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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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행성 개척을 위해 얼음으로 뒤덮인 니플하임에 도착한 개척민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공 미키 반스가 익스펜더블이 된 과정과 위기에 봉착한 현재를 오가며 서술하는데, 이는 현재 지구가 밟아가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익스펜더블인 미키는 전임자의 모든 기억을 그대로 이어받고 끊임없이 복제된다. 미키1이 죽으면 미키2가 그 기억을 이어받아 불과 몇 시간만에 깨어난다. 그 기억에는 그 자신의 끔찍한 죽음의 순간을 포함했고, 이는 재생되는 개체마다 트라우마로 남았다. 현재 임무를 수행하다가 구덩이에 빠져 죽음을 기다리는 미키는 일곱 번째 생을 살고 있다. 그가 죽으면 곧이어 여덟 번째 미키가 눈을 뜰 것이다.  


익스펜더블의 업무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고위험군의 일을 도맡는다. 우주선 외부를 수리하고, 원자로에 직접 들어가 방사선 피폭에 노출되고, 미완성 백신이나 개발 중인 신약의 임상 실험에 참여하고, 총알받이에 가까운 전투에 투입된다. 뻔히 죽음이 보이는 자살 임무는 예사다. 미키, 즉 익스펜더블은 주변 동료들에게 굳이 구출하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는, 타인의 입장에서는 불멸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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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가 익스펜더블이 되면서까지 그토록 미드가르드를 떠나고 싶어했던 이유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물론 익스펜더블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럭저럭 할 만한 일인줄 알았던 탓도 있고). 과학자나 기술자도 아니었고, 예술이나 오락에도 재능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비가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가 하고 싶었던 '학문'은 미드가르드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의 입장에서는 당장 죽는다해도 달라진 것이 없는 인생이었다. 물론 직접적인 이유에 빚도 있었지만.  


익스펜더블을 활용한 지 200년이 지났다. 애초에 익스펜더블의 활용성은, 재보급 기지에서 약 6광년 떨어진 곳에서 성인 소수와 쓸모가 생길 때까지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배아들과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개척지 주민을 만들어 내는 기술로써는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차원과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사실 이 소설에서의 가장 큰 갈등은 미키7과 미키8의 중복보다는 미키7이 갖는 정체성이다. 그는 스스로를 소모품으로 대체되는 부속품이 아닌 개별 인격체이자 노동자로서 개척민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동료애와 이타심 또한 여느 사람 못지 않다. 어쩌면 다른 개척민들보다 훨씬 더 이러한 관계에 목말라있다. 힘멜 스테이션에서 미키에게 익스펜더블의 임무에 대해 가르치고 훈련시켰던 젬마는 미키에게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진짜 죽은 게 아니라고'고 얘기한다. 과연 그럴까?  


미키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중 하나는 자신이 겪지 않았던 불쾌하고 두려운 기억까지 모두 껴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키1은 1년을 넘게 살았고, 미키2는 불과 하루도 살지 못했다. 분명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때부터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다면, 그리고 불멸이든 아니든, 자신이 다시 재생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죽음은 늘 두렵다. 이 반복적인 죽음도 못할 짓이다. 미키이면서 미키가 아닌 자신이 누구냐는 자문을 하고 있는 그의 삶은 과연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하여 미키1부터 미키8까지 그들은 모든 기억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 사람인가?


몇 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도깨비>의 마지막 장면은 수 년의 시간을 지나 전생의 삶을 기억한 채 태어난 여자와 불멸의 삶을 사는 남자의 재회로 끝난다. 그런데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과거 불멸의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가 과연 눈앞에 있는, 자신이 그토록 애절하게 사랑했던 '그 여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생이 아닌 현생에서조차 과거의 기억은 왜곡되거나 희미해질 수 있다. 심지어 일어난 사건이 아닌 순간 혹은 찰라의 감정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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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펜더블을 탄생 시키고,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심어놓은 앨런 매니코바의 이야기는 마치 신자유자의를 겨냥한 듯하다. '철저한 자유와 자립'이 건국 이념이었고 공동체 연대 혹은 공공의 선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던 행성 골트가 위기에 직면했을때 연대에 취약한 모습은, 겉으로는 세계화를 지향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국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구'촌'의 모습이다. 


작가는 난민과 이민자 문제를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민자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얼마나 배타적인지를 지적한다. 소설 속 우주 개척사를 따라가다보면 인류가 거쳐온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안정적으로 정착에 성공하기도 하는데, 안타까운 점은 인류는 어디에서 어떤 성공을 거두든 종단에는 과도한 욕심과 이기주의 팽창으로 또다른 이민자를 양산한다는 점이고, 이는 무한반복된다. 


수백 개의 유니언 중에 인류와 토착 생명체가 공생하는 장소는 딱 하나, 행성 롱샷 뿐이다. 그 이유는 토착 생명체와 개척민이 사는 지역이 달랐고, 서로를 적대시 하지 않았으며,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서로가 가진 것을 탐하지 않았다. 긴 시간을 두고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시켰고, 무엇보다 개척민들은 시간을 두고 장기적이며 평화적으로 행성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짧지만 꽤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미키의 말처럼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을 디아스포라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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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와 스토리는 가독성에서 확인된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도 덮지 않고 읽었으니 그야말로 재미면에서 빠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인간은 거의 대부분 디아스포라라는 작가의 메세지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토착민이라고 여기지만, 실상 역사를 짚어보면 이주민 아닌 이가 어디 있을까. 하물며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떠도는 우리는, 소위 '도시 유목민'이 아니던가. 유머 넘치는 이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사족.
영화로 제작되어 봉준호 감독이 연출을 한다는데, <설국열차> 이상의 작품을 기대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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