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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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화가, 그리고 이를 통한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다. 유년 시절을 비롯해 고독과 우울에 대한 감정을 푸른 빛을 머금은 그림들 안에 스미듯 풀어 놓는다. 








1956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첫 단독 전시회 당시 도록에 전기적인 내용을 싣는 것을 거부하고 인터뷰도 응하지 않았다는 발튀스는 그림이 스스로 말해야 한다고 믿었던 예술가다. 우리는 간혹 문학을 포함한 예술 작품을 대면할 때 너무 많은 정보와 지식을 끌어안고 대한다. 도슨트의 해설도 무척 재미있지만, 때로는 진중하게 오로지 작품하고만 대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발튀스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는. 


루시안 프로이드의 인물화에는 단순한 인상이나 표정을 넘어서 켜켜이 쌓인 세월도 담아낸다. 이런 내용을 읽고 단박에 검색한 그의 그림은 그야말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의 표현처럼 그의 그림 안에 있는 이들의 삶이 보이는 듯한 기분은 나만이 아닐 것 같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사회가 규정해 놓은 관습이나 규범을 모두 무시하고 경멸했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오는데, 루시안은 전문 모델이나 모르는 사람을 그리지 않았고 그와 가까운 이들(자식을 포한함)이 모델이 되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오직 화가로서만 살기를 원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는 루시안, 거기다 그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도 저마다 달라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책에 실린 루시안의 작품 <잠든 애너밸>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뭔가... 다정한 느낌이고, 연민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그림 속 애너벨은 루시안의 딸, 이기적이라고는 하나 그도, 아버지다.  


아흔아홉 해를 살았고, 90대에 접어들어서야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는 화가 루치타 우르타도. 예술가 남편과 자식들의 뒤에서, 그가 그림을 그린 시각은 가족이 잠든 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아무도 '그의 것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그렸음에도 자신의 그림을 보이기를 주저했다는 루치타. 그는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볼때면, 나는 예전부터 천왕봉이 떠올랐다. 운무 가득한 산 정상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은 지리산 천왕봉에 서 있던 '누구'와 같았고, 그래서 그의 고독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책에 실린 프리드리히의 <북극해>는 저자의 말처럼 그의 자아같다. 저자는 '산산조각 났지만 침몰하지 않은 배의 모습'을 그와 같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오도가도 못한 채 갇혀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프리드리히는 저자의 말처럼 살아남으려는 것이었을까, 살아진 것이었을까.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보면 전자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조지 클라우슨의 <애도하는 젊은이>를 통해 '의미 있는 상실'을 짚는 저자. 모든 의미 있는 상실이라... . 그렇다면 의미 없는 상실은 무엇이려나. 의미 없는 상실을, 굳이 상실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잃어버린 것과 놓아버린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는 중(요즘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읽고 있는 철학책이 있어서 무슨 글이든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들어 올림'에 대한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들어 올림'은 '여기 있음'을 증명하는 것. 증명을 위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소소하고 단정해 더 마음이 간다.   


ㅡ 


어린 시절(아마 대여섯 살 무렵), 우리 두 남매가 가장 많이 한 놀이 중 하나가 동굴놀이였다. 피아노 의자와 스탠드 옷걸이, 책상 의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놓고 그 위에 이불을 올리면 마치 텐트같은 형태가 된다. 우리는 그곳을 동굴 기지 삼아 휴대용 랜턴과 간식을 챙겨 들어가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았더랬다. 마치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어른들이 우리를 못찾을 것처럼.  


어른이 되고 종종, 이렇듯 어딘가로 당당하게 숨어들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한편으로는 누군가 찾아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이 책을 덮고 난후 별안간 떠오른 기억이요, 생각이다. 문득, 나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얼마나 쏟아내며 살고 있을까.   


ㅡ 


읽으면서, 이 작가는 나와 성향이 참 다르구나... 싶었다. 그가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상상한다면, 나는 늘 정착할 곳을 머릿속에 그린다(살면서 이사도 거의 다닌 적이 없으면서). 북향의 집을 선호하는 반면 나는 남서향을 집을 선호한다(이것도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부터이지만). 저자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보다는 꽃을 잘 꽂는 사람에게 끌린다는데, 나는 정반대다. 그럼에도 이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고독'이라는 공통 명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그림 속 마르트 드 멜리니가 언제나 혼자서 부유하는 듯하다고 했는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이 글을 얼른 마치고 푸른 내음이 나는 고요한 어느 시간과 공간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제목이 '여름의 피부'인데, 왠지 늦가을에 다시 읽고 싶다.
모든 색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계절에 푸른 그림을 앞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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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러블 스쿨보이 1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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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전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의 직후부터 시작한다.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의 배경을 잠깐 설명하자면, 빌 헤이든은 소비에트 정보부 작전 지휘관 카를라의 지시에 따라 영국 정보부에 들어와서 30년 넘게 그들을 염탐했다. 그의 정체가 탄로남과 동시에 영국 정보부(서커스)는 완전히 몰락했고, 미국 정보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헤이든의 정체를 밝힌 조지 스마일리가 현재 책임자로 임명됐다. 현재 서커스는 직원을 4분의 3이나 빼앗기고, 정보망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해외 지부도 철수했다. 재무부가 비자금도 정지시켰고, 백악관과도 연줄이 끊어졌다. 이 상태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홍콩에서도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다. 영국 정보부 중심부인 런던에서 고위 러시아 스파이가 발각되었고, 이로인해 미국과의 사이가 껄끄러워졌으며 아시아 여러 지부에서 철수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런데 런던의 고위급 내부자들은 이 기사를 접하고 의도된 기사임을 알아챈다. 누가? 왜? 어떻게 이토록 내부자 관점에서? 그리고 또다른 호외! 제리 웨스터비가 홍콩으로 돌아온다.  


마을에서는 마치 학생같다고 그를 '스쿨보이'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시골 마을에서 머무르고 있던 제리 웨스터비에게 런던으로부터 전보가 도착한다. '후견인'이 중병에 걸려 입원했고, 죽기 전에 스쿨보이를 보고 싶다는, 그러니 돌아오라는 내용의 전보에 서명한 사람은 세 사람. 이제 때가 됐다. 


드레이크 코, 본토를 탈출해 차우저우의 가난한 소년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뒤 사업가로 성공해 대영 제국 훈장을 받은 남자. 죽은 아들을 침례교식으로 매장하고 영국식 석상을 만든 하카족 바다의 집시. 아편 사업으로 자선 병원을 운영하는 자선사업가. 중국식 정원에 미국식 바를 만들고 러시아와 손잡고 벌어들인 돈을 신탁 계좌에 넣어둔, 정치를 싫어하는 자본가. 이처럼 모순덩어리 삶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ㅡ 


카를라의 손길이 어디까지 뻗쳐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조지 스마일리는 최측근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믿지 않았고, 갈수록 카를라에 집착하며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포착된 두 사람, 드레이크 코와 리제라고 불리는 엘리자베스 워딩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라진 리카르도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코의 동생 넬슨, 그리고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이 불안한 샘 콜린스. 슬슬 사건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1부가 끝난다. 


1부는 소제목ㅡ시계태엽 감기ㅡ에서 전해지는 짐작처럼 본격적인 사건이 진행되기 전 배경 설명에 가깝다. 500여쪽에 달하는 내용이 말해주듯, 거리나 인물들의 행동 반경, 인물의 표정 및 감정까지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225쪽부터 약 대여섯 페이지에 걸쳐 제리가 홍콩을 빠르게 움직이며 은행에 도착하기까지 서술하는 장면은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저절로 그려진다. 모든 정보가 카를라에게 넘어갔다는 전제 하에 진행하는 작전이기에 오로지 혼자서 모든 부분을 수행해야한는 제리의 상황은 별다른 자극적인 표현 없이도 긴장감 있게 전달되어 인상적이다.  


상하이 출신 드레이크 코 형제의 이야기는 전쟁과 이념으로 얼룩진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이와 닮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독자로서 사건과 별개로 이들의 사연에 이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내 엘리자베스에 대해 전혀 몰랐던 피터 워딩턴에게서 앤에 대해 전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조지 스마일리의 씁쓸한 감정, 죽을 때까지 남편이 석탄청의 간부라고 여기고 살았던 컨트롤의 아내에게 연민 비슷한 마음이 느껴져 사이사이 어줍잖은 감상이 끼어들기도 했다.  

ㅡ 


스마일리는 그동안 드레이크 코가 서커스의 관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그들이 코의 사업에 관심이 있음을 드러내려고 한다. 전술은 180도로 전환되었다. '코의 나무를 흔든다.' 


뒤로 갈수록 내용은 더욱 촘촘해지고 흥미롭다. 본격적인 전개는 2부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족
전작을 읽지 않아도 작가가 본문에서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으니 초반에 책을 덮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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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78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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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나는 아라비아 말들로 가득한 마구간, 책이 높다랗게 쌓인 여러 개의 방을 가지고 싶어. 그리고 마법의 잉크스탠드로 로리의 음악만큼이나 유명한 작품을 쓸거야.  


위의 문장은 열두 살의 내가 가장 사랑했고, 읽을 때마다 설레었던 문장이다. 앞서 말했듯 나의 첫번째 인생소설이라고 할 만큼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어지간해서는 모르는 바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마치 다른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새로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단연코 조다. 조는 등장인물들과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소소한 에피소드와 사건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다른 자매들과는 유독 많은 감정들을 공유한다. 또한 독보적으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스스로 가장의 역할을 떠안을만큼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다르다.  



그런데 이번에 1권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인물은 셋째 베스였다. 일단 베스의 죽음에 대한 복선이 소설 초반부에 이미 드러나 있음을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74.
이 세상에는 누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까지 말없이 수줍게 구석 자리를 지키며, 다른 이들을 위해서 너무나 씩씩하게 살아가는 베스 같은 소녀들이 정말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난롯가의 작은 귀뚜라미가 울음을 멈추기 전까지는 그 희생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사랑스럽고 햇살 같은 존재는 침묵과 그림자만 남기고 사라진다. 


이 부분을 곱씹고 읽다보니 책장을 넘길때마다 베스의 죽음에 가까워져간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는 새에 긴장하고 있더라는.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타인을 향한 베스의 특별한 교감 능력은 그야말로 순수한 배려와 사랑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ㅡ 


에이미가 학교에서 과한 체벌을 당하자 미련없이 학교를 그만두게 한 어머니, 마치 부인. 그리고 마치 부인이 메그와 조에게 말하는, 자식의 미래에 대한 바람을 말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어른)의 본보기일 수 있다. 모든 부모가 그녀처럼 중심을 잡는 것도 아니고, 그녀와 같은 가치관을 갖는 것은 더더욱 아니나,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물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무엇보다 그 시대에 딸에게 결혼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조언은 새롭게 다가온다. 작가 본인이 비혼자였기에 그 말에 더 힘이 실리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에는 19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인들도 사이사이 언급된다. 소설 초반 마치家 여성들이 그들의 아침밥을 포기하고 도움을 주러 간 집의 사람들은 독일인이었고, 에이미가 교실 창 밖으로 던진 라임을 받아 먹는 아이들은 아일랜드인이었다. '소녀들의 숙적인 아일랜드 아이들(p121)'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실제로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로 인해 당시 소녀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으나, 한편으로 청교도 목회자인 네 자매의 아버지를 떠올려보면 종교적 측면에서 다루어진 것인지에 대해 추측해 볼 수 있다. 가정소설이자 성장소설인 작품에서 이러한 점들을 미미하게나마 다뤘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발한 발상과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개성이 넘치는 요즘 시대에 이 소설은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보수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조언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보고 순순히 인정하는 네 자매의 모습과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가난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마치 부인의 말씀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이며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가 단순히 네 자매의 알콩달콩 좌충우돌 성장기이기 때문만은 아닐 터다. 결국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이 소설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애, 인류애, 공동체.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 사교계에 대한 로망과 허영심이 컸던 메그가 가난한 남자인 브룩을 선택한 이유도 사랑과, 건강, 평온함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너무 소설적인가. 


1권을 읽으면서 불현듯 들었던 생각은, 네 자매 또래(12세~16세)에 해당하는 현재의 아이들에게 놀이 시간을 주었을 때 다양한 놀이를 스스로 개발해서 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피시방, 노래방, 방송 댄스 등 천편일률적인 유흥이나 진로에 관련한 특기사항이 아닌 그야말로 아무런 이해득실 없이 신나고 유쾌하고 다양한 놀이. 마치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고가의 캠핑 문화, 이것조차도 부담스러워 대여하는 글램핑 등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만들어진 문화에 스스로를 끼워맞추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마 '성공적인 삶'을 위해 조직해 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우리네 모습은 '창의력'을 강요하면서도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삶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런지.  


중년의 나이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사춘기 시절의 불편했던 나를 들여다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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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120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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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은 의사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주로 수녀, 신부 등 종교인들의 이야기가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리스로마 신화, 로마 역사, 성경을 통한 기독교적 가르침 등에서 인용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의사의 이야기]는 이상적인 여성성을 규정지어놓고, 여성의 정절을 강요한다. 이 이야기에서 어처구니 없는 대목은 비르기니우스가 사건의 시발점이자 가해자인 클라우디우스에게 교수형 판결이 내려지자 그를 불쌍이 여겨 청원을 넣어 그의 감형에 도움을 주었는데, 여기에서 비르기니우스가 인격자로 칭송받는다는 점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 딸에게는 명예을 우선하며 자결을 강요했던 자가, 딸의 목숨을 앗아간 죄인을 불쌍히 여겼다는 이유로 그가 훌륭하다는 칭찬에 동의하기 어렵다. 화자는 '죄가 그대를 망쳐 버리기 전에 죄를 버리라'라고 말하는데, 딸의 죽음에 있어서 비르기니우스는 무죄일까? 


[면죄부 판매인의 이야기]의 서문에서 면죄부 판매인은 자신의 일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임무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그 내용을 읽다보면 마치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에서 써준 부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데, 부자가 되게 해주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질투심도 치료해준다니 그야말로 면죄부는 면죄의 역할만 했던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면죄부가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 아닌 사기에 가까운, 그저 돈벌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판매인은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판매인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이 직업을 버리고 양심 때문에 전직을 할 생각도 전혀 없다. 이 작품이 종교 개혁 이전에 출간된 점을 감안하면 아마 면죄부에 의한 폐해가 이미 저변에 많이 인식되어 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싶다. 사기꾼과 다를바 없는 판매인이 팔고 있는 게 면죄부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고.


[멜리비 이야기]에서 프루던스는, 복수는 개인에게 속한 일이 아니며 그것은 사법권을 가진 재판관들의 몫이라고 말한다. 재판관들의 소명의식이 절실하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교구 주임 신부의 이야기]에서 죄를 직접적으로 행위하지 않았어도 동의한다는 것은 중죄라고 말한다. 통회란 진실로 슬픔에 가득 차 마음 아파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현대 사회의 범죄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바라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와 뉘우침인데, 이것이 바로 통회일 것이다. '슬픔에 가득 차 마음 아파'함으로써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    


ㅡ 


작품은 당시의 시대상과 서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백년전쟁, 농민 반란, 흑사병, 교회와 수도원의 타락 등 정치.경제.종교를 비롯한 사회 저변의 문제들과 이에 따른 크고 작은 변화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생했다. 독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계 각층의 변화를 청자의 입장으로서 이입된다. 


스스로 죽음을 찾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식탐과 도박과 과음에 대한 경고, 낮잡아 취급하는 유대인, 여성에 대한 비하와 경멸, 수도사들의 부정부패, 연금술의 허상과 병폐 등을 풍자적이고 통쾌하게 이야기한다. 


잘난 체하며 자기의 지식을 쏟아내는 수도사에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고 슬퍼서 분위기만 가라앉히는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퉁을 놓으면서 수도사의 허세를 꼬집는가하면, 진정한 용기와 신중함 없이 미신에 흔들리고 허세에 가득찬 남성들을 향해 호통친다.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는 신부님의 말을 끝까지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이유는 마지막에 있다.  


참회에 대한 연설에서 탐욕, 탐식, 욕정, 교만, 시기, 분노, 거짓, 아부, 경멸, 나태 등이 모두 죄악이자 통회에 대상이며 이에 대한 치유책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 죄악에 대한 치유책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덕목은 겸손과 측은지심이다. 이 두 가지 덕목은 굳이 참회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아다는 데에 있어서 공존해야할 모든 이들이 기억해야하는 부분이 아닐까싶다. 개인적으로 우선하는 가치ㅡ측은지심ㅡ이기도 하고.


화자들 덕분에 혼자 깔깔거리고 웃다가, 어처구니 없어 혼자 씩씩거렸다가, 다시 키득거렸다가, 깔깔거림 안에서 사색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에 물음표와 이해를 동시에 놓아두면서, 한편으로는 지금 또 다른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생각했다. 누가 21세기 제프리 초서의 역할을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깔깔과 사색의 시간을 보낼 후대를 상상해 본다. 



151.
불화는 다른 사람이 시작하지만 화해는 너 스스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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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주성철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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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영화평론가의 영화평론집이다. 마치 전시관처럼 각 장마다 전시실이라고 명명했는데, 감독관 배우관 장르관 단편관 등 네 개의 챕터로 나위어져 있다. 








 
[감독관]에는 박찬욱, 봉준호를 비롯한 현재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감독들을 중심으로 영화사에 큰 영향을 미친 김기영, 마틴 스코세이지 등 노장 감독들의 작품도 다루고 있다. 언급된 감독들의 작품들을 꽤 많이 본 편인데, 마틴 스코세이지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까지 본 내가 거의 유일하게 한 작품도 접하지 못한 감독은 의외로(?) 나홍진이다. 대중에게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랍스터>도 봤는데 말이다. 피 튀기는 영화는 봐도 오컬트 영화는 못 보는 나로서는 여전히 <곡성>이나 <랑종>을 볼 엄두가 안 난다. 추격자와 황해는 어쩌다보니 때를 놓쳤고. 영화를 좋아했던 아빠 덕분에 청소년기부터 영화를 꽤 자주 보면서 컸는데(흑백 영화부터 1950년 이후에 초기 상영했던 영화들에 대해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은 출생신고가 잘못 된 거 아니냐는 농담을 듣곤했다), 김기영 감독의 작품은 거의 보질 못했다. 사실 볼 수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저자는 윤여정 배우의 시작을 알고 싶다면 김기영 감독의 <화녀>를 보라기에 뒤져봤더니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대여가 가능하다.  



[배우관]에는 윤여정, 전도연, 메릴 스트리프를 비롯한 걸죽한 배우들과 오랜 시간 익숙했던 캐릭터와는 결이 다른 몇몇 배우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주성치가 눈에 들어왔다. 주성치가 출연한 영화가 그렇게 많은데 나는 딱 한 작품만 봤다. 저자는 그를 '액션과 코미디를 넘나드는 능청스러운 재주꾼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그 과한 능청스러움이 꽤나 불편했더랬다. 돌이켜보면 내 주변에는 주성치에 열광했던 남성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들도 싸잡아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왜 그렇게까지 주성치에 대해 "별로야"를 외쳤는지 그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데, 지금 그의 영화를 본다면 나의 감상은 좀 달라지려나...? 


나는 고등학생 시절 오드리 헵번을 사랑했다(흠모가 아니다). 아빠랑 비디오로 함께 <로마의 휴일>을 본 후 TV에서 혹은 비디오를 뒤져가며 그녀의 영화를 다 찾아 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마이 페어 레이디>다. 오드리 헵번 말년의 삶이 아름다웠기에 그녀를 더욱 좋아했더랬다. 그만큼 좋아진 배우가 윤여정님인데, 그분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계춘할망>과 <죽여주는 여자>였다(이제는 대표작이 된 '미나리'는 아직도 보지 못했지만). 각종 예능에서 보여주는 시크하고 쿨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계춘할망을 본다.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이 늘 흥미롭다.  


이 얘기는 저자의 의도와는 벗어난 것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저자는 메릴 스트리프의 <철의 여인>에 관한 글에서 마거릿 대처가 맨 처음 출마했을  당시 남편의 성이 아닌 결혼 전의 성, 즉 마거릿 로버츠라는 이름이 중요하게 등장한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그 성도 남성의 성이 아닌가.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카렌이 성 없이 '카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주체성에 더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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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관]에는 홍콩 누아르, B무비, 인권, 공포, 정치, 저널리즘, 전쟁, 범죄물 등 다양한 장르에 대해, [단편관]에서는 박찬욱.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때의 시절과 함께 했던 <영웅본색> <첩혈쌍웅> <천장지구> 등 즐거운 추억팔이 시간이었다. 이외에 나도 몇 년 전 읽었던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언급하는 정치적 프레임이 한국 영화에서는 드물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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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쓰여진 영화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동시에 영화와 영화 사이, 영화와 배우 사이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관계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조합되어 영화를 읽는 재미가 컸다. 다만 [배우관]에서 좀더 많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독립영화 부분을 다루지 않은 점, [단편관]에서 보다 넓은 층의 단편들을 얘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표지에는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는데, 내가 그런 상황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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