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식물집사 - 늘 긴가민가한 식물 생활자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대릴 쳉 지음, 강경이 옮김 / 휴(休)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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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이자 고민은 '해충 박멸'이다. 지난번 분갈이도 화분의 크기를 바꿔주기 위함은 두 번째이고, 가장 큰 이유는 뿌리파리(정확한 이름도 책을 보고 알았다) 때문이었다. 그런데 흙을 교체하고 화분을 바꿔도 뿌리파리가 여전해서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대부분의 시간을 식물과 관련한 책들 앞에서 서성거리는 지경이었다. 1차적인 목적은 지금 당장 나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위함이었지만, 책을 읽다보니 식물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생각도 같이 하게 되었다.   
 







책을 펼친지 몇 장 되지 않았는데, 저자의 글이 눈에 쏙 들어온다. 온갖 노력을 쏟아부어도 식물의 외모는 불완전하기 마련이고, 화원에서 데려온 식물도 일단 머무는 집에 적응하고 나면 겉모습이 달라진다는 것. 처음 식물을 데리고 오면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옆으로 넓게 퍼져 고만고만하게 자랄 줄 알았던 제라늄이나 풍성하게 잎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했던 몬스테라는 꺽다리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인지 혹은 나에게 온 식물이 건강하지 못했나싶은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 글을 읽다보니 식물도 최적의 환경인 화원에서 벗어나 여러 면(빛, 토양, 통풍, 화분 등)으로 달라진 환경에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겠구나, 그들 나름의 고군분투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에게도 생애 주기가 있다는 사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삶과 죽음, 성장과 노쇠의 과정을 거친다. 저자는 식물의 필요를 살피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식물의 적응기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식물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반려 식물에게도 주관적 수명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리하여 식물에게 제공하는 환경을 이해하면서 자연이 추구하는 길을 함께 가보라고 얘기한다. 무작정 누군가의 조언을 따르기보다, 직접 식물을 관찰하고 식물의 필요를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책의 절반은 식물을 키우는 데에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실용서 역할을, 나머지 절만은 그동안 저자가 써 온 반려 식물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반려 식물을 위한 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각각의 식물마다 생존을 위한 돌봄 전략, 성장을 위한 돌봄 전략, 토양 관리, 주관적 수명, 이렇게 네 가지 카페고리로 분류해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것도 일기마다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추후 같은 식물을 들여 키우거나 혹은 문제가 생겼을 때 되짚어 볼 수 있어 무척 유용하겠더라는. 이렇게 쓸 엄두는 나지 않으나 상당히 도움이 될듯하여 흉내라도 내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쓸거리만 자꾸 늘어나는구나 😆). 



저자가 사용한 어휘들을 보면 식물도 사람의 일생과 다르지 않다. 생애주기, 거시적 돌봄, 주관적 수명 등. 생명의 한살이가 이렇게 다르지 않은데, 유독 인간만 순리를 힘겹게 어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비료는 식물의 성장을 돕지만, 성장시키는 것은 빛이라는 문구에 식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장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본다. 인간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보조적 역할과 직접적 역할은 무엇일까. 식물과 인간이 다른 점이라면 인간은 내재적으로 무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일텐데, 저마다 인생의 빛과 수분과 토양과 비료는 무엇일지 몇몇의 사람과 잡다한 생각이 흘러갔다. 



실용서 읽으면서 생각이 달나라 별나라까지 뻗쳤다.
아무튼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벵골고무나무 뿌리내려주러 나가야겠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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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행성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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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테트는 리버티섬으로 가기 전에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젤로한테 제3의 눈을 수술해 주고 ESRAE를 맡겨 고양이 문명의 수립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남아 있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은 왜 안젤로였을까? 바스테트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막중함 임무를 맡기에는 여러 면에서 에스메랄다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물론 완전한 존재는 없으니 조언자(에스메랄다)를 두고 성장하는 캐릭터에는 안젤로가 더 부합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로 의외인 부분이었다.  


시리즈 중 앞선 두 작품을 전혀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읽은 터라 어떨까했는데, 독립적으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혹시 <고양이>와 <문명>을 읽지 않아 망설이는 독자가 있다면 개의치 말고 읽으시라 말씀드린다. 실존 인물을 등장시킨 것도 나름 유쾌한 설정이었고, 사이사이 <상절지백> 발췌도 재미있었다.  


읽으면서 베르베르의 초창기 작품도 떠올라 추억팔이도 하면서 읽었다는.

지구 행성이 오로지 인간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며! 읽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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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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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겼던 '폴' 작전이 실패하자 프리덤 타워에 있던 모든 이들은 절망하고 포기한 채 마약에 빠져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설은 시종일관 언쟁과 다툼의 연속이다. 102개 부족의 총회를 열어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하겠다고 모인 자리에서 인간들은 해법을 찾기보다 서로 물어뜯고 싸우느라 바쁘다.  


쥐는 쥐대로 권력에 대한 야욕으로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티무르와 알 카포네 사이에 끊어질듯 팽팽한 긴장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 승리 후 누가 통치자가 될 것이냐를 두고 두 우두머리는 충돌하고 티무르는 알 카포네를 죽임으로써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며 즉위한다. 절대 권력자가 된 티무르의 행보는 과거 인류사에서 독재자의 행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아무도 신뢰하지 않고, 제 일신만을 챙기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까지 폭력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움켜쥔다. 



이 소설의 재미있는 점은 바스테트의 성장담이자 동시에 제3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통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스테트가 바라본 인간은 문제 해결을 우선하기 보다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을 회피하고, 늘 사랑을 떠들지만 정작 서로 사랑하지 않기에 조화와 합의가 아닌 '다름'과 '차이'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에스메랄다와 바스테트의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우리 내면의 질투와 욕망은 유한한 삶에서 소유가 갖는 한계와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작가는 바스테트의 입을 빌어 현재 인류와 지구에 닥친 여러 문제들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짚고 있다. 환경 오염, 동물 학대, 전염병 확산, 지구의 사막화, 식량 위기 등은 일일이 나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편적으로 인지되어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공장에서 뉴욕 공동체가 머무는 숙소를 묘사한 장면은 흡사 난민촌을 연상시킨다(물론 소설에서는 환경 자체를 열악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너도나도 탈핵을 외치고 있지만 결국 힘있는 자들은 여전히 '사용 가능'한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국제 사회를 빗대고 있다. 또한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어진 작은 사건이 순식간에 집단 학살로 변모하는 모습은 폭력에 기대고 있는 인간의 광기를 나타낸다(그 장소가 소통의 장소여야 할 회의장이라는 사실이 더 의미심장하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사건의 발단이 된 사고가 무효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그토록 엄청난 수의 죽음이 갖는 명분은 무엇이 되겠는가 말이다.  


티무르는 지구가 쥐의 제국으로 완성되는 순간 인간을 '소수 종'의 자격으로 격하시키겠다고 말하고,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우월의 허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소설은 지구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학대, 강요와 억압, 폭력과 살의라는 악행에 있어 쥐와 인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티무르가 인간을 살려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나열하는 부분에서 딱히 항의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현재 인류가 만들어낸 세상으로 지구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바스테트는 인간에게도 존경할만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지에 대한 각성과 그에 따른 보완, 그리고 문자와 기록이다. 티무르는 자신이 할 수 없는 문자의 기록을 바스테트가 후대에 남겨주기를 바라고, 바스테트 역시 자신의 서사를 문자로 남기길 희망하는데, 이는 인류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은 문자와 기록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바스테트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제시한 대안은 '소통'이다. 나 역시 살아보니 문제 해결에 있어 소통과 설득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바스테트가 총회 의장 선거에 나서서 내놓은 제안은, 초기에는 인간이 총회의 다수를 차지하겠지만 차츰 특정 종의 배제없이 여러 종의 비주류 집단의 대표를 받아들여 구성에 변화를 주겠으며, 학대에 가까운 종 차별을 지양하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전쟁 없이 소통으로써 평화를 지키고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그랜트가 선출됐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 소통과 설득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티무르가 세상을 통치하는 방식은 증오이고, 바스테트는 용서다. 작가는 인류가 더 늦기 전에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용서와 화합으로서 지구 생명체와 공존하기를 바란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일에 무관심해지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둘뿐 변화시킬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나탈리의 말이 이 소설에서 하고자 한 말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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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7
조르주 상드 지음, 조재룡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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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소설의 형식을 취한 사랑에 대한 담론이다.
연인에게 갖는 모성적인 감정, 사랑에 있어서의 기득권, 연인 간의 비밀,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담보로 하는 사랑, 사랑과 성장의 관계, 연인의 과거가 현재의 사랑에 미치는 영향, 사랑과 구속, 질투와 사랑의 유착 관계, 헌신과 무조건적인 수용이 동반되는 사랑의 결과, 아무런 기대 없이도 가능한 사랑, 사랑에 있어서 확신이 향하는 대상, 사랑과 불안, 그리고 순전한 사랑은 존재하는가.  









 
테레즈는 조용하고 내향적이며 독립을 사랑했고 자신의 방식을 경쾌하게 지켜나가는 엄숙함이 있다.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주장도, 타인에 대한 평가도 섣불리 하지 않으며, 그녀 자신에 대해서도 절대로 말하는 법이 없을만큼 신중한 사람이다. 로랑의 예술에 대한 열정의 원천은 물리적.정서적 에너지의 고갈로 인한 분노와 고통이고, 모든 면에 있어서 자기 본위적이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 사람은 태생적으로 도박이나 방탕한 생활을 끊을 수가 없다. 두 사람은 기질이나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테레즈에 대한 로랑의 사랑에는 호기심과 허영심이 섞여 있어 선한 열정이라고 하기에 어렵다. 그토록 아름답고 똑똑하고 재능이 많고 독립적이고 남자들이 선망하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라는 상상은 로랑이 테레즈를 붙잡아야 할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그와 반면, 서른 살에 자신이 충분히 부유하는 것을 느끼고 삶을 유연하게 즐길 줄 알았던 파머가 인상적이다. 보통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고 하지 않나. 그럼에도 소유욕을 절제할 줄 알고,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한 파머의 성향은 테레즈와 닮은 데가 있다.  


ㅡ 


로랑을 보고 있으면 이토록 이기적인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입에 담는지 알 수가 없다. 응석을 부려가며 협박에 가까운 애원으로 매달린 로랑의 사랑의 유효 기간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장시간 길을 헤매는 연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연인의 고된 하룻밤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이러한 행위에 대한 테레즈의 슬픔을 빈정거린다.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이탈리아에 갈 기회가 생기자 푼돈을 내놓고 테레즈에게는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말하면서 그녀가 함께 가지 않으면 여행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로랑의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인 여행의 경비는 테레즈가 대부분 마련했고, 이탈리아에서도 방탕한 생활을 말리는 테레즈를 향해 예술가는 속박되지 않으며 현재의 자신은 노예 상태와 다를바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은연 중에 테레즈 탓으로 돌리는 등 야비하고 교활하기 짝이 없는데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만방자함까지 더해진다. 심지어 테레즈에게 퍼붓는 온갖 모욕과 욕설에 가까운 비난, 거기다 자신이 저지른 만행은 하루가 지나면 잊어버린 채 다시 입에 발린 사랑 타령을 늘어놓는 것도 모자라 그 한 푼어치 가치도 없는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테레즈를 가해자 취굽하는 태도는 도무지 눈 뜨고 지켜보기 힘들 지경이다. 로랑이 자기의 장단점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알며,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에 거침이 없다는 점에서 그가 나약하다는 테레즈의 판단은 잘못됐다. 도대체 테레즈는 이 사랑을 왜 지속하는 걸까? 


그렇다면 파머의 사랑은 어떤가? 로랑과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을 확인한 파머는 오래 전 테레즈와 중혼 관계였던 백작이 사망한 사실을 들어 이 상황에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이라고 얘기하면서 오랫동안 숨겨왔던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며 청혼한다. 테레즈는 로랑과의 사랑은 별개로, 자신을 위해 파머가 맞서야하는 장벽들이 두렵다.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헌신이나 희생이 부담스러운 건 당연하다. 중간에 큰 실수를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어른의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파머가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사실 이 소설에서 심리적으로 흥미로운 인물은 테레즈다. 그녀는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로랑과 이별하고 돌볼 사람이 없어지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며 공허함을 느낀다. 테레즈는 사생아로서, 중혼자의 피해자로서, 아이를 잃은 어미로서 오래 전부터 드러나기보다는 숨겨져야하는 입장에 더 익숙한 사람이다. 그녀가 로랑을 사랑했던 이유는 그를 죽은 아들에 이입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그에게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로랑을 대신해서 보살필 대상이 나타나고서야 그에게서 벗어난 테레즈의 모습을 볼 때 이 생각에 더 무게가 실린다. 서술자는 테레즈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녀가 진정한 한 인간으로서 독립한 시기는 소설이 끝난 시점이 아니었을까. 



로랑과 테레즈는 매번 다투고 다시 시작하는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왔다. 로랑의 집착에는 의처증에 가까운 질투와 데이트 폭력, 가스라이팅까지 복합적인 양상이 보인다. 현대에 와서야 정식 명칭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으나 그 심각성과 범죄율이 크게 호전되지 않고 있는데, 당시 여성의 독립성을 논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음은 분명하다. 


소설 속 테레즈의 삶은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고단하다. 생각해보니 그 엄청난 일을 겪고도 삶에 의지를 놓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다분히 자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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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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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이라는 문구에서 보여지듯 '내밀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향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소심하고 비사교적인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라면 한켠에 가지고 있는 은둔의 욕구를 생각해 볼 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은 일정 부분 내향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하여 3년에 가까운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비대면이 일상화된 시대에 단순한 은둔이 아닌 상호 이해가 가능한 감정적.물리적 거리두기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프롤로그에서 MBTI에 대해 잠깐 언급하는데, 'I'형 인간인 나로서도 시작부터 공감하는 바가 컸다. 사람의 성향이라는 것이 깍두기 무 썰듯 딱 규정되어 있지 않다보니 모호하거나 전혀 다른 결과치가 있기는하지만, 내가 내향적 인간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점심 시간이 일의 연정선상으로 느낀적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문득, 전 직장 직속 상사였던 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회식도 업무 중 하나야!" 그때만 해도 입이 피노키오 코처럼 앞으로 삐죽 나오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회삿돈으로 그 비싼 음식들을 먹었으니 충성심 강한 그 양반 입장에서는 당연했겠구나 싶다. 점심 시간도 정도의 차이지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사내 식당이 아닌 바에야 왜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없냐고!라는 생각을 꽤 많이 했었던 기억이 있고, 저자처럼 점심 시간에 온전히 사라진 사람이 되지 못하기도 했다. 그나마 혼자 조용히 30여분 서점을 다녀온게 전부. 

웃고 싶을 때 웃는 사람이 매력적이며 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힘이라는 문구가 와닿았다. 얼마 전, 자상하지 않은 내가 자상의 가면을 벗어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십수년 간 나를 봐왔던 지인들이 그런 모습 처음 본다고 했던 걸 보면 내가 그동안 가면을 잘 쓰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1:1의 관계가 아닌 이상 웃고 싶을 때만 웃기란 참 쉽지 않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낄낄의 힘에 동의한다. 

보는 것에 상관 않고, 오로지 보이기 위한 것들의 성찬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얼마 전 모임이 있어 방문했던 카페가 생각이 나더라는. 유난히 낮은 테이블과 불편할 정도의 의자가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됐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마케팅 전략(이라고까지 할 수 있나싶지만)을 읽으면서 보여지는 것에 대한 폐해가 별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관조하는 데에 있어 적절한 거리와 여백이 필요함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액정 화면의 너머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가 더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팬데믹으로 인해 도시 소음이 다소 줄어들자 새소리가 한결 명랑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데에서 문득 근래에 아침 운동 중에 들리는 새소리가 기억났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들리는 새소리는 인용의 글처럼 언제부터인가 더 자주, 청아하게 들린다. 서울 중심 도시에서 한참 벗어난 우리 동네 역시 그동안 예외 없이 소음이 만만치 않았던 걸까. 우리가 음식이나 음료를 시음할때 입속을 맑은 물로 헹구어내듯이 정적 역시 무언가에 좀더 귀기울일 필요가 있을 때 환기해주는 기능을 하지 않을까라는.

 '권력은 그것을 가진 사람이 부끄러워하고 은밀하게 행사해야 할 그 무엇이다' 라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권력을 부끄러워하라니. 대한민국 사회에서 수십년을 살고 있지만 권력을 부끄러워하는 이를 만나본 적이 있던가. '갑'과 '을'의 개념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의전의 대상을 역으로 놓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잠깐의 사족. 한겨울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에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기계를 돌리는 관리실 숙직 직원, 한여름 뙤약볕에서 혹은 장마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분리수거장을 관리하는 경비 아저씨, 발목이 잠기도록 쌓여있는 단지 내 낙엽을 당신 몸보다 더 큰 망에 쓸어담고 있는 할아버지. 늘 느끼지만 누군가의 노동이 당연하지 않음에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네 모습) 

정작 내가 가장 꽂혔던 문구는 '파이에 연연하지 않는 사랑'이었다. 연애든 우정이든 동지애든 가족애든 밀당없는 사랑이 그립다. 그에 앞서 밀당없는 마음에 나를 던질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그중 한두가지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미흡하나마 첨언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이라면 대단히 진중한 논제를 가지고 하는 독서모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이 책을 함께 읽었다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얘기가 무궁무진해 하루가 부족하다싶을만큼 이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긴 대화의 시간동안 '낄낄의 힘'은 여지없이 발휘될테고.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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