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러블 스쿨보이 1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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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전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의 직후부터 시작한다.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의 배경을 잠깐 설명하자면, 빌 헤이든은 소비에트 정보부 작전 지휘관 카를라의 지시에 따라 영국 정보부에 들어와서 30년 넘게 그들을 염탐했다. 그의 정체가 탄로남과 동시에 영국 정보부(서커스)는 완전히 몰락했고, 미국 정보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헤이든의 정체를 밝힌 조지 스마일리가 현재 책임자로 임명됐다. 현재 서커스는 직원을 4분의 3이나 빼앗기고, 정보망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해외 지부도 철수했다. 재무부가 비자금도 정지시켰고, 백악관과도 연줄이 끊어졌다. 이 상태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홍콩에서도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다. 영국 정보부 중심부인 런던에서 고위 러시아 스파이가 발각되었고, 이로인해 미국과의 사이가 껄끄러워졌으며 아시아 여러 지부에서 철수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런데 런던의 고위급 내부자들은 이 기사를 접하고 의도된 기사임을 알아챈다. 누가? 왜? 어떻게 이토록 내부자 관점에서? 그리고 또다른 호외! 제리 웨스터비가 홍콩으로 돌아온다.  


마을에서는 마치 학생같다고 그를 '스쿨보이'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시골 마을에서 머무르고 있던 제리 웨스터비에게 런던으로부터 전보가 도착한다. '후견인'이 중병에 걸려 입원했고, 죽기 전에 스쿨보이를 보고 싶다는, 그러니 돌아오라는 내용의 전보에 서명한 사람은 세 사람. 이제 때가 됐다. 


드레이크 코, 본토를 탈출해 차우저우의 가난한 소년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뒤 사업가로 성공해 대영 제국 훈장을 받은 남자. 죽은 아들을 침례교식으로 매장하고 영국식 석상을 만든 하카족 바다의 집시. 아편 사업으로 자선 병원을 운영하는 자선사업가. 중국식 정원에 미국식 바를 만들고 러시아와 손잡고 벌어들인 돈을 신탁 계좌에 넣어둔, 정치를 싫어하는 자본가. 이처럼 모순덩어리 삶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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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의 손길이 어디까지 뻗쳐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조지 스마일리는 최측근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믿지 않았고, 갈수록 카를라에 집착하며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포착된 두 사람, 드레이크 코와 리제라고 불리는 엘리자베스 워딩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라진 리카르도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코의 동생 넬슨, 그리고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이 불안한 샘 콜린스. 슬슬 사건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1부가 끝난다. 


1부는 소제목ㅡ시계태엽 감기ㅡ에서 전해지는 짐작처럼 본격적인 사건이 진행되기 전 배경 설명에 가깝다. 500여쪽에 달하는 내용이 말해주듯, 거리나 인물들의 행동 반경, 인물의 표정 및 감정까지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225쪽부터 약 대여섯 페이지에 걸쳐 제리가 홍콩을 빠르게 움직이며 은행에 도착하기까지 서술하는 장면은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저절로 그려진다. 모든 정보가 카를라에게 넘어갔다는 전제 하에 진행하는 작전이기에 오로지 혼자서 모든 부분을 수행해야한는 제리의 상황은 별다른 자극적인 표현 없이도 긴장감 있게 전달되어 인상적이다.  


상하이 출신 드레이크 코 형제의 이야기는 전쟁과 이념으로 얼룩진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이와 닮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독자로서 사건과 별개로 이들의 사연에 이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내 엘리자베스에 대해 전혀 몰랐던 피터 워딩턴에게서 앤에 대해 전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조지 스마일리의 씁쓸한 감정, 죽을 때까지 남편이 석탄청의 간부라고 여기고 살았던 컨트롤의 아내에게 연민 비슷한 마음이 느껴져 사이사이 어줍잖은 감상이 끼어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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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리는 그동안 드레이크 코가 서커스의 관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그들이 코의 사업에 관심이 있음을 드러내려고 한다. 전술은 180도로 전환되었다. '코의 나무를 흔든다.' 


뒤로 갈수록 내용은 더욱 촘촘해지고 흥미롭다. 본격적인 전개는 2부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족
전작을 읽지 않아도 작가가 본문에서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으니 초반에 책을 덮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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