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벨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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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은 약속대로 웬디를 데리러 오고 그녀의 부탁으로 두 동생과 달링가에 입양된 소년들과 함께 네버랜드로 향한다. 하늘을 날던 중 식사감으로 구해온 고깃덩어리는 말하는 도마뱀 빌. 빌을 죽이겠다는 피터를 만류한 웬디 덕분에 목숨을 구한 빌은 그들과 함께 동행한다. 피터의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고 싶었기 대문에 웬디가 네버랜드로 오는 것을 마뜩치 않아 했던 팅커벨이 아이들이 모두 인어 만에 나간 사이에 누군가로부터 잔인하게 살해 당한다. 범인을 찾아달라는 웬디의 부탁에 피터는 그때부터 살인면허증을 받은 것인 양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추적 끝에 팅커벨이 죽기 직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음이 확인되고 네버랜드 아이들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피터 팬으로 지목하지만 그의 난폭함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다.


한편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이모리. 예지몽을 꾸는 그는 자신이 네버랜드에서 존재하는 도마뱀 빌의 아바타라임을 깨닫고, 네버랜드 세계에서 무참히 살인이 벌어지는 것과 맞춰 동창생들에게 사고가 잇달아 일어나면서 사망하자 아바타라가 자신만이 아님을 알게되고 피터의 살인 행각을 막기 위해 팅커벨을 살해한 범인을 찾고자 고군분투한다. 각각 누구의 아바타라인지 알아야 문제를 해결해 나갈텐데 다들 아바타라로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피터팬이며, 누가 웬디일까? 무엇보다 당시 담임이었던 후쿠가 가장 미심쩍다. 그는 후크 선장일까, 그렇다면 후크 선장이 살아있다는 말인가? 이전에는 없었다던 폭설에 의한 고립과 통신 장비의 불통, 미심쩍은 여관 안주인, 쏟아져 나오는 시체들, 그리고 네버랜드에서 일어난 화재에 맞춰 발생하는 눈사태. 그들은 무사히 여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네버랜드의 여왕 요정 마브는 빌에게 그의 아바타라 이모리와 협동 수사할 것을 충고하고, 쌍둥이를 언급하면서 웬디로에게 사건 해결의 열쇠를 던져준다. 그 와중에 적대 관계였던 해적들과 웬디를 질투하는 붉은 피부족 타이거 릴리로 인해 다툼과 혼란은 가중되고 결국 아이들의 지하 기지가 붉은 피부족이 놓은 불길에 휩싸이면서 두 쌍둥이 형제들 중 한 명이 사망한다. 울분을 토하며 앞으로 나서는 한 아이. 드디어 팅커벨의 범인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냈다!


그가 그토록 웬디를 미워하고 팅커벨을 죽인 까닭은 무엇일까?








이 소설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터 팬은 없다. 상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납득이 안될 정도로 무지하다. 소시오패스가 아닐까싶을 만큼 양심이나 죄책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지, 공감 능력 그 어느 것도 없다. 그저 내키는대로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다. 그가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몸은 열두어 살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피터 팬이 태어난지 불과 일주일 만에 죽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피터 팬은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경험하지 못한 채 죽어버린,그래서 사랑, 우정, 관계, 이해, 공감, 고통, 절망, 질투, 분노, 희열 등 인간이 성장하면서 겪어야할 다양한 감정을 알지 못한 채 무지와 허상의 낙원에 갇혀 버린 불쌍한 존재다. 그가 네버랜드에서 왕처럼 군림할 수 있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피터 팬은 개인마다 굳이 이름이 필요하고 개성이 존중 받아야함을 모르며 오로지 생사를 이분법적으로만 결정한다. 그래서 그의 살인 행각에 분노하다가도 결말에 가서는 측은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네버랜드의 피터 팬이 인간 세계에는 없을까?


소설에서 인간 세계의 대표 악인은 후쿠 선생이다. 그는 아동성애자로 선생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학급의 아이들을 지능적으로 성폭행 했다. 그 사실이 들통나자 네버랜드 아바타라로서 본체가 죽기 전 아바타라가 먼저 죽으면 상황이 초기화되는 것을 이용하여 도망을 치지만, 결국 시간의 루프에 갇히면서 영원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후쿠가 빠진 시간의 루프에서 안전하다고 볼 수 있을까?


자고 일어나면 수많은 강력 범죄 사례가 화면을 채운다. 아동 학대, 학원 폭력, 납치, 살인, 강간 등 유사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뿐인가.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내가 살기 위해 동료를 밟고 올라서야 하고, 더 큰 내 밥그릇을 꽉꽉 채우기 위해 남이야 죽든 말든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나만 아니면 돼? 언제까지 '나만' 아닐 것 같은가!


사람들은 점점 무감각해진다. 어느새 이토록 잔혹한 시간의 루프 안에 걸려들었음에도 자각조차 못하는, 혹은 외면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소설 속 피터 팬이 잔혹한가?

그는 무지라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정점을 치닫는 문명 세계에서 최고의 지적 수준을 구가하는 현대인들은 어떠한 변명을 하려는가.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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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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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의자 / 조병화) 



여덟 집에 도합 열 명의 노인이 살고 있는 팔곡마을.
어느날 이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마을의 우체통에 우편물이 쌓여있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우체부 김 씨가 마을을 둘러본 후 서둘러 파출소에 신고했으나 소장 박 경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우체부 김 씨가 심상치 않다며 성화를 부리고 재촉하는 통에 저녁 시간이 다 되어 팔곡 마을에 도착한다.


팔곡으로 가는 배 안에서 홍보용 비디오 한 편을 보게되는 박 경위와 김 씨. 두 사람은 죽음은 선택이라고 광고하는 '웰다잉협회'의 영상에 빠져든다. 사실 이 '웰다잉협회'는 김 씨가 일전에 팔곡마을에 배달한 우편물에도 있었다.


이장인 피 노인의 방으로 들어가자 우체부의 말 그대로였다. 방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밖으로 나와보니 마당에 있어야할 우체부가 사라졌다. 섬뜩한 기운이 느껴진 박 경위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으나,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 마을의 모든 불은 꺼져 있어 손전등을 켠 채 한참을 걸으니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묘한 기시감이 드는 건 왜일까? 박 경위는 수첩을 꺼내 방금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휘갈겨 쓴다. 


79.
이상한 의문. 알아볼 것. 그런데 무엇을?



마침내 길 끝에 다다른 박 경위는 선착장이 아닌 폐가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고 마침내 폐가에 도착하자 몇 년 전 장수 노인 축하 잔치에서 '웰다잉협회', 죽음을 선택하라는 홍보 영상이 틀어졌으며 그로부터 며칠 후 한 할머니가 자살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이마에 피가 말라붙어 있고 두 손이 뒤로 묶인 우체부가 울부짖고 있었다. 그의 결박을 풀어주려는 그 순간, 뭔가 묵지한 것이 박 경위의 머리를 때렸다.


정신이 돌아온 박 경위는 단단히 묶여 있어서 꼼짝할 수가 없다. 분명한 건 노인들이 사라진 데에 귀신이 관여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섬을 드나드는 사람이라고는 우체부 뿐인데 하루 아침에 열 명의 노인이 어떻게 사라진 것이며, 그 까닭은 무엇일까?






뉴 제너레이셔, 새로운 세대의 도래.
박 경위와 우체부를 공격한 자는 늙고 병들고 아무 쓸모없는
구성원을 내쫓아야만 건강하고 밝고 싱싱한 젊은 구성원이 살아갈 수 있으므로 노년 세대의 무용을 주장한다. 자신이 속한 '뉴 제너레이션'이라는 비밀조직은 대외적으로 웰다잉협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들의 임무는 노인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유교적 혹은 감성적 논리를 떠나 노년기에 접어드는 세대는 정말 없어져야 하는 존재인가?




소설은 노인 혐오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노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고, 체력과 지력은 쇠퇴하여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다가올 미래 사회를  준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존재이다. 즉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제거되어야할 대상으로 치부된다. 이것은 사회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인 '인간의 행복과 안전'이, '사회 체계 유지'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사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인 '사람'이 어느새 '부속품'으로 전락했다는 것과 다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화를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젊어지려고 발버둥치는 것일 테다. 어떤 의미로든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소설은 호러 형식을 빌어 읽는 동안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무엇보다 독자는 사건이 해결이 되었다고 짐작하는 지점에서 새롭게 던져지는 암시로 인해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에어컨을 틀 수 밖에 없었다. 떨어지는 빗소리와 실내의 냉기, 거기에 소설의 음산함이 더해져, 덕분에 오스스한 여름 하루를 보냈다. 


97.

하긴. 자넨 아직 모르겠지만 원래 늙는다는 게 그런 거라네. 희망을 버리는 길고도 지루한 과정.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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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0 봄.여름 특별호 - 67호
한국추리작가협회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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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 느끼는 통각 중 가장 높은 순위에 랭크된 참을 수 없는 고통. 열기로 피부와 근육의 수분을 빼앗아 수축시키고 서로 엉겨붙어 전신을 찌르는 작열감을 주는 화상의 고통이다. (본문 중에서) 



오랜만에 휴일 비번인 일요일, 한가롭게 육아와 낮잠에 매진 중인 동남경찰서 강력반 오영섭 형사. 밖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음을 알고 신분증을 챙겨 화재 현장인 103동 510호로 향한다.


현관문 열쇠 두 개는 모두 잠겨 있었고, 각 방문의 열쇠는  똑딱이로 안에서 잠금단추를 누른 채로 문을 닫았으며 창문 또한 잠금 상태였고, 5층 높이라 외부로 드나들기는 불가하다. 완벽한 밀실 상태에서 발생한 화재다.


피해자는 집주인 33세 여성 김은경이다. 정황상 자살인데 오형사는 몇 가지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사망자가 하필이면 자살 방법 중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을 택한 것과 발견 당시의 위치와 자세다. 


CCTV 확인 결과 화재 신고가 있기 전 103동을 드나든 외부인은 아파트 단지 담당 택배 기사와 사망사의 남자 친구 조기정 뿐이다. 이 화재 사고가 단순 자살이 아닌 살인 사건이라면 용의자는 외부인 두 명과 입주민들이다. 택배 기사와 조기정을 비롯해 주변 탐문 수사를 시작한 오영섭과 우성. 탐문 결과 평소 조정기와 김은경은 골초였고 두 사람은 안팎에서 다툼이 잦았으며 결별 직후 였다. 연인과의 이별에 대한 충격으로 인한 자살에 더 무게가 실리지만 오영섭은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세대 방문 당시 이웃 주민들은 김은경에게 모두 비호의적이었고, 대부분 그녀의 흡연 때문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화재 신고자 509호 남자는 오래된 아파트의 특성상 방음이 안되기 때문에 사망자가 남자친구와 다투면서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진술한다. 아래층 410호는 김은경이 골초였던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화재 장소인 510호의 반대편 끝집에 사는 506호의 입주민은 510호에 들어가는 175센티마터 정도 키의 남성을 목격한다. 위층 610호 남자는 김은경이 남자친구와 자주 다투는 모습을 목격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또한 탐문 과정에서 화재 직전 김은경과 조기정이 심하게 다투었다는 제보도 나온다. 그리고 사망자 김은경에게서 나온 결정적 증거! 이들 중 범인은 있다. 




■ ■ ■ 



장르문학 덕질 리뷰어에서 작가로 입문해 신인상까지 거마쥔 홍정기 작가의 <백색살의>가 궁금했다.


소설은 공동주택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소통과 배려가 부재한 아파트 문화를 소재로 한다. 현관문만 닫으면 안에서는 어떠한 일이 생겨도 밖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주택구조 아파트.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이웃과는 단절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이웃에 대한 이해와 배려없이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는 일방적 소통에 대한 문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여전히 가장 큰 사회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너무 일반화되어버린 공동주택 입주민 간의 갈등 문제를 허투로 보지 않은 점이 좋았다.


장르문학 덕후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이가 된 홍정기 작가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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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귀환 -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제이슨 바커 지음, 이지원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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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뮌은 그대들을 의지하니, 그대들은 코뮌을 의지하라.
(파리 민중과 국민방위대에 고함) 



카를 마르크스의 생애와 자본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이 소설에는 우리가 읽은 그 자본론의 어려움이 1도 없음과 마르크스의 허당기 충만한 코미디 요소가 가득한 소설임을 밝혀둔다.


소설에 나오는 마르크스는 우리가 아는 위대한 사상가의 모습이 아니다. 한 가지 생각에 빠지면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깜박하기 일쑤고,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책을 쓰면서 주변에 사회주의 운동을 함께 하는 동지들에게도 몽상가라는 독설을 들으며 외면 받는다. 어디 그뿐인가. 돈 한 푼 벌어오지 못하는 쓸데없는 지식만 머리 속에 가득하다는 가정부의 구박까지 고스란히 들으며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가장이기에 제대로 화도 내지 못한다.


소설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혁명이 모두 좌절된 마르크스가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살게 된 1849년 11월부터 시작한다. 집세도 내지 못하는 형편에 귀족 집안 출신인 아내는 한가롭게 체스를 두고 아이들 음악 교육에 열을 올리며 젊고 부유한 장교와 일탈을 즐긴다. 얼마 안되는 가진 것들을 저당 잡히고, 두 아들은 병들어 죽어가지만 마르크스는 절친 엥겔스에게 손을 벌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영국에서 무국적자로 죽는 순간까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던 마르크스의 하루하루는 비루함을 견디며 생존을 위한 투쟁과 절대 놓칠 수 없었던 <자본>의 집필과 사상이 전부였다.


이 소설의 반전은 위와 같은 내용을 전혀 우울하거나 무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해학과 유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엉뚱하고 어디 한 군데 나사가 살짝 헐거워진 듯 보이는 마르크스와 그러한 마르크스를 향해 팩폭을 날리며 쥐잡듯 잡는 가정부,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해맑은 그의 아내 예나 등 한 편의 사회파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노동의 분업, 소외된 노동의 민주적인 요구, 자본주의의 헛점, 자기주도적 노동 등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 및 악순환에 대해서 무겁지 않게 짚고 있다. 도망가이자 혁명가이고 사상가였던  마르크스는 스스로를 정치적 난민라고 칭했다. 사회주의를 지향했고 <자본>을 집필한 그가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영국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자본주의가 종말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견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때문에 다른 객체가 종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철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저서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에서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두 체제가 모두 필요하다고 썼다. 우리는 돈이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 세태는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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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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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피시방 화장실에서 어린아이가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손쉽게 검거한 범인 천원칭의 입에서 나온 범행동기는 평생 편하게 콩밥을 먹고 싶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한다. 심지어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한두명 더 죽였어야하는데, 그전에 붙잡힌 것을 아쉬워하기까지 한다.


심리연구가 중완칭은 변호사 윈즈에게 피시방 묻지마 살해범 천원칭의 변호를 의뢰한다. 윈즈는 무차별 살인으로 약혼녀를 잃은 피해자 가족으로서 중완칭의 의뢰를 거절하지만 그녀는 집요하게 그를 설득한다. 


97.
그 사람들의 진짜 범죄 동기가 뭔지 정확히 알고 싶지 않으세요? 


윈즈는 천원칭의 살인 동기 분석과 묻지 마 살인의 발생 원인 및 재발 방지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중완칭의 가해자 변호 의뢰를 수락하고 본격적으로 가해자 이력과 사건의 전반적인 사항을 조사하면서 천원칭이 어린시절 부모의 방치와 학대, 아버지의 폭력 및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교육을 받지 못하고 아동 노동에 시달려왔으며 살인을 저지른 그 즈음 연인과 헤어져 자살 충동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그와의 면담에서 정신 이상 및 대인 관계 미숙을 느끼던 차에 이와 관련한 전문 변호사 루이양의 조언을 받아들여 정신감정을 의뢰한 결과 그에게는 공감 능력 부재를 비롯한 정신 이상 소견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결과를 받아든다.


한편 청원칭의 사건을 묻지 마 살인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인 변호사가 맡았다는 사실을 이슈화하려는 기자 스융다가 윈즈를 집요하게 따라붙고, 윈즈는 그를 통해 비서 야란이 자신의 약혼녀를 지하철 승강장에서 떠밀은 가해자 주젠쭝의 이복동생임을 듣게 되지만, 그는 청원칭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가해자 유가족이 감수해야 하는 심리적 피해를 이해하였기에 도리어 그녀를 위로한다.


청원칭 아동 살해 사건 2심, 윈즈는 가해자의 정신 감정서의 결과를 통해 1심의 분위기를 뒤집는다. 



■ ■ ■ ■ 



주택가 좁은 골목에서 총기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가족이 없고 소형 고물상을 생계로 하는 60대 노인 남성이다. 특별한 원한 관계도, 재력도 없는 듯 보이는 노인을 왜 죽였으며 무엇보다 총기 소지가 불법인 나라에서 범인은 도대체 총은 어떻게 구했을까? 놀라운 점은 탄환 감식 결과 작년에 발생한 총기 사건의 총기로 밝혀졌다는 사실과 그 사건은 30대 남성 뤄핀훙이 노숙자 여성을 살해한 후 바로 자살했고 총은 의문의 남성이 가져갔으며 같은 총으로 수 개월이 지난 지금 또 다른 범인이 독거 노인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사건은 오리무중이고, 6개월여가 지나 공원 화장실에서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총기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CCTV를 확인한 결과 범인이 20대 청년 뤼야난임을 확인하고 주변을 수소문하면서 수사 범위를 좁혀가던 중 다시 총기 살해 범행을  하는 야난을 현장에서 추격하고 이 과정에서 윈즈의 비서 야린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며 야난은 백화점 옥상에서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살한다.


직접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는 자살로써 죽음을 맞이했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피해자만 속출한 상황. 그런데 핀훙과 야난에게 총을 제공한 사람은 누구이며, 원칭과 피씨방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토론을 했다는 의문의 남자는 누구일까? 


윈즈는 원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진술, 그에게 사형제도에 대해 말한 사람과 관련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처음 사건을 의뢰했던 심리연구가 중완칭에게 원칭을 함께 면회해 주기를 부탁한다. 그녀는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윈즈와 함께 면회를 하는데, 원칭은 자리를 뜨려는 중완칭을 향해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이에 윈즈는 그가 한번도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며 중완칭에 대해서 면밀하게 짚어본다. 그러다가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한 헛점들. 윈즈는 목숨을 담보로 한 추적을 시작한다. 


누가 배후에서 무차별 살해의 살인자들을 조정하는 것일까? 



□ □ □ 



처음 만나는 대만 작가이다. 제목만으로 충분히 유추가 되는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묻지마 살인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범인을 수사하는 과정이 아닌 그들이 왜 가해자가 되었으며 현재 사회 안전망에 대한 부재와 모호한 기준들, 그로인한 피해자 속출과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소설에서는 세 명의 가해자가 등장하는데,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핀훙의 유년 시절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봉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넉너가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평범했으나 대학 진학 이후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면서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한쪽 팔을 못쓰게 됐으나 파견 계약직이었던 핀훙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노숙자로 전락한다.
야난은 조직폭력배 아버지와 우울증으로 자살한 어머니로 인해 일찍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으며 자라지 못했다. 친척집을 전전했고 공갈과 절도 및 약물까지 손을 댔다. 세 사람은 유년시절부터 불우한 환경에 노출되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에서 성자한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모든 범죄자들의 범죄 원인이 성장 배경에 기인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아니 묻고자 하는 것일까?



치료가 우선인가? 처벌이 우선인가? 


피시방 살인 사건 가해자 원칭은 심리 검사의 결과에서 공감 능력 부재와 정신 이상 소견이 나온다. 실제로도 가해자의 변호인들이 가장 많이 주장해 구형을 줄이는 수법이 심신 미약이다. 그만큼 형량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떄문에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만일 진단이 핑계나 거짓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복적 사법을 지지하는 변호사 루이양은 범죄자들에게 치료를 받게 해 회복한 후 자신의 범행을 깨닫고 피해자 혹은 유가족에게 진심어린 사죄와 보상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호사 윈즈가 말도 안되는 범죄자의 변호를 결심하게 된 동기도 무차별 살해의 근본적인 원인과 재발 방지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범죄자를 무조건 사형시킨다면 우후죽순으로 일어나는 직접적 동기불명 살인 사건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빠른 판단과 빠르고 극단적인 처벌이 모방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뚫린 댐을 주먹으로 막고 있는 꼴이다. 또한 과거 살인자였던 사람이 이웃으로 온다고 상상해 보라. 지역 주민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그 공포는 또 다른 범죄를 불러올 소지가 충분하다. 사회 안전과 정신 의료, 함께 이뤄내야할 부분이다. 그런데 이쯤되면 또 다른 의문점이 튀어 나온다. 



정신감정에서 나온 정신질환 결과를 믿으십니까? 


소설에서 원칭은 심리 검사를 두 번 받는데, 결과가 상이하다. 실제로도 이러한 사례가 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발생할까? 환자의 심리 상태, 검사 시간(기간) 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주이양이 짚어낸 바로는 원칙과 기준의 부재다. 사람의 정신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고 정신질환을 초래하는 원인은 다앙하고 복합적이며 여러 검사를 한다고 해도 실재하는 원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신의학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담.검사하는 의사의 주관적 판단이 결과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므로 이에 대한 규정된 기준을 명확하게 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거짓으로 정신 검사를 빠져나가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사회 구성원의 안전과 인권 및 사생활 침해,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할까? 


정신연구가 텐 교수는 빅데이터를 토대로 일부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선별 기준을 만들어 각 지역 의료기관에 보급해 고위험 사례가 있으면 경찰 및 정부와 함께 대상을 추적 조사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현재 무차별 살인범은 인격장애들이기 때문에 사법기관에서 개입해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중완칭은 정신질환의 심각성과 범죄 가능성이 정비례하지 않으며 인권 문제와 사생활 침해 문제를 든다. 그리고 고위험 정신질환자는 매우 많지만 그중 범죄자가 되는 확률은 극미하므로 텐 교수가 본말을 전도한다고 말한다. 또한 범죄 예방을 논할 때 정신질환은 범죄 요소로 단정해도 되는 것이냐는 것과 정신질환과 범죄 사이에 인과 관계가 없음을 피력한다.


텐 교수, 중완칭 두 사람의 의견에 모두 일리가 있다. 우리는 '안전'과 '인권(사생활)' 사이에서 늘 딜레마에 빠진다.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언제라도 '소수'의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한다면 이 딜레마에서 덜 헤매려나?



무차별 살인을 막는 뚜렷한 대안은 현재로써는 없는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불우한 환경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소설 속 윈즈의 말처럼 개인과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개인이 사회에 나와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일원이 되었을 때, 사회와 행정기관은 개인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진정한 발전으로 가는 길이다.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선생님과 복지사들은 그 이유를 알아야 하고, 아동 노동 혹은 불법 미성년 갈취 현장을 알게 되면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일자리를 잃어 굶주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사회 안전망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잘 살아야한다는 초경쟁 시대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실패한다는, 실패가 패배라는 공포가 언제든 무차별 살인을 불러올 것이다. 이러한 공포를 조장하는 이는 다름아닌 우리 자신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은 불우한 환경을 들어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가해자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차별 살해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회 구조와 안전망 부재에 있으며 이를 순차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가해자가, 혹은 피해자도 될 수 있음을 일갈한다.


처음 만나는 작가가, 나에게 무거운 숙제를 던져 놓았다. 일독을 권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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