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주성철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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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영화평론가의 영화평론집이다. 마치 전시관처럼 각 장마다 전시실이라고 명명했는데, 감독관 배우관 장르관 단편관 등 네 개의 챕터로 나위어져 있다. 








 
[감독관]에는 박찬욱, 봉준호를 비롯한 현재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감독들을 중심으로 영화사에 큰 영향을 미친 김기영, 마틴 스코세이지 등 노장 감독들의 작품도 다루고 있다. 언급된 감독들의 작품들을 꽤 많이 본 편인데, 마틴 스코세이지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까지 본 내가 거의 유일하게 한 작품도 접하지 못한 감독은 의외로(?) 나홍진이다. 대중에게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랍스터>도 봤는데 말이다. 피 튀기는 영화는 봐도 오컬트 영화는 못 보는 나로서는 여전히 <곡성>이나 <랑종>을 볼 엄두가 안 난다. 추격자와 황해는 어쩌다보니 때를 놓쳤고. 영화를 좋아했던 아빠 덕분에 청소년기부터 영화를 꽤 자주 보면서 컸는데(흑백 영화부터 1950년 이후에 초기 상영했던 영화들에 대해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은 출생신고가 잘못 된 거 아니냐는 농담을 듣곤했다), 김기영 감독의 작품은 거의 보질 못했다. 사실 볼 수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저자는 윤여정 배우의 시작을 알고 싶다면 김기영 감독의 <화녀>를 보라기에 뒤져봤더니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대여가 가능하다.  



[배우관]에는 윤여정, 전도연, 메릴 스트리프를 비롯한 걸죽한 배우들과 오랜 시간 익숙했던 캐릭터와는 결이 다른 몇몇 배우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주성치가 눈에 들어왔다. 주성치가 출연한 영화가 그렇게 많은데 나는 딱 한 작품만 봤다. 저자는 그를 '액션과 코미디를 넘나드는 능청스러운 재주꾼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그 과한 능청스러움이 꽤나 불편했더랬다. 돌이켜보면 내 주변에는 주성치에 열광했던 남성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들도 싸잡아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왜 그렇게까지 주성치에 대해 "별로야"를 외쳤는지 그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데, 지금 그의 영화를 본다면 나의 감상은 좀 달라지려나...? 


나는 고등학생 시절 오드리 헵번을 사랑했다(흠모가 아니다). 아빠랑 비디오로 함께 <로마의 휴일>을 본 후 TV에서 혹은 비디오를 뒤져가며 그녀의 영화를 다 찾아 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마이 페어 레이디>다. 오드리 헵번 말년의 삶이 아름다웠기에 그녀를 더욱 좋아했더랬다. 그만큼 좋아진 배우가 윤여정님인데, 그분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계춘할망>과 <죽여주는 여자>였다(이제는 대표작이 된 '미나리'는 아직도 보지 못했지만). 각종 예능에서 보여주는 시크하고 쿨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계춘할망을 본다.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이 늘 흥미롭다.  


이 얘기는 저자의 의도와는 벗어난 것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저자는 메릴 스트리프의 <철의 여인>에 관한 글에서 마거릿 대처가 맨 처음 출마했을  당시 남편의 성이 아닌 결혼 전의 성, 즉 마거릿 로버츠라는 이름이 중요하게 등장한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그 성도 남성의 성이 아닌가.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카렌이 성 없이 '카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주체성에 더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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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관]에는 홍콩 누아르, B무비, 인권, 공포, 정치, 저널리즘, 전쟁, 범죄물 등 다양한 장르에 대해, [단편관]에서는 박찬욱.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때의 시절과 함께 했던 <영웅본색> <첩혈쌍웅> <천장지구> 등 즐거운 추억팔이 시간이었다. 이외에 나도 몇 년 전 읽었던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언급하는 정치적 프레임이 한국 영화에서는 드물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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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쓰여진 영화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동시에 영화와 영화 사이, 영화와 배우 사이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관계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조합되어 영화를 읽는 재미가 컸다. 다만 [배우관]에서 좀더 많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독립영화 부분을 다루지 않은 점, [단편관]에서 보다 넓은 층의 단편들을 얘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표지에는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는데, 내가 그런 상황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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