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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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피시방 화장실에서 어린아이가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손쉽게 검거한 범인 천원칭의 입에서 나온 범행동기는 평생 편하게 콩밥을 먹고 싶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한다. 심지어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한두명 더 죽였어야하는데, 그전에 붙잡힌 것을 아쉬워하기까지 한다.


심리연구가 중완칭은 변호사 윈즈에게 피시방 묻지마 살해범 천원칭의 변호를 의뢰한다. 윈즈는 무차별 살인으로 약혼녀를 잃은 피해자 가족으로서 중완칭의 의뢰를 거절하지만 그녀는 집요하게 그를 설득한다. 


97.
그 사람들의 진짜 범죄 동기가 뭔지 정확히 알고 싶지 않으세요? 


윈즈는 천원칭의 살인 동기 분석과 묻지 마 살인의 발생 원인 및 재발 방지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중완칭의 가해자 변호 의뢰를 수락하고 본격적으로 가해자 이력과 사건의 전반적인 사항을 조사하면서 천원칭이 어린시절 부모의 방치와 학대, 아버지의 폭력 및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교육을 받지 못하고 아동 노동에 시달려왔으며 살인을 저지른 그 즈음 연인과 헤어져 자살 충동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그와의 면담에서 정신 이상 및 대인 관계 미숙을 느끼던 차에 이와 관련한 전문 변호사 루이양의 조언을 받아들여 정신감정을 의뢰한 결과 그에게는 공감 능력 부재를 비롯한 정신 이상 소견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결과를 받아든다.


한편 청원칭의 사건을 묻지 마 살인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인 변호사가 맡았다는 사실을 이슈화하려는 기자 스융다가 윈즈를 집요하게 따라붙고, 윈즈는 그를 통해 비서 야란이 자신의 약혼녀를 지하철 승강장에서 떠밀은 가해자 주젠쭝의 이복동생임을 듣게 되지만, 그는 청원칭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가해자 유가족이 감수해야 하는 심리적 피해를 이해하였기에 도리어 그녀를 위로한다.


청원칭 아동 살해 사건 2심, 윈즈는 가해자의 정신 감정서의 결과를 통해 1심의 분위기를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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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좁은 골목에서 총기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가족이 없고 소형 고물상을 생계로 하는 60대 노인 남성이다. 특별한 원한 관계도, 재력도 없는 듯 보이는 노인을 왜 죽였으며 무엇보다 총기 소지가 불법인 나라에서 범인은 도대체 총은 어떻게 구했을까? 놀라운 점은 탄환 감식 결과 작년에 발생한 총기 사건의 총기로 밝혀졌다는 사실과 그 사건은 30대 남성 뤄핀훙이 노숙자 여성을 살해한 후 바로 자살했고 총은 의문의 남성이 가져갔으며 같은 총으로 수 개월이 지난 지금 또 다른 범인이 독거 노인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사건은 오리무중이고, 6개월여가 지나 공원 화장실에서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총기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CCTV를 확인한 결과 범인이 20대 청년 뤼야난임을 확인하고 주변을 수소문하면서 수사 범위를 좁혀가던 중 다시 총기 살해 범행을  하는 야난을 현장에서 추격하고 이 과정에서 윈즈의 비서 야린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며 야난은 백화점 옥상에서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살한다.


직접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는 자살로써 죽음을 맞이했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피해자만 속출한 상황. 그런데 핀훙과 야난에게 총을 제공한 사람은 누구이며, 원칭과 피씨방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토론을 했다는 의문의 남자는 누구일까? 


윈즈는 원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진술, 그에게 사형제도에 대해 말한 사람과 관련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처음 사건을 의뢰했던 심리연구가 중완칭에게 원칭을 함께 면회해 주기를 부탁한다. 그녀는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윈즈와 함께 면회를 하는데, 원칭은 자리를 뜨려는 중완칭을 향해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이에 윈즈는 그가 한번도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며 중완칭에 대해서 면밀하게 짚어본다. 그러다가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한 헛점들. 윈즈는 목숨을 담보로 한 추적을 시작한다. 


누가 배후에서 무차별 살해의 살인자들을 조정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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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대만 작가이다. 제목만으로 충분히 유추가 되는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묻지마 살인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범인을 수사하는 과정이 아닌 그들이 왜 가해자가 되었으며 현재 사회 안전망에 대한 부재와 모호한 기준들, 그로인한 피해자 속출과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소설에서는 세 명의 가해자가 등장하는데,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핀훙의 유년 시절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봉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넉너가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평범했으나 대학 진학 이후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면서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한쪽 팔을 못쓰게 됐으나 파견 계약직이었던 핀훙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노숙자로 전락한다.
야난은 조직폭력배 아버지와 우울증으로 자살한 어머니로 인해 일찍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으며 자라지 못했다. 친척집을 전전했고 공갈과 절도 및 약물까지 손을 댔다. 세 사람은 유년시절부터 불우한 환경에 노출되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에서 성자한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모든 범죄자들의 범죄 원인이 성장 배경에 기인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아니 묻고자 하는 것일까?



치료가 우선인가? 처벌이 우선인가? 


피시방 살인 사건 가해자 원칭은 심리 검사의 결과에서 공감 능력 부재와 정신 이상 소견이 나온다. 실제로도 가해자의 변호인들이 가장 많이 주장해 구형을 줄이는 수법이 심신 미약이다. 그만큼 형량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떄문에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만일 진단이 핑계나 거짓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복적 사법을 지지하는 변호사 루이양은 범죄자들에게 치료를 받게 해 회복한 후 자신의 범행을 깨닫고 피해자 혹은 유가족에게 진심어린 사죄와 보상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호사 윈즈가 말도 안되는 범죄자의 변호를 결심하게 된 동기도 무차별 살해의 근본적인 원인과 재발 방지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범죄자를 무조건 사형시킨다면 우후죽순으로 일어나는 직접적 동기불명 살인 사건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빠른 판단과 빠르고 극단적인 처벌이 모방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뚫린 댐을 주먹으로 막고 있는 꼴이다. 또한 과거 살인자였던 사람이 이웃으로 온다고 상상해 보라. 지역 주민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그 공포는 또 다른 범죄를 불러올 소지가 충분하다. 사회 안전과 정신 의료, 함께 이뤄내야할 부분이다. 그런데 이쯤되면 또 다른 의문점이 튀어 나온다. 



정신감정에서 나온 정신질환 결과를 믿으십니까? 


소설에서 원칭은 심리 검사를 두 번 받는데, 결과가 상이하다. 실제로도 이러한 사례가 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발생할까? 환자의 심리 상태, 검사 시간(기간) 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주이양이 짚어낸 바로는 원칙과 기준의 부재다. 사람의 정신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고 정신질환을 초래하는 원인은 다앙하고 복합적이며 여러 검사를 한다고 해도 실재하는 원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신의학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담.검사하는 의사의 주관적 판단이 결과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므로 이에 대한 규정된 기준을 명확하게 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거짓으로 정신 검사를 빠져나가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사회 구성원의 안전과 인권 및 사생활 침해,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할까? 


정신연구가 텐 교수는 빅데이터를 토대로 일부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선별 기준을 만들어 각 지역 의료기관에 보급해 고위험 사례가 있으면 경찰 및 정부와 함께 대상을 추적 조사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현재 무차별 살인범은 인격장애들이기 때문에 사법기관에서 개입해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중완칭은 정신질환의 심각성과 범죄 가능성이 정비례하지 않으며 인권 문제와 사생활 침해 문제를 든다. 그리고 고위험 정신질환자는 매우 많지만 그중 범죄자가 되는 확률은 극미하므로 텐 교수가 본말을 전도한다고 말한다. 또한 범죄 예방을 논할 때 정신질환은 범죄 요소로 단정해도 되는 것이냐는 것과 정신질환과 범죄 사이에 인과 관계가 없음을 피력한다.


텐 교수, 중완칭 두 사람의 의견에 모두 일리가 있다. 우리는 '안전'과 '인권(사생활)' 사이에서 늘 딜레마에 빠진다.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언제라도 '소수'의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한다면 이 딜레마에서 덜 헤매려나?



무차별 살인을 막는 뚜렷한 대안은 현재로써는 없는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불우한 환경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소설 속 윈즈의 말처럼 개인과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개인이 사회에 나와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일원이 되었을 때, 사회와 행정기관은 개인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진정한 발전으로 가는 길이다.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선생님과 복지사들은 그 이유를 알아야 하고, 아동 노동 혹은 불법 미성년 갈취 현장을 알게 되면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일자리를 잃어 굶주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사회 안전망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잘 살아야한다는 초경쟁 시대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실패한다는, 실패가 패배라는 공포가 언제든 무차별 살인을 불러올 것이다. 이러한 공포를 조장하는 이는 다름아닌 우리 자신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은 불우한 환경을 들어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가해자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차별 살해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회 구조와 안전망 부재에 있으며 이를 순차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가해자가, 혹은 피해자도 될 수 있음을 일갈한다.


처음 만나는 작가가, 나에게 무거운 숙제를 던져 놓았다. 일독을 권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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