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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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행성 개척을 위해 얼음으로 뒤덮인 니플하임에 도착한 개척민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공 미키 반스가 익스펜더블이 된 과정과 위기에 봉착한 현재를 오가며 서술하는데, 이는 현재 지구가 밟아가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익스펜더블인 미키는 전임자의 모든 기억을 그대로 이어받고 끊임없이 복제된다. 미키1이 죽으면 미키2가 그 기억을 이어받아 불과 몇 시간만에 깨어난다. 그 기억에는 그 자신의 끔찍한 죽음의 순간을 포함했고, 이는 재생되는 개체마다 트라우마로 남았다. 현재 임무를 수행하다가 구덩이에 빠져 죽음을 기다리는 미키는 일곱 번째 생을 살고 있다. 그가 죽으면 곧이어 여덟 번째 미키가 눈을 뜰 것이다.  


익스펜더블의 업무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고위험군의 일을 도맡는다. 우주선 외부를 수리하고, 원자로에 직접 들어가 방사선 피폭에 노출되고, 미완성 백신이나 개발 중인 신약의 임상 실험에 참여하고, 총알받이에 가까운 전투에 투입된다. 뻔히 죽음이 보이는 자살 임무는 예사다. 미키, 즉 익스펜더블은 주변 동료들에게 굳이 구출하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는, 타인의 입장에서는 불멸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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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가 익스펜더블이 되면서까지 그토록 미드가르드를 떠나고 싶어했던 이유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물론 익스펜더블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럭저럭 할 만한 일인줄 알았던 탓도 있고). 과학자나 기술자도 아니었고, 예술이나 오락에도 재능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비가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가 하고 싶었던 '학문'은 미드가르드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의 입장에서는 당장 죽는다해도 달라진 것이 없는 인생이었다. 물론 직접적인 이유에 빚도 있었지만.  


익스펜더블을 활용한 지 200년이 지났다. 애초에 익스펜더블의 활용성은, 재보급 기지에서 약 6광년 떨어진 곳에서 성인 소수와 쓸모가 생길 때까지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배아들과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개척지 주민을 만들어 내는 기술로써는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차원과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사실 이 소설에서의 가장 큰 갈등은 미키7과 미키8의 중복보다는 미키7이 갖는 정체성이다. 그는 스스로를 소모품으로 대체되는 부속품이 아닌 개별 인격체이자 노동자로서 개척민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동료애와 이타심 또한 여느 사람 못지 않다. 어쩌면 다른 개척민들보다 훨씬 더 이러한 관계에 목말라있다. 힘멜 스테이션에서 미키에게 익스펜더블의 임무에 대해 가르치고 훈련시켰던 젬마는 미키에게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진짜 죽은 게 아니라고'고 얘기한다. 과연 그럴까?  


미키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중 하나는 자신이 겪지 않았던 불쾌하고 두려운 기억까지 모두 껴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키1은 1년을 넘게 살았고, 미키2는 불과 하루도 살지 못했다. 분명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때부터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다면, 그리고 불멸이든 아니든, 자신이 다시 재생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죽음은 늘 두렵다. 이 반복적인 죽음도 못할 짓이다. 미키이면서 미키가 아닌 자신이 누구냐는 자문을 하고 있는 그의 삶은 과연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하여 미키1부터 미키8까지 그들은 모든 기억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 사람인가?


몇 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도깨비>의 마지막 장면은 수 년의 시간을 지나 전생의 삶을 기억한 채 태어난 여자와 불멸의 삶을 사는 남자의 재회로 끝난다. 그런데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과거 불멸의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가 과연 눈앞에 있는, 자신이 그토록 애절하게 사랑했던 '그 여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생이 아닌 현생에서조차 과거의 기억은 왜곡되거나 희미해질 수 있다. 심지어 일어난 사건이 아닌 순간 혹은 찰라의 감정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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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펜더블을 탄생 시키고,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심어놓은 앨런 매니코바의 이야기는 마치 신자유자의를 겨냥한 듯하다. '철저한 자유와 자립'이 건국 이념이었고 공동체 연대 혹은 공공의 선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던 행성 골트가 위기에 직면했을때 연대에 취약한 모습은, 겉으로는 세계화를 지향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국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구'촌'의 모습이다. 


작가는 난민과 이민자 문제를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민자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얼마나 배타적인지를 지적한다. 소설 속 우주 개척사를 따라가다보면 인류가 거쳐온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안정적으로 정착에 성공하기도 하는데, 안타까운 점은 인류는 어디에서 어떤 성공을 거두든 종단에는 과도한 욕심과 이기주의 팽창으로 또다른 이민자를 양산한다는 점이고, 이는 무한반복된다. 


수백 개의 유니언 중에 인류와 토착 생명체가 공생하는 장소는 딱 하나, 행성 롱샷 뿐이다. 그 이유는 토착 생명체와 개척민이 사는 지역이 달랐고, 서로를 적대시 하지 않았으며,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서로가 가진 것을 탐하지 않았다. 긴 시간을 두고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시켰고, 무엇보다 개척민들은 시간을 두고 장기적이며 평화적으로 행성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짧지만 꽤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미키의 말처럼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을 디아스포라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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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와 스토리는 가독성에서 확인된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도 덮지 않고 읽었으니 그야말로 재미면에서 빠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인간은 거의 대부분 디아스포라라는 작가의 메세지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토착민이라고 여기지만, 실상 역사를 짚어보면 이주민 아닌 이가 어디 있을까. 하물며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떠도는 우리는, 소위 '도시 유목민'이 아니던가. 유머 넘치는 이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사족.
영화로 제작되어 봉준호 감독이 연출을 한다는데, <설국열차> 이상의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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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7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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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에 요절해 비운의 천재로 불리는 게오르크 뷔히너의 대표 희곡 세 편과 그외 단편들 뿐만 아니라 그가 정치적으로 작성한 선전물과 과학 논문까지 그의 모든 텍스트가 수록된 책이다.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작품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통의 죽음]은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의 대립을 시작으로 당통이 단두대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당시 프랑스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피폐한 시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화국의 무기는 공포이고, 공화국의 힘은 미덕이라고 말한다. 미덕 없는 공포는 부패하기 쉽고, 공포 없는 미덕은 무기력하기 마련이라는 설명을 보태면서. 당통은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자코뱅당이 전제 정치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포를 무기로 사용한다는 점은 일단 인정하지만, 학살에 가까운 무력 행사를 하는 혁명 정부는 폭정에 맞서는 자유의 전제 정치라고 합당화하면서 그 공포를 휘두르는 권리가 누구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반박한다. 로베스피에르는 사회가 마땅히 보호해야 할 사람은 오직 평화로운 시민뿐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가 정의하는 '평화로운 시민'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공화국에서는 공화주의자만이 시민이고, 왕당파와 외부 세력은 적이라고 단정한다. 그 적조차 보호해야할 시민이어야만이 혁명과 진보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인간성을 탄압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자는 은총이고, 그들을 용서하는 건 야만 행위라고 부르짖으면서 본인이 야만 행위를 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 사람을 더 죽여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당통의 말에 악덕은 처벌되어야 하고 미덕은 공포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답하는 로베스피에르. 공화국에서 악덕은 도덕적.정치적 범죄라고 단언하는데 그가 말하고자하는 악덕은 무엇인가?  


실제로 낭비, 뇌물 등 도덕성에 대해 소문이 무성했던 당통과 사리사욕 없이 반듯하고 스스로가 정의이자 구원자라고 믿었던 로베스피에르의 대립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희곡에서는 로베스피에르의 잔혹한 일면과 함께 혁명가로서의 고독함과 동지를 처형해야하는 입장에서 번민하는, 인간적인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당통 역시 그들이 혁명을 만든 게 아니라 혁명이 그들을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도대체 인간은 왜 서로 싸워야 하고, 끊임없이 죽이고 죽여야만 하는가에 대해 고뇌한다. 점점 더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들에게 지쳐가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연민하는 당통의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이념도 없고, 원인 혹은 계기가 완벽하다고 해서 결과가 완벽하리란 보장도 없다.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이 죽은 후 불과 넉 달도 안 돼서 자기도 단두대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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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의 등장인물은 주인공 보이체크를 비롯해 대체로 견습공, 군인, 유대인, 바보, 떠돌이 등 하층민들이다. 보이체크는 미덕을 명심하겠다고 말하면서 가난한 이들은 본능대로 살아갈 뿐이라고 대답하고 자기도 신사라면 도덕적으로 행동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그는 가난하고 불쌍한 종자일 뿐이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시급한 사람에게 도덕과 미덕을 따지는 대위의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작가는 견습공의 말을 통해 신이 인간을 만들고, 그 인간에게 욕구를 심어주었기에 또 다른 인간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의심하지 말라고 역설적으로 말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통렬히 꼬집는다. 가난과 세상으로부터의 멸시, 분노와 질투 끝에 저지른 보이체크의 범죄에 정상 참작 따위는 없다. 대다수의 민중이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근본적인 잘못의 원인을 아무도 찾아보려 하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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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스와 레나]의 왕자 레옹스는 세상의 모든 일이 지루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만큼 하루하루를 지루해하며 거추장스러운 '왕자'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데, 옆에서 듣고 있는 발레리오에게 이는 호강에 겨운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레옹스는 자기가 품은 이상적인 여인을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러나 그 이상적인 여인상을 살펴보면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에게 요구하는 바와 유사하다. 외형은 아름다우나 정신이 죽은 백치미. 이러한 맥락은 군수와 교장이 궁정 앞에서 농부들을 도열시킬 때도 비슷하다. 거짓 선전과 민중의 혹사는 오로지 왕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만족을 위한 일이다.


발레리오는 왕의 앞에서 레옹스와 레나, 그리고 자신를 인간 기계라고 표현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를 뿐더러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인간은 고상하고, 도덕적이고, 품행이 방정하다. 그러나 사랑을 포함한 모든 행동은 본능, 매커니즘에 의한 것이고, 스스로 사고할 줄 모르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말장난같은 현란한 언어 유희가 빛나는 이 작품은 왕정의 허세, 현실 도피를 위한 허상, 지배계층의 교묘하고 비열한 억압 등 풍자를 통해 부조리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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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츠]는 정신병과 우울증을 앓았던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단편소설이다. 친구의 소개를 찾아간 어느 시골 마을에서 위안을 얻으며 안정을 찾아간 그에게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편지가 전해지면서 그의 정신적 상황이 악화된다.  


렌츠에게 편지를 전해준 카우프만은 이상주의 신봉자였고, 렌츠는 이를 격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렌츠는 현실을 재현한다는 작가들도 현실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더하여 현실을 미화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각각의 생명이 갖는 가치는, 아름다움과 추함과 관계없이 그 나름 있는 그대로의 실존 방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얘기한다.


렌츠가 말하는 무한한 아름다운이란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각 개체의 고유한 본질을 파고드는 것. 작가는 렌츠를 통해 진실한 내면 즉,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시류에 떠밀려 위를 향해 끝없이 달리기만 하는 우리의 모습을 얘기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렌츠에게 있어 실존은 어쩔 수 없는 짐이며, 그는 그렇게 살아갔다는 말이 너무나 외롭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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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 지방의 전령]은 정치적 선전물로 쓴 뷔히너의 글이다. 이 전단지에서 뷔히너는 귀족들의 삶은 기나긴 일요일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들이 농민과 시민을 벌레 같은 족속으로 여긴다고 일갈한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 연기하지만 폭정을 일삼으며 농민을 착취하고 있음을 실질적인 수치로 나타내 보여준다. 


국가는 곧 만인이다. 국가의 질서 유지자는 만인의 안녕을 보장하고 만인의 안녕에 기반하는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질서 유지의 명목으로 대다수의 만인을 혹사시키며 굶주리는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대공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유지되는 질서와 자유는 누구를 위한 질서인지 묻는다. 법은 소수 계급의 전유물로서 민중을 더 쉽게 착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고, 독일의 사법부는 제후들에게 몸을 파는 창녀라고 가차없이 퍼붓는다. 권력과 빈부의 대물림을 지적하면서 왕정은 민중의 피를 빠는 거머리의 머리요, 장관들은 이빨이요, 관리들은 꼬리라고 질타한다. 또한 프랑스 혁명을 들어 세습 왕정 체제와 신분제 의회를 비판하면서 민중 혁명을 강하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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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경에 관한 시범 강연]은 뷔히너의 과학 논문이다. 그가 쓴 뇌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고대시대에 철학에 기원을 둔 과학에 대한 관점이 생각났다. 저자는 '합목적성'에 대해 얘기하면서 실존에 대해 언급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직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고, 개인의 육체적 실존은 근원 법칙(근원 현상)의 발현이라는 견해를 따른다. 이에 관련한 내용은 많지 않지만, 지구상 존재하는 개체는 그 자체와 행위만으로도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수록된 작품들과 텍스트를 관통하는 핵심은 지배층의 폭력적인 착취, 정부 위원과 실무자들의 부정부패, 서민들의 황폐한 삶, 이로인한 사회 부조리다. 대부분의 작품이 정치적이고, 그가 민중 혁명에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마다 역사, 신화, 철학, 성경 등을 자유자재로 비유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대사는 상당히 시적이면서 동시에 극적이다. 그가 왜 천재적인 작가라고 불리는지, 헤르만 헤세가 왜 그의 작품을 그토록 열렬히 추천했는지 납득할만 하다. 여러 면에서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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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2 - 천손신화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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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고국원왕의 죽음으로 유명한 평양성 전투부터 소수림왕 재위 5년인 375년 고구려와 백제가 다시 맞붙어 고구려가 탈환한 수곡성 전투까지를 다룬다.  



고국원왕의 고질병인 조급증이 도지면서 백제의 작전에 말려들어 대패한 평양성에서 대왕 사유는 훙거했고, 그의 아들 구부, 소수림왕이 즉위했다. 고구려의 국가적 차원에서,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담덕에게 있어서 소수림왕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가 고구려의 기틀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담덕의 치세도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소수림왕이 5년간 내치를 다지기 위해 불교 공인, 태학 설립, 율령 반포를 통해 중앙집권체제를 갖추며 왕권을 강화하고 개혁 군주로 나아가는 동안 또다른 인물들은 사선에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두충은 왼팔을 잃고 조환이라는 이름으로 장안의 진 대인에게 의탁해 본격적인 상인의 길에 들어섰고, 추수는 한쪽 눈을 잃은 채 극적으로 살아남아 운명처럼 거두게 된 전쟁 고아인 갓난 아기 업복이를 데리고 말갈족 마을에서 죽은 듯 살아간다.  


드디어 이 대서사의 주인공인 담덕이 태어나면서 국내성에서는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모략과 암살 등 아귀다툼이 슬슬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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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줄기로 등장 인물 개개인의 서사도 본격적으로 서술한다. 
연화를 두고 연적으로 시작된 추수와 해평의 대립과 악연, 무사가 아닌 재력으로 성공해 대상이 되어 고구려 입성을 꿈꾸는 조환, 주군이었던 왕제 무에 대한 충성심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질된 하대곤의 야욕, 최고 귀족 가문의 영애였으나 순리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무명선사를 찾아 세상을 떠도는 소진, 흔적을 지우고 살아가기로 작정한 추수까지 그들의 이야기도 자못 흥미롭다.  


읽다보면 고구려 대왕 구부(소수림왕)와 백제 대왕 구(근초고왕)를 통해 지도자의 됨됨이가 어때야 하는지, 사유를 통해 세상을 통찰하는 그릇의 크기에 대해, 그리고 군신관계도 생각해 보게 된다. 또한 구부의 왕후, 연화, 소진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여성에게 불운을 모두 전가하는 악습과 비록 허구지만 여성이 갖는 한계를 그들이 어떻게 극복해나갈지도 궁금한 지점이다.   


왕맹이 석정에게 고구려를 비롯한 한반도의 나라들이 수백 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석정은 조선의 홍익인간 정신이 누대에 걸쳐 이어져 왔기 때문인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오히려 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그 정신이 더 희미해져가는 것 같다.


문명의 발달로 세상은 변하지만, 인간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아서일까? 고대, 중세, 근현대, 어떤 시대의 이야기를 읽어도 인류사가 갖는 갈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듯 하다.  


그들이 잊혀지기 전에 3권이 출간되기를 바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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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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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부터 1910년까지, 델 바예 가문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이민자와 칠레 격변의 역사를 배경으로 50여년간의 파란만장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1부는 미국으로 이민 간 파울리나 델 바예와 펠리시아노 로드리게스 데 산타 쿠르스, 엘리사 소머스와 타오 치엔 등 이민 1세대에 해당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2부는 그들의 자식인 세베로와 린 소머스, 그리고 3부에서는 서른 살 아우로라 델 바예의 삶을 서술한다. 소설은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오가며 3세대인 아우로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1910년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짚어내려온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샌프란시스코 내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당시 이민자들의 삶과 칠레의 태평양 전쟁, 그리고 내전까지 칠레 역사도 함께 다룬다.  


격변의 역사 속에서 애국심 하나로 서슴없이 전쟁터로 뛰어들고 진보와 혁명을 위해 총과 펜을 든 젊은이, 낯선 이국땅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민자, 여권 신장을 위해 개척의 길을 걷는 여성 등 강인한 삶을 이어가는 그들을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한 가문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근현대사의 과도기 당시 여성들의 역사이자, 아우로라라는 한 인물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는 강안한 여성 세 명이 등장한다. 엘리사 소머스, 파울리나 델 바예, 니베아. 그들은 사랑을 쟁취하고 자기의 삶을 탐험하는 데에 거침이 없다. 위기를 극복했고, 그들의 여자 혈육에게 자신들의 성을 물려줬다. 떠난 사랑을 기꺼이 보내줬으며, 그로인한 상실감 역시 다른 방식의 사랑으로 채워갔다. 


니베아는 이미 십대 시절부터 여성참정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고, 쌍둥이를 임신한 상황에서도 활달한 야당 활동을 벌였으며, 내전 이후에도 여전히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어나갔다. 아우로라의 가정교사 마틸데 피네다는 하층민 출신으로서 불가지론자이고 사회주의자이며 여성 참정권론자로서 내선 당시 혁명 전단과 책자를 찍어내 집집마다 돌렸다. 어떤 이유에서든 남성이 부재한 가정에서 가족들을 보듬고 집안 경제를 이끈 사람은, 삶에 대한 의욕과 강한 의지력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상실감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손과 어깨를 내어 치유를 해준 이들 또한 여성이다. 


소설의 화자라고 할 수 있는 아우로라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자기를 낳다가 죽은 엄마,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신을 파울리나의 손에 맡겨 버린 외할머니, 가장 사랑했던 외할아버지 타오 치엔의 갑작스런 실종, 충격으로 인해 스스로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거의 닫아버렸던 아우로라. 그녀는 유일한 혈육인 파울리나가 죽는다면 표류하는 기분으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남편의 무심함으로 자괴감과 불안증에 시달린다. 파울리나가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음에도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어린시절 느꼈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터다. 아우로라의 뒤섞인 혈통은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의도된 장치였을까. 이러한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미국 이민 사회에서 이방인으로서 살고 있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디에고와의 결혼과 파경으로 단단해진 아우로라는 사랑과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의존적인 사랑보다는 주체적인 삶이 우선해야 하고, 그 바탕이 있어야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체성이란 혈통의 문제가 아니며, 단단한 인생의 풍요로움은 소소하고 행복한 경험들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작가는 2부와 3부에 걸쳐 칠레와 페루의 전쟁, 그리고 전쟁 이후 내전까지 구체적으로 서술하며 전쟁과 정치의 잔혹함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자행된 만행과 정치 싸움을, 이성적이고 책임감이 강하면서 한편으로는 다정하고 세심했던 세베로가 민간인까지 죽이는 살인기계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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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타오 치엔이다. 자신의 운명을 비관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딸에 대한 연민을 가족의 명예보다 더 소중하고 여기고, 사람을 아끼며, '우리'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 따뜻하고 품이 넓은 사람. 두번째 인물은 니베아. 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기 위해 애쓰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능동적이며 유머를 잃지 않는, 그래서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이다. 그리고 프레더릭 윌리엄스. 이 양반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든든하다.   


소설의 마지막, 아우로라는 자신의 운명에는 빛나는 구석이 없으며 모호한 색깔들과 불분명한 미스터리,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다 안다고 자부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온전히 아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그 기억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나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이 모여 '나'의 과거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지, 또한 '나'를 아는 이들의 기억이 왜곡된 점은 없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니 과거의 절망에,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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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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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쓴 편지다.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읽고 사색한 내용과 더불어 해당 책을 동봉해서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격주로 발송했다. 보낸 책들은 문학소설, 시집, 희곡, 비문학, 청소년 및 아동문학, 그림책 등 다양하다. 더구나 이 편지는 상호 왕래가 아닌 작가의 일방통행으로써 답장은 보좌관이 대신 보낸 몇 통에 불과하다.   


그가 이 혼자만의 외로운 북클럽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7년 3월에 참석한 '캐나다 예술위원회'의 창립 오십 주년 기념행사에서 초대를 받고도 마치 형식상 마지못해 자리를 채운듯한 인상을 받은 것과 짧은 행사 내내 고개조차 들지 않는 수상을 목격하고 난 후였다.  


편지에는 추천하는 책의 솔직한 소감(감동 및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책도 있다)과 추천 이유만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소개, 작품의 사회적 배경과 현 사회와의 연계, 핵심 포인트 등 추천 작품에 대해 다방면으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또한 사이사이 현재 내포하고 있는 실질적인 사회 문제ㅡ교육, 예술 지원금 등ㅡ를 건의하고, 정치적 견해를 전달하기도 한다. 내가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얀 마텔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고와 가치를 두고 글을 쓰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이다. 일례로 학교, 교사, 교육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그는 변호사나 의사가 연봉이나 사회적 지위에서 교사보다 왜 높은 대우를 받는지 이상하다고 말한다. 즉 그가 두는 직업의 가치는 얼마나 더 이타적이고 인류애적이냐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두 직업이 이기적이고 반인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고, 가난한 이들은 문제가 생겨도 만날 수 없는 이들보다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교사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ㅡ 


얀 마텔은 101권의 책을 통해 수상에게(이제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금전적 빈곤만큼이나 위태로운 정신적 빈곤, 덧없는 허영, 세계화 바람에 흔들리는 언어와 정체성,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공감 불능의 시대에서 전투적인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그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은 삶의 고결함과 우리 내면의 평온과 나를 포함한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자애심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 대해 읽어갈 때 독자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이러한 느닷없는 자기점검에서 당황하기도 하고 회피하고 싶기도하지만, 분명한 건 이러한 각성으로 우리가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시를 읽는다는 건 인간이 되어가는 좋은 훈련이고, 문학과 예술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와 우리가 삶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존재의 핵심에 이룰 수 있도록 조언한다. 


소설은 변화하는 시대를 읽을 수 있고, 인간 사회에 언제나 존재해왔던 악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를 반추한다. 또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세뇌되는 교묘한 정치적 수법과 권력의 부패, 그리고 권력 집단의 폭압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내키지 않는 책도 폭넓게 읽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시때때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고,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나를 깨야하는 고통이 삶이다. 자신을 아는 과정, 그로인한 고독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닐런지. 시각화된 사회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줄 아는 혜안, 그리고  무언가를 내로놓기가 무척 어렵더라도, 인생에 있어 때로는 미완성으로 남겨야하는 것들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작가는 101통의 편지와 101권의 책을 통해  '우리 지도자들이 무엇에서 마음의 양식을 얻고 어떤 마음을 품기를 바라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는, 지도자들은 세상이 실제로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꿈꾸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에 있어 문학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상에게 사색을 통해 충전할 기회를, 그리고 예술과 문화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기를, 그래서 문화예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소모품이 아님을 알기를 바랐으나 안타깝게도 효과는 없었던 듯 하다.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력과 인간다운 감성을 구축하고, 인간과 세계와 삶을 알아가며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현재와 미래를 상상하고 고민하는 원동력을 문학에서 찾을 수 있음을 말하는 얀 마텔. 예술은 물처럼 항상 가까기에 있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정서는 메말라버릴 것이라고, 그러니 꼭 책을 읽으라는 당부도 함께 보탠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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