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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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의자 / 조병화) 



여덟 집에 도합 열 명의 노인이 살고 있는 팔곡마을.
어느날 이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마을의 우체통에 우편물이 쌓여있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우체부 김 씨가 마을을 둘러본 후 서둘러 파출소에 신고했으나 소장 박 경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우체부 김 씨가 심상치 않다며 성화를 부리고 재촉하는 통에 저녁 시간이 다 되어 팔곡 마을에 도착한다.


팔곡으로 가는 배 안에서 홍보용 비디오 한 편을 보게되는 박 경위와 김 씨. 두 사람은 죽음은 선택이라고 광고하는 '웰다잉협회'의 영상에 빠져든다. 사실 이 '웰다잉협회'는 김 씨가 일전에 팔곡마을에 배달한 우편물에도 있었다.


이장인 피 노인의 방으로 들어가자 우체부의 말 그대로였다. 방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밖으로 나와보니 마당에 있어야할 우체부가 사라졌다. 섬뜩한 기운이 느껴진 박 경위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으나,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 마을의 모든 불은 꺼져 있어 손전등을 켠 채 한참을 걸으니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묘한 기시감이 드는 건 왜일까? 박 경위는 수첩을 꺼내 방금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휘갈겨 쓴다. 


79.
이상한 의문. 알아볼 것. 그런데 무엇을?



마침내 길 끝에 다다른 박 경위는 선착장이 아닌 폐가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고 마침내 폐가에 도착하자 몇 년 전 장수 노인 축하 잔치에서 '웰다잉협회', 죽음을 선택하라는 홍보 영상이 틀어졌으며 그로부터 며칠 후 한 할머니가 자살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이마에 피가 말라붙어 있고 두 손이 뒤로 묶인 우체부가 울부짖고 있었다. 그의 결박을 풀어주려는 그 순간, 뭔가 묵지한 것이 박 경위의 머리를 때렸다.


정신이 돌아온 박 경위는 단단히 묶여 있어서 꼼짝할 수가 없다. 분명한 건 노인들이 사라진 데에 귀신이 관여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섬을 드나드는 사람이라고는 우체부 뿐인데 하루 아침에 열 명의 노인이 어떻게 사라진 것이며, 그 까닭은 무엇일까?






뉴 제너레이셔, 새로운 세대의 도래.
박 경위와 우체부를 공격한 자는 늙고 병들고 아무 쓸모없는
구성원을 내쫓아야만 건강하고 밝고 싱싱한 젊은 구성원이 살아갈 수 있으므로 노년 세대의 무용을 주장한다. 자신이 속한 '뉴 제너레이션'이라는 비밀조직은 대외적으로 웰다잉협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들의 임무는 노인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유교적 혹은 감성적 논리를 떠나 노년기에 접어드는 세대는 정말 없어져야 하는 존재인가?




소설은 노인 혐오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노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고, 체력과 지력은 쇠퇴하여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다가올 미래 사회를  준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존재이다. 즉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제거되어야할 대상으로 치부된다. 이것은 사회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인 '인간의 행복과 안전'이, '사회 체계 유지'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사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인 '사람'이 어느새 '부속품'으로 전락했다는 것과 다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화를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젊어지려고 발버둥치는 것일 테다. 어떤 의미로든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소설은 호러 형식을 빌어 읽는 동안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무엇보다 독자는 사건이 해결이 되었다고 짐작하는 지점에서 새롭게 던져지는 암시로 인해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에어컨을 틀 수 밖에 없었다. 떨어지는 빗소리와 실내의 냉기, 거기에 소설의 음산함이 더해져, 덕분에 오스스한 여름 하루를 보냈다. 


97.

하긴. 자넨 아직 모르겠지만 원래 늙는다는 게 그런 거라네. 희망을 버리는 길고도 지루한 과정.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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