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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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 소설로서 어린 시절의 기숙학교 생활과 홀로코스트, 그리고 아우슈비츠 이후 결혼생활까지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써내려간 노년에 접어든 화자의 회고록이자 자기청산의 과정이다.  
 








어린시절 집에서 삭발한 폴란드 여인을 본 것을 계기로 자신이 유대인임을 알게 된 화자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이, 그것도 생사를 위태롭게 하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유쾌하지도, 이해되지도 않았다고 술회한다. 더하여 유대인이라는 결속력 때문에 오히려 타인과 자연과 심지어 자기 스스로와도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잃으며 명확하게 짚어 말할 수 없는 도덕적 비참함을 맛본다. 그러나 유대인을 혐오하는 여성 앞에서 그 자신 역시 삭발한 폴란드 여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저주이며 구원은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생존의 공범자라고 지칭하며 태어남과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 자신의 생존에 치욕을 느낀다. 그러기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생존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화자는 무엇이 자신에게 글쓰기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 딱히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존재하므로 쉼 없이 글을 쓴다. 즉 그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생존이다. 


강제수용소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끔찍한 기억은 일상에서 무시로 몰려온다. 화자에게는 두 가지의 삶이 존재하고 그중 하나가 정신의 삶, 정신적인 현존의 형태라고 말하면서 전쟁이 끝났어도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혹은 참혹한 과거의 기억은, 정신적인 삶의 사망선고와 다름없음을 이야기한다.   


화자는 대중이 흔한 범죄자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미치광이 히틀러를 신격화해 영웅으로 만들었고 말한다. 즉 그를 범인凡人이 아닌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추종자였던, 혹은 방관자였던 스스로에게 명분을 부여한 자기합리화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날조와 교조에 무릎꿇은 다수를 향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어린 시절에 수용소로 수송될 당시 자리를 이탈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더 연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버리면서까지 화자에게 식은 배식을 전해준 '선생님'의 행위에 대해 화자는 어떠한 이름을 붙이려 들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오히려 여타 이물질이 섞이지 않는 가장 순수한 이념이 퇴색될 것을 우려한 것은 아닐까. 또한 화자는 '선생님'의 행위가 그가 인간으로서 살아남는 방식임을 통해 결국 인간이 진정으로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를 역설한다. 


화자에게서 돈 또는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일 뿐이다.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떠안아야 하는 불평등, 부자유, 독립성 훼손 등에서 오는 부조리함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돈은 곧 강제수용소에서의 배식과 같다. 자신의 삶의 주인일 수 없는 변하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함이여.


ㅡ 


세상을 단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고, 다른 세상 혹은 죽음 이후의 실존 여부가 가능하다고 믿지 않으며, 정서적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살고 있는 삶을, 화자는 이름붙여 특정할 수 없는 죄의식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화자가 시도하는 삶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은 냉담해지기다. 아무리 자신의 본질과 존재 이유를 자문하지만 답을 구하지 못하는 그는, 자신이 스스로를 소유할 수 있다면 그의 정체성은 실현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나 깊게 마음이 아팠다. 소외감을 느끼며 안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자신을 온전히 소유함으로써 정체성을 실현하고 싶다는 화자의 말이 왜 이토록 절박하게 들리는지. 그러면서도 타인이 내미는 이해심은 감당할 수 없어 선뜻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이를 원하는 아내에게 "안 돼!"라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한 화자. 그는 아이의 울음 소리에서 "나는 유대인이 되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상상한다. 그 "안 돼"의 의미가 '유대인은 안 돼'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비록 유대인이라는 추상적 관념으로서는 화자에게 아무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기에 그 절망감은 더욱 크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미래의 어린 누군가에게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화자에게 있어서 유대인이라는 추상적 관념은 빨간 잠옷을 입은 대머리 여자이고, 체험으로서의 관념은 그의 생존 자체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숙학교와 아우슈비츠를 같은 선상에 놓으며 공포가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폐해에 대해 얘기한다. 세계가 모두 아우슈비츠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폭압이 난무하고 경외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약자는 어쩔 수 없이 폭력에 동조할 수 밖에 없는 부조리한 세상에 과연 희망은 있을까?  



이 소설은 태어날 수 없는 화자의 아이를 향한 애도 혹은 태어날 아이들에게 이러한 세상을 물려주는 것에 대한 사죄가 아닐까. 그리고 화자가 아내에게 했던 고백이, 저자가 쓴 이 글이,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한 애도이자 동시에 치유가 아니었을런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적응과 조화를 이유로 들어 복종을 교육받아왔다. 가끔 주변 지인들로부터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시키는대로 하지 않아서 힘들다는 하소연을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스스로의 삶이 얼마나 만족스럽길래 아이를 자신의 삶의 궤적대로 키우고 싶어할까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얘기하면서 실상은 허울좋은 단어를 사용해가며 지금도 복종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화자는 진정 자신과 화해했을까. 슬픔과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뒤덮여 한편으로 냉소적이기까지 한 이 글에서 나는 그의 안온함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책을 덮으며 그를 위해 기도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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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신해경 옮김 / 엘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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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나 평범한 작품이 없다. 대부분 1960년대부터 1990년 이전에 집필한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기발하기 짝이 없다.   


책을 읽다가 작가가 궁금해 도저히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1915년생 여성으로서 그의 삶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본명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 ‘여성 SF작가’ 라는 간판으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기에 필명을 남성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대부분 영국 식민지에서 보냈고 그림 실력이 뛰어났으며, 미술 평론가와 기자로도 활동했던 이력을 보아서 다방면으로 재능과 경험이 풍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과 불임, 이혼과 재혼, 육군 항공대 입대, CIA 근무, 실험 심리학 박사 학위 취득, 그리고 51세부터 SF소설 작가 입문 등 그의 삶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소설들 안에 이러한 삶과 그가 거쳐왔던 생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책에 실린 열세 편의 중단편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눈은 녹고 눈은 사라지고> <엄마가 왔다> <수영장이 비면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다.  


<눈은 녹고 눈은 사라지고>는 장애를 안고 있는 두 존재가 서로를 보완하며 다수를 상징하는 Y-염색체 남성을 납치한다는 설정과 에티오피아 광야와 숲을 달리는, 한 편의 장쾌한 영화같다. <엄마가 왔다>는 지구에 온 카펠라 행성의 여성들을 통해 지구와는 다른 성 지배 구조를 보여준다. 카펠라 행성을 대표하는 여성들은 지구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일삼는데, 맥스는 카펠라 여성이 남성들을 성노예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 살아있는 악몽이라고 말한다. 이를 바꿔 말하면 성범죄에 취약한 지구의 여성들은 늘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맥스의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전해진다. "백인들이 배를 타고 하와이와 타히티에 도착했을 때, 선원들 몫으로 폴리네시아 여자들을 한 무더기 태웠지." 과연 우주선에 올라탄 수십 명의 지구인 남성들은 무슨 일을 당했을까?  


<수영장이 비면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는 문명을 전파하기 위한 제국주의의 수순과 아주 닮아 있다. 종교와 교육으로 접근하고 동화의 제스처를 취하며 마치 전적으로 그들을 위한 것인 양 산업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 문명인이랍시고 온 인간은 고작 사춘기를 막 지난 소년 한 명 뿐임에도 불구하고 토착민들은 나름의 저항을 하지만 불가항력이다. 제 맘대로 휘저어 놓은 고돌퍼스 행성을 뒤로 하고 미련없이 떠난 이후 토착민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수십 광년이나 떨어진, 한때 잠시 들렀을 뿐인 소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캐멀링은 '테라식 계몽운동'이라고 말하지만, 그 잣대는 소년의 말처럼 '테라식'일 뿐이다.   


ㅡ  


이외에도 소설은 식민주의와 그로인한 피해의 흔적, 산업화된 국가들이 연합을 맺어 세계 지배를 위한 전쟁에 돌입하는 폭력적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등 국제사회에서 약소국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함을 다룬다. 또한 성매매도 모자라 마약까지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세상에 팔 수 없는 건 없듯이 오로지 돈과 이익만을 좇는 이들을 풍자한다. 


작가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폐해만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극과 무통의 극단적인 증상에서 오는 고통, 인류가 지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사랑,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소수자이며 동시에 약자인 이들의 연대와 공존 등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놓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고통에 밝은>에서 주인공이 온갖 잔인한 고통에 대한 실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고 싶은 곳은 고향, 지구다. 이 소설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독을 안고 행성과 행성 사이를 유영한다. 그리고 롤링스톤스의 음악을 들으며 첫 토성탐사대원과 그들의 우주선을 기억하는 <다이아몬드 가득한 하늘에 계신 어머니>의 우주안전감독관 골렘이 멈춰버린 라그나로크에서 본 토팡가의 실체, 또한 우주를 동경해 왔던 <빔 어스 홈>의 토비가 병실에서 향한 곳은 무엇을 상징할까.



소설 속 그들은 그리움을 안은 채 각각의 '집'으로 상징하는 어느 곳으로의 귀환을 꿈꾼다. 인류는 문명과 기술의 발달로 더 편한 세상에 살면서 인터넷으로 경계없는 정보와 감정을 공유하는데도, 왜 점점 더 외로워지는 건지... .  


헛헛하고, 쓸쓸하고, 달달하고, 다정한, 그러면서 통쾌한 이야기를 기상천외하고 역설적인 SF로 버무려낸 소설들. 어떤 면에서는 스트루가츠키 형제보다 더 엉뚱하다면 짐작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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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사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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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유럽 역사를 배울 때 가장 헤매던 시대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사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이 시기, 프랑스 혁명 직후 공포 정치가 지나가고 나폴레옹 1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종신 집정관이 된 즈음부터 시작된다. 프랑스 역사상 정치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웠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치소설로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실존 인물도 등장하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사법 제도도 단편적으로 만날 수 있다.  










일단 발자크의 작품집 『인간극』 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에도 여지없이 다채로운 인간 군상이 펼쳐진다.  


말랭의 지시로 미쉬를 감시하는 사람은 그의 재산을 시샘하는 공드르빌의 소작농 비올레트다. 그는 자신의 행운이 이웃의 불행과 파멸에 달려 있다고 믿으며, 자기보다 상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여기고, 그 적을 해코지하는 데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때 열정적으로 지지했으나 종신 집정관으로 취임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하는 보나파르트에 실망해 왕당파와 내통하는 정치인 말랭은 마치 신념이 있는 것처럼 굴지만 그저 출세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덕에 팔자에도 없는 귀족까지 됐다만. 말랭과 비슷한 사람이 면장 굴라르인데 혼란한 시국을 틈타 벼락출세를 했고, 출세를 하니 명예욕이 생겨 유서 깊은 옛 가문들과 연계를 맺고자 어슬렁거린다.  


비상한 인물이었으나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해 그저 국민 의회 위원 중 한 사람에 불과했던 푸셰는 폭풍우 속 같은 정국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범용했던 그는 총재 정부하에서 각광을 받는 스타가 된 것이다. 자신이 속했던 산악당과 왕당파의 비밀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그는 정국을 주시하며 보나파르트에게 정보를 제공해 유용하게 써먹었다. 또한 신중하고 타고난 통찰력으로 들고나야할 때를 아는 자였다. 그래서 나폴레옹을 압도할 정도의 실권을 쥐고 있고, 그의 의심을 샀을 때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산악당 소속이었다가 나폴레옹의 쿠데타의 협력해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쥐었다가 놓을 줄 았았던, 그래서 그 격변의 시대에 정상적으로 정계를 은퇴해 회고록까지 남긴, 그야말로 권모술수의 대가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의 결말에서 발자크는 말랭의 납치 사건의 진범을 언급하기 위해 푸셰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데, 그가 실제로 나폴레옹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다.기회주의자이자 최고의 처세술을 가진 그가 천수를 다한 사실이 왠지 씁쓸하다.    


사실 당시 대다수 귀족의 모습을 대변하는 이가 도트세르가 아닐까? 그는 왕가의 복귀를 기원하면서도 현실의 정부에 복종했다. 왕당파 패배 이후로 원한에 잠겨 소리없이 살아갔다. 혁명의 폭풍우가 지나가도록 방관했다가, 왕정복고 체제하에서는 숨겼던 저축으로 부유해졌고, 신중했던 자신들의 충성심을 자랑스러워하며 재기했다가, 왕정복고 체제가 다시 무너지자 시골로 되돌아간 귀족. 그야말로 악하지는 않지만 비겁한 대부분 우리의 모습.


여타 그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물에 대해 광장히 세밀하게 묘사한다. 글자를 읽고 있지만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한 그의 인물 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이러한 묘사들이 인물들의 성격과 특성을 너무 잘 나타내주고 있다. 소설에는 허구의 인물도 있지만 실존했던 인물도 있어서 이러한 부분들이 더 인상적으로 읽혀진다.    



제1집정관 음모가 발각되어 코랑탱이 헌병대를 이끌고 생시뉴 성으로 향하고, 다른 한편에서 미쉬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아내 마르타를 로랑스에게 보내는 장면은 현대의 어지간한 스릴러 소설보다 긴장감이 팽팽하다. 이 장면을 서술하는 분량이 적지 않은데, 그 안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 묘사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발자크의 필력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1부가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소설같았다면, 3부는 사면초가에 놓인 생시뉴 사람들과 법정 미스터리를 방불케 하는 진실 밝히기다. 진실을 말해도, 진실을 숨겨도 어차피 그들을 기다리는 건 유죄다. 그럼에도 침묵을 지켜야만하는 이유는 진실을 밝히는 순간 단순한 절도죄에서 끝나지 않으며 사형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자가 뻔히 알고 있는 일차원적인 진실이 문제가 아니다. 발자크는 독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미쉬의 발언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위장인지, 아니면 그들 모두 함정에 빠지고도 덫에 걸려든 줄도 모르는 건지. 그런데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는 것. 용감무쌍한 로랑스도, 헌신적인 미쉬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터다.


3부에서 법률 실무가 보르댕과 변호사 드 그랑빌이 의뢰인인 로랑스 일행에게 사건 진행의 정황을 설명하고, 변론하는 장면은 발자크의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어서 소설의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다. 발자크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놓치지 말라고 권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거슬렸던 부분은 드 시뫼즈 쌍둥이 형제는 미쉬 덕분에 망명 생활 동안에도 돈이 궁하지 않아서 여행을 즐겼고, 외국 궁정에서 환대도 받았다. 그런데 온갖 멸시와 비난을 감내하며 종당에서 목숨까지 걸었던 미쉬를 생각해 볼 때 과연 망명 생활자로서의 그들 행동은 적절했을까? 또한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로 인해 여러 사람이 고통 당하고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도 출신과 명예를 따지는 그들의 오만한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로랑스조차 미쉬를 구하기 위해 그토록 증오하는 황제의 장화에 입이라도 맞추러 가겠다고 하건만.



드 그랑빌의 변론처럼 우리 사회는 불행을 돌이킬 수 없게 될 때에야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 소설에는 발자크의 작품에서 종종 보이는 통쾌한 한방은 없다. 그러나 위에 썼듯 그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재미에 푹 빠질 수 있는 소설이다. 3부는 별개의 법정 소설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발자크 만세를 외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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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동남아 - 30개의 주제로 읽는 동남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
강희정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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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동남아 여행지는 말레이시아다.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동남아시아에서도 꽤 먼 편에 속한다. 일본은 고사하고 제주공항에 착륙할 즈음에 멀미가 시작될 정도로 멀미대왕인 나는 쿠알라룸프루에 도착할 때 이미 떡실신 상태였다. '바나나 머니'로 시작되는 책의 첫장부터 등장하는 말레이 반도 덕분에 추억팔이로 시작하는 책읽기다. 


여행으로 얘기를 꺼냈지만, 이 책은 여행서가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에 대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읽다보면 재미있는 강연을 듣는 것처럼 어렵지 않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중학교 1학년 때 백과사전 전집을 소설처럼 읽은 시기가 있었는데, 그 당시 읽었던 내용보다 훨씬 재미있다.  








 
17세기 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자바섬에 심은 커피, 19세기 말 영국이 말레이반도에 심은 고무와 팜오일은 제국주의자가 동남아에 옮겨 심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고무와 팜오일의 경우 21세기인 지금도 전 세계 생산량 1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2위라는 부분에서 문득 아보카도가 생각났다. 과잉 생산과 환경 문제가 맞물려 이슈가 되기도 했던 이 열매나무 또한 신자유주의가 낳은 경제 식민의 다른 형태의 흔적이 아닐까싶다. 


유럽인들이 동남아시아에서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19세기에서 20세기 중국계, 인도계 노동자들을 동남아시아로 대거 유입시켰던 역사는 러시아가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대규모 강제 이주시킨 고려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우리 역사에 오구라 콜렉션이 있듯,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 역시 문화유산 약탈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강제 이주, 인플레이션, 전염병, 분열과 차별, 문화유산 약탈, 자원 갈취 등 제국주의가 남긴 흔적은 아직까지도 깊게 남아 있다. 그들의 명분이 늘 문명화였지만, 유럽 국가들이 동남아시아를 식민화하기 이전에 이미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수준이 그리 낮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양한 경로로 밝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ㅡ 


기후와 자연 환경에 따른 농경 및 특산물 재배와 신대륙으로의 전파, 그에 따른 해상 무역과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 확산으로 인한 폐해 등 동남아시아 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한다. 각국의 특산물 혹은 주요 식자재가 갖는 의미와 음식 문화에서 알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과 문화적 혼종성, 그리고 각 나라의 사회적 환경에 따른 식생활까지, 거기다 전통 문화와 예술, 축제와 종교, 관광산업, 대중문화 등 비슷한듯 하지만 저마다 다른 문화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싱가포르의 식생활 문화, 아주 마음에 든다.) 


3장에서는 근현대 정치사에 대해 서술한다. 미얀마와 타이에서 독재자에 맞서 민주화를 위한 저항에 앞장서는 청년들, 작은 국가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똑똑한 다자외교를 통해 소국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국제사회에서 허울뿐인 지위보다는 실리를 더 추구하는 강소국 싱가포르, '독립적인 행동 외교' 원칙을 고수하며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방식을 채택하는 인도네시아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구에 종속된 역사와 정치가 아닌 현재 그들의 정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ㅡ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책의 후반부에 위치한 싱가포르의 정치와 외교정책, 그리고 효율과 실용을 중시하며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정부 조직 체계였다. 국가 전반에 흐르는 유교적 영향 때문에 연장자 우선, 서열과 권위의 문화가 적지 않음에도 실용 문화와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했던 바대로 우리나라가 세계 순위에 집착하며 몸뚱아리 부풀리기에 급급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사실 인도 아대륙만 들여다보기에도 상당히 복잡한 문화, 종교, 정치가 얽혀 있는데, 하물며 동남아시아에 관련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학구적으로 깊게 파고들겠다는 목적이 아니라면 이 책은 충분히 앎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고 내가 관심있는 부분을 먼저 선택해서 읽어도 무방하다. 적당하게 가볍고, 적당하게 무겁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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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울수록 풍요로워진다 - 삶을 회복하는 힘, 팬데믹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세상
목수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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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왜 정부의 모든 개혁은 공공 영역 파괴로 귀결되는가?"  



정말 오랜만에 읽는 목수정 작가의 책이다.  


스크린쿼터, 도서정가제, 부동산 개발주의, 생태사회, 저출산, 교육, 경제 및 문화자본에 의한 사회 계급, 미투, 젠더, 노년의 은퇴와 청년 실업, 과거사 청산, 사회 분열, 팬데믹을 통해 들여다본 의료 과학의 현주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자본에 의한 전지구적 전체주의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짚으며 마크롱 정부를 통렬히 비판함과 동시에 한국 사회를 같은 선상에 놓으며 우리가 지향해야할 바를 제시한다. 기억에 남는 부분과 함께 들었던 몇 가지 생각들을 써본다. 









 
파리 동쪽에 있는 인구 10만의 도시 몽트뢰이에는 유럽에서 제일 큰 공공영화관 멜리에스가 있다. 프랑스의 공공영화관은 지자체가 주민들의 문화향유권을 위해 영화관을 사들여 민간단체에 다소의 지원금을 주고 위탁운영한다. 이 영화관에서는 매달 80여 편의 영화들이 상영되는데 국적으로 따지자면 약 30여개국의 다양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의 모든 멀티플렉스에서 한 영화는 동시에 두 개 이상의 관에서 상영될 수 없기 때문에 스크린 독과점이 없는 덕이기도 하고 ,멜리에스가 다양성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영화관의 규모나 관람료, 연령을 불문한 직원들의 다정함을 떠나서 상업영화부터 예술실험영화, 독립영화 등을 선택해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멜리에스의 매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건물 내의 문화프로그램과 시민 활동가들의 프로그램, 도서운동 단체가 운영하는 도서관 등 다양한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끌었던 부분은 대형 상업영화관들의 강한 도전에 멜리에스를 지켜낸 것은 바로 시민들이었는 점이다.  


이어진 라 칼리포니의 탄생 과정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젠트리피케이션이 곧바로 떠올랐다. 저자는 라 칼리포니가 자본주의의 대안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는데, 우리나라였다면 불과 몇 년 안에 라 칼리포니를 탄생시킨 이들은 대부분 자본가들에게 쫓겨났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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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동네 서점은 온라인 서점과는 다른 가치를 지향하고 있음을 들면서 여전히 굳건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프랑스 동네 서점에 대해 얘기한다. 파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편의와 정서를 고려해 도서관과 공적인 기관을 분담하고 있음을 덧붙여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경기도의 경우, 주민들이 지역 도서관보다 먼저 동네 서점을 통해 원하는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완전히 정착되기까지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동네 서점의 기능에 대해서는 각 나라, 도시마다의 문화와 정서, 현실적인 주거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이다. 우리 동네의 경우 주거 형태가 대부분 공동주택이고, 한 거주지에서 수십 년을 사는 사람이 드물다. 심지어 2년만 살겠다고 작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다보니 주민 간의 교류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나만해도 사는 동안 위 아래 앞 뒤 집이 여러 차례 바뀌어 지금은 얼굴도 잘 모르는 지경이다). 지역 독서모임 역시 이사 등의 문제로 회원이 자주 바뀌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 책에서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이 부분 역시 한 지역에서 오래 거주 할 수 없는 개발의 폐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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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에대하여 - 우리집에는 냉장고가 한 대다. 김장(이라고는 하지만 열다섯 포기를 넘기지 않는다)까지 담그면서 그 흔한 김치냉장고가 없다. 빌트인으로 주방 베란다에 설치된 김치냉장고와 냉동고는 입주할 때부터 전원을 아예 차단했다. 냉동고 역시 냉장고의 한 칸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냉장(동)고의 원리를 살펴보면 냉장고는 비울수록, 냉동고는 채울수록 전기료가 적게 들고 고장도 방지할 수 있다. 결국 냉동고는 그 안을 꽉꽉 채워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한 대 뿐인 냉장고에서도 한 달이 지나면 버려야할 음식이나 식재료가 생긴다. 얼마 전 집에 냉장고만 세 대인 지인의 집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식구가 넷 뿐이고 식구 모두가 삼시세끼를 모두 집에서 해결하는 것도 아닌데 이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과 식재료는 언제 다 먹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버리는 게 반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 '내' 돈으로 전기료 내고, 식제료(음식)를 사서 먹지도 않고 음식물쓰레기 비용을 지불해서 버리면, 우리의 세금으로 또다시 이 쓰레기들을 처분해야 한다. 거기다 같이 따라온 플라스틱 자재까지. 건강은 또 어떠한가. 과식하고 소화제 먹고, 다이어트 한다고 굶거나 지방분해 보조식품을 챙겨 먹는다. 노동의 대가가 쓰레기를 양산하고 그 쓰레기를 처분하는 데 쓰인다는 사실, 환경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지한다면, 좀 달라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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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 만5세 입학을 두고 심각한 논란이 벌어졌고,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교육부장관은 결국 사퇴했다. 그런데 이 논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만 5세' 일까? 일단 유치원이 아닌 초등학교라는 것, 교사와 시설, 교육 선진국의 꼼꼼한 사례와 우리나라 교육 실정의 비교, 무엇보다 교육 체계의 변화없이 입학 순간 입시 지옥의 문에 들어선다는 점에서 '만 5세 입학'은 즉흥적이고 분별없는 제안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유치 단계의 교육을 공립으로 흡수하는 것과 지식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을 머리와 몸이 함께 체험하는 것에 대해서는 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차고 넘치지만 입시 제도가 바뀌어야함은 물론이고, '학습과 교육'이 지향해야할 바에 대한 시민교육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과감히 '탈 공교육'을 실행하는 이들도 있지만, 모든 부모가 실행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공교육이 더 올바른 길로 가야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거쳐가는 곳이고, 인권 환경 경제 정치 예술 교양 등 인간 사회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살아야 한다는 문구는 그냥 흘러들을 말이 아니다. 교사이자 작가인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입시가 아니었다면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썼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저자는 중산층 자녀들의 문화예술 체험이 학업 성적에 연계하고 있는 프랑스 사회에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는 단순히 성향에서 오는 차이가 아닌 부모의 경제 및 문화자본에 근거한다는 것. 가능하면 이 격차를 줄이도록 노력할 수 있는 현장이 공교육 뿐임을 감안다면 교육이 가져야할 묵직한 소명 의식을 각성해야할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교육 예산을 축소하고, 교사를 충원하지 않는 등의 문제들로 총파업을 알리는 교사회에서 학부모들의 동참을 부탁하는데,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학부모들이었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수업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학부모들이 피해자 학생과 학부모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우리네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그리고 정부에서 비유럽권 학생들에게만 대학등록금을 약 열여섯 배 인상하는 방안을 내놓자 대학들은 정부를 향해 반교육적이자 반민주적인 계획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외국 학생들의 인상된 등록금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불복종 선언을 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두 손들어 환영까지는 차마 못하더라도 마지못한 척 수긍하지 않았을까. 대학이 공립이기에 가능한 반응인지도 모르겠지만. 


눈에 훅 들어온 부분은, 프랑스가 전범 재판 와중에 좌우합장 임시정부가 제헌의회가 수립되기도 전에 먼저 취한 조치가 사회보장제도 수립이었다는 대목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장 우선했던 것이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을 보장받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해방된 조국을 친일파 인사들이 장악한 우리나라에서 인간의 기본 조건은 고사하고 과거사 청산조차 온전하지 못했으니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회 문제에 관련한 책들을 읽다보면 하나의 문제를 하나로만 해결할 수 없음을 늘 깨닫는다. 직업과 교육에 관련한 시민의식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입시제도는 변하지 않을테고,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하위 교육 체계 또한 변화에 있어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근래에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변화된 프랑스의 교육 제도는 그야말로 아연실색할 만하다. 이제와서 제발로 잘못된 길로 들어선 프랑스 교육 정책이 제 갈길을 찾아가기를 바란다(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새삼스레 느낀 부분은 우리와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는 시민의식이다. 물론 프랑스 사회의 문제점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책에서 언급되는 문제점들이 과히 낯설지 않다. 오히려 아주 익숙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한창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프랑스 사회(더불어 국제 사회)의 문제점들을 통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들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다. 사실 언급한 문제들이 개별적으로 개선되기는 쉽지 않다.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시민의식이 필요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유기적인 제도 개선과 협력을 요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면을 쓰고 승자독식을 지향하는, 그래서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분배를 허용하지 않는 자본의 프로파간다는 절대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도가 개선되고 거대 권력이 움직이는 때는 개인이 모여 목소리를 높일 때 뿐이었다. 


목수정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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