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7
조르주 상드 지음, 조재룡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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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소설의 형식을 취한 사랑에 대한 담론이다.
연인에게 갖는 모성적인 감정, 사랑에 있어서의 기득권, 연인 간의 비밀,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담보로 하는 사랑, 사랑과 성장의 관계, 연인의 과거가 현재의 사랑에 미치는 영향, 사랑과 구속, 질투와 사랑의 유착 관계, 헌신과 무조건적인 수용이 동반되는 사랑의 결과, 아무런 기대 없이도 가능한 사랑, 사랑에 있어서 확신이 향하는 대상, 사랑과 불안, 그리고 순전한 사랑은 존재하는가.  









 
테레즈는 조용하고 내향적이며 독립을 사랑했고 자신의 방식을 경쾌하게 지켜나가는 엄숙함이 있다.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주장도, 타인에 대한 평가도 섣불리 하지 않으며, 그녀 자신에 대해서도 절대로 말하는 법이 없을만큼 신중한 사람이다. 로랑의 예술에 대한 열정의 원천은 물리적.정서적 에너지의 고갈로 인한 분노와 고통이고, 모든 면에 있어서 자기 본위적이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 사람은 태생적으로 도박이나 방탕한 생활을 끊을 수가 없다. 두 사람은 기질이나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테레즈에 대한 로랑의 사랑에는 호기심과 허영심이 섞여 있어 선한 열정이라고 하기에 어렵다. 그토록 아름답고 똑똑하고 재능이 많고 독립적이고 남자들이 선망하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라는 상상은 로랑이 테레즈를 붙잡아야 할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그와 반면, 서른 살에 자신이 충분히 부유하는 것을 느끼고 삶을 유연하게 즐길 줄 알았던 파머가 인상적이다. 보통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고 하지 않나. 그럼에도 소유욕을 절제할 줄 알고,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한 파머의 성향은 테레즈와 닮은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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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을 보고 있으면 이토록 이기적인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입에 담는지 알 수가 없다. 응석을 부려가며 협박에 가까운 애원으로 매달린 로랑의 사랑의 유효 기간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장시간 길을 헤매는 연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연인의 고된 하룻밤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이러한 행위에 대한 테레즈의 슬픔을 빈정거린다.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이탈리아에 갈 기회가 생기자 푼돈을 내놓고 테레즈에게는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말하면서 그녀가 함께 가지 않으면 여행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로랑의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인 여행의 경비는 테레즈가 대부분 마련했고, 이탈리아에서도 방탕한 생활을 말리는 테레즈를 향해 예술가는 속박되지 않으며 현재의 자신은 노예 상태와 다를바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은연 중에 테레즈 탓으로 돌리는 등 야비하고 교활하기 짝이 없는데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만방자함까지 더해진다. 심지어 테레즈에게 퍼붓는 온갖 모욕과 욕설에 가까운 비난, 거기다 자신이 저지른 만행은 하루가 지나면 잊어버린 채 다시 입에 발린 사랑 타령을 늘어놓는 것도 모자라 그 한 푼어치 가치도 없는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테레즈를 가해자 취굽하는 태도는 도무지 눈 뜨고 지켜보기 힘들 지경이다. 로랑이 자기의 장단점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알며,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에 거침이 없다는 점에서 그가 나약하다는 테레즈의 판단은 잘못됐다. 도대체 테레즈는 이 사랑을 왜 지속하는 걸까? 


그렇다면 파머의 사랑은 어떤가? 로랑과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을 확인한 파머는 오래 전 테레즈와 중혼 관계였던 백작이 사망한 사실을 들어 이 상황에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이라고 얘기하면서 오랫동안 숨겨왔던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며 청혼한다. 테레즈는 로랑과의 사랑은 별개로, 자신을 위해 파머가 맞서야하는 장벽들이 두렵다.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헌신이나 희생이 부담스러운 건 당연하다. 중간에 큰 실수를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어른의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파머가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사실 이 소설에서 심리적으로 흥미로운 인물은 테레즈다. 그녀는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로랑과 이별하고 돌볼 사람이 없어지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며 공허함을 느낀다. 테레즈는 사생아로서, 중혼자의 피해자로서, 아이를 잃은 어미로서 오래 전부터 드러나기보다는 숨겨져야하는 입장에 더 익숙한 사람이다. 그녀가 로랑을 사랑했던 이유는 그를 죽은 아들에 이입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그에게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로랑을 대신해서 보살필 대상이 나타나고서야 그에게서 벗어난 테레즈의 모습을 볼 때 이 생각에 더 무게가 실린다. 서술자는 테레즈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녀가 진정한 한 인간으로서 독립한 시기는 소설이 끝난 시점이 아니었을까. 



로랑과 테레즈는 매번 다투고 다시 시작하는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왔다. 로랑의 집착에는 의처증에 가까운 질투와 데이트 폭력, 가스라이팅까지 복합적인 양상이 보인다. 현대에 와서야 정식 명칭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으나 그 심각성과 범죄율이 크게 호전되지 않고 있는데, 당시 여성의 독립성을 논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음은 분명하다. 


소설 속 테레즈의 삶은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고단하다. 생각해보니 그 엄청난 일을 겪고도 삶에 의지를 놓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다분히 자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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