성정을 짐작케 한다.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보다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조조가 아닐까. 위나라의 기틀을 닦았고, 세상과 돌아가는 판세를 읽을 줄 알았던 사람. 조조에 대해서 <위서>와 <조만전>의 평가는 전혀 다른데, 두 문헌을 모두 읽어보면, 검소하고 남에게 잘 속지 않으며 원칙을 준수하고 전투에 임할 때와 대치할 때의 자세가 달랐다. 다만 경박한 면이 없지 않아 자신보다 잘난 신하 꼴을 보지 못해 가혹한 면도 있었던 듯 하다. 조조가 후대에 크게 좋은 인물상으로 남지 않은 이유는 아마 엄청난 결과에 비해 호걸다운 면모는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의 유언을 읽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된다.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으니 장례가 끝나면 모두 상복을 벗고 군을 이끄는 장수들은 주둔지를 떠나지 말라. 내 시신에는 평상복을 입히고 무덤에는 금은보화를 묻지 말라."  
 
사실 처음에 호감을 가졌던 사람은 손권이었다. 진수는 그를 '몸을 굽혀 치욕을 참으면서 재능 있는 자를 임용하고 지혜로운 자를 존중했고 비범한 재능이 있었으니 영웅 중에서 걸출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권력을 손에 쥐면 어쩔 수 없는건가. 귀는 가벼워지고, 사람 보는 눈은 어두워지며, 권력 후반에는 공포 정치까지. 가진 게 많아지니 지킬 게 많아진 때문이려나. 외형상에 불과했다하더라도 초나라와는 비교적 동맹관계를 잘 유지했었고, 상황이나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했던,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젊은 시절의 그가, 책장을 넘기면서 점점 그리워졌다. 
 
사마의는 권력 1인자가 되어 그 당당했던 조씨 가문을 끌어내리고 그의 후손ㅡ사마염ㅡ이 황제에 등극해 진니라를 세워 삼국시대를 마감한 터를 닦은 장본인이다. 우리나라의 연개소문을 떠올리면 좀 이해가 수월하려나. 성정은 조금 다르지만 권력을 취하고 실행하는 과정까지는 닮아 있다. 
 
씁쓸한 황제 촉한의 유선. 유비의 아들로서 성정이 너그러운 건 아버지와 닮은 듯 하나 결단력이나 주관이 뚜렷한 건 닮지 못했나보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유선에게 인상적인 모습은 보지 못했다. 위, 오나라가 권력다툼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면 유선은 내부적으로 혼란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래도록 황제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물론 제갈량을 비롯한 유비를 따르던 신하들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촉에 항복하고 신변의 위험을 감안해도, 한때 황제였던 자의 가벼움이라니...... . 
 
그외에도 육손, 제갈각, 강유 등 수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있지만 그 이야기를 다 풀어놓자면 책을 그대로 옮겨와야 할 지경이다.  
  
 
재미있는 사실.
외모도 출중했다는 제갈량의 부인은 박색이었다고. 그러나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으며 생활에 필요한 기구를 발명해서 썼다고 한다. 제갈량은 234년 북벌을 감행했을 때 운송수단인 수레 '유마'를 발명했다는데, 그야말로 부창부수. 
 
궁금한 사실.
유비가 죽고 유선도 크게 북벌의 욕망이 크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제갈량은 왜 끊임없이 북벌을 시도했을까? 실패는 크고 성공은 미약했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북벌. 같은 꿈을 꾸었던 주군은 죽고 없는데, 젊은 주군은 그 그릇이 되지 못함을 제갈량이 모르지 않았을텐데, 왜였을까? 대업을 이루라는 주군의 말을 이뤄주고 싶었던 거였을까? 
  
 
<정사 삼국지>를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워밍업으로서는 최고가 아닐까싶다. 진수의 완역본을 다시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옆에 이 두 권을 놓고 참고해가며 읽으면 훨씬 이해가 수월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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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고흐 :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 전통과 도덕적 가치를 허문 망치 든 철학자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공공인문학포럼 엮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년여 정도, 서양철학을 소홀히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외국인이 쓴 사회과학 도서를 읽고, 미뤄놓은 동양철학 재독에 여력이 없기도 했다.
(신간에 정신팔려...가 진실에 더 가깝겠지만.) 
 
오랜만에 니체의 글을 만났다. 그것도 고흐의 그림과 함께. 글 모음이라 개인적으로 감질나게 읽을 수 밖에는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그의 글을 읽으니 좋았고 아직 니체의 글을 접하지 못한 이라면 이 책이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한두 해 전에 고흐 평전을 읽은 터라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그의 그림이 새삼 더 애틋하다. 예상보다 많은 고흐의 작품이 실려 있어 특별히 고흐를 애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처음 보는 작품도 있을 수 있어 좋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한때 얼마나 사랑했던가. 펼치기만 해도 설레었던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일었다. 
 
 
[니체]  
 
54.
양심을 따르는 것은 의지를 따르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실패했을 경우 양심은 자기 변호나 기분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은 극소수인 데 반해, 자신을 양심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주 많다. ㅡ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에 '남들도 다 그래'라는 편한 핑계를 대며 스스로 양심을 합리화 시키며 살고 있는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잘살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물론 남들보다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그 욕구로 인해 타인의 고통은 모르쇠로 일관한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56.
자서전을 통해 생존 가운데 체험하고 탐구한 것뿐 아니라 자신이 믿었던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하겠다는 전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ㅡ 반시대적 고찰 
: 어린 시절 적지 않은 위인전을 읽으며 자랐다. 지금의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인전도 부족해서 본인이 직접 쓴(물론 다수가 대필작가를 통해서 쓰겠지만) 자서전까지 챙겨 읽는다. 우리는 왜 어린 나이부터 위인전을, 청년이 되어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을 읽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본인이 주체가 아닌 이상적인 삶의 기준을 무의식적으로 강요받는 건 아닐까?
 
110.
내가 동정을 비난하는 까닭은 그것이 수치에 대한 감정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타인을 동정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무례한 짓이다. 동정은 운명을 파괴하고, 치명적인 고독에 특권을 부여하며, 거리낌 없이 죄를 용서한다. 인간은 자신이 누군가를 동정할 때 느껴지는 고귀한 감상 때문에 이 무례한 괴물에게 도덕의 관념을 덧씌웠다.ㅡ 이 사람을 보라 
: '동정'이란 남의 어려운 처지를 알아주거나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동정을 받는 대상이 어떠한 관점에서(혹은 전반적으로)는 자신보다 낮은 처지라는 것을 전제한다. 그래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우월의식을 품게 된다. 동정은 공감과 배려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우리는 종종 이들을 구분없이 사용하곤 한다. 동정을 무례한 괴물에게 덧씌운 도덕적 관념이라고 말하는 니체의 말에 동의한다.
옆에 나란히 한 그림, 고갱에게 헌정했다는 <자화상>을 본다. 이 '동정'이라는 단어가 고흐에 얼마나 친밀하다고 여기는가. 그러나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그를 누가 감히 동정할 수 있나.
 
122.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오늘날에도 인간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분리된다. 만약 하루의 3분의 2정도를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그가 정치가이든 상인이든 혹은 관리나 학자이든 그저 노예일 뿐이다. ㅡ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나는 노예인가, 자유인인가! 니체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겠지만) 노예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싶다.
 
156.
현대인들은 인간의 고민을 위선이라고 비난한다. 우리는 너무 빨리 결정하고 있다. 고민이나 사색은 그저 걸어가면서 해치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점차 품위를 상실하고 있다. 인간이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단지 기계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 머릿속에 이미 기계가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 기계의 성능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품위가 결정되는지 모른다. ㅡ 즐거운 학문 
: 성장중심의 사회에 살면서 현대인(특히 우리나라)이 자주 쓰는 단어가 '빨리빨리', '신속하게'다. 멍 때리는 것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며, 느리고  빈 틈이 있다는 것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말이 자유여행이지 일정표를 만들어 전혀 자유스럽지 않은 여행을 한다. 많은 디스토피아 문학에서 사유의 부재를 우려하고 있지만, 이미 지금을 사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유가 존재하나?
이 글에 옆에 있는 그림 <르픽 가의 빈센트 방에서 본 파리 풍경>. 고흐는 이 방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174.
그 행복은 너무나 가혹한 행복이다. 잠시 후 나무들 사이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한낮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생활이 다시 그를 삶의 터전으로 던져 버린다. 맹목의 눈을 가진 생활이 어젯밤처럼 그의 동반자가 되어 그를 기만한다. 그의 뒤에는 소망, 망각, 향락, 부정, 무상이라는 그림자가 펼쳐진다. 그리고 또다시 황혼이 찾아온다. ㅡ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찰나의 행복했던 순간은 지나고 다시 먹고사는 걸 고민해야 하는 일상의 비루함은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햇빛처럼 반짝이는 짧은 달디 단 행복으로 우리는 그 비루함을 감수하고 산다. 해와 달이 늘 뜨고 지듯이 우리 삶도 뜨고 지고를 반복하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
  
244.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분열이다. 어느 한 군데에도 확실성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발로 이 땅을 디딜 수 있는 자가 없다. 단지 사람들은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살고 있다. 모레는 감히 예측할 수 없기에 오직 내열을 그리워한다. ㅡ 권력에의 의지
: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혀 산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별 감흥조차도 없지만, 그래도 여전하다. 미래에 대비해 보험도 들어야 하고, 노후자금도 마련해 놓아야 하니 오늘만 살 순 없다. 그렇다고 해서 뜻대로 미래를 대비하지도 못한다. 물가는 오르고, 아이의 학원비, 연로하신 부모의 생활비, 각종 공과금과 대출금, 틈틈이 다니는 여행 경비 등 하루하루 달리기의 연속이다. '오늘만 살다 죽겠소'라는 마음가짐도 걱정스럽지만, 때때로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자싶다.
 
300.
섬세한 감각과 섬세한 취미를 가질 것. 강력하고 대담하며, 자유분방한 마음을 유지할 것. 침착한 눈동자와 확고한 발걸음으로 인생을 짓밟을 것. 터무니없는 일을 당해도 마치 축제에 참가한 것처럼 즐길 것. 미지의 세계와 해양, 인간과 신들을 기대하며 인생을 지켜볼 것. 마치 그 미지의 세계를 지키는 병사와 선원들이 잠시 동안의 휴식과 즐거움으로 피로를 잊는 듯, 혹은 이 찰나의 쾌락 속에 인간의 눈물과 진홍색 우수를 잊는 듯이 밟은 음악에 귀를 기울일 것. ㅡ 즐거운 학문 
 : 터무니없는 일을 당해도 마치 축제에 참가한 것처럼 즐기고, 인생을 지켜보려면 얼마나 내공을 쌓아야 가능할까. 미지의 세계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배움의 길. 소망하는 바이다. 
 
니체는 인간이 학문에 의해 신의 지혜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학문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결합이 신의 삼위일체를 대신해 줄 것으로, 그리고 학문이 인간과 전혀 상관없는 것에 집착하기를 바라는 기대 즉 착각에 의해 학문이 발달했다고 말한다. 학문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끝까지 지속해야만 하는 것이 학문아닐까.  

 

 

[고흐]

131.
작품명 : 구두 한켤레 
 닳고 풀어헤쳐진 구두 한 켤레. 누구의 신발이려나. 일상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따라오는 니체의 글, '마치 진리는 인간이 존속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증명이나 되고 이쓴 듯 말하고 있다'. 생존의 증명이 고단함이라는 건가. 자신이 살아있고, 그리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동생에게 증명하듯 살아야 했던 그의 일생이 전해진다.

 

205.
작품명 : 담뱃대를 문 자화장
고흐의 많은 자화상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귀를 잘라내고 붕대를 감은 모습보다 더 인상적인 이유를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덥수룩한 수염, 잔뜩 일그러진 양미간,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듯한 시선, 그리고 그림은 짙은 색감까지. 마흔도 되지 않은 남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회한이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279.
작품명 : 숲속의 소녀 
개인적으로 고흐적인 느낌이 덜 하다고 생각하는 그림이다.
홀로 나무를 등지고 숲속에 서 있는 어린 소녀. 왜 아무도 없이 혼자 서 있는 걸까?
소녀의 자리에 고흐를 대신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한때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펼치기만 해도 설레었던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 오랜만에 감성과 이성이 넘나드는 책읽기였다. 니체,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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